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66화 (166/170)

< 현지의 정규앨범 발매 >

정채희의 드라마, <주점 칙칙폭폭>이 영화와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화제를 끌어모으고 있을 때.

스멀스멀 다른 드라마의 얘기 또한 나오기 시작했다.

“최락현 씨께 질문드리겠습니다. 데뷔작인 ‘양녕을 탐하는 무녀’에 이어, 이번 드라마에서도 악역을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최락현이 재벌 3세 악역으로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돈이 최고야>의 제작발표회.

업계에서 큰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지, 기자들은 들끓듯이 많았다.

‘아 씨, 긴장되네.’

제작발표회는 이번이 두 번째.

연기를 함에 있어선 이제 별로 긴장이 되지 않았으나, 기자들 앞은 달랐다.

연기라면 전문분야지만, 인터뷰는 아니었으니.

허나, 락현은 겉으로나마 여유 있는 미소를 띠우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다들 예상하시다시피 박한울 실장님의 추천이 있었습니다만, 저도 마음이 끌렸습니다. 대본을 읽었을 때 작품이 굉장히 좋았고, 캐릭터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악역’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두진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악역이었을 뿐이죠. 다음에 또 악역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든 마음에 드는 작품에, 마음에 드는 역할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생각입니다.”

“양녕대군으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셨는데, 이번 캐릭터로는 대중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음. 양녕대군과는 사극과 현대극,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강렬하게 느끼시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하지만 그게 두 캐릭터가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락현의 입에서는 청산유수 같이 대답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과부화가 걸릴 것 같았다.

‘차라리 연기하는 게 속 편하지.’

그렇게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던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락현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지금쯤 올라와 있겠지?’

침대 위에 누운 채,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펴봤다.

기사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최락현 드라마 나오네. 꼭 본다 이것도.

-ㅋㅋㅋㅋHJ엔터 열일하네 정채희랑 얘 거까지 드라마 볼 거 두 개 생길 듯.

씨익- 웃음이 지어졌다.

‘이 정도면 팬이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닌가?’

‘팬’이라는 한 글자의 단어.

아직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웠으나, 기분 좋은 울림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도 보람은 있네.”

***

최락현의 형이자, ‘양녕을 탐한 무녀’의 감독, 최창수.

그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은 뒤에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곧 락현이 드라마 나오는데 같이 보실래요?”

“그럼! 봐야지!”

당연히 부모님도 오늘 나오는 걸 알았기에 손꼽아 기다리셨고, 이미 전화까지 싹 돌리신 뒤였다.

“근데 락현이는 오늘 늦는다냐?”

“홍보 때문에 바쁜가 봐요. 걱정 마세요. 박한울 실장님이 어련히 잘 챙겨주시겠죠.”

“그렇겠지? 박실장님이 참 은인이야, 은인. 그놈 사람 만들어주고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알게 만들어주셨는데 우리가 당연히 믿어야지.”

영화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께서는 동생이 연기하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하셨다.

물론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 않다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으나.

‘나 때문이기도 하지.’

이 바닥이 얼마나 뜨기 힘든 지 자신을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박한울 실장으로 인해 동생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자신 역시 그에게 크나큰 도움을 받았으나, 동생이 받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동생이 영화에 캐스팅된 이유에는 연기가 좋다는 것도 있었지만, 박한울의 추천이 상당한 몫을 했음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래! 이제 곧 나온다고! 어, 꼭 봐!”

“락현이 또 악역이냐고? 악역이 뭐 어때서! 인터넷만 봐도 꼭 좋은 소리밖에 없더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끊어!”

지금쯤이면 드라마가 올라왔을 텐데, 부모님은 아직도 통화 중이시다.

최창수는 동생을 자랑하며 아끼는 부모님의 모습에 작게 웃음이 나왔다.

‘많은 게 변했어.’

통화 때문에 넷플릭스에 드라마가 올라온 지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은 1회를 시청할 수 있었다.

