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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80화 (80/102)

〈 80화 〉 못다 한 이야기 (1)

* * *

유리의 기합이 작렬하고, 목검이 무서운 기세로 내 머리를 찍어눌렀다.

"그만! 유리 쪽의 승리!"

심판을 맡은 루나가 다가와서 유리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유리의 표정은 승자치고는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다. 어딘가 켕기는 게 있다는 듯이, 승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

머리를 쥐어 싸고 앉아있는 내게 다가온 유리가 말한다.

"이번에도 진심으로 안 했어. 뭐가 문제야, 사야?"

"..이제 네가 더 강하다는 거 아닐까?"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넘어가 보려 했지만, 유리의 표정은 차가웠다.

"...됐어."

짐을 챙긴 그녀는 대련장에서 나가버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나가 내게 묻는다.

"혹시 어디 불편한 거 아니지?"

루나가 보아도, 내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었나 보다.

"그런 거라면 내가 유리한테 말해둘게. 너무 무리하지 마."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유리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검을 들고 대련을 했다. 승패의 총합은 언제나 근사한 값을 유지하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게 관례였으나, 몇 주 전부터 계속해서 나의 일방적인 패배가 이어지고 있었다.

'왜 이러지..?'

싸움이라는 행위에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기만 들었다 하면 자연스레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넌 알겠어, 인비디아?'

나보다도 내 몸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비디아라면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에게 묻자, 그의 사념이 들려왔다.

[ 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아무래도 평화에 너무 익숙해 져버린 듯하군. ]

굴라를 토벌한 뒤의 세계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물론 사르카에 의한 자잘한 사고나 인간들 간의 범죄는 끊임없이 있었지만.

각지에 남아있는 고대종을 토벌하러 다닐 때 이후로, 진검을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지금은 내 몸이 싸워야 할 이유를 전혀 못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

자극에 날카롭게 반응하던 감각도 이제는 서서히 무뎌져 가고, 뚜렷한 목표 같은 게 없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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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자. 우리."

매일 쌓여만 가던 업무량에 지쳐가던 와중, 유리가 자체적으로 휴식을 선언했다. 아직도 처리할 서류가 산더미같이 남았던 나로서는 얼떨떨했다.

"쉬자고? 얼마나?"

"..일주일."

"일주일!?"

"단장직을 맡은 뒤로는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잖아. 너도 그렇고."

유리가 단장직에 오른 뒤에는 령사들과 관련된 업무와 아카데미의 일 처리까지 도맡았기에, 그 업무량은 자연스레 그녀의 수행원이었던 나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지금은 말이 수행원이지, 사실상 직위를 두명이서 나누어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지경이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동안은 누가 일 처리를 맡는데?"

살인적인 업무량을 일주일이나 팽개친다면 다가올 후폭풍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그때, 집무실 문 뒤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부르셨을까요?"

"들어와요, 아이리스."

집무실 문이 열리고, 머리를 한쪽으로 길게 땋아서 한층 더 성숙한 느낌을 풍기는 아이리스 교관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무슨 일로 저를?"

유리가 그녀의 밑에서 배울 시절부터 학생들에게 줄곧 존댓말을 유지해왔던 아이리스지만, 가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했다. 자신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유리는 그녀에게 말한다.

"현재 아카데미에서 담당하는 업무들은 전부 멈춰요. 당분간은 집무실 업무를 대신 봐주셔야겠어요."

유리의 말에, 아이리스 교관이 표정이 당혹스럽게 바뀌었다. 그러나, 곧 시원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맡겨만 주세요, 단장님..!"

그렇게 외친 후 바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서류를 속독으로 읽어나가며 인감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괜찮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교관님이신데.."

"사야."

유리가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한다.

"아이리스는 지금까지 아카데미 내의 7개 부서를 담당하고 있었어. 오히려 그녀에게는 휴가나 다름없을 걸."

그럼 그 부서들은 이제 누가 보냐고 말하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없는 부서들뿐이었다.

'..알아서 돌아가겠지, 뭐.'

"나가자, 사야. 오늘은 바로 퇴근이야."

그녀를 따라 아카데미 밖으로 나왔다. 이런 이른 시간에 밖에 나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이 어색한 기분이었다. 말없이 앞을 보며 걷는 유리에게 묻는다.

"일주일간 뭐 하려고? 계획해 둔 거라도 있어?"

"...없는데."

유리는 단순히 그냥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일주일이란 시간을 받았지만, 마땅한 집 하나 없는 내가 묵을 데가 마땅치 않았다. 원래 자던 것처럼 기숙사를 빌리면 되지 않겠느냐 싶지 만은 그럼 다시 그 지긋지긋한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꼴이 돼버리니 모처럼의 휴가가 의미 없어지지 않겠나. 나의 그런 고민을 이해한다는 듯, 유리에게서 제안이 들어온다.

