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32화 (32/102)

〈 32화 〉 현혹의 마수 (1)

* * *

카르네가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유.

아마도, 소설의 ‘개연성’과 관련이 있을 거다.

원작인 아르모니아 전기에서, 카르네는 뚜렷한 목적을 지니지 않은 채 유리를 살해한다.

명확한 동기나, 심리적 쾌락을 얻는다는 묘사도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유리를 살해하도록 만들어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 세계는, 그녀가 유리를 죽여야만 하는 ‘개연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루덴 숲에서 자라는 철이 포함된 나무, 철목처럼 개연성을 위해 탄생한 새로운 요소.

당장 생각나는 유력한 원인은, 세뇌다.

해당 인간으로부터 원하는 감정, 또는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신 조작.

그러나 단순 세뇌라기엔, 그 강도나 치밀함이 놀라울 정도다.

“카르네, 한 번 더 물어볼게. 누가 지시했어?”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 번 더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말했잖아. 이건 내 의지야.”

질문에 따라 튀어나오는 반사적 답변.

상식적으로 봐도, 죽여주라는 사람이 할만한 말로는 보이지 않는다.

‘주문의 종류인가..?

당장 생각나는 주문은 한 가지다.

암흑계 령사가 꺼림칙하다고 배척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암흑계 중급 마법 ‘암시’.

대상에게 접촉 후 암시를 걸어,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 유지 시간이 길어야 10~20초 정도이며, 시전 중에는 사용자가 움직이면 쉽게 풀려버리는 탓에 보통 상대를 자멸시키거나, 동료와의 연계를 위해 쓰인다.

종합적으로, 암시 주문에 걸렸다고 보기에는 그 효과가 너무 뛰어난 걸로 보아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지독한 짓인 거 같은데..’

지금 내가 가진 지식으로는 이 정도의 추정이 한계였다.

퀘스트가 준 정보에 따르면, 약 한 달 정도의 유예는 남아있다.

카르네에게 영향을 주는 무언가, 그리고 퀘스트.

당분간은 이걸 풀어내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할 것 같다.

­

카르네는, 그 뒤로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로 말수가 줄었다.

좀 더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그녀를 기숙사 방에서 쉬도록 하고, 홀로 방을 나왔다

지금 나에게는, 세뇌에 관한 지식이 필요했다.

‘그럼, 누구한테 먼저 가볼까..’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클레드였다.

그를 먼저 찾은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교관 중에서 제일 만만하고 자주 보이니까.

말 걸기 편하다는 인상이다.

예상대로, 그는 대낮부터 술에 잔뜩 찌들어 있었다.

“세뇌? 그런 걸 알아서 어디다 쓰려고.”

“아는 거라도 있으면 말해줘요. 용병 생활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동안에 세뇌 비슷한 거라도 본 적 없어요?’

“..음란한 목적이냐?”

“....”

내가 정색하고 클레드를 노려보자, 그는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크흠, 난 쌈박질만 해봐서 마법 쪽은 모른다만, 최음제를 세뇌에 쓰는 경우는 본 적 있었지.”

“최음제를요?”

“큰 보수가 걸린 임무 때문에 크리오 지역에 갔을 때였다. 임무 중에 마주친 한 여기사가 부하들에게 최음제를 마시게 하더군.”

크리오 지역은, 이곳 세말에서 북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1년 내내 눈 덮인 풍경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최음제가 올려주는 성욕을 이용해 부하들을 이용했지. 자신을 향한 적당한 흥분을 유발해서, 전장에서 활약하면 보상을 주겠다고 유혹했다고 들었어. 물론, 활약하더라도 보상 따위는 없었지만.”

“..그런 짓을 하면, 부하들이 가만히 있었대요?”

“아니, 당연히 반발했지. 그녀에게 달려들었던 놈의 모가지가 날아가기 전까지는.”

“...아.”

세뇌라기보다는, 충동적인 성향을 올려서 이성을 날려버리는 방식인 것 같다.

“거기에 최음제가 몸 온도를 올려줘서, 추위에도 조금 도움이 됐다는 모양이다.”

