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00화 (100/102)

〈 100화 〉 IF. 검은 개의 송곳니가 되기로 했다 (2)

* * *

퍽.

도끼로 정확히 장작의 정중앙을 내리찍자 쩌적 하며 갈라졌다.

내가 매일 패는 나무는 루덴 숲에서만 자라는 나무, ‘철목’으로써 나무에 철분이 포함되어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마법과 괴물이 공존하는 세계관에서 뭐가 이상하랴.

그런 생각을 하며 도끼를 있는 힘껏 내려치니, 오늘 분량의 모든 장작이 끝났다.

내가 도끼를 제자리에 두고 땀을 식히고 있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아주 숨 쉬듯 능숙하군그래. 허허.”

나무 그루터기로 만든 게임판에서 홀로 바둑을 두는 저 노인은, 나와 꽤 인연이 깊은 수인이었다.

어릴 적 어거스트에게 뒤통수를 맞고 길리언과 노예 마차에 오르게 됐을 때 만났던 수인.

참견도 많고 말도 많아서 좀 귀찮지만, 그래도 철학적인 질문을 꽤 많이 던져준다.

도적놈들뿐인 이 소굴에서 몇 안 되는 유일한 지식인이라고나 할까.

나는 땀을 닦으며 노인에게 터벅터벅 걸어가 물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요? 365일 이것만 하시면 질릴 텐데.”

“그렇지 않다네. 매 순간이 재미있어.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고.”

마치 한국의 어느 축구선수 같은 발언을 하는 노인.

나는 그의 건너편에 마주 앉아 바둑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자네도 한 수 배우겠나? 내가 알려주겠네.”

“으음, 전 머리 쓰는 건 영 별로라서요. 알까기라면 자신 있는데.”

“그것도 좋지. 한 판 하세.”

“예? 알까기도 하신다고요?”

“뭐 안될 거 있나?”

“...아뇨, 그럼 한 판 하죠.”

보통 바둑두는 어르신들에게 가서 알 까기 하자고 하면 각혈하는 게 보통일 텐데, 되게 열린 사람이구나.

노인과 나는 서로 마주 보고 흑백의 돌을 하나씩 튕겨내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 있게 백돌을 튕겨 보냈고, 노인의 바둑알 두 개가 판에서 밀려나 떨어졌다.

“허허. 꽤 하는구먼.”

“친구들 중에는 제일 잘했거든요.”

“하지만, 너무 무르네.”

“네?”

노인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집중하더니, 요상한 동작으로 손가락을 튕겨 흑돌을 발사했다.

흑돌은 각도를 비틀며 회전하더니, 백돌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총 5개의 돌을 떨어뜨리고 유유히 살아남았다.

“말도 안 돼…!”

“소싯적엔 6개도 가능했는데…나도 많이 죽었군.”

대체 수인들에게 불가능한 건 뭐란 말인가.

괜히 승리욕이 받쳐 올라서 포기하지 않고 덤벼들었다.

‘정신을…집중해서…!’

온 힘을 손가락에 집중 시켜 힘차게 흑돌을 발사시켰다.

‘앗! 너무 세게 쳤다!’

흑돌이 바둑판 밖으로 힘차게 발사됐을 때, 장작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흑견이었다.

“사야, 쉬엄쉬엄 하세ㅇ…”

빡.

내가 날려낸 돌이 마침 들어온 흑견의 이마를 강하게 강타했다.

“...!”

난데없이 이마를 강타당한 흑견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힘이 아주 남아도시나 봐요? 이런 것도 하시고.”

“죄송합니다…”

***

흑견은 내가 쌓아놓은 장작을 보더니 두 손을 모아 감탄했다.

“대단해요, 사야님! 예정보다 한 달이나 먼저 끝내시다니.”

“하다 보니까 요령이 붙더라구요.”

막 도끼를 잡았을 당시에는 대체 이걸 어찌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능숙해져서 쉬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그런데, 저는 왜 찾아오셨어요?”

평소라면 일이 바빠서 식당에서나 인사하던 그녀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나를 찾아왔다.

“요리에 쓸 과일이 다 떨어져서요. 겨울 날 것 까지 생각하면 훨씬 많이 필요할 텐데, 요즘 은신처 밖이 뒤숭숭해서 통 나가지를 못했답니다.”

“하긴, 인간이고 사르카고 훨씬 눈에 자주 띄는 느낌이죠. 요새.”

최근 들어 잦아진 공격 탓에 백묘조차도 이제는 진지하게 거처를 옮길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제가 좀 생각해봤는데, 다른 용병들을 잔뜩 달고 가는 것보다 사야님 한 명을 데리고 가는 쪽이 훨씬 편할 것 같아서요. 할 일없으면 저 좀 도와주실래요?”

“물론이죠. 그런 거라면야.”

그녀와의 얘기가 빠르게 합의를 봤으니, 옷을 챙겨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의 목적은 커다란 자루 안에 과일이며 열매를 가득 담아오는 것.