자기가 나오는 작품들을 크게 크게 보시라고 최락현이 사다놓은 커다란 TV.

모두 그 앞에 모여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얘 주연 맞아? 왜 여태 안 나오는 거여.”

“좀만 기다려 봐.”

부모님은 드라마에 집중하기보단 동생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었으나.

감독인 자신은 아니었다.

‘드라마가 잘 빠졌네.’

1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었다.

역시, 박한울 실장님의 안목은 이번에도 정답인 모양.

그러다가 1회가 끝날 때쯤.

“락현이다! 락현이야!”

“조용히 좀 해봐요! 안 들리잖아!”

차량 뒷좌석에 앉아 부하직원의 보고를 설렁설렁 듣고 있는 락현.

그러다가 부하직원의 말을 중간에 뚝 자르며 말했다.

-그래서 요약하면 뭐냐고. 제발 좀 짧고 쉽게 설명하면 좀 안 될까? 그거 안 돼? 그것도 능력이야, 이부장.

-···디자인 도용 때문에 신상품 런칭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 할 수 있잖아. 얼마나 깔끔해? 그리고 그 문제도 이부장이 해결할 수 있지? 쉽게 가자.

-어떻게···.

-하아. 좀 제발 좀. 어? 대기업이 그런 코딱지 만한 기업에 시간이랑 노력을 부어야겠냐고. 발뺌해. 우리 법무팀 짱짱하잖아. 언론에 노출되는 거 묻고, 소송하겠다고 하면 질질 끌다가 후려치고. 아니면 적당히 거리 하나 잡아서 합의하고. 어? 방법이 몇 개야, 대체!

첫 등장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진 그냥 전형적인 쓰레기 악역이었다만.

이 캐릭터가 의외로 또, 두뇌가 아주 비상해서 나중엔 등장인물들을 품에 안으며 윈-윈 관계가 된다 하니, 대중들의 뇌리에도 깊게 박힐 거다.

아무튼 연기 실력과 빌드업 때문인지,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등장 임팩트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다.

‘집에서만 보던 모습을 TV로도 보네.’

최창수는 동생의 짜증 내는 연기를 보며 큭큭, 웃었다.

우리 집이 재벌가도 아닌데, 집에서 저것과 비슷한 모습을 자주 보지 않았나.

‘이제 슬슬 댓글들 좀 있으려나?’

30분 정도 늦게 시청했으니, 아마 인터넷에선 반응이 조금 올라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개되자마자 본 사람들 중 일부는 게시글이나 댓글을 남겼겠지.

1회가 끝나고 부모님이 얘기를 나누시는 사이, 최창수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살폈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반응들을 볼 수 있었다.

-양녕대군 떴닼ㅋㅋㅋ 얘는 진짜 악역을 기깔나게 잘하는구나.

-최락현 연기 맛있게 잘한다···.

-양녕대군 보러 왔는데 머릿속에서 양녕 이미지 싹 사라짐. 이게 진짜 배우지.

동생은 또다시 성공할 모양이다.

이번에도 크게.

***

넷플릭스에선 최락현이, TV에선 정채희가 활약하는 사이.

가요계는 송하연이 독재하다시피 군림하고 있었다.

1위, 1위, 1위, 1위.

모든 차트와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쓸었고, 단 한 번의 미끄러짐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49. So Weird - Hayeon Song

미국에서의 관심 역시 전혀 줄어들질 않고 있었다.

이번 앨범 발매 후, 단 한 번의 미국 활동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는 아직까지도 성장세.

덕분에, 그녀가 미국에 빨리 가지 않음에 불안해했던 직원들마저 지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바로 오늘,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난 그녀의 친구로서, 그리고 함께 앨범을 만든 동료로서.

그녀의 배웅길에 같이 합류했다.

그녀를 담당하는 정실장님, 그리고 최팀장님이 함께 탄 차에서.