“부가적인 효과 쪽이 더 쓸모가 있네요.”

예상했지만, 클레드의 정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가지 깨닫게 해준 점은, 세뇌가 꼭 마법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가 몰랐던 다른 요소들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고마워요, 그럼..”

“아, 잠깐 기다려 봐라.”

그는 주머니에 구겨둔 종이 덩어리를 펼치더니, 내 손에 올렸다.

“뭔가요, 이건.”

“단장님한테 드릴 이번 달 성과표. 그거 좀 가져다드려라. 이런 거로 얼굴 보기 껄끄러워서.”

“하하..”

열받지만 제자 된 입장으로써 거절할 수가 없다.

“가는 김에, 단장님한테도 좀 물어보던지. 그분이라면, 뭔가 좀 알고 계시지 않겠냐.”

‘비올레 님이..?’

그러고 보니, 제일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카데미에 있었다.

심부름하는 김에, 그에게도 물어보도록 할까.

단장님의 집무실은 아카데미의 가장 지하에 위치해있다.

일찍이 유리와 대련 후에 비올레님에게 주의를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보통 지위가 높을 수록 건물의 높은 층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굳이 지하를 선택한 것은 단장님의 뜻이라고 한다.

암흑계 령사다운 취향이랄까.

나무로 된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클레드 교관으로부터 심부름인데요.”

“..잠깐 기다리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문을 열어주었다.

“..자네구나, 사야. 어서 오렴.”

집무실 내에서는 갑옷을 벗고 있는지, 가벼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깨까지 내려온 백발은, 여전히 고풍스러운 인상을 남겨준다.

“저, 이걸 전달해 주러 왔어요.”

클레드가 내게 떠넘긴 서류를 그에게 넘겼다.

서류를 받아든 비올레는, 환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고맙구나. 차라도 한잔하고 가겠어?”

“단장님. 실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 들어와서 얘기하도록 하지.”

집무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그가 대접하는 차를 받았다.

향을 맡았을 뿐인데, 왠지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이거, 이레미아 차인가요?”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이레미아 잎을 달여 만든 차.

적당량을 사용하면, 편안해짐과 동시에 좋은 향이 우러나온다.

“잘 아는구나. 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잘 모를 텐데.”

차의 감상은 충분히 즐긴 것 같고, 슬슬 궁금한 질문을 꺼낼 차례다.

“단장님. 혹시, 인간을 세뇌시키는 방법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을까요?”

“..몇 가지 알고는 있다만, 나쁜 곳에 사용하려는 건 아니지?”

아차. 질문이 너무 직접적이었다.

“아뇨! 그냥 개인적으로 좀 공부 중이라서요.”

“세뇌시키는 방법이라…. 대표적인건 역시 암흑계 마법이지.”

“암시 주문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나도 젊었을 적에, 몇 번이고 사용한 기억이 있지. 지금은, 그다지 쓸 일은 없다만.”

그가 나와 같은 암흑계 령사인 만큼, 예상하던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

“혹시, 장기간 지속되는 암시 주문도 있을까요?”

“..장기간? 어느 정도의 기간을 말하는 거려나.”

“이를테면, 한 달 정도라던지..”

그에게서 즉답이 날아왔다.

“불가능해. 사야. 암시 주문은 나조차도 기껏해야 30초 정도가 한계란다.”

30초도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거긴 하지만, 역시 암시가 그런 효과를 낼 수는 없는 모양이다.

“불가능해, 불가능..”

중얼거리며 잠깐 생각에 잠긴 그가, 조용히 다음 말을 읊조렸다.

“..시전자가, 인간이라면...”

“네..? 무슨 소리예요?”

잠시 침묵한 그는,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음, 미안하다. 사야. 내가 머리가 좀 아파서.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가주지 않겠어?”

들은 바로는, 그는 만성적인 두통을 달고 산다고 했다.

젊을 적 마법 전개에 정신력을 과도하게 쏟아부은 후유증이라고 했었나.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물러나야 할듯 했다.

“...아, 네. 그럼 다음에 다시 들릴게요.”

