〈 54화 〉 인어소녀(1)
* * *
소파에 기댄 체 잠시 자고 나니 그래도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TV를 켜둔 체 신문을 펼쳐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하며 쉬고 있는데 다슬이가 그를
찾아왔다.
“좀 쉬었어?”
“응, 오빠, 우리 식사하러 가요.”
“식사. 어디로?”
“어디 냉면 먹으러 가요.”
이제 다슬은 더 이상 상준을 거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쉽게 표현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다슬이를 데리고 해변가에 위치하는 냉면 전문집으로 들어섰다.
냉면집에는 한 그룹의 손님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글쎄 말이야,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얘기.”
“해자도 주변에서 봤다는 귀신 말이야.”
“그건 말도 안 돼. 요즘 시대에 귀신이 어디있어?”
“그렇기는 해.”
“그래도 귀신을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니.”
상준은 직감적으로 뷰티걸을 두고 수근거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총각 왔네요. 뭘 드릴까요?”
냉면집 아주머니가 상준을 알아보고 반가워하였다.
“뭐 먹을래?”
“물냉.”
“전 비빔 주세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언재 보아도 상냥한 냉면집 아주머니였다.
상준이 이 곳에 온 후로 외래 방문객이 늘어나서 장사가 잘된다며 하계휴양소에 많은 찬조를 해주신 분이시다.
상준은 이 아주머니를 보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말을 한마디 해도 힘이 나는 말씀을 곧잘 해주신다. 어떤 사람은 남이 잘되는 걸 배를아파하는데 이 분은 결코 그런분이 아니다.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격려도 해 준다.
‘영업 전략인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저런 분이 복 많이 받으면 좋겠다.’
“너 냉면 좋아해?”
“저야 피자, 햄버그, 스테이크 등 뭐든 잘먹어요.”
다슬은 자신의 허리를 양 손으로 쥐어 보이며 자신의 몸매를 은근 과시한다.
“저 이러다가 살찌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애.”
그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체질에 따라 차이가 많다. 어떤 사람은 어지간히 먹어도 전혀 몸무게가 불어나지 않지만 어떤 이는 식사량이 적어도 비만에 가까운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돈으로 군것질을 하면서도 남의 눈치까지 보게 된다.
“너 키는 얼만데?”
“응. 168 쯤.”
“큰 편이네.”
“오빠는?”
“몰라. 군에 갈 때는 182였는데, 좀 더 큰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오빤 185는 될 것 같은데. 몸이 날씬해서 그런가?”
“이나저나 도긴개긴이지.”
그러는 사이 냉면이 나왔다.
“음, 시원해.”
“맛있지?”
“응”
확실히 이집은 전문집이란 간판이 무색하진 않다. 손님이 분비는 이유를 알것 같다.
“오빠 오늘 저녁에도 같이 갈까?”
“아냐, 오늘은 쉬어. 나도 오래있진 않을 거야.”
“알았어요.”
“그리고, 너 또 그러면 안된다.”
다슬은 상준의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을 붉히며 어떤일이 있어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미안해요. 오빠.”
식사를 한 후 해수욕장 일대를 돌아본 후 요트 계류장 공사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술이 좋은지 이런 일들은 잘하는것 같다.
인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봉투 사서 공사에 바쁜 인부들과 기술자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몇몇 당부도 해두었다.
“너도 하나 먹어.”
상준은 다슬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내어 주고 자신도 하나 입에 물었다.
해안 요트 계류장을 거쳐 절벽을 따라 솔밭길로 접어들었다.
솔밭에서 바라보는 회사 건물과 사택 건설 현장이 규모나 풍경이 장난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바다쪽 전망이 멋질 것 같았다.
“집에서 보면 해수욕장과 항구가 다 보일 것 같아요.”
“그렇겠지. 야간에 보면 더 멋있을 걸.”
“나중에 준공식 하면 꼭 연락해줘.”
“휴가 날짜를 맞출 수 있을까?”
“미리 알려주면 조절할 수 있을 거야.”
저녁 식사를 한 후 낚시채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신 팀장이 따라 나서려고 하였다.
“금방 올 거야. 신 팀장은 안와도 돼.”
상준은 신 팀장을 두고 혼자 배에 올라 해자도 쪽으로 요트를 몰았다.
오늘의 낚시터는 해자도 동쪽 3해리쯤 떨어진 먼 바다로 나갔다.
‘오늘도 나타나 줄까?’
상준은 전과 다름없이 낚싯대를 던져 뱃전에 걸쳐두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 이때 필요한 건 담배 한 개비였다. 담배갑을 꺼내보니 차마 눈을 뜨고 보기가 민망했다.
‘시발, 꼭 담배갑에 이런 더러운 사진을 넣어야 하나’
담배를 피우면서 한편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만 피해를 안주면 되지, 이런다고 뭐 달라지나 싶었다.
자신보다 더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은 담배가게 주인일것 같았다. 하루 종일 그 흉한 사진을 보고 있어야 하니까.
상준은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뷰티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낚시에 달아둔 방울소리가 딸랑거려 당겨 보았더니 곰치 한 마리 걸려 올라온다.
‘여기에도 곰치가 있었나?’
곰치는 고기 모양은 별로 탐탁치가 않았으나 무를 썰어넣고 매운탕을 끓이면 맛이 시원하고 속이 편해 해장용으로 인기가 좋다. 물론 봄, 가을에 회를 먹기는 하지만 횟감으로 쓰기 보다는 매운탕과 지리용으로 주로 팔리면서 식감이 부드러워 아는 사람들만 주로 찾는 맛이 좋은 물고기였다.
