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54화 (54/170)

< 내가 예언 하나 할까? 얘 백퍼 뜬다. >

-곡 느낌 좋네.

-ㅇㅇ얼굴도 귀엽게 생김

-역시 믿고 듣는 송하연!! 곡 느낌이 평소랑 좀 달라서 더 기대된다ㅋㅋ

-빨리 풀버전 풀으라고 앜ㅋㅋ

유현지의 뮤직 비디오 티저 영상 댓글에는 송하연에 대한 것 반, 그리고 유현지에 대한 것 반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사실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쨌거나 쌩신인의 티저 영상에 이 정도 관심을 받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한울아, 일로 와 봐.”

“네, 실장님.”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가, 한실장님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향한 실장님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말했다.

“내일 저녁 열 시까지 현지 데리고 샵 가야 하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내일은 드디어 그녀의 첫 음방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앨범 발매는 바로 오늘.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그래, 음방 몇 번 나가봤으니까 알 건 알겠지. 그런데 한울아.”

“네.”

실장님은 내가 요즘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쿡, 찔러왔다.

“이제 크랭크인 9일 남았는데, 넌 어떻게 하고 싶냐?”

고작 9일밖에 안 남은 영화 촬영.

채희에게도 로드 매니저 한 명, 그리고 현지에게도 로드 매니저 한 명이 더 붙어 있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느 쪽을 어떻게 가든 큰 상관이 없어야 정상이긴 하지만.

채희는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요즘 공포증을 거의 다 극복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피로는 더 빨리 쌓일 터.

반면, 유현지는 내가 있든 없든 활동하는 데 있어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녀는 원체 긴장을 안 하는 체질이기도 하고, 기복 없이 항상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유현지가 이제 막 데뷔하는 신인이라는 거다.

지금까지는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곤 해도, 실제 무대를 앞두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앞으로 쭉 음악방송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하고 싶냐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양쪽에 똑같이 번갈아서 갈게요.”

“그래. 그렇게 해. 애들한테는 네가 알아서 잘 말하고.”

실장님은 피식 낮은 웃음을 흘렸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얼핏 부러움과 신뢰가 스치듯이 담긴 것 같았다.

아니, 내 착각인가?

“좋을 때다. 아티스트나 매니저나 다 풋풋하고. 걔네들한테 너도 축복인데, 너한테도 걔네 만난 건 진짜 축복이야. 애들이 서로 미워하거나 하지 않게 네가 잘 조율해. 연예인들이 수많은 사람들한테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까 자기 사람에 대한 집착 같은 게 더 쉽게 생기는 경향이 있거든.”

“예, 신경 쓸게요.”

***

데뷔, 그러니까 음원 발매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유현지는 오늘 굳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떨린다며 회사에 나왔고, 이렇게 나와 함께 6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아. 긴장돼요. 어떡하죠?”

“···긴장돼?”

겉으로만 보면 전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네.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잖아요.”

싱글 앨범 발매까지, 그리고 뮤직 비디오 업로드까지 30분.

이제 30분 뒤면 그녀는 공식적으로 연습생이 아닌 가수가 된다.

어디 가서 내가 키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 가수.

침이 바싹바싹 마르는 느낌이다.

앞으로 성공할 걸 알고는 있는데, 막상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어쩔 수 없이 떨리기는 했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반응이 확 폭발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적어도 음방도 여러 번 나가고, 다른 곳에서도 활동을 좀 해야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30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아니, 문득 보면 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드디어 싱글 앨범이 발매됐다.

나는 곧장 노트북으로 그녀의 뮤비를 틀었고, 우리는 조회수와 좋아요 수의 추이, 그리고 댓글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체크하기 시작했다.

외국어 댓글이 있으면 번역을 해보기도 하고, 커뮤니티에 언급은 없나 찾아보기도 하고, 기사에 대한 반응은 어떤 지 살펴보기도 하고, 송하연의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순식간에 흘러 벌써 저녁 10시가 되었다.

“반응 괜찮지?”

이제 네 시간이 지나 우리의 얼굴에서 열기는 살짝 빠졌지만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하나같이 반응이 정말 좋아서.

뮤비를 보거나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은 전부 무척이나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유현지는 순하디 순한 미소를 띠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너무 좋아요. 감사해요, 오빠.”

“내가 더 고맙지. 근데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들어가 봐야지. 바래다줄 테니까 일어나자.”

