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66화 (66/151)

‘원거리 타격 무기가 필요하겠어. 총이라도 몇 정 들여야겠는데?’66. 진출

“여기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협회에서 나온 직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고병갑은 또박또박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었다.

“아실 만한 분이시니 화기 불법 유통과 그에 따른 처벌에 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직원은 사무적으로 대답한 뒤 떠났다. 고병갑은 거실에 쌓인 40개의 총기 케이스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쓰려고 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총기를 졸업한 지 꽤 됐다.

그는 20정의 K-1 소총을 전부 아스빌람으로 넘겨 보낸 뒤 본인도 넘어갔다.

성벽 옥상에 40명의 비스트 고블린이 모였다. 이들은 앞으로 경계 임무에만 투입될 전문 경계병들이었다.

20명씩 주야를 번갈아 가며 경계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고병갑은 K-1 소총을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복창해라. 총기는 제2의 생명이다.」

「총기는. 제2의. 생명이다!」

「총은 내 애인이다.」

「총은. 내. 애인이다!」

비스트 고블린들은 곧잘 따라 했다.

「앞으로 이 무기는 너희의 주 무장이 될 거야. 사용 방법과 관리 방법을 설명해 줄 테니까 철저하게 숙지해라. 알겠냐?」

「알겠습니다!」

고병갑은 40명의 경계병에게 총기에 관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총이라면 자신도 지긋지긋하리만큼 다뤄 왔던 무기다. 전문가라 해도 손색없었다.

한 차례 이론 강의가 끝난 뒤엔 곧바로 실습을 시작했다. 한 녀석씩 성벽 끄트머리에 기대 총을 견착했다.

비스트 고블린쯤 되면 신장이 170센티는 됐기에 총을 다루는 데도 큰 무리가 없었다.

「준비된 사수부터 격발.」

「격발!」

탕! 탕! 탕!

고요한 아스빌람에 총성이 연이어 울렸다. 미리 숲에 설치한 나무 과녁에서 파편이 튀어 올랐다.

‘이 녀석들… 꽤 쏘는 정도가 아니잖아?’

비스트 고블린은 그 이름처럼 동물적인 감과 집중력을 가졌다. 이제껏 재빠른 몸놀림만 보고 암살자로 키웠는데, 다시 보니 사수로서 자질도 굉장했다.

거기다 성장의 묘약을 통해 육체의 능력을 한층 끌어 올렸으니 백 발 쏘면 백 발 맞추는 경지가 되었다.

사격 훈련을 더 해 봐야 탄약만 소모할 뿐이었다. 고병갑은 적당히 사격 훈련을 끝냈다.

「천만번을 말해도 부족하니 다시 말하겠다. 총은 굉장히 위험한 무기다. 그러니 장난으로라도 아군에게 총구를 겨누지 마라. 행여라도 총 가지고 장난치다 적발되는 녀석이 있으면 각오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야간 조는 얼른 가서 쉬고 주간 조는 바로 임무를 시작해. 아, 참. 그러글이 포착돼도 데드라인을 넘기 전까지는 쏘지 마라.」

비스트 고블린들이 일제히 답했다. 그들은 이내 제 위치로 가서 경계를 보기 시작했다.

한편, 솜니움 식당도 성벽 못지않게 북적였다. 에아가 홉 고블린 다섯과 노멀 고블린 열을 데리고 열띤 강연을 펼치고 있었다.

「알겠죠? 이 모래시계가 여섯 번 뒤집힐 때 불에서 꺼내는 거예요. 늦으면 타고 너무 이르면 죽이 돼 버리니까 조심하세요.」

「오오. 알겠다.」

「근데. 에아.」

「네? 질문 있나요?」

「에아도. 로드랑. 가냐?」

한 노멀 고블린이 물었다. 초창기부터 에아를 도와 밥을 준비하던 녀석이다.

에아는 애달프게 미소 지었다.

「네, 그렇게 됐네요. 당신들 로드와 함께 가기로 했어요.」

「힝……. 아쉽다.」

「보고 싶을. 거다.」

「후후, 저도 그렇답니다. 여러분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네요.」

「아쉽다. 그래도. 에아가. 로드 도와주는 게. 더 좋다.」

「그건. 맞다.」

고블린들의 무한한 로드 사랑에 에아가 피식 웃어 버렸다.

「당신들은 로드를 정말로 좋아하는군요?」

「당연하다!」

「신기하네요. 어째서 그렇게까지 로드를 좋아하는 거죠?」

고블린들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뉘앙스다.

