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40화 (140/170)

< 현지의 단독 콘서트 D-Day >

최락현의 연기를 보고 난 뒤의 대화를 통해.

그가 이 시나리오를 쓴 최창수 감독의 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출연이 어그러져서 무작정 찾아온 거다?”

“예.”

이제 양녕대군 역할을 A급 배우들도 하려고 할 텐데,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줄을 세워놓고 오디션을 볼 수 없다.

국내 최고의 제작사 ‘시크 라이트’도 그렇게 안 하는데, B급도 간당간당한 제작사가 그렇게 하겠는가.

감독이 거장급이라면 혹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고.

최락현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운이 좋아서 제작사에 가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해도, 그쪽 입장에선 절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게 맞다. 흥행에 도움이 되는 A급 배우도 캐스팅할 수 있을 텐데 인지도가 없는 최락현을 캐스팅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만약 그의 연기가 마음에 든다고 해도 제작사의 입장에선 불확실보다는 확실히 증명된 보증수표가 훨씬 나은 선택지겠지.

“근데 우리 한울 형님 추천만 있으면 다 프리 패스니까 여기로 찾아온 거죠.”

“···형님이 아니고 실장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하하! 네, 박한울 실장님. 제가 또 너무 앞서갔죠? 하하!”

넉살이 좋고, 능글맞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잘못 알고 계신 게 하나 있는데 제가 추천한다고 해도 안 될 수도 있어요. 그쪽에서 저한테 캐스팅을 맡긴 건 아니라서요.”

“당연히 그렇겠죠.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했다.

매스컴이건 업계에서건, 이미 내 안목은 인정받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최팀장님도 처음에 추천할 만한 배우가 있냐고 물어본 거였지 않나.

내가 추천한다고만 하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혹할 만할 테니까.

“일단 들어가보세요. 제작사에서 연락 갈 수도 있으니··· 아, 그건 형님한테 먼저 들으실 수도 있겠네요.”

난 피식 웃으며 그를 보내고, 바로 제작사에 연락을 넣었다.

-네, 실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처음부터 다짜고짜 추천한다고 할 수 없어서 적당히 포문을 열었지만, 역시 이 바닥 사람들이 참 눈치가 빠르다.

-···캐스팅이 조금 어렵네요.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배우가 있을까요? 저희가 꼭 참고하고 싶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편안히 말씀만 해주세요.

목소리에서 꼭 성공하고 싶다는 의지가 철철 넘쳐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앙녕대군 역할에 어울리는 분을 알고 있긴 합니다. 최락현이라고, 최창수 감독님 동생 분이에요.”

-···네?

어쩐지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재미난 기분이 들었다.

***

박송이의 요즘 하루 일과는 굉장히 단순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균형 있는 식단으로 식사한 다음, 샤워하기.

그리고 그 뒤로는 온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있는다.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를 다 뒤져보며 댓글들을 다 읽고는, 유튜브로 발길을 돌린다.

[우리들의 세상에 빛은 없다 해외반응.]

박송이가 요즘 가장 즐겨보는 것은 바로 해외반응이었다.

-압도적인 연기. 1회 처음부터 마지막회의 마지막까지 몰입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저 배우들은 정말 최고!

-위험하다. 너무 재밌어서 5번째 보는 중wwww 일본엔 왜 이런 배우들이 없지? 분하고 질투 난다ww

-박송이는 정말 대단한 배우!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아름다워~

보통 이렇게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며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엄청 잘나가는 작품에, 연기에 대한 칭찬까지 자자하니, 안 볼 이유 또한 없었다.

‘연예인이란 대중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이니까.’

이런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일 때 잔뜩 영향을 받고 더욱 힘을 내야 하지 않겠나.

“좋네···. 이 맛에 연기하는 거지.”

뿌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해주니까 입가에 미소가 마르지 않는다.

선플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간혹 보이는 악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신경에 거슬리지조차 않았다.

“시즌2 대본은 언제 나오는 거야. 빨리 촬영하고 싶은데.”

힘이 펄펄 나니 어서 빨리 대중들과 팬들에게 시즌2를 촬영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송이야! 시즌2 대본 나왔다!

“오빠, 지금 빨리 와!”

벌써 대본이 뽑혔다고 매니저에게 연락이 왔다.

