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12화 (112/170)

< 잘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 >

'스타 아이돌' 오디션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세트장으로 참가자가 한 명씩 나와 무대를 펼치고, 정면에 나란히 앉은 심사위원들이 각자 X버튼과 O버튼을 누르는.

원래는 2개의 O를 받아야만 합격할 수 있는데, 예능이기 때문에 당연히 슈퍼패스라는 장치도 있었다.

무대의 정면 심사위원석에는 맨 왼쪽에 나, 그리고 중앙에 김대훈 대표님, 오른쪽에 신호석 대표님이 나란히 앉았고.

신호석 대표님은 서글서글한 낯으로 내게 조언을 건넸다.

“박실장님, 방송이라고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냥 느껴지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돼요. 재미는 제작진들이 만들어내는 거니까.”

“네, 감사합니다.”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도 있었다.

아직 그에 대해 보지 못한 면이 훨씬 더 많지만 지금까지 본 걸로만 판단하면 사람이 꽤 괜찮게 느껴진단 말이지?

인재 욕심이 넘친다는 것도 내가 봤을 때는 미덕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겠지.

“시작하겠습니다!”

막내 피디의 말에 촬영이 시작됐고.

나는 익숙하지만 색다른 경험에 약간의 기대를 품었다.

그래도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괜찮은 사람들이 간혹 나오지 않을까?, 하며.

“안녕하세요! 전주에 사는 22살 김재호입니다!”

그러나, 내 기대는 차례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사그라들다 못해 이내 완전히 훅 꺼져버리고 말았다.

‘볼 만한 사람들이 없네.’

그렇게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는지, 옆쪽에서도 비슷한 말이 들려왔다.

“하아. 힘드네요.”

“으음. 이제 슬슬 합격자가 나와줘야 하는데.”

20명을 봤는데 합격자는 0명.

심각한 수치였다.

그리고 21명째.

드디어 심사위원석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거품처럼 사라질까-“

노래를 열창하는 17살 고등학생.

그녀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옆쪽에서는 나지막한 감탄이 이어졌다.

“오.”

“아, 괜찮다. 좋다.”

노래가 끝난 뒤 댄스가 시작됐을 때.

김대훈 대표님은 흐뭇한 얼굴로 리듬까지 타면서 즐겼고, 신호석 대표님은 눈빛을 빛내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냐?’

아니면 설마 정말로 재능이 있다고 보는 건가?

나는 그들의 리액션에 전혀 동조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댄스까지 모두 끝났을 때.

심사위원석에는 두 개의 O와 한 개의 X가 띠워져 있었고, 그 X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나였다.

일단은 합격이지만 분위기는 묘했다.

김대훈 대표가 내 표정을 살피고 있던 와중, 신호석 대표는 마이크를 들고 먼저 심사평을 시작했다.

“저는 좋았습니다. 노래에도 손색이 없었고, 댄스도 좋았어요. 기술적으로 아직 부족한 면이 보이기는 하는데 본격적으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면 많이 달라질 겁니다. 밝은 기운을 뿜어내서 저까지 기분 좋아지는 무대였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엔 가능성이 많아 보여요. 표정을 보니까 끼도 넘치는 것 같네요. 합격 축하드립니다.”

신호석 대표에 이어 김대훈 대표가 짧게 말했고.

모든 시선은 남은 차례인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박실장님, 방송이라고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그냥 느껴지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돼요. 재미는 제작진들이 만들어내는 거니까.’

녹화 시작 직전, 신호석 대표가 내게 건네줬던 조언에 대해 떠올렸다.

그래서 정말 느껴지는 대로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연습생 생활을 안 했다는 걸 감안해도 전 재능이 없다고 생각돼요. 보컬이랑 댄스 모든 부분에서 특색과 매력이 보이질 않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합격 축하드려요.”

내가 탈락을 줬지만 다른 둘이 O를 눌렀기 때문에 일단은 합격.

그럼에도 참가자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고.

반대로 피디와 작가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방송에 쓰일 장면이 나와서 기쁜 모양이지.

하여간.

‘이거 내가 악당이 되는 건가?’

계속 이런 식으로 갔으면 정말 악당이 될 수도 있었겠으나.

이러한 무대와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경우도 나왔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오는 이의 얼굴을 보고는 표정을 관리하느라 애썼다.

‘드디어 왔네.’

내가 방송국에서 탈락자 영상들을 뒤져보다가, 제작진들에게 합격시켜도 된다고 말했던 남성 참가자.

YU엔터에 있는 남자 연습생들과 어울릴 만한 마지막 조각.

김대훈 대표님께 추천할 만한 인재.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거 완전 들러리 된 느낌이군.’

김대훈 대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다.