겨울이 오기 전까지 분주하게 채워놓아야 식량난을 겪지 않을 수 있으니까.

문을 열고 나가자 찬바람이 휘잉 불어왔다.

“으으… 진짜 슬슬 추워지네.”

루덴 지방은 남쪽에 위치해있어서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여름이 긴 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겨울이 없는 것은 아니니, 철저하게 준비해두는 게 좋겠지.

나는 숲속을 걸어가며 계속해서 흑견의 안전을 살폈다.

“꼭 붙어서 다니세요. 그편이 안전하니까.”

“...불안하세요, 사야님?”

갑작스레 흑견이 손을 잡아 왔다.

“...네?”

스킨쉽에 당황한 내가 토끼눈을 뜨자 그녀가 재밌다는 듯 후후 웃었다.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커버린 걸까요. 그렇게 조그맣던 꼬마 여자아이가.”

“...흑견씨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네요.”

“저야 물론 수인이니까요. 하루가 다르게 사야님이 자라는 게 눈에 보여요.”

수인의 수명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사고나 병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훨씬 더 긴 생을 살아갔다.

아마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더라도 그녀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유지할 수도 있겠지.

그녀는 내가 춥지 않게 해주려는 듯 입고 있던 털옷을 벌려 어깨를 감싸주었다.

“요즘 사야님이랑 있다 보면, 나이고 뭐고 전부 잊어버리고 말아요. 그만큼 즐겁다는 걸까요.”

“...근데, 흑견씨는 대체 몇 살…”

거기까지 물었다가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썩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말을 돌렸다.

“이, 이러니까 따듯하네요. 흑견씨!”

“그쵸?”

가끔 엄청 무서워 보일 때가 있다니까. 이 사람.

“읏챠.”

목적지인 과일 숲에 도착하자 나는 등에 짊어졌던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뒀다.

이제 여기에 과일이 잔뜩 담기도록 채우기만 하면 되겠지.

차분히 사과를 따고 있는데, 흑견이 엉덩이로 옆구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우리 시합할까요, 사야님?”

“시합이요?”

“누가 더 많이 채우나 시합해요.”

어린아이처럼 들뜬 얼굴을 하고 있는 흑견.

나는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수락했고, 재빨리 사과를 모으기 시작했다.

낮은 곳에 있는 사과는 그다지 품질이 좋지 않다.

높은 곳에 있는 사과일수록 햇빛을 많이 받고, 과육이 더욱 탱탱해졌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여긴 내 소설 속 세계니까 그런 걸 수도.

최대한 무겁고 과육이 큰 사과만을 골라 담으며 보따리를 채워나갔다.

배고파서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으며 보따리를 채운 결과 벌써 절반이 넘게 찼다.

‘흑견씨는 얼마나 했나 볼까?’

궁금해져서 그녀의 보따리를 들여다보니, 이미 가득 넘쳐서 한 보따리를 더 채우고 있었다.

“엥…!? 어떻게 했어요!?”

“아, 이거요?”

그녀는 놀란 표정의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른의 여유라고나 할까요. 후후.”

“...”

대체 어른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시합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명백했다.

모아놓은 사과들을 보니 총 세보따리가 나왔다.

개중에는 다른 과일들도 조금씩 섞여 있고.

흑견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를 어째요. 나름대로 노력하셨는데.”

“...놀리시는 거죠.”

“아뇨? 그럴 리가요.”

누가 봐도 놀리는 거다.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고 있고.

흑견씨의 쫑긋거리는 검은 꼬리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껏 본 수인, 인간을 통틀어서 완전히 검은색 모발을 가진 것은 나와 그녀뿐이었다.

“혹시, 흑견 씨 말고도 검은 머리 수인이 또 있어요?”

그녀는 내 질문을 듣고 잠깐 놀란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버지는 회색이셨고, 어머니는 갈색이셨어요. 제가 특이한 거랍니다.”

그랬던 거구나. 어쩐지 도적단원들 중 검은 머리를 지닌 건 그녀뿐이었었지.

“...싫진 않아요? 혼자만 다른 거?”

내 물음에 흑견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개성이라…”

“그리고, 흑발이라는 점에서 사야님과 공통점이 생겼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흑견이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보자 나도 덩달아 웃어버렸다.

“네. 그러네요.”

우리는 모아놓은 보따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손목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 이 정도만 있어도 몇 주는 거뜬하겠지.

단 걸 구하기 힘든 도적단으로서는 과일만큼 달달한 것도 별로 없고, 아무튼 좋은 거다.

양쪽에 보따리 두 개를 들쳐메고 계속해서 걸어가던 중이었다.

“...어라?”

부스럭.

발에 묵직한 것이 차이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빨갛고,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하나.

‘...혈석이잖아.’

누군가가 사르카를 잡아낸 흔적이었다.

크기로 봐서는 소형이 아닌, 적어도 중형급의 사르카.

령사의 무기 말고는 중형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그래요, 사야님?”

“...아니에요. 아무것도.”

나는 그것을 조용히 집어 들어 품에 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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