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111화 (111/170)

< <스타 아이돌> 첫 촬영 >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호 삼촌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

그러니, 그가 찍은 영화의 관객 수가 1000만을 돌파한 것이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지.

-한울아! 천만 됐다! 하하하!

그러나 지금 나와 통화하고 있는 삼촌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분명 흥행은 신경 쓰지 않으며,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역시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 있는 모양인지, 곧 핸드폰으로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박한울 실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 한 번 뵙고 싶어요!

-언제 한 번은 무슨! 지금 혹시 되시면 나오실 수 있습니까?

-박한울 실장님!

목소리의 주인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모두들 굉장히 기뻐하고 있다는 것만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하.”

-에이! 쫌 조용히 좀···! 한울아, 암튼 고맙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을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귀로만 들었을 뿐인데 마치 그 광경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나는 픽 웃으며 옆을 바라봤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한가득이다.

어머니는 기분 좋게 웃으시며 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까먹지는 않네. 천만 그거 다 우리 아들이 만든 거지.”

“에이. 엄마, 난 그냥 대본만 추천해준 거야. 아무것도 안 했어. 오히려 나도 좀 부담스럽다니까?”

어머니는 나를 꾸짖는 것처럼 눈에 힘을 주시고는 말하셨다.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지 마. 사람들이 고마워할 만하니까 너한테 그렇게 통화하는 거지. 그리고 겸손도 적당히 해야 하는 거야. 안 그럼 사람들이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아.”

행여나 내 활약이 어디 가서 축소되기라도 할까 봐,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정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대본을 추천해준 게 끝.

물론 망작에 들어갈 뻔한 걸 말리고, 삼촌에게 어울리면서 흥행도 될 만한 대본을 골라드린 건 맞다.

그로 인해 캐스팅과 투자, 홍보 등 모든 측면에서 나비효과가 있기도 했고.

“그래도-“

내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려고 하자.

불똥이 자신에게 튈 거란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아버지가 "크흠!" 헛기침으로 내 말을 막아내며 말을 돌렸다.

“한울아, 오디션 준비는 다 했지?”

내일 첫 촬영인 오디션.

내가 참가자로 지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준비할 게 딱히 없다는 걸 모르시는 것도 아닐 텐데.

정말 말을 돌리기 위함인가 보다.

그런데 천만이면 아버지도 기뻐해야 하지 않나?

사실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저 자리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버지는 저 회식 자리 안 가세요?”

“···난 술 끊었어.”

뻔한 거짓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하긴 성호 삼촌이 영화 끝난 뒤로 허구헌 날 술을 드시긴 하셨지.

13년 전처럼.

아버지가 이렇게 어머니의 눈치를 보시는데, 만약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회사에 들어가셨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것도 나름 재밌었을 것 같다.

이렇게 가족들과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있던 그때.

-다들 HJ엔터의 박한울 실장님이라고 아시죠?

내 얘기가 TV 예능에 흘러나왔다.

우리 가족은 홱!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거기엔 2000년대를 호령했던 슈퍼스타, 스노우가 입을 열고 있었다.

-사실 저도 그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이번 앨범을 더 만족스럽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네? 아니, 그분이랑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건데요!?

호들갑스럽게 묻는 MC.

스노우는 천천히 썰을 풀었다.

김대훈 대표님의 입으로 내가 건넨 조언을 듣고 나선 나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내가 YU엔터의 월말평가를 봐줄 때 일부러 찾아가서 만난 것, 월말평가가 끝나고 또 봐준 것까지.

김준민 프로듀서로부터 현지의 곡을 받는 것에 대한 조건이었다는 것과,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조언을 건넸다는 것만 빼고 모두 다 말하고 있었다.

벌써 15분이나 됐나?

말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스노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화제가 될 걸 제작진들이 직감해서 그런 건지.

무려 15분 동안 나를 주제로 한 얘기가 주구장창 튀어나왔다.

분명히 김대훈 대표님과 사전에 상의가 된 것일 텐데.

왜 나와는 상의하지 않으셨을까.

나름 감사의 표시로 하는 서프라이즈였겠지만.

덕분에 내 말의 무게가 더 무거워지게 생겼다.

당장 내일이 오디션이니까.

“···.”

아마 지금쯤, 오디션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의 가족들이나 주변 분들이 다 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 다 필요 없고, 박한울의 말만 잘 들으라고.

저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고.

***

“하니야, 저 사람 말만 들어! 저 사람한테만 잘 보이면 돼. 알겠지.”

송하니.