참가자들뿐만이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그리고 신호석 대표와··· 심지어는 자신까지.

모두 박한울 실장의 말에 가장 무게를 두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참가자의 칭찬을 건네며 물어도.

“아, 예···. 뭐···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심드렁한 대답이 들려오면 자신의 판단마저 흔들리곤 했다.

그의 안목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으며,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이미 인정했으니까.

‘···확실한 안목이지.’

스노우뿐 아니라 회사 내 다른 아티스트들까지 모두 박실장이 전해준 조언을 적용했고, 모두가 다 성과를 얻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월말평가를 본 연습생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자신의 회사 내에서 나타나니 어찌 의심할 수가 있겠나.

‘쯧.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스카우트하고 싶은데.’

하필 박호진 대표의 아들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다음 참가자 들어와주세요.”

김대훈 대표는 상념을 털어내곤 다시 오디션에 집중했다.

아무리 말에 무게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곤 하나, 결정권만큼은 그와 똑같은 심사위원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안양에서 온 20살 최준성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바로 집중할 필요는 없었나 보다.

"핫! 스읍! 뜨꺼어우운! 바람에 휘나아알려어! 느아안.. 멀리 날아카!네요호!"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되어 심취한 모습.

“카아아지마으아아으아!”

핫한 래퍼의 제스쳐와 치명적인 표정.

세계적인 락스타가 된 것처럼 진짜로 목을 긁어서 소리를 내는 최악의 그로울링 창법.

그 외, 발음을 뭉개고 변형시키고, 호흡을 끊고 늘이고, 아주 해선 안 될 모든 것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이건 락스타를 따라한 건지, 아니면 래퍼를 따라한 건지,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다.

그냥 이것저것 뒤섞여 혼돈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면교사의 바이블.

간혹 그런 참가자들이 있다.

제작진들이 웃으라고 합격시켜준 사람들.

“하.”

'방송국 놈들 참 고약하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집중이 탁, 풀렸다.

의자에 몸을 완전히 기대며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른 의미로 엄청나네. 겉멋도 너무 심하고 안 좋은 습관이란 습관은 다 갖고 있어.’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슬쩍 양옆을 살폈는데, 신호석 대표는 물론 박한울 실장 또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 박한울 실장이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의 미소가 갑자기 굉장히 진해졌다.

마치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듯 개구쟁이 같은 미소.

‘···?’

곧 그의 시선이 다시 앞으로 향해서, 김대표 역시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도 남은 무대를 가만히 지켜봤다.

노래가 끝나고 이제 댄스를 볼 차례.

혹시나 했으나, 보컬에 이어 댄스 역시 참가자는 수준 미달이었다.

무대가 모두 끝나고, 최준성 참가자는 긴장된 낯빛으로 눈치를 살폈다.

자신도 어떤 평가를 받을지 분위기로 느껴졌는지, 표정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하아. 하아. 감사합니다!”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숙이는 최준성 참가자.

자기 딴에는 이 오디션에 상당히 진지하게 임했던 모양인데, 참 안타깝게 됐다.

꿈꾸는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면 이런 오디션이나 경쟁은 애초에 필요가 없었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봤습니다.”

이번엔 박한울 실장이 먼저 심사를 하려나 보다.

그가 웃는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먼저 말해주면 편하지.’

그가 단점을 요목조목 집어주면 거기에 몇 개를 추가적으로 언급하거나 동의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어서 나온 그의 말은 모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크게.

“지금까지 봤던 참가자들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난 분이신 것 같습니다.”

“···!”

“···!”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봤다.

다시 살펴보니 그의 앞에는 X가 아닌 O가 눌려져 있었다.

김대표는 저도 모르게 물음이 튀어나왔다.

“···정말··· 그렇게 보셨습니까?”

박한울 실장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어왔다.

“대표님은 어떻게 보셨는데요?”

원래 심사평은 차례차례 이어가는 거지만, 이렇게 자신이 먼저 끼어든 이상 정해진 순서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제 눈엔··· 겉멋이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습관이란 습관은 다 갖고 있었고, 번뜩이는 재능도 전혀 안 보였어요. 기본기도 마찬가지로 부족해 보였고요. 그러니까 장점이···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신호석 대표도 동의하며 거들었다.

“저도 비슷하게 봤는데, 박한울 실장님은 다른가요?”

박한울에게 집중된 시선.

박한울을 향하는 최준성 참가자의 눈빛은 거의 구조대를 바라보듯 간절한 눈빛이었다.

“하하. 저도 비슷했어요. 장점이 안 보이는 것도 당연하죠. 겉멋이랑 습관이 죄다 가리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만 빼내면 재능이 확실한 분입니다.”

박한울은 평가를 하다 말고 그에게 말을 건넸다.

