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41화 (141/170)

< 다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할까 봐요 >

누군들 안 그렇겠냐마는, 평범한 직장인인 그 또한 유현지의 빅 팬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팬심 만큼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사회초년생이라 주말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무척 바쁘게 지내야 했지만.

그 무엇보다 유현지의 콘서트는 우선순위에 놓여 있었다.

공부? 휴식? 그런 건 이 콘서트를 보는 것에 완전히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까짓 거 좀 못 쉬면 어때. 몸은 조금 더 힘들지언정, 이게 진정한 힐링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운이 좋았어.’

1분만에 이틀치의 티켓이 전부 다 매진된 콘서트.

거기서 그는 이 첫째 날의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비록, 같이 보러 갈 사람도 없이 혼자 가지만, 아무렴 어떤가.

설령 같이 가더라도 혼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녀가 나타난 순간부터는 옆에 누가 있건 신경도 쓰지 못할 것 같았고, 더구나 공연장에 모이는 모두가 다 같은 팬이었으니까.

직장인인 그는 매우 떨리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출근할 때의 지하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몸의 기운을 다 빼앗아가는데, 어쩐지 올림픽공원역으로 향하는 지금은 설렘만 증폭될 따름이었다.

그는 플래카드와 응원봉을 넣어둔 백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핸드폰으로 커뮤니티를 살펴봤다.

-아 힘드네 진짜로···. 아···. 아아아···.

└님도 티켓팅 실패했나 보네요ㅠㅠㅠ 저도 동병상련···. 너무 아쉬워 죽을 것 같아요.

└아뇨. 지금 콘서트장 가는 길인데 너무 좋고 흥분돼서 힘들다고요ㅋㅋㅋㅋ 아 죽겠네 진짜ㅋ

└;;; 죽는다 진짜로;

“큭큭.”

커뮤니티, 카페, SNS, 유튜브 등 다양한 곳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팬심을 나누는 게 이렇게 재밌을지 미처 몰랐다.

그동안 이렇게 연예인을 열렬하게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옛날부터 해볼 걸 그랬다.

‘아니구나. 현지라서 좋은 거겠네.’

그렇게 팬 커뮤니티들을 뒤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콘서트장.

그는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뒤에 서서, 오래 기다린 끝에야 겨우 굿즈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공연만 잘 감상하면 정말 완벽한 하루일 터.

그러나, 그 완벽한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와아아아아!”

“꺄아아아! 언니!”

“현지야아아아아!”

감상? 이건 더 이상 ‘감상’이라는 간질간질한 단어로 칭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등장하기 전, 기대를 잔뜩 고조시키는 조명과 음악, 그리고 스크린 영상.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이 좌우로 열리며, 데뷔곡인 <구름 위의 꿈>의 반주와 함께 그녀가 등장했을 때.

자신은 물론, 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모두가 난장판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열광의 도가니이니 뭐니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한 사람의 관객 입장에서 보면 머리가 뜨겁고 하얗게 백열될 정도로 함성을 내지르기에 바빴다.

“현지야아아!”

첫 콘서트 관람은 아무래도 대실패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기억을 반추해보면, 필름이 끊긴 것처럼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와아. 관객들 함성소리 진짜 크다.”

“장난 아니네···.”

콘서트의 깜짝 게스트로 참여하게 된 YU엔터의 6인조 걸그룹, 샴페인 노바.

그녀들 또한 라이징 스타답게 팬덤이 차근차근 쌓이고 있었지만, 유현지의 팬덤과는 규모 면에서나 열기 면에서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

무대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들 중, 리더 박수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긴 하지만, 만약 현지가 우리랑 같은 그룹으로 데뷔했더라도 좋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이 말이 바깥으로 새어 나갈 리가 없으니 꺼낸 말이었고.

멤버들은 그녀의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박수현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최소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솔로로 이렇게 잘하고, 이렇게 인기 많을 정도로 매력 있으면 팬덤 복잡해지지. 우리 완전 병풍되고 현지 발목 잡았을지도 몰라.”

“언니! 발목잡다뇨. 우리도 잘하잖아요. 그런 말 하지 마요.”

막내 이민지가 눈썹을 모으며 투정 부리듯 말하니, 다른 멤버들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YU엔터의 김영준 실장도 막내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엄청 잘하고 있으니까 비교해서 자조하거나 씁쓸해하지 마. 무대에서 유현지 팬들 다 너희 팬으로 만들 생각으로 자신감 넘치게 해. 알았지?”

“”네!””

그녀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을 때였다.