방을 나가려는 내게, 비올레가 말했다.

“참, 멋진 귀걸이구나. 사야.”

귀걸이?

그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차고 있던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네. 부모님이 물려주셨던 거라서요.”

“..그렇군. 그럼, 다음에 또 언제든 들리렴.”

방을 나와 그의 집무실을 조용히 닫았다.

비올레는 분명, 마지막에 작게 무언가 말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하다..

‘즉, 시전자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긴가..?’

추리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인간 말고도, 주문을 사용할 수 있는 생물.

그런 게 존재했던가?

문득,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사르카?’

인간 이외의 생물이 주문을 쓴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다.

그러나 사르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등급평가 때 싸웠던 머리가 두 개 달린 주인 사르카.

그게 한쪽 머리로 불을 뿜었던 것은, 분명히 주문의 일종이었다.

‘너무 이상한데..’

분명사르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지만, 인간에게 그런 구체적인 지시를 담은 주문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고등적인 지능을 지닌 사르카가 있다고?

사르카에 대해 더 알아봐야 했다.

당장에 떠오르는 곳은, 아르모니아 아카데미의 도서관이다.

몇백 년에 걸쳐 쌓인 아르모니아의 역사와 방대한 자료들이 그곳에 있을 거다.

­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사르카에 관련된 서적을 미친 듯이 뒤졌다.

처음에는 역사 쪽을, 그리고 생물 분야부터 마법 분야까지 전부.

‘뭐지….?’

그러나 마치 의도된 것처럼, 사르카에 대한 서적이나 자료는 단 한 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어딘가 이상했다.

사르카를 처리하는 령사들이 모인 기관에, 사르카에 관한 자료가 없다니.

“무슨 일 있나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다.

“아이리스 교관님?”

소환 마법 수업을 담당하는 갈색 머리의 소소하게 생긴 교관.

댕댕이를 처음 소환했을 때 말을 듣지 않아,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왜 여기 계세요?”

“..아. 전 수업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도서관의 사서 업무도 맡고 있거든요. 실은, 수업을 좀 더 늘려줬으면 좋겠지만..”

“아…. 사서셨군요.”

그녀가 말을 걸어준 김에, 관련 서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제가 전부 찾아봤는데, 사르카에 관련된 서적이 보이질 않아서요. 혹시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내 말에, 아이리스 교관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네? 아르모니아에서, 사르카에 관한 서적은 불법이에요. 사야.”

“...불법이요?”

“지금 이전의 황제 때부터, 관련된 서적을 출판하거나 소지하는 건 전부 금지당했어요. 남아있는 서적이 발견되면 전부 불태워버리거든요.”

“그럴 수가..”

기껏 여기까지 도달했는데, 이 국가에 사르카에 관련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고…?

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달랬다.

“미안해요..! 제가 도움이 못 됐죠..!?. 역시, 저 같은 건 교관의 자격이..”

“아, 아니에요..! 충분히 도움 됐는걸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 수업 기대하고 있을게요. 고마워요, 아이리스.”

아이리스에게 짧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대체 뭐가 문제야, 이 나라는..’

멋대로 검은 머릴 차별하지 않나, 사르카 서적까지 검열하질 않나.

..물론, 검은 머리의 차별은 내가 쓴 설정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적까지 금지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비교적 검열에서 자유로운 아르모니아의 외곽 지역에서 찾아보는 방법밖에는 없는 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시간도 부족했을뿐더러, 찾아간 곳에 자료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걸 어디서 찾아내야 한담…

‘사르카에 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으려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있었잖아. 누구보다 사르카를 좋아했던 사람이..!’

원작 소설 속 주인공의 회상으로나마 잠깐 언급되었던, 베일에 싸인 인물.

유리의 저택에 드레스를 빌리러 찾아갔을 때, 복도를 걷는 중 카르네가 잠겨있는 방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 그때, 유리가 정색하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의 주인이자, 이 나라에서 누구보다 사르카를 좋아했던 남자.

‘빈센트 프리지아.’

그는 프리지아 가문의, 버림받은 장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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