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발버둥
* * *
계획은 이러했다.
그 얼간이 둘이 만물상에 가 있을 동안, 나는 암시장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한 노예상과 만나게 되었다.
듣자 하니 고아들을 납치해서 파는 게 꽤 짭짤하다고 하네?
품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머리 하나당 최소 70골드는 보장해준다고 한다.
더 들어서 뭐 해? 군침 도는 조건이기에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자. 약속했던 140골드 주세요.”
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들은 내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무어라 대화를 나눴다.
“이 꼬맹이가 두 명을 팔아 넘긴 거야? 지독한 놈일세.”
“한 놈은 검은 머리에 한 놈은 장애가 있긴 한데, 그래도 건강한 놈도 하나 있으니 다행이구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건강한 놈..?
내 말을 계속해서 무시하는 그들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
“이봐, 내 돈은!”
“뭐? 네 돈?”
푸하하하하.
남자들은 큰 소리로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뭐지, 이 상황은..?
“웃기는 놈일세. 진짜 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 그때는 분명..”
“시끄러워.”
남자 하나가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슥, 들이밀었다.
“꼬맹이, 네가 잘 이해가 안되나 본데. 여기서 누가 제일 몸값이 비싼 줄 아냐?”
몸값..?
“너야, 인마.”
등 뒤의 남자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드르륵, 드르륵.
덜컹.
심한 흔들림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긴..?
짤그랑.
손발이 족쇄에 묶인 채로, 마차에 실려 이동하고 있었다.
그 할망구가 휘두른 몽둥이를 맞고 지금껏 기절해 있었나?
“길리언, 길리언! 일어나 봐!”
“으음..?”
수면 연기를 과하게 마셨는지 길리언은 아직도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어거스트 그 자식한테 당했어. 우릴 팔아 넘긴 거라고!”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똑같이 손발이 묶인 짐승 귀를 가진 자들 또한 여럿 보였다.
‘짐승 귀랑 꼬리, 수인인가…?’
마차가 향하는 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이대로면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직감이 왔다.
족쇄를 바닥에 세게 내리쳐보지만, 족쇄에는 흠집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틀렸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내 의미 없는 발버둥을 지켜보던 늙은 수인 하나가 입을 연다.
“포기하게. 한번 노예상에 잡힌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그는 놀라울 정도로 의연한 모습이었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고 그에게 물었다.
“이대로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 듣고 싶나?”
노인은, 고개를 옆으로 젖혀 목 옆부분을 내게 보여주었다.
‘숫자…!’
“처음이라면, 옷을 전부 벗긴 뒤에 인두로 목 옆에 낙인을 새긴다네. 물론 낙인 따위는 고통도 아니야. 그 뒤는 더 끔찍하니까.”
“인두로 지져지는 것보다 더 한 게 있다고요..?”
“채찍질일세. 처음에 맞으면, 대부분은 고통 때문에 맞은 지도 모르고 기절하지.
진짜 공포는 그다음부터야. 깨어나자마자 연타를 당하게 될 테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노인의 몸 곳곳엔 학대와 폭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익숙하다는 듯이 말씀하시네요.”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귀족 집안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 귀족 중에는 음습한 자들이 많아서, 자네 같은 젊은 처녀라면 특히나 고통스러울지도 몰라.”
..그랬지.
보육원의 손님 중에도 있었다. 아직 채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묘한 눈으로 쳐다보곤 하는 놈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서커스단에 팔리거나, 노역장에 끌려가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노역장에서 40년 정도 일했었다네.”
“노역이 끝났는데도 어째서 여기 있는 거죠..?”
“...노예에게 해방이란 존재하지 않아.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면 또다시 노예상에게 팔려 가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네. 자네는 아직 젊은 나이인데, 정말 안됐어..”
그저 이야기를 들은 것뿐인데도, 구토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노예로, 그것도 영원히..?
옆을 보니, 어느새 길리언도 잠에서 깨어나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노예…? 그럴 수가..”
아아.
어쩜 이리도 허무한지.
하늘을 보는 것도 마지막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덜컹거리는 마차의 천장으로, 희미하게 달빛이 비춰 들어왔다.
“아우우”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늑대의 종류인가? 그나저나, 이렇게 큰 울음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
마차의 앞칸에서 마부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발, 사르카 영역인가? 돌아서 가야 하나, 이거..”
“괜찮아, 어차피 저놈들은 자극만 안 하면 달려들지 않으니까.”
사르카? 분명히 남자들은 그렇게 얘기했다.
사르카란 이 세계에선 즉 몬스터. 인간만을 공격해오는 이형적인 생물체다.