이것저것 점검하며 바쁘게 움직이던 박한울 실장이 그녀들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샴페인 노바 여러분들. 게스트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더 박수현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연히 와야죠. 현지랑 친분을 떠나서 저희가 도움받은 게 얼만데요.”

그녀의 말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박한울이 입을 열려고 할 때.

첫 곡을 끝낸 뒤 팬들과 잠시간의 대화를 마친 유현지의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송하연의 콘서트에 그녀가 게스트로 참여했을 때, 관객들이 함께 떼창을 부르며 정신없이 즐길 수 있는 곡을 원하게 돼서 만든 데뷔 후속곡 .

박한울은 말하려다 멈추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 위에 있는 유현지를 바라봤다.

그녀가 원했던 떼창이 팬들 모두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연장이 터져버릴 정도로 엄청 커다랗게.

“저기··· 실장님? 실장님. 실장님···?”

“민지야. 그만 불러. 지금 실장님 귀에 우리가 하는 말 안 들리셔.”

“공연 끝나고 현지 언니한테 말해줘야겠다. 실장님 완전 팔불출 같았다고.”

***

난 무대 아래에서 그녀를 가만히 지켜봤다.

과연 현지였고, 과연 그녀의 팬들이었다.

평소보다 더욱 힘이 들어간 모습, 그리고 평소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얼굴.

그녀의 감정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이는 까닭에, 가뜩이나 열정 넘치던 팬들은 더욱더 뜨겁게 그녀를 응원했고.

그 응원에 그녀는 더더욱 혼신을 불태웠다.

그 선순환이 아름다워 보이긴 했으나.

매니저로서 걱정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힘들겠는데?’

이제 막 투어를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모든 에너지를 다 퍼붓고 있다는 게 역력하게 보였다.

단독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라 감격에 젖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나, 그래도 체력 조절에 신경을 쓰라고 말해줘야겠다.

그녀의 몸도 몸이지만, 이러다가는 다음 공연을 볼 팬들에게 제대로 된 공연을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팬들을 무척이나 아끼는 그녀이기에,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바로 납득할 수 있겠지.

반면, 내 가슴속에선 걱정 말고 다른 감정 또한 커다랗게 피어올랐다.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그리고 기쁨과 흥분.

저기 앉아 있는 팬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 있었다.

청아하고 맑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목소리.

모든 힘을 다 쏟아붓는 듯한 안무.

그리고 그보다 더욱 마음의 동요를 불러 일으키는 그녀의 표정과 눈빛까지.

앞으로에 대한 걱정을 배제한다면, 이 무대는 더없이 완벽했으며,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비록 힘이 너무 들어가는 바람에 안무가 깔끔하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지경이었다.

‘저걸 보고 누가 그런 걸 신경이나 쓰겠냐고.’

그녀는 지금껏 활동하며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보컬과 댄스, 표현력에 있어서.

그러나, 그 발전 폭보다 더욱더 크게 발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필수 역량인 무대 장악력이었다.

“우와아아아! 현지야!”

“와아아!”

이 때문에 댄서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구성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역시나, 이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댄서들이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던 간에, 그녀가 무대에서 내뿜는 영향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나는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금의 이 무대를 보더라도, 넋을 놓고 빠져들고 말리라.

그녀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이렇게 넋을 놓고 쳐다볼 때가 있었으니까.

내 눈은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그녀의 얼굴에 꽂혀, 한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

“하아. 하아.”

유현지는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덕이다.

콘서트가 막 끝난 지금도 팬들이 보내주는 그 뜨거운 사랑에 취해 있는 것처럼 황홀했고, 가수로서 가장 최고의 이벤트인 단독 콘서트를 마쳤다는 것에 희열이 올라왔다.

‘그런데 너무 힘드네.’

열기에 취해서 체력 조절을 못하고 매 순간순간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으나, 그게 마음처럼 쉽게 조절이 되지 않았다.

중간에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도 실장님이 체력 조절하라고 조언해줘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뿐이었다.

무대에 올라가면 다시 머리가 과열되었으니까.

아무래도 첫 번째 콘서트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을 거다.

가수 치고 첫 콘서트에서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던 가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도 다음엔 더 조절 잘해야겠어.’

다른 날에 찾아올 팬들에게도 좋은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현지야, 수고했어.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지친 몸으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길 얼마.

눈앞에 물통이 들이밀어졌는데, 물통을 쥔 손이 굉장히 익숙했다.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박한울이 옆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빠르게 마치고 바로 온 모양인지, 그의 얼굴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

“옆에 누가 앉는지도 모르는 거 보니까 무리한 거 맞네. 체력 조절하랬잖아.”

그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눈빛엔 자랑스럽다는 감정 또한 얼핏 엿보였다.

