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외전) 사야가 없는 일상
* * *
"황녀님의 호위를 맡기로 했어."
식사 중 사야 바르나바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앉아있던 유리와 루나는 동시에 식기를 떨구었다.
"아카데미는 어쩌고?"
"얼마나 오래!?"
그녀들이 눈을 크게 뜨고 달라붙자, 사야가 난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진정들 해. 호위라고 해봐야, 한 일주일 정도 여행에 어울려주는 것뿐이라서."
황녀 이사벨이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국경지대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여, 평소 친분이 있는 사야에게 호위를 맡겼다는 이야기였다.
“일주일이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 조심히 다녀와.”
그렇게 되어, 두 사람은 사야 바르나바가 없는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
유리가 평소처럼 계단을 내려오자 잘 익은 계란의 냄새가 풍겨왔다.
안쪽에서 루나가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좋은 아침. 밥 먹자, 유리.”
“...꾸준하네, 루나 양도.”
이 저택에 지내게 된 뒤로, 루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녀 스스로 하고 싶다고 했던 일이었다.
유리가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인원수에 비해 접시가 하나 더 놓여있었다.
“...루나 양, 한 명 분이 더 있는데?”
“어?”
루나는 의아한 듯 접시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정신 좀 봐. 사야가 없는 줄도 모르고 하나 더 해버렸네.”
“...그럴 수 있지. 나도 아직 적응이 안 돼.”
식사를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어색함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보통 때라면 이런 타이밍에 사야가 뭐라도 말했을 텐데, 두 사람은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므라이스를 깨작거리던 루나가 유리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유리랑 평소에는 무슨 얘기를 했지?'
언제나 사야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해본 기억 밖에는 없었기에 무슨 얘기를 꺼낼지 고민되었다.
그러던 중, 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루나 양."
"응, 왜 그래?"
"...어제 사야랑 잤어?"
그 물음에 루나가 사례를 들리며 켁켁댔다.
급하게 물을 들이킨 루나는,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무, 무슨 질문일까. 그건…?"
"어제 밤에 사야가 방에 없길래. 당신 방에 가서 자는가 했지."
"...아, 그런 거구나."
가슴을 쓸어내린 루나는 유리에게 설명을 이었다.
"가끔 번개 치는 날에 같이 자거나, 아니면 방에서 같이 놀다가 그대로 잠들기도 하니까."
"그럼 가끔 같이 씻는 건?”
"..."
오늘따라 유리가 굉장히 집요하고 적극적이라고 생각한 루나였지만,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친구끼리, 친하다는 의미 같은 거라고 할까?"
"...그렇구나."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루나 쪽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유리는 연애 같은 데 관심 없어?"
"연애?"
"훈련생 중에서만 해도 너한테 관심 보이는 남자애들이 많거든. 별명도 있는 거 알아?"
유리 프리지아는 아카데미생들 사이에서 얼음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그런 것 치고는 아무도 말 걸거나 하지 않던걸."
"그건, 유리가 너무…"
분위기가 너무 차갑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루나는, 말을 바꾸었다.
"지위가 너무 높아서가 아닐까? 유리는 령사단장이니까, 학생들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식사를 마친 그녀들은 가볍게 디저트를 차렸다.
우려낸 차에 과자를 곁들여 천천히 들이키던 루나가 말했다.
"...사실 나, 유리가 부럽다고 생각했어."
"내가? 왜?"
"유리랑 사야, 일할 때 늘 늦게까지 같이 있잖아. 동업자고."
루나 자신의 일도 싫진 않았지만,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둘을 보면 늘 부러웠다.
실질적인 업무는 유리가 대다수 처리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리랑 사야는, 뭐랄까. 중요한 순간에는 꼭 같이 있었다고 할까. 그런 게 부러웠어."
"…"
루나는 무언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사야 말이야, 유리랑 있을 때만 짓는 표정이 있다?"
언젠가 두 사람이 같이 있은 것을 보았을 때, 사 야가 사랑스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서,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그 애가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거, 나한테는 불가능하던데. "
루나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잠자코 그것을 듣고 있던 유리는 컵을 조용하 내려놓았다.
"그럼, 루나 양은 사 야가 힘들 때마다 누굴 먼저 찾는 줄 알고 있어?"
"...응?"
