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등급 평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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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모니아 령사 아카데미에는, 팀에 따른 등급제가 존재했다.
S급부터 F급까지 나누어져 있으며, 그 등급에 따라 배정되는 임무가 다르다.
S급에는 최전선에서 뛰는 령사와 버금가는 임무도 있으며, 급이 낮아질수록 쉽지만 전투와는 연관이 없는 임무들이 늘어난다.
당연하게도, 소설 내에서의 유리 팀은 S급이었다.
“카르네, 잠깐 나 좀 볼까?”
잠시 카르네와만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
“..너도, 어떻게든 S급을 받아낼 생각이지?”
“높을수록 좋아. 어려운 임무일수록.. 성공률이 높으니까.”
별로 살인 계획 따위에 동조하고 싶진 않지만, 나는 더이상 혼돈을 늘리지 않게 최대한 소설에 쓰인 전개대로 가고 싶었고, 지향점만 보자면 카르네 또한 뜻이 같았다.
등급이 확정 날 때까지는, 어찌 됐든 임시 동맹인 셈이다.
“다들 모여봐. 생각이 있어.”
셋을 모아두고, 작전을 설명했다.
“유리와 카르네 둘은 사르카 사냥을 전담해줘. 둘은 오스테온도 다룰 수 있으니까 인원이 부족하진 않을 거야.”
“사야, 우리는?”
루나가 물어왔다.
“..너랑 나는, 사람을 노릴 거야.”
“...에?”
모두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혈석을 모아오는데 있어서 그 방법에 제한을 둔다고 말하지 않았다는거다. 그러니까, 남이 얻은 혈석을 빼앗든 성실하게 벌어오든 방법은 자유다.
“뺏는 과정 중에, 다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네가 적임자라는 거야. 사람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건 기사가 가장 뛰어나니까.”
빼앗는 행위 자체에 죄를 묻지 않더라도, 령사간에 심한 부상을 입히게되는 것을 다른 문제였다. 그렇기에,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사람이 필요했었다.
“우리 팀에 화염계 령사가 있다면, 다른 팀의 자루를 전부 태울 수도 있어.”
유리의 의견이었다. 아쉽게도 우리 팀에 화염계는 없지만, 사탄도 울고 갈 발상이다.
“령사들이 이만큼 활동하면 사르카 개체수도 빠르게 줄어들거야. 하나라도 더 벌어오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냥조와 약탈조로 나누어 행동하게 되었다.
키보다 높게 자란 풀숲에 몸을 숨기고, 루나와 함께 사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사야, 그나저나 이 아이 너무 귀엽다. 진짜 강아지 같아.”
루나가 댕댕이와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2m짜리 갑옷 늑대를 귀엽다고 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본다.
댕댕이도 두고 올 순 없어서 일단 끌고 오긴 했는데, 매복은 침묵이 생명인 만큼 이 녀석이 소리라도 내버렸다간 곤란해져 버린다.
“얘를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명령이라도 알아듣는다면 참 좋을 텐데.”
손을 주면 물고, 오라고 하면 가버리니 미칠 지경이다.
“강아지들은 공놀이 같은 것들 좋아하지 않아? 사야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공을 쫓아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새 댕댕이를 눕히고 배를 쓰다듬고 있는 루나가 말했다.
‘공?’
이 주변에서 공처럼 던질만한 게 없지만, 당장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댕댕아. 이거 봐라.”
손에서 조그마한 암흑탄을 만들어 내, 공중에 둥실 띄웠다. 쏘아 올려진 암흑탄은 공중으로 높이 솟더니, 내 머리 위로 떨어져 연기를 뿜으며 흩어졌다.
“컹! 컹!”
내 머리에 암흑탄이 명중하자 마자, 댕댕이가 미친 듯이 달려들어 내 머리카락을 파헤친다.
“아악! 떨어져! 머리 다 뽑히네..!”
“역시 강아지 맞다니까!”
루나가 이 광경을 지켜보며 기쁜 듯 박수를 쳤다.
댕댕이의 몸속은 텅 비어있다곤 하나, 갑주의 무게 때문에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머리는 좀 뽑혔지만, 댕댕이의 활용법은 어찌 찾은 느낌이다.
본격적인 범행…. 이 아닌 작전에 앞서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루나, 눈은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계속 감고 있어.”
“계속?”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계속.”
어둠 장막을 펼쳐 상대의 시야를 봉인할 계획인데, 장막의 범위 내에선 시전자 또한 어둠에 면역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길잡이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루나에게 눈을 감게 하고, 몇 분 더 기다리자 다른 팀이 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여성 2인과 남성 2인으로 이루어진 혼성 팀이었다.
‘어라..?’
그런데, 낯익은 사람이 눈에 띈다.
