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가슴이 너무 아파(2)
* * *
식사를 한 후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자 주로 선실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상준은 소파에 누워있는 희진을 바라보고만 있기도 그렇고 하는 수 없이 비를 맞으면서 낚싯대를 던져 넣었다. 어차피 젖은 옷이기에 반바지만 입고 웃통은 아예 벗어버렸다.
“아, 시원하다”
며칠 동안 뜨겁기만 했던 햇살에 내리는 비는 너무나 상쾌했다. 한참 동안 두 팔을 벌려 온 몸으로 비를 맞다가 희진이 생각이 갑자기 났다. 며칠간이나 바닷물에 드나들며 소금물에 찌든 희진이가 얼마나 씻고 싶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희진아, 빨리 나와 봐.”
선실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던 희진은 후다닥 선실 밖으로 뛰어 나왔다.
“와, 시원해!”
사람의 본능은 다 비슷한가 보다.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면서,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고, 샤워를 하는 것처럼 좋아 야단이었다.
“좀더 세게 내리면 좋겠어요.”
제법 빗방울이 굵기는 했으나 좀 더 많은 비가 쏟아지면 좋겠다고 상진도 생각했다.
“첨벙.”
상진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희진도 따라 뛰어 들었다. 비가 내리는 무인도 해안에서 수달 한쌍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그런 형상이었다. 슬그머니 장난기가 발동한 상진은 희진의 머리를 물속으로 누르며 장난을 걸자, 희진도 지지 않으려 상진의 목을 감고, 조르고, 누르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때 빗속에서 날아온 알통다리 꽃하늘소가 바다위에 떨어졌다. 알통다리 꽃하늘소는 검은빛을 띤 짧은 털이 온 몸에 빽빽한 것이 특징이다. 딱지날개는 누런 갈색이며 다섯 개의 검은색 얼룩무늬가 날개에 있다. 수컷 뒷다리의 모양이 곤봉 모양이다. 그래서 알통다리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상진은 그놈을 잡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무엇인가 불쑥하며 꽃하늘소를 삼키고 물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희진아, 나가자.”
상준은 희진을 향해 손을 흔들자 희진이도 부리나케 요트 쪽으로 도망쳐 오자 희진을 안아 요트위로 올려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요트에 올랐다.
“오빠, 그게 뭐였죠?”
“글쎄. 곤충은 알쫑다리 인데.”
희진의 모습을 보다 상진은 다시 빗물을 받아가며 세수를 하고 몸을 씻으면서 희진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너, 팔다리에 근육통이 생겼다며?”
“조금 좋아졌어요.”
“너무 많이 쓰지마. 아마 너 낚지 잡을 때 생겼을 거야.”
상진은 낚싯줄을 감아 다시 바다로 던져 넣었다. 빗줄기는 조금전보다는 가늘어 졌으나 여전히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희진은 선실로 들어가 접이식 안락의자 두 개를 펴서 상진에게 내어주었다.
비는 오는데 낚싯대는 드리워 놓고 안락의자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얼마나 낭만적일까? 상진은 이렇게 사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루 빨리 어선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두개의 생각이 들곤 하였다.
그 순간 희진이도 비슷한 생각이 났는지 한마디 하였다.
“요렇게 살면 좋겠지요?”
“......”
상준은 잠깐 엉뚱한 상상을 한 자신처럼 말도 안되는 말을 하는 희진이가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였다.
‘헐.’
그때 낚시 방울소리가 상진의 상상력을 깨어나게 했다. 고기가 문 것이 틀림없었다. 줄을 감아보는데 당기는 힘이 상상 이외였다.
“큰 놈 같애요.”
희진의 소리에 아랑곳 하지않고 줄을 당겼다. 괴 물고기였다. 험상하게 생긴 중형 물고기가 틀림이 없는데 아무래도 가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야 희진은 카메라가 생각났는지 선실로 달려가 즉시 카메라 꺼내어 셔트를 눌렀다. 그리고 다시 동영상으로 전환하여 비내리는 바다와 잡아 올린 괴 물고기와 요트의 풍경을 하나하나 담고서 고기를 해체하는 상준의 모습을 카메라에 잡았다.