“네.”

네 시간 동안 가파른 상승곡선은 없었으나, 중요한 건 결코 꺾이지는 않았다는 것.

이대로라면 차트에 들기만 해도 쭉쭉 우상향을 그릴 터였다.

우리는 기쁨과 기대를 품고 그렇게 다음날을 맞이했다.

***

첫 번째 싱글 앨범으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어, 곧바로 후속곡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YU엔터의 신인 걸그룹, ‘샴페인 노바’.

그녀들은 숙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 화면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미련하게 달렸어 닿지 않을 걸 모르고.

송하연과 정체모를 작곡가가 함께 작곡한 유현지의 데뷔곡, ‘구름 위의 꿈’.

뮤비를 보는 멤버들의 눈은 잘게 떨렸다.

“···제가 아는 현지 언니 맞아요?”

“현지가 많이 늘었네.”

“그보다 곡이 너무 찰떡처럼 잘 어울리는데요?”

“와···. 장난 아니다. 진짜 엄청 늘었어.”

연습생 시절 몇 년을 함께 경쟁해왔기 때문에 유현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회사를 나간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 언니 춤선 좀 봐요. 진짜 뭐지? 느낌 완전 살아났잖아요!”

“노래는 또 어떻고. 이거 만진 걸 수도 있는데··· 만진다고 다 이렇게 나올 수는 없지.”

그녀들은 3일 뒤에 컴백이 예정되어 있었다.

유현지와 음방에서 만나 데뷔를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뮤비를 보고 있는 거였는데.

아무래도 순수하게 축하만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것 같았으니까.

“···.”

“···.”

“성적··· 분명 좋겠지?”

“그건 봐야지. 대중들 마음은 모르는 거니까.”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 곡이 매우 좋은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뜨라는 법은 없다.

대중들의 마음은 예측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곡이 묻히는 미래는 그려지지 않았다.

유현지의 색깔이 너무 선명하고 아름답게 잘 드러나고 있어서, 개성과 장점이 한눈에 보이도록 표현됐으니까.

아니, 다 떠나서 그냥 너무 좋았다.

“언니들, 우리 묻히지는 않겠죠?”

막내의 불안한 목소리에, 맏이이자 리더는 말했다.

“이번 활동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현지도 이렇게 발전했는데, 우리라고 못 하라는 법 있어?”

컴백을 고작 3일 앞둔 날.

이미 늦은 시간이었건만, 이들은 몇 분 뒤 숙소를 빠져나와 연습실로 향했다.

한 번 본 유현지의 뮤직 비디오가 마음에 불을 지펴서.

***

음악방송 <뮤직캠프>.

우리가 배정받은 대기실은 당연하게도 1층의 공용 대기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좁은 공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복작복작, 댄스팀과 함께 이 장소와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현지야! 사진 찍어야지! 포즈 취해봐.”

댄서의 말에 어정쩡하게 선 채 브이를 하는 유현지.

나는 이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너무 어색하잖아. 어휴. 자, 따라해봐.”

“이렇게요···?”

음악방송은 대기 시간과의 싸움.

우리가 무슨 슈퍼스타도 아니고, 대기 시간에 다른 스케줄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도착한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며 대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이 리허설 시간.

우리는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주위가 쥐 죽은 듯 적막한 가운데, 댄서들과 현지, 한실장님과 내 발소리만이 복도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는 힐끔 현지의 얼굴을 살폈다.

현지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나를 마주봤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이.

정말 신인이 맞나 싶다.

데뷔 무대인데 어떻게 이렇게 걱정이 안 되지?

복도를 지나 무대 앞에서 우리는 멈춰섰다.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하기 전의 잠깐의 시간.

현지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는 건가?’

나를 바라보는 그 순박한 얼굴에선 약간의 여유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하긴, 무대 체질이었지?’

그녀의 눈빛에 내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냥 연습실이다 생각하고 재밌게 즐기고 와.”

“네, 오빠.”

그녀는 마치 큰 응원을 받았다는 듯 눈빛을 반짝거렸다.

“유현지 씨, 올라가시면 돼요.”

“네!”

조명이 내려앉은 무대 위로 올라가는 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차분해졌던 가슴이 다시 쿵쿵,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허설 무대이기 때문에 스탭들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들도 좋은 무대는 마음으로 감상한다고 들었다.