떡 벌어진 어깨에, 클레이모어를 짊어진 기사는 전날 나에게 고백했던 바로 그 기사다.
솔직히, 다시 만나기 꺼림칙한데.
“누가 왔어?”
“..루나,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무슨 소리야, 사야!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훔치자!”
처음엔 죄책감이 든다던 루나는, 어느새 본인이 더 들떠 있다.
풀숲 사이에서, 차분하게 멤버를 살폈다.
빨간 양갈래 머리를 한 화염계 령사를 선두로, 물을 다루는 수령사 남성과 자연계 령사 여성이 뒤따랐다. 가장 뒤에는 기사가 걷고 있다.
댕댕이를 포함하면 삼대 사지만, 저쪽도 언제든 오스테온을 꺼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삼대 칠의 싸움이다.
그렇다 보니 가능한 한, 싸움을 성립시키지 않고 훔쳐내야 한다.
‘자루는 누구에게 있지…?’
자세히 보니, 자루는 하나가 아니었다. 선두에 걸어가는 양갈래 머리 여성이 작은 자루를 들고 있었고, 가장 뒤에서 걸어오는 기사가 큰 자루를 들고 있었다.
“루나. 내가 네 손을 잡고 달릴 거야.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눈을 뜨고 달려들면 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손끝에 정신을 집중해 암흑 구체를 생성시킨다.
‘암흑탄!’
위력을 조절한 암흑탄은, 불투명한 형체를 흩날리며 양갈래의 얼굴에 적중했다.
“꺄악, 뭐야..!?”
“컹! 컹!”
암흑탄이 적중하자마자, 댕댕이가 쏜살같이 튀어 나가 여자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부벼 대기 시작한다.
“꺄아악! 이거 뭐야, 떼줘! 떼줘..!”
“아, 안젤리카..!”
수령사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부르며 황급히 달려들었다.
나는 장전시켜두었던 석궁을 조준해, 여자가 쥔 자루에 명중시켰다. 미리 화살촉을 빼고 돌멩이를 묶어두었기에, 부상의 위험은 거의 없는 화살이다.
자루는 바닥에 떨어졌고, 그 속에선 약초나 포션 따위가 흘려져 나왔다.
‘역시, 눈속임이었어.’
그렇다면, 혈석 자루를 든 쪽은 이제 확실해졌다.
“루나! 뛰자!”
“응!”
그녀의 손을 잡고 달리면서, 댕댕이로 혼란스러워진 무리 사이로 급습해 주문을 시전했다.
‘스코타디!’
스코타디 주문을 사용하자, 5m 지름의 암흑 장막에 모두가 잠식됐다.
밤이라면 아슬아슬하게 7m까지도 가능하지만, 햇빛 아래에선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
“뭐야..!? 기습이냐..!”
혼란에 빠진 팀원들의 목소리가 마구 섞였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루나에게 신호를 줬다.
“루나, 눈 떠! 자루는 기사한테 있어!”
최대 유지 시간은 낮이라면 30초, 밤이라면 1분 정도다. 장막이 끝나기 전에 빠르게 훔쳐내야 한다.
“앞이 안보여..! 안젤리카, 화염 주문을..!”
“꺄아악! 이 귀축..! 어딜 만지는 거야..!”
대화를 들어보니, 댕댕이가 꽤나 열심히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남자가 애타게 화염계 령사를 불러보지만, 그녀는 댕댕이에 의해 괴롭힘 당하느라 주문 따위 쓸 수 있을 리 없다.
처음부터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던 것도, 불을 밝혀버리면 어둠 장막이 쓸모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니까.
어둠 장막 속에선 동료가 다칠까 봐 섣불리 공격을 쓸 수도 없고, 밖으로 나간다고 한들 안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쉽지 않을 거다.
이 난리 통에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건, 눈을 이미 어둠에 적응 시켜 두었던 루나뿐이다. 루나가 자루를 잡아 채려고 하자, 기사는 놀라운 반응속도로 주먹을 휘두른다.
“거기냐, 이 악당 놈들…!”
“사야, 예상외로 반응이 거세!”
기사는 기사였다. 앞이 보이진 않지만 루나의 상황전달에 의하면, 자루를 뺏기지 않기 위해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다는 듯 하다.
“루나, 저 자에게 달라붙어! 생각이 있으니까!”
루나에 손에 이끌려 빠르게 그에게 달라붙을 수 있었다. 날아오는 주먹질은 루나에 의해 저지당하지만, 자루로 추정되는 것을 아무리 당겨봐도 꽉 진채 놓아주지 않는다.
“이 기사 세드릭의 이름을 걸고, 이걸 가져가게 두진 않겠다!”