"당신이야. 루나. 몸이 아플 때도, 우울해 할 때도 당신을 먼저 찾아."
자신은 그녀에게 안식처가 되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 오며 뼈저리게 느꼈던 유리였다.
루나와 있을 때 보여주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는, 유리 자신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단순히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과는 달랐다.
"게다가, 퇴근 후에는 누구랑 더 시간을 보내는지는..."
“...그건 할 말 없지만.”
어느새 두 사람의 잔은 모두 비었지만, 대화는 계속되었다.
씁쓸한 표정을 짓던 루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우린,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네. 유리?"
품으면 안 될 대상을 품음으로써, 자신들도 모르게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곱게 가정을 꾸릴 여성은 못되겠구나."
"...생각보다 직설적이네. 루나 양."
"유리도 알고 있잖아? 이런 감정이 사회에서 허용될 리 없다는 거."
분위기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허용될 리 없다라…”
아무 말 없이 테이블만을 바라보던 유리가 물었다.
"그럼, 루나 양은 사야에 대한 걸 포기하려고 생각한 적 있어?"
"포기 못해."
루나가 웃는 얼굴로 즉답했다.
"...역시 그렇겠지."
생전 처음으로 사람에 대한 욕심을 가져다준, 소유욕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다.
거기에 향한 감정이 결국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었다.
금방 터질듯한 비눗방울 같은, 그런 관계를 이어나가는 나날의 지속이었다.
둘 중 누구 하나가 조심성 없이 바늘로 찌른다면, 펑 하고 터져나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무언의 규칙을 서로가 필사적으로 지켜왔다.
"그리고 난, 두 사람 다 좋으니까. 그건 유리도 같지?"
"...응. 알고 있어."
"그러니까, 유리 쪽에서도 선을 지키는 이상은 계속해서 이런 관계를 유지시킬거야. 약속할게."
결국 선택권이 자신들 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다.
추악한 소유욕을 억지로 억누르고 구겨서라도, 상대보다 앞서 나가지 않겠다고 무언의 약속을 해왔었다.
위태위태한 카드 탑처럼 무너져버릴 관계이기에, 두 사람은 더욱더 조심스러웠다.
무너져버린 탑을 다시 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았으니까.
***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 누웠다.
"...루나 양. 그래서 결론이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건데?"
"뭐 어때. 손해 보는 사람도 없고?"
그녀들은 자신들의 침대가 아닌, 사야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린 그냥 우연히 사야의 침대에서 만난 것뿐이니까."
"...분명 벌 받을 거야. 우리."
당사자는 집에 없지만, 대신 그녀의 침대는 북적거렸다.
"유리도 이제 좀 솔직해지는 게 어때? 싫다고 하면서 결국 여기 들어와 있으면서."
"...부끄러울 짓이야. 이런 거."
"그건 우릴 버리고 떠난 사야가 나쁜 거지."
설마 일주일이나 떠나있을 줄은 몰랐다.
이불을 만지작거리던 루나가 말했다.
"지금쯤, 황녀님이랑 이런 짓 저런 짓 하고 있지는 않으려나…?"
"...불안한 소리 하기는."
"일주일 동안 단둘이서 떠나는 여행이라니. 혹시 눈이라도 맞아버리면..."
"..."
"그러고 보니 전에 훈장 수여식 때, 이사벨 황녀님이 사야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던데?"
결국 유리가 뚱한 표정으로 일어나 말했다.
"루나 양, 그 얘긴 그만 좀 하겠어? 맘 편히 쉴 수가 없잖아."
"...사야가 얼마나 둔한데. 진짜로 선수를 뺏기거나 없으니까 안심해."
“...하아”
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나가 물었다.
"...유리, 혹시 그거 냄새 맡는 거야?"
"..."
정곡을 찔린 건지, 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외로 변태구나."
"누가 냄새 같은걸 맡았다고…!"
얼굴이 새빨개져선 루나에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루나는 그것을 능숙하게 잡아채고 자신의 얼굴 밑에 깔았다.
"고마워. 이건 내가 쓸게."
"...어?"
그리고 그대로 빼앗겨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아니, 딱히 주려던 건…”
“사야 냄새가 엄청 배어있네. 이런 걸 유리 혼자서만 독점하고…”
“자꾸 냄새, 냄새 하지 말아주겠어…?”
그녀들의 의미없는 배개 독점 싸움은,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