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7화 - >
“나야. 들어가도 될까?”
조조의 목소리다. 잠시 책상 위에 가득하던 자료를 치운 뒤, 들어오라 하자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한 조조가 들어왔다.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
“방해는. 무슨 일이야?”
“그냥 이야기나 좀 하려고. 바빠?”
“잠깐 시간 낼 정도는 되지.”
그냥 이야기나 하려고 왔다는 말처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정말로 별 이야기가 아니었다. 안부, 휴가 중에 있었던 일, 최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마법 이론에 대한 토론 등등. 가볍게 할 만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기에 슬쩍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보기로 했다.
슬쩍-
“이건 어떻게 생각해?”
“······음, 퐁크 후작 각하 건이야?”
“방금 전에도 오셔서 재촉하시는데, 완성되면 부르겠다는데도 계속 오시네.”
“그만큼 네가 능력이 있다고 믿고 계신 거겠지.”
“······노력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워서 그렇다는데?”
“즉 각하의 생각에는 네가 노력했다면 이미 완성했을 거라는 의미잖아. 즉 네 능력을 높게 사시는 거지.”
수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문답.
“어쨌든 나는 봐도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초인의 경지에 발끝을 걸치지도 못했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 그보다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하는 말인데?
“도대체 코어에 무슨 비밀을 숨겨놓은 거야?”
“······비밀이라니?”
“모르는 척 하기는. 이전에 네 입으로 다 말했잖아. 코어 제작의 핵심에는 너만의 비전이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고.”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네가 먼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으면서. 게다가 말만 안하고 있을 뿐이지 연구소에 소속된 마법사라면 도대체 비밀이 뭘까,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걸?”
그 말에 내가 침묵을 유지하자 잠시 정적에 휩싸이는 방.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가 당황스러웠는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여, 역시 비전이라 말해주기 좀 그런가?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언제까지 너에게만 코어를 맡길 수는 없으니까, 네가 있는 동안은 괜찮겠지만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있을 거 아니야. 항상 코어 제작에만 매달릴 수도 없고. 그러니까 해본 말이지.”
일단 대충 얼버무리며 조조를 돌려보냈다. 그 뒤로 잠시 고민에 빠졌고. 과연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 감정이 객관적인 시선에서 판단한 것인지 아르민의 말로 인해 의심이 생겼기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냉정히 생각할 필요가 있었기에.
깊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전자였다. 만약 평상시의 조조였다면 내가 글로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고 하더라도 코어에 내장된 비전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을 테니까.
마법사 개개인에게 있어 비전이란 곧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이며 쌓아올린 탑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것이 비전이었으니까.
비전에 대한 마법사들의 집념은 대단해서 설령 그 대상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제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왔음을 직감하지 않고서는, 진심으로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남겨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비전에 대해서는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의 마법사였으니까.
그렇기에 나도 스승님께서 스승님의 가문의 마력 회로에 대한 것을 알려주셨을 때, 감복했던 것이고.
물론 조조는 약간 특이한 케이스에 해당했다. 스승부터가 본인의 비전을 널리 퍼트렸고 -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 조조 또한 제국으로 넘어와 연구 끝에 다시 재평가를 받았으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마법사가 곁다리라면 모를까, 핵심 중의 핵심은 자신만 알고 있다는 걸 조조가 모르고 있을 리 없을 텐데, 내가 비전이라고 말을 했음에도 슬쩍 한 번 물어보았다는 것. 물론 그 뒤에 이유를 언급하긴 했지만
‘단순히 헛소리는 아닌 모양이네.’
평소의 조조였다면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말해주기 전까지는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겠지. 물론 이것만으로 확신을 가지기에는 아직 이르다. 조금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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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어색한 만남 이후 나는 조조에게 감시자를 붙였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게 하나도 빼먹지 않고 알려줄 감시자를.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덕에 감시자로서 최고의 역량을 보유했으나 조조 또한 뛰어난 마법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명령했다.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이 감시자가 아무것도 내게 알려주지 않기를. 조조가 자신이 맡은 일에만 충실하기를. 그러나 감시자는 내 마음도 모르고 제가 맡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내는 거냐.”
조조의 방으로부터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 내가 조종하고 있는 감시자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새가 아닌 조조의 사역마가 분명했다. 여러 번 봐왔으니 내 눈이, 감시자의 눈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면 확실. 도대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그 뒤를 따라갔다.
푸드덕- 푸드덕-
조조의 사역마가 향하는 곳은 황도 외각에 자리 잡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집. 도착해 창문을 톡톡 건드리자 검은 인영이 사역마가 물고 있는 종이를 건네 받는다. 잠시 뒤, 답장으로 추정되는 종이를 물고 다시 한 번 날아오르는 사역마.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감시자와의 연결고리를 끊었다.
‘······왜?’