나는 스탭들에게 내 가수를 자랑할 생각에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

수없이 되뇌이고 또 되뇌었던 매니저의 조언.

스스로 놀랄 만큼의 발전을 이루게 해주었던 그의 말.

무대 위로 올라와 포즈를 취하고 있던 유현지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을 다시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연습하는 건 잘 봤어요. 역시 기본기도 뛰어나시고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키가 크지 않아도 팔다리가 길고 비율이 좋아서 동작도 시원시원하게 느껴지고요.

그때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유현지는 지금껏 호흡을 맞춰왔던 댄스팀과 함께 무대를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채워준 그의 칭찬.

거짓 없이, 순수함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눈을 떠올렸다.

-보니까 복근의 힘도 충분해서 무슨 동작을 해도 흔들림 없이 쫀쫀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모든 동작들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아이솔레이션도 잘 되고 악센트도 잘 주시는 것 같고요. 거기다 각도 좋고 표정도 잘 살리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등이랑 어깨, 골반, 무릎, 발끝에 대한 컨트롤에서 큰 임팩트를 못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등, 어깨, 골반, 무릎, 발끝.’

그의 조언은 곧 성장으로 이어졌고, 지금 이 무대까지 이어졌다.

무대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심드렁하기만 했던 스태프들의 얼굴이 슬쩍 바뀌었다.

유현지는 그들의 표정을 만족스럽게 눈에 담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좀 더 힘 있고 단단한 목소리를 내셨으면 해요. 현지 씨 노래는 그때 가장 빛날 거거든요.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을 자신보다 더 믿어준 그는 도무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100%를 이끌어냈다.

선한 눈빛과 열정적인 태도, 항상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 그리고 최고의 실력.

매니저는 때때로 자신을 보며, 아무것도 안 해줘도 스스로 잘해내서 믿음직스럽다고 보는 듯했지만.

그건 틀렸다.

이 실력은 물론 음악과 모든 것을 모두 박한울이 만든 거였으니까.

그는 이미 아주 많은 것을 해주며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비록 무대 위에는 자신과 댄스팀만 올라와 있고, 매니저는 무대 아래에 있었지만.

그는 여기에 함께 올라와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유현지의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났다.

무대 때문에 인위적으로 꾸며낸 미소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

노래가 이어질수록, 무대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자신의 얼굴을 향해 꽂히기 시작했다.

무대 뒤쪽에 있던 진행팀의 스태프들 또한 무대를 구경하기 위해 옆쪽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유현지는 안무 중에 자연스럽게 매니저가 있는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박한울의 얼굴 위로 걸린 환한 미소.

그는 우리가 함께 만든 이 무대를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다른 가수들도 모두 첫 무대를 평생토록 잊을 수 없다고 하던데.

유현지 역시 그럴 것 같았다.

꿈을 이룬 순간.

매니저에게 감사한 마음과, 무대가 주는 황홀함, 그리고 지금껏 노력해왔던 순간들에 대한 뿌듯함, 앞으로에 대한 기대와 희망.

수많은 종류의 기쁨이 폭발하듯이 차오르고 있었고.

유현지는 그 감정을 무대 위로 아낌없이 풀어내고 담아냈다.

***

“유현지···.”

<뮤직캠프>의 김피디는 방금 전의 그 리허설 무대를 보곤 넋이 나가버렸다.

“유현지.”

신인가수는 매번 봐왔고 실력 좋은 가수들도 상당히 많이 봐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강렬한 임팩트를 준 가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성형의 무대.

가수, 그리고 가수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무대로 바꾸면 이러하지 않을까?

김피디는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인기 많은 가수의 무대가 끝난 직후에도, 일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는 스태프들이.

지금은 하나같이 흥미가 진득하게 묻어난 얼굴로 자신들이 느낀 감상을 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끝내주는 신인 하나 나왔네.”

“그러니까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얘 회사가 어디였죠? YU엔터인가?”

“거기 아냐. 송하연 회사야. 작곡도 송하연이 한 거고.”

“아! 어쩐지 곡도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예언 하나 할까? 얘 백퍼 뜬다. 나 촉 진짜 좋아.”

촉? 예언?

‘개뿔이.’

촉이고 뭐고, 그런 거 없어도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안다.

유현지는 무조건 뜰 거라는 것을.

< 내가 예언 하나 할까? 얘 백퍼 뜬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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