다른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박송이는 전화를 끊고는,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에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좌우로 씰룩거렸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흥이 올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내 인생은 지금부터가 황금기~”

흥이 오르니 콧노래로는 도통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없는 멜로디와 없는 가사를 즉석에서 만들어내며, 살랑살랑 흔들던 몸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덩실덩실. 둠칫두둠칫.

***

마침내 대본이 나왔다. 시즌2의 1회부터 4회까지.

난 채희에게 이를 알려주기 전에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아, 우선 약속부터 잡고.

“채희야.”

-왜요? 이제 올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게 왜 맨날 바쁜 척··· 아니, 아니에요. 아무튼 이따가 오는 거죠? 마음 바뀌어서 전화한 거죠?

“응. 이따 가려고. 선물도 들고 갈게.”

-···아니, 뭘 또 그렇게···. 크흠.

채희는 갑자기 목소리에 비음을 섞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천천히 와영.

난 전화를 재빨리 끊어버리고 대본을 펼쳤다.

일정한 속도로 1회부터 4회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내 집중력이 너무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읽어도 아마 나처럼 끊지 않고 쭉 읽었을 테니까.

‘···탄력 받으셨나 보네.’

시즌제라는 것이 그리 좋은 선택지인 것만은 아니다. 시즌제를 노리는 드라마는 우선 완결성이 없이 무조건 열린 결말로 시즌1을 마치니까.

흥행이 되면 시즌2가 나오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끝.

또 막상 흥행에 성공해서 시즌2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갈수록 지루해지기 마련이며, 내용이 반복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시즌제가 흥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력, 그리고 훌륭한 대본.

지금 우리 같은 경우에, 갖춰지지 못했던 건 시즌2의 대본뿐, 나머지는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지금 마침표가 찍혔다.

“대박 나겠네.”

난 씨익 웃으며 대본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조수연 작가님이 시즌제 드라마는 또 처음이라서 불안의 요소가 없지 않아 있긴 했는데.

외부에서의 반응이 아주 좋아서 그런지, 방향에 대한 확신을 얻은 모양이다.

‘텐션이 더 올라왔어.’

난 기대와 걱정을 한아름 끌어안고 있던 최팀장님께 내 감상평을 전하고는, 곧장 채희의 집으로 향했다.

***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채희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미소로 날 반겼다.

헤어 집게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선물해준 목걸이가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오셨어요?”

그녀는 빠르게 나를 스캔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게 있는지, 내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을지.

겉으로 보이는 게 없자, 시선은 내 가방으로 향했다.

선물을 준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짐짓 모른 척 태연하게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목이 좀 마르네.”

“찬물 드릴까요? 아님 음료수? 커피?”

“냉커피가 마시고 싶긴 한데. 얼음 동동 띄운 거.”

“아, 잠시만요!”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잠시 후, 커피를 들고 온 그녀가 테이블 위에 놓인 대본을 발견했다.

“어? 이게 뭐예요?”

“시즌2 대본 나왔어. 4회까지.”

입꼬리가 쑥 내려간 그녀가 대본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컵을 들고는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겼다.

“···설마 이게···?”

“선물이지.”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눈썹을 추켜올린 그녀가 커피를 내 손에서 뺏어갔다.

그런데, 이미 반이나 마신 뒤였다. 이럴 줄 알고 시원한 커피가 먹고 싶다고 한 거다.

뜨거운 거였으면 반도 못 마셨을 테니까.

“이게 뭐가 선물이에요!”

“선물 맞지. 안 기뻐?”

“아니 기쁘긴 한데! 작가님이 쓴 걸 왜 오빠가 생색내냐고요! 난 또 뭐 준비했을 줄 알고 얼마나 기대했었는데!”

잠시 씩씩거린 그녀가 소파에 앉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팔짱을 끼고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긴 한데, 대본이 보고 싶긴 한 모양인지 시선이 그쪽을 흘끗거렸다.

“여기 오기 전에 다 읽어봤는데 되게 잘 뽑혔더라.”

“···뭐··· 그럼, 줘봐요.”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해서 입술을 꾹 깨물고는, 1회의 대본을 들어 그녀의 손에 얹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첫눈에 그 빛나는 재능을 알아본 배우답게.

그녀는 금세 대본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냥 집중해서 읽었던 나와는 다르게, 자기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

바로 옆에서 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배우의 얼굴.’