그녀는 기획사를 나온 여느 연습생들과 비슷한 이유로 회사를 나오게 됐다.

데뷔조에 들지 못한 것이다.

유현지 또한 그렇게 YU엔터를 나오지 않았나.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나, 그녀는 아직 아이돌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려고 할 때, 마침 ‘스타 아이돌’에 대한 소식을 접해서 잠시 미뤄뒀을 뿐.

“하여간 송하연 걔는 진짜 정이 없어. 어떻게 사촌동생이 이렇게 고생하는데 박실장 한 번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 한 번을 안 들어줘.”

송하니의 어머니는 눈썹을 와락 찌푸리며 말했다.

송하연은 예전부터 그랬다.

비즈니스는 칼 같이.

언제나 돌아오는 말은 정식으로 오디션을 보라는 말뿐이었다.

송하니는 어머니가 그럴 때마다 언니에게 미안해 죽을 것만 같았다.

애초에 아이돌이 되려 한 것도 언니를 동경하는 마음 때문이었고.

여전히 송하연을 동경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엄마, 나도 내 힘으로 할게. 가만히 있는 언니한테 그러지 좀 마.”

“그 뒤로 안 했어, 지지배야. 매몰차게 거절하는데 거기다 대고 어떻게 또 하니?”

“···이미 여러 번 했으면서.”

“다 널 위해서 한 거야. 데뷔조 떨어진 뒤로 방구석에서 맨날 질질 짜기만 하는데 그럼 내가 한 번이라도 더 말해봐야지. 그리고 내가 언제 회사에 꽂아달랬니? 그냥 박실장 한 번 만나게 해달라는 거였지. 혹시 알아? 네 재능 알아봐줄지. 내가 봤을 때, TV에 나오는 애들보다 네가 훨씬 더 노래 잘하더라.”

노래 잘한다는 소리는 전에 있던 회사에서도 들은 말이었다.

그러나, 데뷔조에서 떨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댄스는?”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됐지. 하연이 걔도 춤은 못 추더라. 유전자가 어디 가니? 그러게 그냥 하연이처럼 일반적인 가수를 하지, 왜 아이돌을 한다고 해서 쓸데없는 고생을 해.”

어머니의 말처럼, 일반적인 가수가 되고자 했으면 또 어땠을 지 모르겠으나.

그건 어쩌면 아이돌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길이 됐을지도 모른다.

‘언니가 진짜 대단한 거지.’

송하니는 사촌언니와 달리 작곡 능력도 없었다.

“근데 보통 저런 스타가 친척이면 데뷔시켜주지 않나? 조금이라도 더 화제성 얻으려고 할 텐데. 네가 얼굴이 부족해, 노래가 부족해? 몸매랑 댄스가 좀 그래서 그렇지.”

“아, 엄마! 몸매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사촌언니가 송하연.

이는 정말 화제 하나하나가 절실한 신인 그룹에겐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기획사가 중소 기획사였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던 회사는, 신호석이 대표로 있는 홈 엔터테인먼트.

YU엔터 다음으로 거대한 회사인 ‘홈 엔터테인먼트’로서는 굳이 그런 화제에 목 매달 필요가 없었다.

“너 오디션 나가서 저 신호석 대표 말은 절대 귀담아듣지 마. 알겠지? 너도 유현지랑 심민정처럼 전에 있던 회사 코를 콱 분질러버려.”

“납작하게 하는 거겠지. 코를 분지르긴 왜 분질러. 내가 깡패야?”

“그 말이 그 말이지!”

송하니는 어머니와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언니한테 조언 좀 구해볼까···.’

잠시 망설였으나.

송하니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송하연은 이런 오디션에 나간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언니에게 도움받지 않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고 싶었으니까.

“파이팅.”

그녀는 결연하게 주먹을 꽉 쥐고는 자기자신에게 응원을 보냈다.

***

촬영 당일.

회사 직원들과 아티스트들의 성화에, 샵에 다녀오고 정장까지 갖춰 입었다.

넥타이에는 현지가 준 넥타이 핀이 부적처럼 꽂혀 있다.

‘···젠장.’

YU엔터에게 현지의 곡을 받은 것은 지금도 전혀 후회되지 않았으나, 예상보다 훨씬 더 시선이 집중돼 있어서 한숨이 나왔다.

영화 ‘구원자’의 천만 관객 돌파에 이어, 예능에서 스노우가 나에 대한 썰을 푼 게 바로 어젯밤.

당연하게도, 화제는 어제에 그치지 않고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작가와 피디들은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보는 포식자처럼 나를 보고 있었는데.