나는 뒷좌석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말을 건넸다.

“하연 씨, 미국 가서도 밥 잘 챙겨드세요. 입맛에 안 맞는다고 안 드시지 마시고요.”

내 눈을 바라보는 그녀는 진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미국 진출에 대한 부담감이나 걱정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

이에, 오히려 나의 기대감만이 더 올라왔다.

“심심하면 시차 상관없이 언제든지 연락하시고, 컨디션 안 좋아질 때까지 무리하지 마세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조수석에 앉은 최팀장님도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하연이한테 그런 말 하는 사람 박실장밖에 없을 거야. 얘가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데.”

“그래도요. 하루이틀 있다 오는 거 아니잖아요.”

내 대답에 송하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이 년 있다 오는 것도 아닌데요, 뭐. 아무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컨디션 관리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올게요.”

그때, 피식 웃으며 최팀장님이 농담을 건넸다.

“누가 보면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 줄 알겠-“

“오빠.”

“···.”

나에게 건넸던 것과는 180도 반대되는 서늘한 그녀의 목소리에.

농담을 건넸던 최팀장님의 말이 뚝 끊겼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그저 침묵이 최선임을 몸으로 깨우치신 모양이다.

화난 그녀와 마주할 일이 없는 나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지혜였다.

그녀가 내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다시 부드러운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가끔 심심하면 연락할게요. 실장님도 대기 시간에 할 거 없거나 심심하시면 아무때나 연락하세요.”

뒷좌석에 앉은 우리 둘에게만 해당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항으로 가는 내내,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거리감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소소하게.

그렇게 대화한 덕분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와 그녀는 웃는 얼굴로 짧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수 있었다.

“하연 씨, 조심히 다녀오세요.”

“네. 연락할게요, 실장님.”

난 굳이 공항 안까지는 따라가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팬들과 기자들로 복잡해질 것이 뻔했기에.

또한, 그렇게 정신없는 곳에서 인사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다시 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빌보드 차트에서의 활약 때문에, 강제로 진출하다시피 미국으로 출국하는 송하연.

그녀와 마찬가지로, 곧 앨범을 내는 유현지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드디어 그날이 왔다.

현지의 정규앨범 발매일.

뮤비 티저와 포토 티저, 하이라이트 멜로디와 뮤비 비하인드 영상까지.

앨범 발매 전에 풀릴 것들은 다 풀렸기에, 그녀의 팬들은 지금 기대감으로 폭발 직전이었다.

허나, 우리는 그 반응을 한가로이 둘이서 모니터링할 수는 없게 됐다.

방송국에서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거든.

케이블 음악방송에서 마련해준 컴백 스페셜 무대.

무려 네 곡이나 무대를 만들어준다고 하니,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전녹화를 진행하기 위해 방송국에 와 있었다.

스탭들과 댄서들로 북적북적한 대기실.

그 속에서 현지와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대기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평소엔 엄청 길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순삭이네.’

심지어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

“왜 그러세요?”

“어? 아니야, 아무것도.”

그런데, 그녀의 이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납득하지 않을까?

한 쪽 어깨를 드러낸 흰색 긴팔과, 실크 재질의 까만 치마.

무엇보다 작고 귀여운 얼굴과 선한 눈빛까지.

아마 그녀가 앞에 있다면, 한껏 분노한 사람조차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지어질 거다.

“가자.”

“네.”

우리는 대기실에서 나와 무대로 향했고.

그녀는 댄서들과 함께 무대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첫 곡은 더블 타이틀 중 하나,

공식적으론 이 자리에 팬들과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무대를 올려다보는 방송국 스탭들을 보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시작하겠습니다.”

피디의 담담한 어조 뒤에 시작된 무대.

송하연이 독재하고 있는 가요계에, 마침내 위협적인 폭탄이 떨어져 내렸다.

< 현지의 정규앨범 발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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