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53화 (53/170)

< D-2 >

오늘은 한실장님도 윤팀장님도 없다.

채희의 리딩에는 나만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도 오지 말 걸 그랬나 보다.

리딩실로 향하는 걸음걸음마다 주변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채희가 아닌, 나를 향한 시선들.

공통적으로 호의와 관심이 담겨 있긴 했지만 나는 영 부담스럽기만 했다.

“이거 왜 이렇게 부담스럽냐.”

난 주위에 목소리도 죽여가며 복화술로 말했는데 채희는 그냥 실실 웃는 얼굴로 대놓고 입을 열었다.

“그냥 즐겨요, 오빠. 다 좋게 봐주시는데요 뭐.”

자신의 매니저가 이런 시선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하는 모양이다.

나도 내가 아니라 채희한테 이런 시선이 쏟아지면 기분 좋을 텐데.

‘참 소문도 빨라.’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가 주연배우들과 작가님, 감독님도 고맙다고 한마디씩은 하실지도 모르겠다.

히죽히죽 웃고 있는 채희와 함께 우리는 리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리딩실 안에는 이미 주연배우 세 명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리딩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데 참 빨리도 왔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는 반색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그들.

다들 호의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고맙다고 인사말을 건네는데, 최종윤 배우는 아예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작품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처음으로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된 배우, 최종윤.

그의 진중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절절히 전해지고 있었다.

정말 나는 추천해준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까지 하니까 너무 부담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난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다 최종윤 배우가 잘하셔서 캐스팅된 거죠. 애초에 추천한 것도 최종윤 배우의 연기가 좋아서 그런 거였고요. 그러니까 저한테 이러실 필요 없어요.”

정말 진심이었는데, 아쉽게도 최종윤 배우나 다른 배우들에게나 내 진심은 닿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고맙다고 거듭 말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고,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감사인사를 꼼짝없이 받아줘야만 했다.

“어휴, 힘들어.”

그들이 모두 자리를 뜬 뒤에야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가 한 일을 인정받는 건 좋은데, 생각보다 감사 인사를 너무 과하게 받는 느낌이라 기가 쭉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어째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드는지 원.

“좋은 일인데 왜 한숨을 쉬세요?”

“그렇게 거창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좀 과하잖아.”

특히 최종윤 배우.

누가 보면 내가 정말 크게 도와준 줄 알겠다.

어쨌건 주연의 자리를 따낸 건 순전히 본인의 노력과 실력이었으면서.

내가 엄살을 부리듯이 말하니, 채희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가 과해요? 배우 입장이 다 그렇겠죠. 무명 배우들은 누가 추천해줘서 단역만 따내도 진짜 하루종일 감사인사 할 텐데, 심지어 조연도 아니고 무려 주연이잖아요. 그것도 구선학 감독님 상업영화! 저분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인사하는 게 절대 과한 게 아닐걸요? 오히려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바닥에서 기회라는 게 워낙 귀해야지.

정말 잘할 수 있고 뼈가 빠지도록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확실히 내 입장에서는 별거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내가 기회를 열어준 은인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채희의 그 장난기 하나 없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설득력 있었어.

“저도 오빠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 연기 못 했을지도 몰라요.”

“넌 언젠가 공포증 극복해서 어떻게든 배우 했을 거야. 지금도 빨리 고쳐지고 있잖아.”

“그게 말이 쉽죠. 오디션 전전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다시 생각해도 진짜··· 으으.”

우리가 이렇게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딩실의 문이 열리고 박송이와 매니저가 안으로 들어왔다.

박송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 몸을 굳히더니, 이내 시선을 피하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아니, 막 자리에 앉으려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설마 얘도 나한테 고맙다고 하려고?

얘는 왜?

“저기요, 겉바속촉 씨.”

“네, 시라송이 씨.”

“···네?”

박송이한테는 감사 인사 같은 거 받을 이유가 없다.

다른 주연배우들처럼 제작진한테 추천해줘서 오디션을 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박송이한테 우리 영화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게느냐고 넌지시 말했을 뿐이니까.

