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민낯 (수정)
* * *
카르네는, 자신의 목덜미에 새겨진 숫자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봤구나, 사야.”
눈이 마주쳤지만, 대답할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슬픈 눈빛에 압도될 뿐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카르네를 마주 보았다.
그녀는 다시 목폴라를 끌어 올리고, 내게 물었다.
“밖에서 잠깐 데이트 어때?”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아카데미 부지를 말없이 걷다가,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언제부터야?”
“그거, 민감한 부분인데…. 뭐, 이미 들켰으니 더 숨길 것도 없지.”
체념한 표정의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다섯 살 무렵에, 친부모가 날 팔아넘겼어. 어지간히 굶기 싫었던 모양이야. “
담담하게 읊고 있지만, 끔찍한 내용이다.
“팔린 뒤에는 맞기도 하고, 접대도 해보고. 뭐, 여러 가지 했었지.”
문득, 일곱살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탈출하지 못했다면, 길리언과 나도 똑같은 삶을 살았겠지.
“그러다가, 어떤 훌륭한 분을 만나서 귀족 지위도 얻고, 이렇게 아카데미에도 다니고.. 별거 없는 이야기야. 그치?”
"훌륭한 분..?"
"그래. 아주 훌륭한 분."
그게 누군지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노예를 입양해 애지중지 키워 귀족 지위를 주고, 아카데미까지 보낼 능력이 있는 자라는 것 만을 짐작할 뿐이다.
"어땠어, 이 얘기?"
카르네에게서 뒷배경을 듣고 떠오른 감상은 이렇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정말로 단순한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게 틀렸다는 걸까.
“있지, 사야. 오랜만에 세말 중심부에나 들릴까 해. 슬슬 배도 고프고.”
카르네가 순진해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학교에도 먹을 건 충분하지 않아?”
“너무 물려. 항상 기름기 가득한 고기에다 달달한 푸딩 같은 것만 나오니까.”
처음에는 뷔페에나 나올법한 음식들만 먹으니 좋았지만, 솔직히 나 역시 매일 먹으니 좀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슬슬 무난한 것도 먹고 싶고.”
“사야도 천미…. 아니, 평민이라 그런지 공감해주네. 기뻐라.”
“..방금, 천민이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어?”
“빨리 오기나 해. 배고프다구.”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듯 내 손목을 잡아끌고, 세말 중심가로 향해 걸었다.
"여기만 오면, 마음이 놓인다니까."
아카데미 내에서의 기품있는 걸음은 어디로 가고, 순진 난만하게 깡충깡충 뛰며 나를 잡아끈다.
아이처럼 위험천만하게 분수대 위를 걸어가는가 하면, 평소의 그녀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하고 있다.
독기가 느껴지던 눈빛도, 미묘하게 억누르던 숨소리도 전부 보이지 않아서, 마치 다른 사람인 것만 같다.
별 볼 일 없는 길거리 공연에도 꺄르르 웃고, 지나치는 아이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다 왔네. 여기야.”
카르네가 나를 이끌고 온 곳은, 세말에서도 제일 뒷골목에나 위치한 허름한 음식점이었다.
간판도 거의 낡고 닳아 없어져서, 내 고향 루덴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가게다.
“..여기서 먹을 거야, 진심으로?”
“응. 이 가게가 아니면 안돼.”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우와..’
마치 시골 마구간을 그대로 옮겨와 식탁을 놓아둔 것 처럼 생긴, 범상치 않은 실내였다.
퀘퀘한 나무 냄새와 먼지, 그리고 파리랑 바퀴벌레가 잔뜩 돌아다닌다.
카르네는 익숙한 듯이 구석에 놓인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안 생겨 먹어선, 깔끔떠는 거야?”
“..아니, 좀 의외라서.”
세말에 이런 음식점이 있다는 것도 의외고, 카르네의 태도도 의외다.
“어릴 때부터 자주 왔던 가게라서.”
그녀와 마주 앉아, 음식을 주문하려고 했다.
“아, 여긴 주문 같은 거 없어.”
“엥?”
“그냥 주는 대로 먹는 거야.”
음식점이라기 보단, 여관에 딸린 작은 식당 같은 느낌에 가깝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 나이가 지긋한 노인네가 무언가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앞치마를 두른 것으로 보아, 주인장인 듯 보였다.
“저기..”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음식만을 무심하게 내려놓고 떠나버린다.
“원래 저러셔. 나도 한마디도 안 해봤어.”
알면 알수록 놀라운 가게다.
내 앞에 놓인 음식은, 정체불명의 수프 같은 것이었다.
감자 덩어리 같은 것도 보이고, 이 걸쭉한 건.. 도무지 겉잡을 수 없는 재료들로 보인다.
내가 주저하고 있는데, 카르네가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가져다 댔다.
“...”
그 모습에 나도 경계를 풀고, 조심히 한 스푼을 입에 가져갔다.
끔찍한 비주얼과는 다르게, 의외로 평범한 감자스프맛이 난다.
“..평범하게 맛있네?”
“아카데미에서는 못 먹는 맛이야. 가끔은 이런 쓰레기가 땡긴다니까, 참.”
맛있게 먹으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쓰레기라고 칭했다.
“어릴 때 부모님이랑 몇 번이고 왔던 가게야.”
“여기에..?”
“응. 그리고, 어느 날은 여기서 기다리고 하더니, 끝내 돌아오질 않더라.”
“..”
카르네의 부모 대신 그녀를 반긴 것은, 부모와 거래한 용역들이었을 거다.
머리채가 잡혀 끌려나가는 모습이, 선명히 상상된다.