빨리 대본 분석을 마쳐야겠다.

그래야 같이 연습하면서 이 얼굴을 더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1회를 다 읽고, 바로 손을 뻗어 2회의 대본을 집었다.

내게 달라고 말도 하지 않고.

이미 그녀의 얼굴에서는 삐졌다거나 화난 감정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4회까지 쭉쭉 읽은 그녀는, 마침내 얼굴에 한 줄기 미소를 띠웠다.

“재밌네요 진짜?”

“그치? 이번에 더 대박 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어떤 거? 분석?”

“네. 빨리 해줘요. 꼼꼼하게. 아까 저 속인 벌이에요.”

어차피 할 생각이었는데 ‘벌’이라 말한다.

난 어깨를 으쓱이고는 1회의 대본을 펼쳐 무릎 위에 올렸고.

그녀는 좀 더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무릎 위에 올린 대본을 바라봤다.

“아! 맞다. 채희야.”

“네? 왜요?”

코앞에서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대본 읽었으니까 알겠지만, 너 이제 다시 액션스쿨 다녀야 된다?”

“···!”

“식단 관리도 다시 해야 되고.”

“···!”

입을 떡 벌린 그녀의 눈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그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며 떠듬떠듬 입을 뗐다.

“딱··· 오늘까지만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이러는 건 저한테 아주··· 아주 무리예요!”

난 그 애잔한 표정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고 폭식하지는 말고. 이따가 같이 먹으면서 볼 거야.”

“···짜증나, 진짜.”

***

드디어 오늘이 왔다.

현지의 단독 콘서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이틀 동안 공연을 하는 그 첫 번째 날.

설렘도 설렘이지만, 오늘은 내게도 무척 긴장되는 날이었다.

담당 연예인이 콘서트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리허설이나 무대 장비, 보안, 안전, 조명, MR, 메이크업, 댄서, 음식, 위급시 대처 등 많은 것들을 점검해봐야 했다.

각 스탭들이 맡는 일이긴 하나, 그래도 매니저로서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다양한 스탭들과 일하게 될 테니, 공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둬야지.

나중에 하나씩 알아보는 것보다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두는 편이 백 번 나았다.

공연장에서는 실수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니 더더욱.

난 최팀장님의 옆에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배웠고, 그가 설명해주는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한 끝에야, 나는 대기실 의자에 편안히 앉을 수 있었다.

뭐, 이렇게 쉬는 것도 잠시뿐이겠지만.

“실장님, 괜찮아요?”

오늘의 주인공인 현지가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자기가 제일 많이 떨릴 텐데도 불구하고.

‘아니···. 현지라면 안 떨 수도 있겠네.’

역시나, 얼굴을 요목조목 뜯어보니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이, 그저 나에 대한 걱정만이 묻어나왔다.

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괜찮지, 그럼.”

오늘은 기뻐하기만 해도 모자란 날이었으니, 걱정을 사게 할 수는 없지.

난 그녀의 주의도 돌릴 겸, 문득 떠오른 기억을 말하기로 했다.

“처음에 우연히 네 허밍소리 들었을 때, 내가 무슨 생각 들었는지 알아?”

“네?”

“콘서트장에서 네가 노래 부르고, 팬들한테 환호받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오르더라고.”

스탭들로 시끌벅적한 대기실.

그녀는 입을 다물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난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때 떠오른 장소가 지금 같은 커다란 공연장이었어. 네 노래는 엄청 좋았고, 팬들 표정도 엄청 밝았어. 분위기도 되게 좋았고.”

“그래요?”

“응. 그런데 그게 드디어 오늘 이뤄지네? 아직 시작이 안 돼서 그런지 실감이 잘 안 나긴 하는데, 그래도 그때 상상했던 것보다 오늘이 훨씬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는 그저 방긋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듯한 저 순박한 미소도 전보다 더 예뻐졌지.

난 그 미소에 조금은 쌓였던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심코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더 귀여워지기도 했고.”

그녀는 할 말을 고르듯, 잠시 입술을 오물거렸다.

그러나 한동안 머뭇거리던 입술은 결국 대답을 하는 대신, 그저 예쁜 미소만을 그려냈다.

내가 저 미소를 예뻐하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다.

< 현지의 단독 콘서트 D-Day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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