‘곧 유지 시간이 끝날 거야.. 어쩌지!?’
같은 편이었다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그는 굳셌다. 루나에게 일방적으로 구타당하고 있으면서도, 자루를 끌어안은 팔을 놓을 생각이 없다.
‘하늘에 맹세코, 이 기술만은 다시 쓰지 않기로 했는데..’
오늘, 그 맹세가 깨질 것 같다.
그의 몸을 더듬어, 인간이 단련할 수 없는 가장 취약한 부위의 위치를 찾아냈다.
이 땅의 모든 남성들에게 사과를 고하고, 두 주먹을 높이 들어 올렸다.
‘쌍환분쇄권(?????)류 변형기, 중력가속도(?力???)!’
중력을 실은 두 주먹이, 자루를 쥐느라 방어하지 못한 그의 취약점에 내리꽂혔다.
“우웃, 우오오옷!”
그는 한차례 크게 몸을 경직했으나, 엄청난 기합과 함께 버텨냈다. 버티는가,, 그렇다면..
‘연타( ??)!’
“크아아악!”
수십초간의 분투 끝에, 겨우 자루를 빼낼 수 있었다.
“좋아, 가자!”
루나의 손에 이끌려 장막 밖을 빠져나왔고, 댕댕이 또한 할 일을 마쳤는지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상당히 꺼림칙한 일을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허억…. 허억.. 이쯤 되면 따돌렸겠지?”
분노에 차 쫓아오는 일행들을 따돌리느라 심장이 터지도록 달린 것 같다.
루나가 자루에 묵직하게 담긴 혈석들을 확인하며 감탄을 자아냈다.
“사야, 대단해! 어떻게 그 거구를 포기하게 만든 거야?”
“..루나, 난 아마 지옥에 갈 거야.”
“...?”
워낙 난리 통이었는지라, 내가 무슨 행동을 취했었는지는 루나도 못 본 듯 했다.
“근데, 댕댕이 입에 저건 뭐래?”
루나에 말해 댕댕이를 바라보았다. 입에, 뭐라도 물려있나?
‘커헉..’
댕댕이의 입에는, 출처 불명의 하늘색 팬티가 물려있다. 하트무늬가 새겨져 있고 레이스가 달린 게, 상당히 귀여운 팬티다.
“아이고, 내 정신아….”
설마, 그 난리 통에서 이걸 벗겨온 건가?
주인에게는 나중에 돌려주면서 확실하게 사과하기로 하자.
빼앗은 혈석을 가지고 유리네와 합류하니, 두 자루 가득 혈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훔친 자루를 들여다보던 카르네가 말했다.
“훌륭한데. 어디서 도적질이라도 하다가 온 거 아니야?”
“......”
“농담이야, 농담.”
들킨 줄 알고 순간 철렁했다.
‘그나저나, 많이도 모았네.’
둘씩 흩어져서 가져온 양인만큼, 이대로 가지고 가도 S급은 보장될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갈까 했지만, 유리의 표정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했다.
“잔챙이뿐이었어. 강한 상대를 기대했건만..”
그녀의 한 손 검이 아주 검게 물든 걸 보면, 이 일대의 소형 사르카를 쥐잡듯 쓸어버린 게 분명하다.
“여긴 그렇게 세말에서 그렇게 떨어진 곳은 아니라서, 커다란 녀석들은 아마 찾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저런 것들을 말하는 거야?”
그녀가 바라본 나무 밑동 뒤에는, 무언가를 우적우적 포식하는 검은 덩치가 보였다.
만만찮은 몸집과 발톱으로 봐서, 곰형 사르카가 틀림없었다.
‘원래 숲에 사는 사르카일텐데, 왜 이런 곳까지..?’
사르카는 철저한 영역 생물이다.
숲에 사는 사르카가 평원에서 발견되거나 하는 일따위는, 본래 일어나선 안됐다.
이상한 낌새에 물러나자고 주장하려 했지만, 유리 프리지아는 이미 칼을 빼 들고 접근하는 중이였다.
“유리, 아무래도 좀 이상해..!”
“겨뤄보고 싶어.”
그녀에게 이미 내 말 같은 건 들리지 않는 듯 싶었다.
“기간타스!”
그녀가 이름을 부르자, 3m에 달하는 갑옷 거신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
‘..?’
거대한 그늘이 드리워지며, 시야에 그림자가 진다.
“일식인가..?’
“아니야, 이건..”
쿵
해를 가렸던 것의 정체는, 엄청난 착지 소리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착지와 동시에, 곰형 사르카가 묵사발처럼 으깨져버린다.
“늑대형 사르카..? 아냐, 이건..”
두 갈래의 머리를 지닌, 비상식적인 크기의 사르카 앞에서 모두 경직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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