"사야. 잠시 내 저택에서 묵겠어?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

"..나야 좋지."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들어선 그녀의 저택은 여전히 쓸데없이 넓었다. 호화로운 인테리어와 넓은 공간은 내 소설 속 묘사에서 반영된 결과물이라지만, 역시 좀 과할 정도가 아닌가 늘 생각이 든다.

"조부님께서 저택에 돈을 쏟아부으셨거든. 귀족은 보이는 게 다라면서."

"..그렇구나."

그런데, 늘 문 앞에서 그녀를 반기던 정갈한 차림의 백발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내 표정을 눈치챈 유리가 말한다.

"프레드는 이제 집사를 그만뒀어. 엄연히 말하면 내가 자른 거긴 하지만."

그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남은 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던 유리의 배려라고 한다. 물론,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은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저택 속 공간을 보며, 내가 말한다.

"..그 말은, 이 넓은 저택에 혼자 지냈다는 거야?"

"뭘, 새삼스레."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위해 찾아드는 시녀들을 제외하면, 그동안은 텅 빈 저택에서 유리 홀로 지냈다는 듯했다.

"쓸데없이 넓긴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지어진 걸 허물 수도 없는 노릇이잖니."

비어있는 방만 대체 몇 개인지 셀 수조차 없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이런 곳에서 혼자 사는 것은 조금 거리낌이 든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처럼 복도에 배치된 장식물들을 두드려가며 돌아다니던 나는, 유리를 보고 장난스레 말한다.

"적적하면 내가 같이 살아줄 수도 있는데."

"...진짜?"

당연히 평소처럼 차가운 대답이 돌아오리라 예상했건만, 유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어?"

"그 말 진짜냐고. 사야."

"그러니까, 그게…"

­ 쨍그랑

대답을 고민하던 내가 당혹스러워할 때쯤, 내 발밑에 무언가 밟히며 깨지는 소리를 낸다.

"...뭐야?"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들어 올린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접시..? 이런 게 왜 여기에 있어?"

유리 또한 의문을 띈 얼굴로 다가와 그것을 살핀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이런 건 없었는데."

수상함을 느낀 나와 그녀는 저택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아주 살림을 차렸었네."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려있거나 식탁에 음식 부스러기가 뿌려져 있질 않나. 가지런히 정렬된 책들이 마구 흐트러진 게 눈에 띄었다.

"너희 부모님께서 다녀간 게 아닐까?"

"그럴리 없어. 애초에 왔어도 날 보러 오실거고, 다른 곳에 저택이 있어서 굳이 여기서 묵으실 필요가 없거든."

그렇게 한참을 살피던 우리는, 공통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저택에 우리가 아닌 누군가 생활하던 흔적이 있다.

"함부로 여길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창문은 죄다 창살로 막힌 데다가 외부에는 함정만 수십 개인걸."

"...함정?"

"..그것도 조부님이 해두셨어."

행적만 들어도 성격이 저절로 떠올려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열쇠를 가진 건 나나 시녀들 정도뿐인데.."

"설마, 아직도 이 저택 안에 있는 거 아냐..?"

내 말에, 유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무기 들어. 사야."

유리의 말에 따라 몸을 지킬 무기를 쥐어 들었다. 우리는 살피지 않았던 방들까지 전부 확인하며 돌아다녔고 유일하게 살피지 않은 방 앞에 마주 섰다.

"여긴.."

과거 유리와 함께 사르카에 대한 자료를 찾으러 왔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인기척이 있다…!"

자물쇠를 하나둘 해제하고, 유리와 눈빛을 교환한 후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요란한 충격음과 함께 유리가 침입자를 향해 칼을 들이민다.

"누구냐..! 이 뻔뻔한 침입자………."

"사, 살려주세요…..!"

그녀에 의해 멱살을 잡힌 남성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의 금이 간 안경을 고쳐 썼다.

'남자..?'

정돈되지 않고 잔뜩 엉켜있는 흰색의 머리칼.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묘하게 귀족스런 복장을 갖춘 사내의 얼굴을 마주하자 유리의 표정이 달라졌다.

".....빈센트?"

그렇게 말하고는, 쥐고 있던 멱살을 놓는다. 그녀에게 빈센트라고 불린 남성은 우리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제가 없는 동안 집 주인이 바뀌었나요..? 열쇠는 그대로였길래.."

두 사람 사이에서 멀뚱히 둘을 번갈아 보던 내가, 유리에게 묻는다.

"아는 사람이야?"

"..알고 자시고…"

그녀는 무기를 내려놓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한다.

"우리 오빠야. 빈센트 프리지아"

유리를 알아보지 못한 그와 달리, 유리는 단박에 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홀연히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됐다던 그녀의 오빠가, 거의 10여년만에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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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실물)

컵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형광등이 반사되서 비춰버렸네요)

혹시 가족분들에게 들켜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그렸는데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까워서 아직 못 쓰고 있네요..!!

(여러분의 컵 후기도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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