“최준성 참가자.”

“네!”

“제가 슈퍼패스 드릴 테니까, 당분간··· 아니 앞으로 성공할 때까지 힙합은 멀리하세요. 카리스마 있거나 멋있는 무대도 절대 보지 마시고요. 화보가 됐든 사진이 됐든 영상이 됐든. 지금 입고 있는 가죽자켓도 옷장 구석에 넣으시고, 스타일도 전부 바꾸세요. 아, 혹시 방에 포스터가 붙어 있나요?”

“···아이언 메이든 형님들··· 포스터가 붙어있긴-“

“뜯어버리세요. 아셨죠. 메탈도 금지예요. 그냥 당분간 발라드나 알앤비, 아니면 부드러운 락이나 태교에 좋은 음악만 들으세요.”

충격적이었다.

박한울의 말이 모두 진심인 것 같아서.

'...재능이 정말 있다고?'

그렇게 충격적인 심사평이 끝나고.

김대훈은 얼떨떨한 얼굴로 무대 위를 바라바고 있었는데.

옆에서 박한울이 종이를 슬쩍 내밀어 보여줬다.

거기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표님께 남자 연습생 추천해주기로 했던 약속. 이걸로 분명히 지킨 겁니다.]

“···!”

김대훈 대표의 눈동자가 미친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의심이 들었다.

‘···혹시 우리 회사를 끌어내리려고···?’

***

'심장 터질 것 같아!'

송하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가빠지고 안색이 파리해졌다.

손은 덜덜 떨리고 온몸이 경직돼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였다.

대기실에 설치된 모니터.

여기에 카메라도 있어, 대기하는 참가자들의 반응을 찍고 있었는데.

송하니는 당장 카메라에 한 컷이라도 더 나오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떨림을 멈추기 위해 온갖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만 했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안 떨고 잘하지?'

자신처럼 엄청 긴장한 사람들도 있긴 했으나, 누가 봐도 즐기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모두가 탈락했지만, 송하니는 그런 그들의 강심장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그런데 그때, 이런 송하니를 더욱 긴장하게 만드는 장면이 모니터를 통해 비춰졌다.

-연습생 생활을 안 했다는 걸 감안해도 전 재능이 없다고 생각돼요. 보컬이랑 댄스 모든 부분에서 특색과 매력이 보이질 않네요. 수고하셨습니다. 합격 축하드려요.

"헐!"

"말도 안 돼. 잘했잖아!"

"진짜...? 저렇게 잘했는데?"

드디어 나온 첫 번째 합격자.

누가 봐도 잘했고, 다른 두 심사위원들조차 웃는 얼굴로 칭찬을 해주며 합격시켜줬는데.

참가자들에게 있어 가장 존재감이 큰 박한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버렸다.

그 참가자는 처음으로 합격한 사람답지 않게 표정이 굉장히 어두워져 있었다.

"...."

가뜩이나 떨고 있던 송하니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대사건.

그리고 그 뒤로도, 박한울의 심사는 다른 심사위원들과 다른 면이 있었다.

-박실장님, 되게 개성 있고 괜찮지 않았어요?

-아, 예···. 뭐···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박한울의 평가를 가장 최우선 순위로 생각했던 건 본인만이 아니었던 듯.

다른 참가자들 역시 자신감을 잃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한 건 그때였다.

"하하하!"

"와. 화이팅! 멋지다!"

"하하. 자신감 넘친다, 진짜. 합격했으면 좋겠다."

조롱 섞인 참가자들의 응원.

마치 '쟤보다는 내가 훨씬 잘하지.'라고 하듯, 깔보는 시선들이었다.

대기실에서 가장 큰 박수가 나온 것도 그때였다.

우월감, 그리고 동정에 의한 박수.

우월감을 통해 불안을 걷어내고 안도를 얻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봤던 참가자들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어?"

"진...짜?"

"하!"

"와아.... 이건...."

송하니 또한 머릿속에 물음표를 띠운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감히 비웃을 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그 참가자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건 결코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박한울 실장이 슈퍼패스까지 사용하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의아해졌고.

결국 머릿속이 뒤죽박죽 꼬이게 되었다.

"송하니 씨, 준비하세요."

"...네? 아, 네!"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동시에 확확 몇 개나 떠오르고 있을 때 다가온 순서.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 송하니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이라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

"어쩌면... 잘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

아무렇게나 해도 박한울 실장이라면 왠지 다 꿰뚫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왠지 술에 취한 아저씨들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해도 '힘을 빼고 차분하게 부르시면 확실히 좋은 음색이 들릴 것 같네요. 합격입니다.' 따위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긴장을 해도, 안 해도, 결과에는 하등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그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평온함과 안정이 깃들게 만들었다.

< 잘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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