역할도 조연이라고 했지, 정확하게 말한 것도 아니다.

뭐, 사실 조연 중에서도 그녀가 할 만한 거라곤 하나뿐이었지만 어쨌든.

다 자기 실력으로 자기가 알아서 따낸 거 아닌가.

“뭐··· 시라···송이요?”

“겉바속촉이라면서요. 제가 겉이 좀 많이 바삭해요.”

너스레를 떨며 능청스럽게 말하자, 박송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푸흐··· 으음.”

참고 있던 웃음이 새어 나온 채희를 박송이가 찌릿! 노려봤다.

“정채희, 시라송이가 웃겨?”

“아, 아뇨. 저 안 웃었어요! 정말 안 웃었어요!”

그렇게 어찌어찌 박송이에게는 감사 인사를 안 받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다 끝이 난 게 아니었다.

리딩실의 문이 열리며 세 명이 나란히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구선학 감독님, 조수연 작가님, 그리고 제작사의 이대표님.

그들은 눈으로 리딩실 안을 훑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다가왔다.

젠장.

역시 괜히 왔어.

***

우여곡절 끝에 리딩이 시작됐다.

주연배우들은 물론이고 박송이와 다른 조연들도 칼을 갈고 나왔는지, 분위기는 무척이나 엄숙했다.

또한 엄숙한 분위기 속의 온도는 이글이글 타오르듯 뜨거웠다.

재능과 노력, 그리고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그것도 각자 자기에게 꼭 맡는 캐릭터를 맡은 채로.

나도 속으로 꽤나 기대했던 리딩이었는데, 그 결과물은 역시나 몽롱할 정도로 훌륭했다.

“야! 너 미쳤어!? 어디 사기칠 사람이 없어서 종화그룹 딸내미한테 사기를 치려 그래!”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정신 차려, 인마! 너 그러다 진짜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 수가 있다니까?”

시너지가 이렇게까지 폭발적일 수가 있나.

시나리오 속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현실로 튀어나와 매력적인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있으니.

이 또한 이미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자고로 진정한 사기라는 건 말이야.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거야. 남들이 다 뭐라고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 이거의 최종단계는 뭔 지 알아?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이 다 사기꾼처럼 보이게 되는 상태야.”

“이 새끼 이거 단단히 돌았네···.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종화그룹이라니까? 너 종화그룹 몰라?”

“최고의 사기꾼은 최고의 도둑이나 마찬가지야. 마음을 훔치면 모든 게 다 따라오게 돼있거든.”

“너 누구한테 사기당했냐? 이미 내 말이 네 귓구녕 속으로 안 들어가는 것 같은데?”

그저 감탄만 자아내게 만드는 연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나는 이미 아까의 그 부담스러운 느낌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거 좀 부담스러우면 어때.

이런 연기를 볼 수 있는데.

하지만,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이미 내게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감탄을 자아냈던 채희의 연기.

그녀가 다른 캐릭터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마침내 채희의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그녀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 앙상블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나랑 연습했을 때도 이미 완벽했지만, 지금 명품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그녀는 거의 이곳의 분위기를 지배하기라도 하려는 듯 독보적인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아, 이건 너무 신선한데? 세상에 살다 살다···. 나를 호구로 봤다는 거잖아. 아니지, 이건 우리 그룹을 호구로 본 거나 마찬가지지. 아저씨, 이거 어디까지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도 알고 계세요?”

“네, 보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요?”

“예.”

“아···. 그니까 내 맘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거네요? 그쵸?”

그녀의 입꼬리와 함께, 내 입꼬리 또한 귀에 걸릴 듯이 말려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 작품은 망할래야 망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대가 이영진 감독이건 마블이건, 이건 묻힐 수가 없지. 절대로.’

더구나, 나는 수혜자가 넘쳐나게 될 이 대박작 안에서 최대 수혜자가 누가 될지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주연이라는 기회를 잡은 배우들도 아니었고, 실력이 또 한 번 껑충 뛴 박송이도 아니었다.