「우리의. 로드니까.」

「아스빌람으로. 데려와 주셨으니까.」

「로드가. 맛있는 밥. 주고. 따뜻한 집. 줬다. 좋아하는 거. 당연하다.」

「그치만 당신들 로드는 가끔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또 어쩔 땐 당신들을 무섭게 다그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면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나요?」

「에아. 바보냐? 우리가 잘못해서. 로드가 화난 거다. 전부. 우리 잘못이다.」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

고블린들은 필사적으로 자신들 로드의 편을 들었다. 에아는 자신이 아무리 저들의 환심을 사도 고병갑만큼은 못되겠구나, 생각했다.

「후후! 알겠어요. 이제 냉동 창고로 가요. 음식물 보관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요.」

「알았다.」

솜니움의 바쁜 하루가 그렇게 또 흘러갔다.

요즘 솜니움은 굉장히 역동적이었다. 누구는 떠날 준비를, 누구는 남을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리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숲 토벌 작전’도 있었다.

「도란, 다 모였어?」

「네! 빠짐없이 다 왔어요.」

고병갑이 성벽 앞에 집결한 인원들을 쓱 훑었다. 일이 보병대와 공격대, 그리고 도란이 구성원이다.

「저번과 똑같이 진행할 거야. 절대 대열 이탈하지 말고 긴장 놓지 마라. 그럼 가자.」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토벌대는 신속하게 솜니움을 빠져나와 숲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기다란 대열을 이루었다. 선두에는 고병갑이, 후위에는 도란이 위치했다.

「기척이 없는 것들이다. 사주 경계를 철저하게 해.」

로드의 말 한마디에 고블린들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앞서 토벌했던 지역을 빠르게 지나쳐 미개척 지대에 발을 담근다.

‘떠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잡아 놔야 좀 안심이 될 것 같단 말이지.’

적어도 솜니움을 떠나기 전에는 매일같이 숲을 토벌할 심산이었다.

토벌대는 숲 한가운데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살폈다. 얼마 후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 그러글이 나무 틈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으으…….」

「우아아…….」

‘진짜 귀신 같은 놈들이구먼.’

고병갑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검을 뽑았다. 그가 앞을 겨냥하며 소리쳤다.

「가서 다 쓸어버려.」

「가자!」

「케르륵!」

그를 지나쳐 60명이 넘는 토벌대가 튀어 나갔다.

창칼이 나뭇잎을 가르며 뻗어 나간다. 그것들은 무자비하게 그러글을 도륙 냈다.

「내 옆에 있지 마, 바보들아! 말려들기 싫으면!」

‘어휴, 저 바보가.’

도란은 내력까지 잔뜩 뿜어내며 싸웠다. 토끼 잡겠다고 소 잡는 칼을 꺼내는 격이다.

그 덕분에 애꿎은 나무들까지 댕강댕강 잘려 나갔다. 그러글이야 뭐… 칼에 닿는 순간 가루가 돼 버렸다.

‘이제 거의 나만큼 내력을 다루잖아? 이러다가 정말로 역전당하겠는데.’

도란의 성장 속도는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교본 없이 내력을 끌어낸다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심지어 잘 다루기까지 했다.

‘로드 체면이 있는데 역전당할 수야 없지.’

고병갑도 꽁초를 비벼 끄고 전투에 가담했다. 숲엔 그러글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 * *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신년이 밝은 게 엊그제 같건만 벌써 2월이 코앞이었다.

「우와…….」

「지, 진짜. 아스빌람이다.」

「흐윽!」

67명의 고블린이 새로 아스빌람에 찾았다. 그들은 놀란 눈을 번쩍이며 두리번거렸다. 감수성 풍부한 몇몇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고병갑도 그들과 함께 아스빌람에 들어섰다.

‘드디어 다 채웠다.’

장장 3주에 걸친 고블린 파밍이 오늘로 끝났다.

새로 들여온 녀석들을 합치면 아스빌람의 고블린이 1,500명을 넘겼다.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는 곧장 고붕이를 불러 새로 온 식구를 맡겼다. 고붕이는 숙련된 솜씨로 신입을 인솔했다.

「고붕아.」

「예. 로드시여.」

「애들 잘 곳은 있냐? 없지?」

「어……. 밀어 넣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솜니움은 1,500명이나 되는 인구를 전부 감당하지 못했다. 애당초 500명 정도를 염두하고 기획한 곳이니까.

숙소는 당연히 꽉 찼다. 식당이나 창고 등의 건물도 고블린으로 가득 들어찬 실정이었다.

한마디로 포화 상태였다.