물매기 처럼 옛날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와서 자연산이라 하여 미식가들이 즐겨먹는 어종이고 해안에 사는 노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어종 중에 하나다.
곰치를 빼어내어 고기통에 넣으려는 순간 상준의 눈에 팔뚝 모양의 연두색 섬광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진호 앞바다는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좌우로 꼬리를 흔들며 요트주변을 순회하듯 거닐다 상준의 카리스마와 레이저 같은 눈빛을 받으며 달아둔 새드윔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는 방울소리가 밤공기를 흔들었다.
‘음.’
상준은 가는 신음을 토하며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우두둑 둑, 딸랑딸랑.”
방울소리와 함께 바닥을 치는 낚싯대의 흔들림 소리에 얼른 릴을 감아올렸다.
발버둥치며 버티는 힘이 쾌감을 주는 손맛이었다.
‘그래, 이 맛으로 낚시하는 거지.’
상준은 팔뚝에 전해오는 짜릿한 감촉을 최대한 음미하며 끌어 올렸다.
‘뭐야 이것 괴도라치 아니야?’
‘괴도라치가 이렇게나 큰것이.’
상준은 놈이 내 뿜는 섬광을 보았기에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보통 배도라치와 구별할 수 없었다.
대충 이런 물고기가 배도라치란 것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전부였다.
괴도라치를 해체하면서 그제야 알았다. 허물허물 해야 할 괴도라치의 껍질이 쇠가죽보다 몇 배나 더 단단하였다.
괴도라치 변종이 틀림없었다.
껍질을 벗겨 늘어두고 내장 속에서 진주알 크기의 옥구슬 두 개를 찾아내었다.
옥구슬은 야광주가 틀림없었다.
“아저씨.”
“깜작이야.”
상준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뷰티 걸이 요트를 붙잡고 매달려있었다.
“뷰티 걸?”
상준은 얼른 손을 씻은 다음 그녀의 손을 잡고 당겨주었다.
“너, 저 안에 들어가 의자 가져나와.”
쿨하게 얘기하자 뷰티 걸은 태연하게 선실 안으로 들어가 의자를 가지고 선실로 나왔다.
“거기 앉아.”
상준은 순간 인어의 모습이 떠올라 그녀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의자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어디를 봐도 인어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였다.
“어제는 고마웠어요. 덕분에 사람을 구할 수 있었어.”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어디서 왔어요?”
소녀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 수평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먼 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저기 등대 마을에 사는 낚시꾼인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상준은 자신이 범죄자 심문을 하듯 하고 있다는 걸 순간 깨닫고 말투를 바꾸었다.
“그냥 왔어요. 심심해서.”
“여긴 위험한 곳이에요. 혹시 이름이?”
소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름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식상한 듯 하품을 하였다.
‘이걸 잡아 세상에 알려?’
‘아니지 누가 이 아이를 인어라 할까?’
“미안해요. 내가 너무 궁금해서.”
상준은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더는 묻지 못했다.
그녀의 복장은 짧은 핑크빛 래쉬가드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졸린 듯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상준은 시간을 벌기위해 낚싯대를 던졌다. 몇 번을 던져도 좀처럼 고기는 물지 않았다.
어느새 그 애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있었다.
‘먼 길을 오느라 지쳤나?’
눈을 감은 상태라 그제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나이는 많아도 1819세가 되었을까?
가까이서 보니 더 어려 보였다. 연예인 누구가와 닮은 것 같긴하데 선뜻 머릿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과 비교하면 고등학교 2, 3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여고생 같아 보였다.
키도 그리 크지 않았다.
‘160Cm 정도 될까?’
‘맞아 탤런트 조보아, 맞네.’
‘그 애와 닮았네. 분위기가 비슷한가?’
피곤에 지친 듯한 소녀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낚싯대 끝에 매달았던 방울을 떼어낸 후 조용하게 던졌다. 오늘은 주로 물매기와 곰치 같은 어종이 주류를 이루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더는 낚시를 못할 것 같아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금방 잡아 올린 물매기를 장만하여 매운탕을 끓이고 햇반을 꺼내 탁자에 올려두고 고들빼기 장아찌와 송이버섯 장아찌를 꺼내두었다.
그래도 소녀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다.
‘어떡하지?’
상준은 무턱대고 기다릴 순 없어서 바다에서 온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미안해. 이제 일어나야 할것 같아.”
기지개를 펴는 소녀의 모습은 그냥 아기 같았다.
“아, 모처럼 좀 푹잤어요.”
“저기 선실로 좀 들어가 봐.”
잠깐 망설이던 소녀는 상준을 따라 선실안으로 들어갔다.
“이것 좀 먹어봐. 맛이 있을거야.”
“고맙습니다.”
소녀는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햇반과 매운탕을 맛있게 먹더니 장아찌들도 주워먹었다.
“밥 좀 더 줄까?”
소녀는 고개를 저으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게?”
소녀는 선실 밖으로 나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더니 물로 뛰어들 것 같았다.
상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 내 할말 있어. 너 이름은 [뷰티 걸]로 해. 너 이름 없다며? 내가 지은 이름이야.”
“.....?”
“그리고 한가지 더. 저기 저 섬 가까이는 절대 가지마. 위험할 수도 있어. 널 목격한 사람이 너무많거든.”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리고 너 나중에 나좀 도와줘.”
그리고 소녀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 몇번이나 손을 흔들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다.
상준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아니 믿어주지도 않을 비밀을 간직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온 금발의 소녀를 만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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