조조가 보낸, 그리고 받을 종이의 내용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오밤중에 은밀히 사역마를 보내어 전할 만한 내용이 무엇일지, 한 가지 외에는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모든 일에는 동기가 있는 법. 조조를 믿었던 건 그와 막역한 친우였기도 했지만 그가 제국을 배신하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크게 차지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째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뭐가 됐건 이제는 큰 의미 없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동기보다는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생각하는 편이 백배는 내게 이롭겠지. 다행인 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것. 어쩌면 황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나 내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놔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내일부터는 바빠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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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병사들과 함께 해당 건물을 급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외부에 보이는 모습은 일반적인 가정집이었음에도 내부는 외부로 향하는 비밀 통로까지 있는 등 평범한 가정집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내부에 존재하는 흔적들만으로도 이 곳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이었는지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어제의 일에 확신을 갖게 된 나는 조조를 찾아갔다.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항상 마법과 관련된 자료들로 발 디딜 틈 없던 부소장실은 오늘따라 여유롭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뭐라도 좀 마실래?”
“그렇게 길어지진 않을 거야.”
잠시 동안의 침묵.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주보고 앉은 나와 그였지만 둘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까지 먼 적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공기가 무거웠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말할게. 잠시만 내 고향에 내려가 있어라.”
“······.”
“공기도 좋고 물도 좋고, 여유롭게 수련하기에는 좋은 곳이야. 미리 말해놓을 테니 네게 필요한 건 어지간한 것들이라면 다 지원받을 수 있을 거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짧은 대화를 끝으로 다시 찾아온 침묵. 조조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미안해할 거라면 그런 짓을 하지를 말던가.
“하나만 묻자. 왜 그랬어?”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보였으니까.”
“이후에?”
“네 목표는 몬스터의 대지를 인간의 땅으로 바꾸는 거지. 그 뒤의 일을 생각해본 적 있어?”
그 뒤의 일이라, 당연히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당연한 일 아닌가. 당장 눈앞에 둔 목표만으로도 벅찬데, 그 뒤의 일까지 어떻게 신경을 쓰겠는가. 마라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출발선에 선 것도 아닌 완주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인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개발한 타이탄은 제국에 큰 힘을 주었어. 지금 당장이야 그 칼날이 몬스터에게 향해 있지만 네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 그 칼날이 향할 방향은 어디일까? 과연 위에 있는 이들이 얌전히 칼을 칼집에 집어넣을까?”
조조의 말은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했었던, 걱정했었던 부분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조는 딱히 내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아닐 거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필시 같은 사람을 향해 검을 휘두르겠지. 그게 두려웠어. 우리가 만든 검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이용된다는 것이.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이 우리를 원망하리라는 것이.”
“그래서 타이탄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너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졸지에 너를 배신한 꼴이 되었지만······. 맞아. 적어도 상대방에게 본인을 해할 수 있는 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함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조조는 황도를 떠나 드라그닐 영지로 향했다. 배웅은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갑작스러운 조조와의 이별에 당황했지만 - 휴가는 최근에 다녀왔으며 연구 목적이라면 황도가 더 적합했으므로 - 곧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떠난 이를 신경 쓰기에는 이 곳은 너무 바빴으므로.
“제 우려가 단순히 제가 과민했기 때문이 아니었군요.”
다만 아르민만이 사건이 진실을 파악하고서 씁쓸해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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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조와의 대화는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정확히는 내 목표를 이룬 뒤의 일들에 대해서. 조조의 우려는 허황된 것이 아닌, 무척이나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으니까.
자칫 잘못하면 청년기의 목표를 이루고 난 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평생을 피와 시체가 나뒹구는 전쟁터에서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지.’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는 테라 방벽에서 깨달을 대로 깨달았다. 인간과 몬스터의 전쟁이 그러할 진데 동족끼리의 전쟁을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조조의 행동은 수긍이 가는 행동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테니까.
‘사실상 코어에 대한 것만 빼면 다 넘어갔다고 봐야겠지.’
아르민을 제외하면 조조는 가장 빠르게 프로젝트에 합류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맡고 있는 영역도 넓었고, 그런 만큼 다른 누구도 아닌 조조가 정보를 넘겼다면 나만이 알고 있는 코어의 비밀을 제외한다면 타이탄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사실 타국에 타이탄이 흘러들어가는 것에 대해 그리 큰 반대의식은 없다. 조조의 말처럼 오히려 전쟁을 방지하는 길이 될 수도, 전쟁을 가속화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가 보안을 철저히 지켰던 것은 한 가지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타국에서 타이탄을 빠르게 제작하고 국경에 배치하여 제국이 모든 여력을 북쪽 정벌에 집중시키지 못하는 상황, 그러하여 지지부진하게 시간이 끌리다가 결국 실패하고 마는 최악의 상황을.
‘하지만 괜찮다. 결국 코어에는 각인이 활용되었고 내가 아니면 제대로 된 성능을 끌어낼 수 없으니까.’
그들은 조조의 협력으로 꽤나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얻은 것은 검의 외형을 잡는 방법 뿐, 단단한 강철을 만드는 방법도, 슴베를 튼튼하게 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야 검을 완성한다고 하더라도 장식용 검 밖에는 될 수 없겠지.
‘나쁘지 않아. 미래를 생각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이 자력으로 코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전력을 집중하더라도 최소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터, 그 정도 시간이라면 기존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7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