바로 우리 채희.

영화 데뷔와 동시에 첫 영화 주연을 맡은 채희는 영화가 크랭크인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실력이 크게 레벨업을 하는 중이었다.

개봉하게 되면 대중적 인기 또한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것 또한 기정사실.

“···아.”

“···허어!”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모여 있는 전부가 알게 된 듯했지만.

‘빨리 개봉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표정을 빨리 보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입을 떡 벌리면서 경악하겠지.

마치 싸우기라도 하듯이 모든 배우들이 전력을 다하며 진행된 리딩.

이번에도 어김없이, 리딩의 주인공은 우리 채희가 차지했다.

리딩실을 아주 씹어먹으면서.

***

리딩이 끝나고 이틀이 지난 날.

일본에서는 드라마 <헌팅 포차에서 만난 사이>의 첫 방송이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스즈키도 이거 보겠지? 메시지라도 보내볼··· 아니다. 내일 학교 가보면 알겠지.”

같은 반의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그는 짝사랑하는 여자가 한국의 드라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 때문에 이걸 보려는 거였다.

한국에서 이게 엄청 인기였다고 하니까 스즈키도 이걸 볼 확률이 높겠지.

‘그러면 내일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겠지?’

그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스즈키의 얼굴을 억지로 지워내고는 드라마를 집중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필요에 의한 시청, 좋아하는 여자와 친해지려는 목적에 의한 시청.

때문에 그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드라마를 학습하듯이 보고 있었는데.

“···누구지?”

정채희가 화면에 나오기 시작하자 학습하듯 했던 태도가 조금 바뀌는 듯했다.

압도적인 미모와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몰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연기력.

그는 어느새 드라마가 주는 재미에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다.

“어?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이미 훅 지나가 있었다.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인데 무척이나 짧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배우 이름이 뭐지? 다른 작품은 뭐 했으려나?”

그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해 드라마의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역시 인기작품 아니랄까 봐 인터넷에서는 이미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 한국이 싫어.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말 엄청나. 시간 가는 줄 몰랐다니까?

-wwwww너 재일이지? 여기서 나가. 그렇게 조작해봤자 일본은 아무도 안 속아.

-그게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어. 대체 한국 드라마를 왜 보는 거야? 매번 똑같아. 유치하고 뻔하고.

-wwwwwww이럴 줄 알았어. 여기 드라마 안 보고 욕만 하는 사람들 있지? 드라마 제대로 보면 절대 그런 소리 안 나올 거다. 1회만 봤는데 몰입감이 장난 아니야! 특히 신수아 맡은 여배우. 한국에서 엄청 인기 많았대.

넷상에 펼쳐진 전장을 보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데에 심력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어째선지 댓글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신이 드라마를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적었다.

-난 진짜 재밌게 봤어. 스토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아. 신수아 역할 맡은 여배우는 앞으로 엄청난 대배우가 될 거야.

그는 이 댓글을 남긴 뒤, 당초의 목적대로 그 여배우에 대해 찾아봤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게 TV드라마로서는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 지금은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려 24회에 달하는 웹드라마를 찍었었다는 것.

“일본어 번역이 있다고?”

유튜브에서 드라마를 찾고 바로 1회를 시청하려 할 때.

핸드폰이 진동하며 메시지를 띠웠다.

-쿠로사키! 혹시 한국 드라마 봐? 재밌는 거 있는데 추천해줄까?

스즈키의 메시지였다.

쿠로사키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다른 건 잘 모르는데 방금 헌팅 포차에서 만난 사이는 봤어. 엄청 재밌더라.

쿠로사키는 이어서 도착한 메시지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드라마를 보길 잘했다.

***

일본에서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방송된 게 1회뿐인지라, 아직까지 커다란 파급력은 없었으나.

1회가 방송된 것 치고는 상당한 반응이 오고 있었다.

‘그래야지, 당연히.’

이미 유튜브에서는 일본에서의 반응이 어떤 지 영상들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고, 팬카페와 커뮤니티에서도 일본에서의 반응을 주목하고 있었다.