벌써부터 입이 근질근질한 듯 입꼬리를 씰룩거리고 있었다.

“와. 되게 멋있으시네요? 화면에 잘 나오겠어요.”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건네는 작가.

그런데 어제의 화제 때문이라고 하기엔, 눈동자가 심하게 번들거리고 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나?

나는 불안함을 숨기며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요? 아직 안 오셨어요?”

“아뇨. 신호석 대표님은 일찍부터 오셔서 인터뷰하셨어요. 아직 김대훈 대표님은 안 오셨고요.”

오디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인터뷰.

첫방송 전에 유튜브에 올리는 등 홍보에 쓰일 수도 있고, 첫방송에 쓰일 수도 있다.

이런 방송에서 인터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요소긴 하지.

전직 방구석 컨텐츠 덕후로서 이런 것에도 어느 정도 조예는 있었다.

“그럼 바로 인터뷰 괜찮으세요?”

“네.”

나는 작가에게 이끌려, 메인 세트장을 벗어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단출하게, 까만 배경 위에 스툴 의자만 있는 곳.

카메라와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 잠깐 앉으며 감독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피디가 헐레벌떡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인터뷰를 바로 시작하며, 작가가 입을 열었다.

“시청자 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스타 아이돌’의 심사를 맡게 된 HJ엔터테인먼트의 박한울이라고 합니다.”

“제대로 방송에 출연하는 건 처음일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방송이라 떨린다기보다는 참가자들에 대한 부담이 더 큽니다. 이런 방송은 처음이지만 참가자분들께 제 말이 어떤 무게로 다가올 지는 잘 알고 있거든요.”

으레 그렇듯, 인터뷰는 아주 길게 이어졌다.

방송에서 얼마나 써먹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다 던지는 것 같았다.

스노우나 샴페인 노바, 박송이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고, 당연하게도 우리 회사 아티스트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작가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그거 알고 계세요? 이번 오디션에 아주 유명한 분의 친척이 나온다는 거.”

“음. 언제나 있었죠. 누구의 아들이거나 딸이거나. 아니면 형제자매이거나. 힙합 프로그램에서는 심사위원이랑 같은 크루가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전 시즌의 심사위원이 참가자로 나오기도 하잖아요. 그런 건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분이 누구의 친척이 됐든 전 편견없이 공정하게 심사할 생각입니다.”

작가가 추가로 말을 건네려 할 때.

옆에 있던 막내 피디가 손을 들며 작가의 입을 막았다.

“왜?”

“이거··· 인터뷰에서 먼저 밝히는 건 좀 리액션이 아깝지 않을까요?”

“아냐. 괜찮아. 선공개로 먼저 올리기로 했어. 1회 시청률이 중요하지, 더 뭐가 중요해.”

“아···. 넵.”

피디는 작가의 말에 대번에 납득했고, 작가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체 무슨 질문이길래 그럴까?’

궁금증이 차오르던 그때.

작가의 입에서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번 오디션에 송하연 가수의 친척동생 분이 지원하셨어요.”

“···!? 네!? 하연 씨요?”

그 연예인이 누굴까 했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연예인의 친척이었다니.

작가는 내 커다란 리액션에 환희의 표정을 지어보였고, 피디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송하연 가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노래를 잘하더라고요.”

비슷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그 어처구니없는 과장에 헛웃음이 터졌다.

“하하. 그럼 정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아니, 하연 씨의 반이라도 따라간다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일 거예요.”

“와. 그렇게나요? 역시 가까운 사이셔서 그런지 송하연 가수에 대한 애정이 깊으시네요.”

내가 송하연과 가깝기 때문에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소린가?

나는 그 묘한 뉘앙스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리고 작가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비웃음이나 악의 따위는 요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 나온 것일 터.

나는 시선을 허공에 두고선, 그녀의 콘서트를 다시 상기해봤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살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애정이 깊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작가님, 하연 씨 라이브 들어본 적 없으시죠? 들어보시면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아실 거예요. 되게··· 멋있거든요. 정말로.”

아무리 잘하는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송하연의 반도 되지 않을 게 확실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였다.

그 커다란 공연장을 오로지 자신의 색깔로 수놓는데, 반이나마 그걸 어떻게 따라가.

난 아직도 그날의 콘서트를 잊을 수 없었다.

게스트로 참여한 유현지조차, 그 모습을 보고 반해 후속곡의 방향을 결정지은 것 아닌가.

송하연처럼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무대를 하고 싶다고.

< <스타 아이돌> 첫 촬영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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