울음소리로 봐서는 늑대형 사르카일까.
“이, 이대로 끌려가면 살 수 있을까..?”
길리언은 완전히 공포에 이성을 빼앗긴 모양이다.
눈동자를 사방으로 옮기면서, 추운 듯이 이빨을 떨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곧 전염된다.
공포감. 무기력. 절망.
이젠 영원히 끝이라는 절대적인 공포는 온몸을 타고 흘렀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거지?
차라리, 그때 루나와 함께 보육원을 나올 걸 그랬을까?
그랬다면 이런 일에 엮이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 어거스트. 그놈과 엮이지 말걸.
이건 전부 그놈 탓이잖아…?
파이프 담배를 챙겨서 그냥 개별행동을 했었더라면, 적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야.
혹은 상점가에 가던 길에서, 늦어지는 길리언따윈 내버려 두고 어거스트와 나만 상점가에 도착했다면?
처음부터,
루나를 방출시키고, 내가 그냥 보육원에 ······.
“이보게나.”
“..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공포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게. 현실감각을 잃을 수도 있어.”
나는 무슨 생각을 해버린 거지.
순간의 무서움 때문이라고는 하나 끔찍한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우우!”
또 한 번,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밤은 사르카가 소란스럽구먼. 흉흉한 일이 생기려나.”
...이제 겨우 7살이다.
이대로 끌려가 죽는 것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될 거라면, 할 수 있는 발버둥은 전부 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 속에서 끝없이 실마리를 잡으려 노력했다.
..사르카…
...늑대형 사르카.
“...할아버지. 혹시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뭐든 물어봅세.”
“지금 제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나죠?”
이상한 질문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중요한 물음이었다.
“어디보자.. 쾌쾌한 천, 약간의 땀, 양배추, 그리고.. 이프노스 잎의 향기구만. 이프노스라!
무척 달콤하지만 위험한 약초지.”
그는 우리 몸에 묻어있던 수면초의 원재료까지 밝혀냈다.
“그리고.. 더 없어요?”
“흐음… 그러고 보니, 하나 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요즘 늙어서 후각이 별로 좋지 않거든.”
그는 눈을 찡그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이 냄새, 다른 인간의 머리카락 냄새 같구나. 자네의 손에 희미하게 남아있어.”
“그 정도면 됐어요. 감사합니다.”
놀랍다.
그는 수 초 만에, 내가 먹었던 음식들의 냄새부터 빗질하며 배겼던 루나의 머리카락 향까지 밝혀냈다. 늙은이가 맞나 싶을 정도의 놀라운 후각이다.
이걸로 내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남은 건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뿐.
묶인 양손을 들어 올려 팔뚝 부분을 입에 가져다 댔다.
후. 심호흡을 한번.
콰득.
‘윽..!’
팔뚝의 그나마 살이 차오른 부분의 살점을, 힘껏 깨물었다.
격통과 함께 입안 가득 비릿한 철분을 띈 혈액이 흘러들어온다.
“푸우우..!”
입안에 들어온 피를 마차 벽면에 뿜었낸다.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마차의 벽 한쪽에 피가 발라졌다.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다른 냄새가 느껴져요?”
노인은 내 돌발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희미하던 머리카락 냄새는 사라졌지만, 다른 냄새는 아직일세.”
‘아직 부족한가.’
물어뜯은 한쪽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각오는 했지만, 눈물이 안 나오고는 못 배길 정도로 아프고.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면야.
다른 쪽 팔뚝도 있는 힘껏 물어뜯었다.
“...큭..!”
뜨거운 피가 양쪽 팔에서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덕분에 옆에 있던 길리언의 정신이 아주 바짝 돌아온 듯하다.
“사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만둬! 그러다 죽어!”
“어때요, 할아버지. 이제, 다른 냄새가 나요..?”
“...아니, 이젠 자네의 피 냄새밖엔 느껴지지 않네. 맙소사..”
좋아. 마차에 피 냄새를 잔뜩 묻혔다.
이제 남은 것은 물고기가 입질을 물기를 기도해야지.
“꺄아악! 피가..!”
내가 요란하게 소란을 피운 덕에, 짐칸의 다른 수인들이 깨어나 나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마차가 쿵, 멈추더니 로브를 쓴 남자가 짐칸을 열어제꼈다.
“무슨 소란이야, 노예 새끼들아!”
그는 상황을 확인하더니, 나를 보고 인상을 팍 찌뿌린다.
“이게 미쳤나, 어디서 자해를 하고 앉았..!”
콰직.
남자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무언가에 물려 하반신만이 남는다.
그 광경에 짐칸의 사람들이 일제히 토하거나, 비명을 질렀다.