「정 자리가 없으면 내 처소로 보내. 30명 정도는 재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병갑이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2026년 1월 25. 오늘 밤이 지나면 1월도 나흘밖에 남지 않는다.

‘나갈 때가 됐다.’

인구는 확보했다. 솜니움도 기반이 탄탄하게 잡혔다. 이젠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글피 뒤엔 나서자.’

고병갑은 그렇게 다짐하며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이 밝았다. 고병갑은 새벽부터 분주히 나설 준비를 하였다. 그가 짐과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두 명의 고블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드! 안녕히 주무셨어요?」

「편히 쉬셨습니까, 로드시여.」

도란과 도르마였다. 그들 역시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어, 너희야말로 잘 잤냐? 애들이 많아져서 불편하지?」

「아닙니다. 불편하다니 당치도 않지요.」

「저도 괜찮아요!」

「그래, 얼른 가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성문으로 이동했다. 성문 앞에 도착하니 몇몇 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가는 건가요?」

에아, 고붕이, 키리얀, 투르카 등등.

고병갑과 두 고블린을 배웅하러 나온 것이다.

고병갑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다들 나와 있어? 자지 않고.」

「배웅하러 왔죠. 오늘 가면 언제 올지 모른다면서요.」

「에이, 무슨 유난을 떨고 그래? 그냥 슬쩍 둘러보고만 올 건데. 당장 오늘 저녁에 돌아올 수도 있어.」

「그래도요. 아무튼 조심히 갔다 와요. 도란이랑 도르마 씨도요.」

「로드시여,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그래, 다들 얼른 들어가서 자라.」

고병갑과 두 고블린은 배웅을 받으며 성문을 나섰다.

「어디까지 나가 보실 작정이십니까?」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을 거야. 솜니움이랑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으니까.」

그들이 나선 이유는 새 터를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터도 잡지 않고 수백의 고블린을 끌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한동안 죽어라 잡아 댔더니 그러글이 안 보이네.’

숲을 지나는 동안 단 한 마리의 그러글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쥐잡듯이 잡아 댄 보람이 있었다.

대략 30분 정도 내달리니 숲이 끝났다. 그 이후엔 평범한 산길이 나왔다. 그들은 차근차근 내리막을 밟으며 하산했다.

‘솜니움이 꽤 높은 곳에 있었구나.’

산 초입에 다다르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산세가 급한 것은 아니다만 산 자체가 워낙 크고 넓었다.

「우와! 로드, 저기 좀 보세요. 엄청 넓어요!」

내리막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될 무렵. 도란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광활한 평야가 보였다.

「오오, 평야로군요.」

「이거 땡잡았는데?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겠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로드로드! 그러면 저기에다가 새로 살 곳을 짓는 거예요?」

「아마 그렇겠지. 그 전에 강부터 찾아야겠지만.」

터가 아무리 좋아도 강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다행히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있으니 멀지 않은 곳에 강도 있으리라.

그들은 산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이제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끝없이 펼쳐진 평야 지대였다.

‘넓기는 진짜 엄청나게 넓구먼. 그런데 이건…….’

거슬릴 게 없어서 휘어진 지평선이 보일 지경이었다.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다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어허…….」

「로드… 여기 땅이 이상해요.」

도르마가 작게 탄식했다. 도란은 아예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대지가 이상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땅이 죽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다. 하나, 직접 땅을 밟으니 바로 알 수 있었다. 대지가 죽었다.

흙은 메말라 푸석했으며 식물이라곤 말라비틀어진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다.

사막까지는 아니었으나 초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삭막한 모습이다. 그 흔한 잡초조차 없지 않은가?

‘이 정도 황무지면 농사도 못 짓겠는데.’

그가 흙 한 줌을 쥐어 비벼 보았다. 흙이 아니라 먼지나 가루 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로드, 저기 좀 보세요!」

예상과 너무 다른 풍경에 고뇌하던 중 도란이 고병갑의 팔을 붙들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고병갑은 그러글이라도 나타났는가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러글은 무슨. 보이는 거라곤 황량한 들판이 전부였다.

「…뭘 보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구먼.」

「저 멀리, 엄청 멀리요. 건물 같은 게 보이지 않으세요?」

「건물? 여기 무슨 건물이 있다고.」

고병갑은 구시렁거리면서도 눈에 내력을 집중했다.

내력의 도움 덕분에 먼 곳까지 맑고 선명하게 보였다. 이윽고 도란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뭐야? 진짜 건물이잖아?’

그녀의 말은 진짜였다. 지평선과 맞물릴 정도로 아득히 먼 곳. 그곳에 도시로 보이는 건물 무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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