“오빠! 멋있어요. 이것 동영상 나가면 아가씨들 무척 좋아하겠다. 그보다 아줌마들이 더 좋아하실까?”
상준은 희진을 돌아보다 즉시 고개를 돌리고는
“역시 없네.”
“없어요?”
“응. 이건 그냥 괴물고기일 뿐이야.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아쿠아리움에나 넣어두면 되겠네.”
“아쿠아리움?”
“우리 나중에 아쿠아리움 하나 만들까?”
상준은 무심결에 하는 말이었으나 언젠가는 해양박물관이나 아쿠아리움을 세울 생각을 안해 본건 아니었다.
희진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상진이 자신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안락의자에 오랫동안 누웠더니 팔, 다리, 허리의 근육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고, 비를 오랫동안 맞게 되니 약간의 한기가 일어났다.
“오빠, 저 추워요. 안으로 들어갈게요.”
“음, 그래.”
상준은 방금 잡은 괴물은 워낙 험상궂어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버리려다 살점 한 덩어리만 미끼용으로 떼어내고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괴물의 살점을 잘라 다시 바다로 던져넣었다.
“오빠, 추워요. 들어오세요.”
선실에 들어서니 희진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들고 있던 과자 뭉치를 내어주면서
“이것 좀 끌어줘요.”
상준이 받아보니 과자봉지 다섯 개를 테이프를 감아 한 뭉치로 만든 묶음이었다. 나이프로 잘라내어 한 봉지를 건네주며
“네가 어찌 과자를 안샀을까 했네.”
“매장에 가니 한 묶음씩 묶어 할인해서 팔더라구요.”
“응, 잘했어” 상진도 봉지 하나를 뜯어 먹으면서 종종 창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팔다리가 많이 아파요. 알통이 생겼는 것 같아요.”
“왜 안 그렇겠어. 평소에 안하던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때 밖에서 방울 소리가 딸랑거렸다.
“넌 여기 있어. 오늘 비도 오고해서 뭔가 좀 잡힐 것 같아.”
상준은 뛰어나가 줄을 감았더니 쏨팽이와 병어가 잇따라 올라왔다.
“뭐예요?”
“쏨팽이.”
“이번엔요?”
“병어, 열기... 등, 등.”
잡은 고기는 모조리 물에 담궈 두고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희진은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등은 소파 등받이에 붙이고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조심조심 다가가 반듯하게 눕혀주고는 모포를 활짝 펴 아랫도리를 덮어주었다.
“오빠, 나 다리 좀 만져줘.”
“안 잤어?”
“다리가 아파 잠을 못자겠어.” 상준은 순간 희진이가 꼭 동생이란 착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의자를 당겨 앉아 모포 밑으로 손을 넣어 종아리와 발목을 만져주었다.
“발도 좀.”
상준은 희진의 발바닥을 엄지로 꼭꼭 눌러주자 발가락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같더니 곧 잠이 든 것 같았다. 상준은 다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하늘은 흐렸으나 비는 더 이상 오지않았다.
잠시 후 다시 낚싯대의 방울이 세차게 흔들렸다. 물속에 걸린 놈은 분명 괴물이었다. 푸르스름한 섬광이 물속에서 요동을 치며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걸렸어.’
상준은 있는 힘을 다해 그 괴물을 당겨 올렸다. 제법 큰 놈이었다. 상준이 잡아 올린 대부분의 괴물은 운석이 떨어질 때 섞여있던 외계 보석을 물고기가 삼킨 것이 대부분이었다. 과거 한때 외계에서 들어온 또 다른 괴물도 있기는 하였지만 그건 칼복과 거북상어가 다인 것 같다.
운석우나 유성우가 쏟아질 때 외계의 금속이나 외계의 원석이 운석에 섞여 함께 떨어진다. 운석의 값도 장난이 아니지만 보석의 원석은 짐작도 못할 만큼 값이 비싸다.
바로 오늘 그 것을 건졌다.
[붉은 날개 황복]
상준의 가슴은 벌렁벌렁하였다. 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다 불룩한 뱃속에는 탁구공만한 황색보석 원석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유성우가 떨어질 때 대형 황복이 입으로 그것을 삼켜버린 것이었다. 그 원석의 영향으로 붉은 날개가 돋아난 것이고....
