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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96화 (96/102)

〈 96화 〉 (루나 외전) 어리광쟁이 (3)

* * *

사야를 꼭 끌어안은 채로 몇 시간이고 보내고 싶었다. 나라는 인물은, 사실은 철저하게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기에. 그녀와의 시간을 양보하고 싶지도, 빼앗기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이 정지해서, 쭉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룰 수 없는 소망을 빌어보았다.

***

분위기가 이상해지려 할 즈음, 내 쪽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놓아주었다. 사야 또한 멋쩍은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 하마터면 또 잠들 뻔했네.”

“맞아. 소파가 워낙 푹신해서.”

“그치? 루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는 사야의 눈이 밤하늘처럼 반짝였다.

“루나는 역시 눈이 예쁘네.”

사야는 언제나 내게 눈이 아름답다며, 별이 담겨있는 듯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눈 같은 건, 사실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

밤하늘을 닮아 새까맣게 빛나는 사야의 눈동자 쪽이,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그녀 자신도 그것을 알아주었으면 했다.

내 눈에 담긴 반짝거리던 별빛은 전부 식어버린 채로, 음습한 욕망만을 가득 억누른 채 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고마워.”

그녀의 기분에 맞춰주고자 그렇게 대답했다.

기껏 둘만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평소라면 절대 꺼내지 않았을, 이상한 질문을 꺼내고 말았다.

“있지, 사야.”

“응?”

“···나는 사야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이야?”

내가 질문하자 그녀의 눈이 이쪽을 향해왔다.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눈망울이 예쁘게 떨려왔다.

“갑자기? 좀 쑥스러운데···.”

“괜찮아. 안 웃을게.”

나는 어떻게든 대답을 들어낼 생각이었다. 집요하게 질문 공세를 펼치자, 결국 사야는 항복 의사를 펼치며 입을 열었다.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걸. 내가 좋아하는 루나는 세상에 딱 한 명 뿐이니까. 뭐라고 딱 정하기 힘들어.”

“···그래?”

왠지 기뻤다.

좋아한다고 들어서? 아니, 그건 특별한 의미는 없이 늘 하던 말이었다.

다만 기뻤던 것은, 나를 하나뿐인 존재로 여겨준다는 것이었다. 너가 아니면 안 돼, 라고 말해오는 것 같아서.

“루나도 얘기해 줘. 나만 말하는 건 치사하잖아.”

대답을 고민하던 나는 사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나도 사야랑 같은 생각이야. 됐지?”

그러자 그녀는 답변이 불만스러웠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야, 그게···.”

“어라, 원하는 답변이 아니었어?”

“당연하지. 좀 더 많은 표현이 있잖아, 사야는 믿음직스럽다든지, 예를 들어 어떤 점이 좋아 같은···.”

그런 걸 일일이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그녀의 모든 게 좋았으니까.

우는 나를 달래던 난처한 모습도, 만사 귀찮다는 듯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도, 심지어 유리와 함께 있을 때 짓는 두근대는 얼굴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좋았다.

그러니, 그녀에 대한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는 부족했다.

“난 충분한 답변이 됐다고 생각하는데, 사야.”

“그런 게 어딨어, 진짜···.”

불합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귀여웠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감정을 소모해주는 그런 모습이 반칙같이 느껴질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어떻게든 대답을 들어야겠어?”

내 물음에,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

“좋아, 그럼···.”

나는 사야의 어깨를 눌러 그대로 소파로 넘어뜨렸다. 그러자 그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 루나?”

“대답을 원한다고 해서.”

몸을 그녀와 잔뜩 밀착시키곤, 얼굴을 바짝 붙이고 그녀를 몰아붙였다.

손을 뻗어 그녀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새하얀 이마를 드러냈다.

“···루나···이건···.”

사야가 무어라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로부터 그녀가 지닌 열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따스했다.

“···흣.”

그녀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살짝 돌리며 부끄러운 듯 소리 냈다.

그다음은 그녀의 콧잔등. 이마에서 입술을 떼고 살포시 콧잔등에 입을 맞추었다. 당황한 듯하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얼굴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사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맞닿은 몸으로부터 심장 소리가 쿵, 쿵, 하고 울렸다. 눈을 감고 몸을 살짝씩 떨고 있는 것이, 내게 전해졌다.

“···.”

어느새 눈높이는 같아졌다.

두 입술이, 같은 위치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이대로 입술을 포갠다면, 그녀를 잔뜩 품을 수 있다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쁘겠지.

­쪽.

그러나 입술이 향한 곳은, 그녀의 볼이었다. 가볍게 접촉한 입술이 사야의 볼에서 아쉬운 듯 멀어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엔 안 봐줄 거야.”

“···.”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뜬 사야의 새까만 눈동자에, 내 밝은 눈동자가 반사되어 별을 띄운 듯 보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갈 곳 잃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결국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더니, 내 품 안으로 고개를 묻어버리고 말았다.

사야 쪽에서 내게 뭔가를 요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태도가, 사람을 애태워 미치게 만들었다. 싫다는 건지, 싫지 않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왔다.

그런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그녀가 그녀답게 있을 수 있도록, 순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러나 언젠가 빼앗겨버릴 운명이라면, 그때에는 내가 나를 어떻게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내게 어리광부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 온갖 추악하고 불순한 감정들을, 모두 나에게 뱉어내도록 하고 싶으니까.

“···숨기지 말고 보여 줘, 사야.”

궁금했다. 지금 내 품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내 품에 얼굴을 숨겨버린 사야가 내 말에 작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보고 싶어. 지금 짓고 있는 그 표정.”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든 사아였지만, 내 말에 마지못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짓는 그녀가 눈앞에 있었다. 가면을 전부 벗어 던지고, 툭 치면 부서질 듯이 여린 표정을 짓는 그녀가.

그 얼굴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계속해서 보고 또 보았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게 너무 매력적이라서, 무심코 울려버리고 싶은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고마워.”

이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면, 언제까지고 어리광쟁이로 남아있고 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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