끔찍한 참사는 짐칸 밖에서 계속되었다.
“사, 사르카다…!”
“살려줘..!”
짐칸 밖에서 소름 끼치는 포효와 함께 차례차례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치 호랑이와 사자의 울음소리를 합쳐 놓은 듯한 굉음이 날카롭게 공기를 찢어발겼다.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자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이게 진짜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될대로 되라 싶게 지른 방법이 엄청나게 효과가 있었다.
“그르르르…”
문제는, 이제 이런놈한테서 어떻게 살아남냐는 거지.
인간 식사를 끝낸 괴물은, 짐칸의 천막을 찢고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저게, 사르카…’
전신이 유동적으로 꾸물거리는 검은색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그 괴물은, 빨간 눈을 빛내며 마차를 휘젓고 다녔다.
반항 한번 못하는 수인족들을 해칠 만도 한데, 이상하리만큼 수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눈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나였다.
“그르르…”
나를 발견한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니 창조주거든.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지 않으련?
“크아아아앙!”
그럴 생각은 없나 보다.
그래. 평생을 노예로 살 바에야, 내 창조물에게 먹히는 건 업계포상이지.
눈을 질끈 감았다.
“...?”
“...”
그는 내 목걸이를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뒷걸음질 친다.
“아우우우!”
설마, 이 목걸이를 경계하는 건가?
그는 나를 향해 한번 크게 포효하고는, 다시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걸이 덕에 목숨은 건졌다.
대체 뭘로 만들어 진 거지?
“사야, 너 피가..!”
길리언이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아, 맞네.”
괴물한테 집중하느라 잊고 있었다.
어느새 양 팔에서 피가 흐르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이거, 지혈하지 않으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그때, 마차밖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와, 무슨 일이래? 사르카한테 습격이라도 당했나?”
밖은 피범벅에다 시체가 잔뜩 쌓여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목소리에선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 노예 마차였구나.”
2m 가까이 되어 보이는 장신에, 토끼 귀가 달린 근육질의 여성.
그녀는 짐칸을 둘러보더니, 칼 손잡이로 가볍게 수인들의 족쇄를 부숴버린다.
‘강철을 한 번에..?’
“운이 좋구만, 수인 동지들. 나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여기 갇혀 있을 뻔했어.”
여자를 뒤따라온 검은 복장의 수인들에게 갇혀 있던 자들이 하나씩 부축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의 인상이 180도 변했다.
“.. 인간놈들도 있네.”
우릴 보고 하는 말이다.
“기분 같아선 이 자리에서 바로 죽이고 싶다만, 같이 노예로 잡혀 온 모양이니 한번은 봐주지. 바로 내 눈앞에서 꺼져.”
툭.
그녀가 족쇄를 부숴내자 막혀있던 피가 갑자기 돌면서 몇 배는 더 어지럽기 시작했다.
‘이거… 좀 위험할지도..’
눈앞이 빙빙 돈다.
머리 한쪽이 쥐어짜듯이 아파져 오고, 몸에 힘이 빠진다.
“사야. 사야…?”
길리언이 나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걱정 하지 마.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 진 않겠지? 피를 이만큼이나 흘렸으니까.
“부탁드립니다!”
길리언?
길리언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무어라 외치고 있었다.
“제 친구가.. 이대로 두면 죽어요..!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치료받게 해주세요…!”
“꺼지라고, 내 말 못알아먹었냐?!”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제 친구를 도와주세요….!”
그는 필사적으로 발목까지 잡으며 늘어진다.
“놔라! 인간따위가, 어딜 손대는…”
“부탁드립니다! 노예들을 구한 건 사야에요!”
아아.
길리언. 발길질에 채이면서도 끝까지 부탁하고 있다.
“그런 걸 어떻게 믿어…!?”
“사실이네. 내가 보았어.”
부축받던 노인이 다가와 말해주었다.
“저 아이가 사르카를 유인하려고 일부러 피를 냈네. 나쁜 인간은 아니야.”
“....으으.”
그녀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쥐어뜯더니, 길리언에게 다가갔다.
“어이, 꼬마. 어떻게 해서든 네 친구를 살리고싶은거지?”
“...네!”
“막내야, 고기 좀 가져와!”
그녀는 목을 뚜둑, 꺾더니 손을 뒤로하고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고기?
핏기가 가시지 않은 선홍빛의 고기가, 철퍼덕. 하고 바닥에 던져진다.
“...저기, 이건..?”
“먹어라. 그럼 네 친구를 살려줄 테니.”
갑자기 고기라니? 의아해하는 길리언을 보며 그녀가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인(人)육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