잠에서 깬 희진이 밖으로 나와 붉은 날개 황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와, 예뻐요.”
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희진을 와락 껴안고 풀쩍풀쩍 춤을 추었다.
“됐다. 희진아.”
“그렇게 좋아요?”
“그래, 우린 해냈어.”
상준은 다시 와락 껴안으며 희진의 볼에 연거푸 뽀뽀를 하며 날듯이 좋아했다.
“그럼 저 휴가안가도 휴가비 반납하라고 안하실 거예요?”
“뭐?”
상준은 희진이 갑자기 엉뚱 말을 하자 껴안았던 희진을 풀어 놓으며 자신의 행동이 지나친 것 같아
“미, 미안해. 너도 오늘 땡잡았다.”
“무슨 땡요?”
“특별 보너스 오백.”
“오백?”
“응.”
“오백원?”
“뭐?”
“그럼 오백만원?”
희진이 갑자기 상준을 껴안으려 폴짝폴짝 뛰었다. 상준은 희진의 행동에 멍하니 서 있다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였다.
“500%.”
“예? 그럼.”
희진은 계산이 잘 안 돼 상준의 몸에서 떨어져 잠깐 생각을 하더니 다시 상준의 몸을 껴안으려 하자 상준이 재빨리 희진을 떼어 놓으며
“한번 날 안으면 100만원씩 삭감할거야.” 그제야 희진이도 정신을 차리고 상준을 쳐다보며 생글거렸다. 한편은 수줍기도 하고 한편은 무안하기도 하여
“그럼, 이제 돌아가야 하네.”
“....?”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가야지.”
“....?”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니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하늘 곳곳에 뭉치듯이 떠가고 있었고 동쪽 하늘엔 구름 사이로 반달이 오롯이 떠오르고 있었다.
“오빠, 오늘 저녁은 무얼 먹을까요?”
“오늘 우리 황복 먹을까?”
“황복 요리? 원래 복어는 독이 있어 전문가 아니면 어렵다던데?”
“걱정 하지마, 나 황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거든. 피만 잘 뽑아내면 문제가 없어. 천하일미라고 황복 요리가. 우린 어차피 냉동도 안 되니 먹는 것이 남는 것이지.”
“그럼 쌀이 조금 밖에 없으니 밥은 내일 아침에 먹고.”
“내가 오늘 황복 요리 해 줄테니 한번 먹어봐.”
상준은 황복의 배를 갈라 일단 탁구알 크기의 주황빛의 원석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 후 머리를 잘라 피를 뽑고 내장은 전부 버렸다. 그리고 등 쪽을 중심으로 여러 토막 내고 다시 씻었다 노란빛 황복살이 투명하게 될 때까지 몇 번을 씻어준 뒤에 냄비에 넣고 물을 가득 부은 뒤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를 잘라 넣어 익을 때까지 푹 끓여주고, 그 다음 파와 마늘을 넣어 잠깐 더 끓인 뒤 국그릇에 퍼 담았다. 복어의 살들이 대부분 풀려 물이 빡빡해지고 뼈가 어스러질 정도였다.
“자, 이제 먹어보자.”
희진은 한 술갈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였다. 복어의 살이 물에 풀려 진득한 맛을 주며 고기의 향이 맛을 더해주었다.
“음. 이건 정말 미친 맛이야.”
상준도 한입 붉은 날개 황복국의 맛을 보았다.
“역시 깜 놀.”
서로를 바라보며 확인을 한 후 정신없이 국을 퍼먹기 시작했다.
“세상에 황복에 이런 맛이 날 줄이야.”
“너, 복요리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응, 알고 있어요.”
“어디 가서 흉내도 내지마. 붉은 날개 황복은 일반 복하고는 전혀 다른 거야.”
“알아요.”
그들은 또 다시 음식이 맛이 행복을 주는 것이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빠. 우리 오늘 마지막 밤인데 어떻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너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이런 기회가 잘 없잖아요. 이렇게 살아보는 것이 저의 어릴 때부터 작은 소망이었거든요.”
“소망?”
“네, 아무도 없는 외딴 무인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오손 도손 사는 것이 제 꿈이었어요.”
“그래? 그럼 너 나중에 그렇게 살아.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