“네, 무리했나 봐요. 죄송해요. 그래도 내일까지는 잘할 수 있어요.”

“···서울 투어 끝나면 부산 공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쉬기만 하자.”

“네, 알겠어요.”

현지는 슬쩍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봤다.

자신만 힘든 건 아니었는지, 다른 스탭들 모두 힘든 기색으로 아직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났다고 스탭들이 관객들처럼 할 일이 다 끝나는 건 아니니까.

현지는 그가 건네준 물로 목을 축이고는, 슬쩍 가까이 몸을 붙였다.

“여기요.”

그리곤 물을 건네며 한울의 팔에 자연스럽게 몸을 기대었다.

이에, 그는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많이 힘들지? 편하게 누울래? 아니면 지금 바로 나갈까?”

“아니에요. 잠깐 이러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조금만요.”

“···그래. 그리고 오늘 너무 멋있었어. 정말 수고했다.”

이 말을 할 때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에 자리한 따스함만이 고스란히 느껴질 뿐이었다.

그와 눈을 마주한 현지의 눈매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고마워요. 그럼 잠깐 머리도 기대도 될까요?”

“차라리 베개 갖다줄까? 아니, 아니다. 그냥 마사지도 지금 바로 받고, 링겔도 맞으러 가자.”

“아니에요. 그럼 다들 저 아프다고 걱정하실까 봐서요.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어깨에 폭, 기댔는데.

스탭들은 힐끗 쳐다보며 이해한다는 시선을 보냈다.

스탭들도 자신이 공연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할까 봐요.”

“안 돼.”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수고 많았다는 듯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은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단호한 목소리와는 정반대였다.

지이잉-

그때, 손에 쥔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며 톡이 도착했음을 알렸지만.

확인한 건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언니! 스케줄 있어서 끝까지 못 있어준 거 미안ㅠ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실장님 완전 팔불출 같았다?ㅋㅋㅋㅋㅋ 언니 노래 부르는 거 보느라 우리 말이 귀에 안 들리시는 것 같더라고ㅋㅋㅋ 우린 아예 보이지도 않는 듯ㅠㅠㅠ]

***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첫째 날의 콘서트가 끝난 직후.

콘서트 현황을 중계해주듯 조금씩 업로드됐던 글이 폭발적으로 올라왔다.

-하얗게 불태웠다···. 진짜 오늘은 미쳤어. 이게 첫 콘의 맛이지. 현지 엄청 행복해서 온몸을 불사지르면서 하는데 내가 다 미안하면서도 고맙더라. 근데 ㄹㅇ행복수치 Max!!!

-진짜 현지는 전설이다. 쉬어갈 틈이 단 1초도 없었다는 게 믿겨짐? VCR 볼 때도 진짜 와 정말··· 그냥 레전드임.

└이거 리얼임ㅋㅋㅋ “저, 저는 귀여워서 아이돌이··· 딱 어울려요.” 라고 하면서 엄청 어색하게 애교 하는데ㅋㅋㅋㅋㅋ 예상도 못했을 때 갑자기 강력하게 어택 들어와서 거기서 소리 지르느라 목 나갔음ㅋㅋ

그녀가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냈다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런지 걱정스럽다는 댓글들도 간혹 있었지만.

기쁜 날에 초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댓글들은 모두 소리소문 없이 묻히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혹여나 전날에 너무 힘을 쏟은 나머지, 오늘 공연에서 너무 힘들어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걱정을 안은 채 공연을 보러 갔던 팬들은.

-와···. 와···. 말이 안 나온다. 물론 진짜로 말이 안 나오기도 함. 너무 소리 질러서 목소리를 잃었음.

-나 지방에서 와서 호텔도 잡고 KTX비도 들고 이래저래 드는 비용 많았는데 진짜 1%도 안 아까움. ㄹㅇ장난 아니다ㅋㅋㅋㅋ

-이게 왜 신인···? 이게 왜 첫 콘···? 진짜 내 눈이랑 귀를 의심했닼ㅋㅋㅋㅋ 누가 봐도 레전드 베테랑 아니었음?ㅋㅋㅋㅋ

-콘서트 와서 보니까 진짜 라이브 말도 안 될 정도네. 대체 우리 현지 능력이 어디까지임?

-그냥 무대 자체가 지림; 솔직히 안무 없이 했어도 미친듯이 놀 수 있었을 듯.

충격스러울 정도로 만족스러웠다는 반응을 보이며.

유현지의 투어는 ‘산뜻한 출발’을 아득히 넘은, 대흥행의 출발을 알렸다.

< 다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할까 봐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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