다들 얼핏 낌새를 눈치 챈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가 한두 번 대박이 터진 게 아니니.

하지만 우리 회사는 이 때문에 바빠졌다거나 영향이 갔다거나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제작사나 방송사도 아니고, 채희가 당장 일본에서 활동할 것도 아니며, 이미 영화 촬영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

다만 체감되는 가장 큰 변화는 하나.

지이잉- 지이잉-

“어, 또 왜.”

-어또왜 그거 하지 말아달라고 했잖아요. 은근히 듣는 사람 서운하다니까요?

“알았어. 아무튼 왜.”

-있잖아요. 그게 저 막 대배우 될 거래요. 읽어드릴까요? ‘난 진짜 재밌게 봤어. 스토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아. 신수아 역할 맡은 여배우는 앞으로 엄청난 대배우가 될 거야.’ 이것도 있는데요. 다른 것도 있어요.

채희는 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끈 게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런 것일 터.

나는 연습실 밖에 앉아서, 데뷔를 코앞에 두고 댄서들과 함께 연습하고 있는 유현지를 기다리며, 채희의 통화를 묵묵히 받아주었다.

“또 뭐 있는데?”

-그리고 또···

아기새처럼 삐약삐약.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집중해서 들어봤자 비슷한 얘기들뿐이고.

그렇게 가만히 멍 때리며 듣고 있자니, 어느새 그녀는 후련한 목소리가 되어 통화를 끊었다.

통화시간을 보니 24분.

뭐, 이 정도면 양호하다.

그리고 정말 타이밍 좋게도.

통화를 끊으니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댄서들과 유현지가 함께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우리 현지 잘 부탁드려요.”

“이번 곡 진짜 좋더라고요. 매니저님이 공동작곡하셨다면서요? 대박!”

이번 싱글 앨범으로 유현지와 함께 활동할 댄서들은 바로 유현지가 잠깐 몸담았던 그 댄스팀이었다.

조금은 친해진 그들과 나는 짤막하게 인사를 나눴고.

유현지는 뒤에 가만히 서서 그들이 떠날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매니저님, 기다리고 계셨어요?”

마음이 절로 포근해지는 목소리.

방금 전까지 전화로 삐약거리던 아기새와는 참으로 대비됐다.

둘 다 좋기는 했지만.

“기다리고 있었죠. 이제 티저 나오는데 같이 보면 좋잖아요.”

데뷔 싱글의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업로드 시간이다.

쌩신인이라서 팬이 전혀 없긴 하나, 작곡가로 나와 함께 이름을 올린 송하연 덕분에 아마 조회수는 그렇게 낮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조회수가 얼마나 적건, 전혀 상관이 없긴 했다.

어차피 뜰 거니까.

“연습실 안에서 볼까요? 아니면 소회의실에서 볼까요?”

“소회의실에서 봐요. 여기 방금 전까지 연습해서 덥고 냄새 날 거예요.”

그건 맞지. 그녀 혼자 연습한 거라면 몰라도.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와 함께 소회의실에 들어가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틀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4분.

나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

“기분이 어때요?”

“떨려요.”

너무나도 설레하며 기대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지어졌다.

“저도 떨려요. 제 가수가 데뷔하는 게 처음이라서요.”

“그래요? 댄스팀 언니 오빠들도 되게 떨린다고 하셨어요.”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분 미만으로 다가와 있었다.

“매니저님.”

“네.”

그녀는 아까 전부터 짓고 있던 표정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한테 편하게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갑작스러웠다.

그런데, 우리 사이를 보면 갑작스럽기만 한 건 아니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네. 고마워요, 오빠.”

“···?”

“이제 영상 나왔을 것 같아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곧장 새로고침을 눌렀고, 노트북 화면에는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상이 떠있었다.

<유현지 ‘구름 위의 꿈’ M/V Teaser 1>

신인가수 유현지.

이제 데뷔까지 고작 이틀 남은 시점이었다.

< D-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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