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6화 - >
황제의 부름이 있기에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어 찾아갔더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말이었다. 자신은 약속을 잊지 않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는 어필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열쇠를 건네주고 왔다. 황제에게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나에게 한 말이 빈 말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활용하겠지.
“이봐! 아직도 멀었나?!”
“조금만 더 기다리십쇼. 그렇게 쉽게 뚝딱 만들어지는 건 줄 아십니까?”
“쯧쯧. 실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쓸데없이 변명이나 생각하고 있으니 진전이 없는 것 아니냐.”
[인간도 맞는 말을 할 때가 있군. 노력해라. 노력! 네 놈이 게으름을 피우니 수련에 진전이 없는 것이다.]
아주 양 쪽에서 난리다. 하루가 24시간인건 인간이건 드래곤이건 똑같은데, 어떻게 양 쪽 모두 노력하라고 하는 건지. 한 쪽에 시간을 쏟아 부으면 자연스레 다른 한 쪽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좀 돌아가 계십쇼. 완성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저기 있는 글로리라도 적당히 힘 조절하시면서 타시던가.”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애들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아?”
“그럼 얌전히 돌아가십쇼. 그게 조금이라도 저를 도와주는, 기한을 하루라도 줄이는 길일 테니까!”
나이에 맞지 않게 투정을 부리는 퐁크 후작을 내쫓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응원을 해줘도 부족할 판에 재촉이나 하며 방해나 하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날 리가 있나. 처음에는 연장자였기에 예의를 지키며 대우했으나 것도 두세 번이지, 끝도 없이 반복되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똑똑-
“누구야!”
그렇게 다시 연구에 집중하던 것도 잠시,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자 우물쭈물 망설이며 들어오는 아르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저, 저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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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이게 다야? 이래서야 허울만 좋은 장식품일 뿐이잖아!”
“하, 하지만 이게 전달받은 전부입니다. 몸체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적혀있었지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코어라는 이름의 동력원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서······.”
“이미 한 번 배신한 주제에 최소한의 의리라도 지키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너희들은 다른 이가 주는 정보를 주워 먹는 것밖에 못해? 핵심이 빠져있으면 그대로 따라할 것이 아니라 채워 넣어야 할 것 아니야!”
조조는 타국에 정보를 넘겼다. 그들은 쾌재를 부르며 타이탄을, 글로리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적어도 코어를 건들기 전까지는.
분명 조조는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러나 세레나가 ‘이건 마법이 아니다.’ 라고 평가한, 조조보다 뛰어난 마법사인 가델 조차도 이해하기를 포기한 각인의 파헤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조조가 넘긴 정보는 불완전했고 누군가에게는 행운으로 누군가에게는 불행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레닐이, 권터 후작이, 지켜본 수많은 이들이 평가했던 것처럼 코어가 없다면 외골격뿐인 글로리는 보기 좋은 장식용 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레닐이라는 애송이는 아무것도 없는 맨 바닥에서 홀로 몇 년 만에 이걸 만들어냈어! 그런데 너희는 사다리를 걸쳐줘도, 밑에서 떠받들어줘도 왜 오르질 못해!”
“레, 레닐은 결코 애송이가 아닙니다. 최근에 7서클······.”
“이걸 만들 때는 6서클이었어! 그래봤자 서른이고!”
6서클도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거늘, 부하는 상관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딱히 할 말은 없었으니까. 6서클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마력과 사용 가능한 마법이 늘어났을 뿐, 지금처럼 연구에는 지식과 경험 또한 무척이나 중요했다.
레닐보다 적어도 두 배에서 세 배가 넘는 시간 동안 마법을 배워왔으면서, 고작해야 레닐 홀로 개발했다는 코어의 비밀을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도 파헤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다.
“위에 다시 요청해! 사람을 다시 보내서 이번엔 누락된 부분을 반드시 채워달라고! 한 번 배신했으면 화끈하게 배신할 것이지, 뭐 그리 미련이 남아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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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자신의 집무실에 홀로 남아 고민을 기울이고 있었다. 심지어 호위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도, 시중을 들기 위한 이들도 단 한 명도 없이.
‘유능해.’
몇 달 간이나 그의 머릿속을, 속을 썩였던 고민거리가 레닐과의 한 번의 만남으로 해결이 되었다. 완벽하게, 깔끔하게 까지라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가능성이 높은 하나의 길이 생겼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단순히 버려진 땅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레닐이 황제에게 준 열쇠. 그 열쇠는 다름 아닌 몬스터의 대지 내부에 존재하는 광물들의 위치를 기록해둔, 광맥 지도였다. 척박하고 추운, 한 걸음 건너 몬스터가 존재하는 지상과 다르게 지하는 보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각 광물의 매장량이, 종류가 어마어마했다.
몬스터의 대지가 제아무리 넓다한들 제국 전체의 면적과 비교하면 2~3할 정도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지도에 기록된 광맥들만 전부 개발해도 현 제국이 수급하는 광물의 양을 초월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계획이 착착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황제 개인의 바람이 어느 정도 섞여있기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황제 본인이 냉정하게 생각하더라도 꽤나 괜찮은 생각 같았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어.’
