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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99화 (99/102)

〈 99화 〉 IF. 검은 개의 송곳니가 되기로 했다 (1)

* * *

(소설 12화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시간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편과 달리 검은개 도적단에 잔류)

고아원에서 도망쳐 나와 검은 개 도적단에 들어온 지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쑥쑥 자란 키 때문에 단원복도 여러 번 늘렸고, 칼을 쥐는 일도 익숙해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노예 마차를 습격해 전투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서는 길.

습관처럼 상태 창을 마음속으로 외워 진척도를 확인하려고 했다.

‘...어라?’

이상하게도 눈앞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결말을 바꾸라던 메인 퀘스트 창도, 주인공을 만나라는 조언 같은 것도 전부 사라졌다.

무언가 잘못됐나 싶어 하룻밤을 자고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날부터였을까.

도적단의 어엿한 가족이 된지도 어언 7년.

어느 샌가부터, 세계의 종말이니 메인 퀘스트니 하는 것들은 점차 내 머릿속에서 멀어져 갔다.

지금의 내게 중요한 건 도적단 가족들을 지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런 나날의 반복이었다.

*** IF ­ 검은 개의 송곳니가 되기로 했다 ***

“앗…!”

계곡에서의 전투 중 목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목걸이가 계곡 아래로 첨벙 하고 떨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줄 좀 미리미리 갈아둘 걸…’

귀찮아서 매일 걸고 다니며 관리하지 않았던 것이 화를 일으켰다.

십자 목걸이를 잃은 것을 안타까워 할 것도 없이, 눈앞의 적이 칼을 뽑고 달려들었다.

적이라 해봐야 일개 노예상들이 고용한 용병일 뿐이다.

자세를 낮추어 칼을 피한 후, 허리춤에 강하게 두 개의 단검을 찔러넣었다.

“크허억…!”

처절한 단말마를 내며 칼을 떨군 용병을 무심하게 발로 차내고, 단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쯧.”

계곡 아래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뭐야, 여기 있는 인간 네가 다 정리했냐?”

2m 가까이 되어 보이는 장신의 키를 지닌, 토끼 귀가 달린 근육질의 수인 여성.

구릿빛의 피부에 대조되는 새하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것보다, 목걸이가 떨어졌어요. 백묘 대장.”

“목걸이? 네가 늘 걸고 다니던 그 십자 목걸이?”

“줄이 삭았었나 봐요. 하…”

“그까짓게 뭐 어때서? 새로 하나 얻으면 되는 거 아니야?”

“부모님 유품이라서요. 그거.”

“...아.”

유품이라는 말에 무안해진 듯 헛기침을 한 백묘는 내 어깨를 툭툭 쳐오며 말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 가서 술이나 마시고 풀자고. 어?”

그녀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리고 저 아직 성인 아니에요.”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 부어라 마셔라 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백묘가 부추겨서였고.

“그래? 털 날 곳은 다 났던데.”

백묘의 한마디에, 얼굴을 확 붉혔다.

“대장…!”

그녀에게 빽 소리치자 백묘는 쾌활하게 웃으며 뒤돌았다.

사실 얼굴도 못 본 가족 따위 알 게 뭐야.

지금 중요한 건 내 옆에 있어 주는 이 사람들이었다.

인간인 나를 받아주고, 가족으로 여겨주는 도적단의 수인들.

…아, 길리언도.

***

한참 술판이 벌어지던 중, 만취한 백묘가 접시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이 여자는 주량이 약한 건 아닌데, 늘 혼자 폭주해버려서 문제였다.

큰 소리로 코를 골며 자는 백묘를 지켜보고 있자니 맞은편에 검은 머리의 수인이 의자를 밀고 앉았다.

“어머, 백묘는 벌써 잠들었나요?”

“네. 또 병째로 마시다가 갔어요.”

“후후, 귀여워라. 자는 모습만 보면 어릴 때랑 다른 게 없어요.”

만취해 자는 백묘를 보며 수줍게 웃는 그녀의 이름은 흑견.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검은 개 수인으로, 백묘를 귀여운 동생 대하듯 말하는 것을 보면 외모에 비해 꽤 나이가 있는 듯했다.

흑견은 백묘의 귀를 가지고 놀던 중, 내게 눈을 돌렸다.

“...어라? 사야님 목걸이는요?”

나를 보자마자 달라진 점을 알아챘다.

눈치 하나는 엄청난 사람이라니까, 역시.

“오늘 계곡 전투 때 잃어버렸어요. 줄이 오래되서 저절로 끊어지더라구요.”

“저런… 소중하게 여기시던 건데.”

“아뇨, 딱히 신경은 안ㅆ…”

거기까지 말하다가, 갑작스레 다가온 흑견때문에 말문이 끊겼다.

그녀는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옆에 붙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흑견씨? 이건 뭐 하는 건가요?”

“수인 방식의 위로랍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기분이 좀 나아지거든요.”

“아하…”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으니 잠자코 그녀의 쓰다듬을 받으며 앉아있었다.

연상의 누나에게 예쁨받는 것 같아 나름 나쁘지 않은 기분.

그 상냥한 손놀림이 기분 좋아서 어느새 눈을 감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사야님, 그거 아세요?”

“...네?”