"..원망스럽진 않아?"
"원망스럽지. 다시 만난다면 둘 다 죽여버릴 거야."
"무서워라."
"생각해보니, 죽이기보다 노예상에 파는 쪽이 좋을것 같네."
적어도, 나는 이쪽 세계의 부모란 자들은 기억이 없기에 그다지 감정을 품진 않았다.
그러나 부모에 의해 팔려 간다면, 그런 건 어떤 기분일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금세 그릇을 다 비운 카르네가, 내게 말한다.
그녀는 이제 무언가 후련해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야, 넌 이상해.”
“뭐가?”
“내가 위험한 애라는 것도 알고, 이대로 두면 유리를 죽일 거란 것도 알고 있잖아.”
카르네가 작게 웃었다.
후련해보이지만, 어딘가 씁쓸한 미소다.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어온다.
“왜 나를 그냥 놔두는 거야?"
“...”
카르네를 계속해서 지켜보기만 했던 이유.
단순히, 전개를 바꾸고 싶지 않았기에 그래왔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제거해야 할거라 생각했다.
그녀의 계획을 유리에게 말하거나, 오늘처럼 기회를 틈타 죽일 기회를 노릴 수도 있었지.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켜본 카르네의 모습이, 내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어온다.
눈앞에 퀘스트창이 깜빡이며, 마치 나를 재촉하는듯 띄워진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계속해서 줄어든다.
퀘스트조차도 그녀를 죽이라고 말하는것처럼.
조심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카르네. 유리를 죽이려는 건, 네가 원해서야?"
대답이 없다.
"다른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너에게 그런 일을 지시했다거나.."
"내 의지인 게 당연하잖아?"
카르네의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단순히 즐기는 것뿐이야. 유리가 주변으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고, 내게만 집중했으면 좋겠어. 그러다 완전히 나만 바라보게 될 때쯤, 내 손에 의해 죽는 그런 결말을 원해."
그런 쾌락 하나 때문에, 유리를 죽이려 든다라는 말은 이상하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얻는 건 뭐지?
수 년간의 노예생활을 이겨내고 귀족 지위까지 얻어낸 그녀가, 그렇게까지 유리의 죽음에 집착하는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런 결말을 바라는 사람치고는, 별로 즐거워 보이진 않네. 카르네."
"..."
이번에도 그녀는, 말이 없었다.
왜인지 카르네는 내 말에 더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소리 없이 한참을 대치하던 중,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녀와 만났던 첫 날 이후, 유리 문제에 대해 서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온 탓에 눈덩이처럼 문제가 불어났다.
나도, 그리고 그녀도 이제는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다.
카르네는, 주머니에서 보라색의 작은 플라스크를 꺼내 식탁에 올려두었다.
투명한 플라스크에 담긴 보라색은 액체는, 빛을 하나도 흡수하지 않아 어둡다.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가, 내 앞으로 또르르 굴러와 멈췄다.
"이게, 뭐라고 생각해?"
내 앞에 굴러온 용액의 뚜껑을 열어, 그 냄새를 맡았다.
희미한 알코올 냄새와 소다 향이 내 코에 맴돌았다.
“...”
“에크릭시. 대인 살상용 화학 기폭제야.”
그녀는,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평소에 무방비하게 포션을 쌓아두고 지내는 유리인데, 이걸 포션에 섞어둔다면, 쉽게 끝낼 수 있겠지.”
"..그게, 네 계획이야?"
“응. 힐링 포션과 섞으면, 점막에 닿아도 바로 폭발하지 않을 테고. 천천히, 소화 용액과 뒤섞이다가 폭사하게 돼."
소설에 적혀있던 것과는 다른, 좀 더 정교하고 편리한 계획이었다.
이게 그녀의 또 다른 계획이라면, 왜 내게 알리는 걸까.
"..그걸 나한테 말해주려는 의도가 뭔지 궁금한데."
"미리 알려준거야."
"그게 무슨.."
"때가오면 결국, 죽이고 말거니까."
방긋 미소지은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사야, 어떻게 해서든지 유리를 살릴거지?"
"..당연한 소릴."
"있지, 나는.."
그녀는, 갑작스레 몸을 이상할정도로 떨었다.
"...?"
“받기 .... 전에...”
카르네의 말이, 필름 끊긴 테이프처럼 뚝뚝 끊겨 들어온다.
“...카르네?”
"...수밖에…없어."
마치 특정 단어들을 검열당하듯, 어떤 부분을 말할때는 입을 뻐끔거릴 뿐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의...목적...”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알겠지만, 전달되지 않는다.
한번도 말을 더듬었던 적이 없는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역시, 안되려나."
결국, 전달하는 것을 체념한 그녀가,나지막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날 죽여. 사야”
눈물을 흘리는 붉은 빛 눈동자가, 조용히 일렁거렸다.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한번 더 묻는다.
"..죽여달라고?"
"유리를 살린다면, 그 방법 뿐이야."
"..그렇단 말이지."
그녀의 말에, 이제야 확신이 섰다.
카르네는 유리를 '죽이려는게' 아니라. 죽여야만 '하는' 거다.
'..솔직히, 상식적이진 않네.'
그녀가 나에게 죽여달라 말하면서까지, 마음을 바꿀 수 없는 이유.
상식 밖을 벗어난 이 일의 진상을 밝혀내는건, 아마 쉬운 일은 아닐거다.
그러나, 내가 만든 세계인 이상 분명히 힌트는 존재한다.
이제 완전히 고장난 인형처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한데, 아무도 안 죽을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