열쇠가 갖춰진 황제의 생각은 대략 이러했다. 우선 몬스터의 대지 정벌 초반은 황제파의 병력으로만 시작한다. 어차피 상위종을 상대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글로리는 황제파에 소속된 귀족들 위주로 배치를 받고 있었으니 초입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그 선두에 조건부 참여를 약속한 퐁크 후작과 몬스터라면 치를 떨 지크 후작을 내세움으로서 초반 성과를 극대화할 생각이었다.
본인의 요구만 들어준다면, 자기 좋을 대로만 하게 해준다면 최소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퐁크 후작.
오랜 기간 유배나 다름없는 테라 방벽을 맡으며 꺾이지 않는 충성심을 증명한 지크 후작.
둘이라면 다른 생각하지 않고 맡은 임무에 충실하겠지. 물론 퐁크 후작은 홀로 날뛰게 만들고 지크 후작에게 지휘권을 내릴 생각이었다.
개인적인 무력은 뛰어나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 쉽게 흥분하는 퐁크 후작에게 지휘권을 내렸다가는 무슨 꼴이 날지 보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지크 후작 또한 고지식한 성격 탓에 총사령을 맡기기에는 충분치 않으나, 몬스터를 상대로 그런 단점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 뒤, 광산을 빠르게 개발한다.’
그리고 그 이득을 정벌에 참여한 황제파가 독점할 것이다.
압도적인 초반 성과, 쉽게 얻어낸 땅으로부터 얻어낸 수많은 이득들. 그 광경을 보고 적어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큼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귀족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몬스터의 대지의 악명은 사실 과장된 것이 아닐까.
저 수많은 이득을 다른 이들만 독점하게 놔둘 수는 없는데, 조금 더 지켜봐야 하나? 그러다가 아예 늦어버리면? 지금이라도 한 발 걸쳐야 콩고물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등등.
초반의 기세만 제대로 휘어잡을 수 있다면 망설이는 이들의 참전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글로리가 없다면 결국 총알받이일 뿐이지.’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전과는 일찍이 참전한, 글로리를 보유하고 있는 귀족들이 얻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나 고블린 같은 잡몹 수천, 수만 마리를 잡아봤자 상위종 수십 마리를 잡는 것이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니까.
소모값은 크지만 눈에 띄지 않는 전선유지, 경비 등등은 귀족파에게 맡긴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타격대는 황제파가. 그들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휘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글로리를 경비 따위에 쓰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었으니까.
황제 본인과 본인을 따르는 귀족들의 힘은 올리고 그 외 귀족들의 힘은 깎는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여봐라!”
“예! 폐하!”
모든 것은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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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조조가 수상하다?”
“······예.”
느닷없이 찾아온 아르민이 꺼낸 말은 찾아온 타이밍만큼이나 느닷없었다. 조조가 의심된다니.
‘조조가?’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이 타국 출신임에도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지.
타국 출신임에도 일가족과 스승 모두 죽어 연고가 없었으며 그가 일생의 숙원이었던 스승의 업적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제국이었기에, 나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전성기를 제국에서 보냈는데 이제 와서 나를, 제국을 배신할 이유가 없잖은가.
“코어에 대한 걸 묻고 다닌다고.”
“이미 완성이 되어있는 글로리에 대한 정보도 다시 한 번 상세하게 조사하고 계시고요.”
“······너무 과민한 거 아니야?”
조조가 맡고 있는 임무는 부소장으로서 나와 함께 전 과정의 총괄 및 동기화 작업의 담당이었다. 이제 와서 별다른 변화가 없는 글로리를 조사한다는 게 쓸데없는 짓이긴 하지만 전 과정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하지 못할 일은 아닐 텐데. 단순히 그것만으로 수상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하지 않은가. 오히려 아르민이 수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것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는······.”
야근을 하던 어느 늦은 밤 수상하게 움직이던 조조를 보았다.
글로리의 제작 과정을 바쁘게 옮겨 적던 조조를 보았다.
글로리가 담긴 아티팩트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랫동안 쳐다보던 모습을 보았다.
등등 개인적인 사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행적들이긴 했다. 한 번 수상하게 생각하니 그 뒤로는 평범한 행동들도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고.
“휴가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신경이 그리 곤두서있냐. 원하면 휴가 좀 더 줄까?”
“역시 제가 너무 과민한 겁니까?”
“어. 그러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누가 들으면 네가 조조를 질투해서 시기한다고 생각할 거다.”
“예. 쓸데없는 말로 심기를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는 말로 아르민을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아르민의 말이 정말로 헛소리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르민도 오랫동안 조조를 봐왔다. 말로 전하기 어려운, 무언가 수상한 움직임을 느꼈기에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낸 동료를 의심하게 된 것이겠지.
‘일단 알아보기는 해야겠군.’
의심을 말도 안한 채, 찜찜하게 안고 갈 바에야 한 번 시원하게 의심해보는 게 훨씬 낫다. 괜한 의심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아르민을 족치고 사과해야겠지. 만약 사실이라면······.
‘나도 책임을 회피할 순 없겠지.’
조조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이 나다. 그런데 그가 배신했다면? 아르민의 말처럼 글로리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에게 넘겼다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 때, 아르민이 나간 뒤 닫혀있던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나야. 들어가도 될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6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