“사실 수인들은, 7살이 넘으면 쓰다듬 받기를 졸업한답니다.”

“...헐.”

“푸훕, 뻥이에요. 놀랐나요?”

그녀는 장난끼가 좀 많은 사람이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이 사람한테 놀려지곤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좀 괜찮아졌을 거라 믿어요.”

“...네. 정말 그러네요.”

마법같이 기분이 나아졌기에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왜 수인들이 서로 쓰다듬는 걸 못 봤지?

…생각해보면 여기 단원들은 대부분 일자무식이라, 고민 같은 게 없을지도 모른다.

위로가 필요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그러고 보니 길리언은 요즘 좀 어때요?”

절름발이라 다리가 불편해 전투원이 될 수 없었던 길리언은, 흑견과 함께 주방에서 일하기를 택했다.

어릴 적에는 기름이 어쩌니 불이 어쩌니 하면서 자주 불만을 표하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통 그런 게 줄어들었다.

“길리언님이라면, 이제 완전히 제 자리를 대체하셨어요.”

“네…? 흑견 님 자리를요…?”

예전에는 흑견이 주방장이라면, 길리언은 허드렛일만 도맡아 하는 수준이었는데.

“재능이 있으시던걸요. 1년 만에 조리법을 다 꿰차시더니, 이제는 능숙하게 지휘까지 하신답니다.”

“대단하네, 그 자식…”

길리언도 자기 나름대로 도움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주말마다 깨워서 고기 구워주라고 보챘는데, 이제 좀 자제해야지…

그때였다.

옆에서 웩,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단원들이 일제히 탄식했다.

“씨발, 대장 또 토한다…!”

그녀는 한바탕 난리를 만들어 둔 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

흑견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조용히 내게 말했다.

“...저것 좀 데려다 재워주실래요, 사야님?”

“네.”

이런 역할은 꼭 내가 맡아야 하는 걸까, 왜.

***

대장의 옷을 싹 벗긴 뒤에 물로 대충 씻은 뒤, 그녀를 등에 들쳐멨다.

‘무거워…!’

키가 큰데다 꽤 근육질이라서 무게가 상당했다.

적어도 건장한 성인 남성 한 명 분은 되겠지.

비틀비틀대며 열심히 그녀를 자신의 방까지 데려다 눕혔다.

“하아­.”

백묘를 내려두자마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인은 평생에 걸쳐 조금씩 자란다던데, 설마 지금도 키 크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게 작작 처 마시라니까요. 인간…아니, 수인 말종아.”

“음냐…음…”

내가 똥 고생한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녀는 활짝 드러난 맨살을 긁으며 행복하게 자고 있었다.

탄력 있게 솟아오른 큼직한 두 가슴에, 뱃살 하나 없이 탄탄하게 복근이 잡힌 하복부.

“...”

그걸 계속 관찰하는 게 묘한 죄책감이 들어서 살짝 이불을 덮어주었다.

“내일부터 흑견씨한테 말해서 금주시킬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매일 토한 거 치우는 것도 이젠 지친다.

단원들이 경악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백묘를 방에 둔 채 나오려고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사야.”

“...?”

내 이름이 불린 것 같아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잠꼬댄가?’

분명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녀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요즘, 너 놀려먹는 맛에 산다…음냐…”

“...”

뭔가 했더니, 꿈에서도 날 괴롭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번에 씻을 때 봤는데…벌써 그렇게 털도 빽빽하게…”

“아, 진짜…!”

이 인간은 왜 오전부터 자꾸 털, 털 거리는 거야. 이 미친.

더 듣고 있기 싫어서 홱 나가버리려던 때였다.

“...정말 떠날 거냐, 사야…?”

“!”

이번엔 정말 깼나 싶어 놀라며 뒤를 도니 아직도 잠에 빠져있었다.

“...인간은 다 쓰레기 같은 놈들인 줄 알았는데…네가 오고 나선 생각이 바뀐 것 같아…”

“...”

아마 세상에서 백묘처럼 인간을 증오하는 수인도 몇 없을 것이었다.

1대 대장도 인간의 손에 의해 죽었고, 백묘 자신조차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손에 의해 사육된 노예였으니까.

“...1년만 더 있으면 안 되겠냐…? 6개월…아니, 3개월이라도…”

잠꼬대라는 걸 알지만, 왠지 방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듣지 못하겠지만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어디 안가요. 대장.”

이미 나에게 있어서 가족은 당신들이니까. 떠나야 할 이유도, 인간에게 돌아갈 이유도 없었다.

살짝 괴로워하는 그녀의 표정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수인들은, 쓰다듬는 게 위로라고 했었지.

내 나름대로 정성껏 그녀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러고 나니 점차 백묘의 표정이 편안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럼 내일 봐요, 대장.”

그녀의 침대에서 막 일어났을 때, 백묘가 잠꼬대로 한마디를 더했다.

“내 자리 이을 생각없냐?”

“네?”

그 말에 그녀를 돌아봤지만, 자고 있는 백묘가 대답할 리 없었다.

‘...깜짝이야.’

하여간 잠꼬대도 지독하다니까, 이 사람.

‘그나저나, 자리를 잇겠냐는 말은…’

더 생각했다간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이제는 완전히 골아떨어진 그녀를 두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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