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다 끝나면 혹시 알아요? >
시청률 6%.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나, 화제성만큼은 대단했다.
좋은 대본과 캐릭터,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구선학 감독, 1회에선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으나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보인 박송이의 확연히 좋아진 연기 폼.
거기에 10대와 20대 초반대의 사람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는 채희까지.
기사들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왔다.
[MBS ‘헌팅 포차에서 만난 사이’, 1회부터 대박의 조짐 보이다.]
[미니시리즈 ‘헌만사’ 시청률 6%로 산뜻한 출발~]
[“정채희가 누구야?” 첫 TV드라마에서 대박 터뜨려. 라이징 스타 대열에 상위권으로 합류!]
기사와 SNS, 커뮤니티에서 워낙 언급이 많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던 일반 대중들까지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영업 개잘하네. 덕분에 드라마 보고 옴. 근데 너무 빨리 보고 온 게 문제네;;; 앞으로 어떻게 기다리냐.
└진짜 사람들 영업 개잘함ㅋㅋㅋ 우연히 사진 보고, 하이라이트 영상 봤다가 바로 드라마 직행ㅋㅋ
-응 그래도 안 봐~ ^^
└[사진]
└ㅅㅂ개이쁘네. 얘 누구냐?
└안 본다며 이새꺜ㅋㅋㅋㅋ
타다닥.
남자는 빠르게 타자를 쳤다.
-아니 그래선 ㅜ누구얀고
눈동자는 사진으로 향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매력적인 페이스, 숨이 턱 막혀오는 분위기,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빛.
남자는 이어서 달린 댓글, ‘정채희다 이새꺜ㅋㅋㅋ 영업 대성공이네’를 보고는 바로 포털에 그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그렇게 남자는 ‘사진-유튜브 영상-드라마’라는 아주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정상적인 루트를 타게 되었다.
드라마 1회 시청이 끝난 후.
남자의 시선은 모니터 화면의 오른쪽 아래를 향했다.
“이제 한 시간 뒤네?”
2회가 방송될 때까지 고작 한 시간···이 아닌 무려 한 시간이나 남았다.
“아오! 이걸 왜 이렇게 일찍 알아서는···!”
남자는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좀 더 나중에 알았다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정채희를 검색함으로써 알게 된 웹드라마로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재밌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웹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리 큰 기대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채희가 연기하는 걸 볼 수는 있을 테니까.
“그래, 이거 한 세 편 보다가 드라마 본방 보면 되겠다.”
아쉽지만 가벼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보기 시작한 웹드라마, <캠퍼스 낭만이 원래 이런 거야?>.
1회를 보고, 2회를 보고, 어느새 3회가 어느 정도 끝을 향해가고 있을 때.
남자는 초조함에 입술을 짓씹어야만 했다.
“아 씨, 이제 곧 방송 시작하는데···.”
미니시리즈 본방 시간이 다 되어가지만 웹드라마를 도중에 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대로 끊고 다시 보기엔 지금 느껴지는 흐름이 끊기는 게 너무 아쉽고도 싫었으니까.
가난하지만 당당하게 자란 스무 살, 여주인공 캐릭터 ‘유나현’.
냉소적이고 시니컬함을 연기하는 정채희는 무지막지하게 매력적이었다.
남자는 문득 이렇게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감정의 흐름을 끊는다는 걸 깨닫고는, 곧바로 TV앞으로 달려갔다.
웹드라마는 이 미니시리즈의 2회가 끝나고 한꺼번에 몰아서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30대의 평범한 직장인은 어느새 정채희 팬이 되어 있었고.
“···와, 미쳤네.”
2회까지 다 본 뒤에는 자발적으로 친구들에게 톡을 보냈다.
-사진
-사진
-야 얘 아는 사람?
답장은 금방 왔다.
-와 ㅅㅂ 얘 누구냐?
남자는 씨익 미소 지었다.
-정채희라고 있음. 드라마 헌팅 포차에서 만난 사이 꼭 보셈. ㄹㅇ 미쳤음 진짜.
***
엄마,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드라마 2회를 모니터링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 아버지와 내 시선은 절로 엄마에게 향했다.
“엄마, 어땠어?”
중간중간 반응한 걸로만 봐도 엄마가 되게 재밌게 보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상을 제대로 들어보고 싶어서 물었다.
“쟤가 네가 관리하는 애야?”
“응. 내가 뽑고 내가 키운 애야.”
엄마는 환하게 밝은 얼굴로 말씀하셨다.
“잘하네.”
“그치? 잘하지? 드라마도 재밌고.”
“어, 재밌다. 잘 키워봐. 사고 치지 말라고 하고. 쟤 성격은 착하니?”
“응, 되게 착하고 엄청 순수하고 그래. 불만 같은 거 있어도 떡볶이 먹자고 하면 끝이야.”
나는 미소 띤 얼굴로 채희와의 일화들을 쭈욱 길게 말했고, 엄마는 얘기를 듣는 내내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언제 한 번 집에 데려와. 맛있는 것 좀 해주게.”
엄마의 말에, 뿌듯하게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난감해하며 말하셨다.
“그건 안 돼. 얘가 내 아들이라는 거 소문 퍼지면 어떡해?”
“방금 다 들었잖아. 되게 착하다며. 그리고 자기한테 좋으면 좋았지, 안 좋을 게 없는데 소문 내겠어?”
“에이···. 그래도 안 돼.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사실 이제 낙하산인 게 밝혀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긴 했다.
그래봤자 로드 매니저였으며, 특혜를 본 거라고는 탈락 예정이었던 채희를 뽑은 것과, 웹드라마와 이번 드라마 대본을 내가 골랐다는 것인데.
그것들이 모두 최고의 선택이었으니까.
‘능력에 대해서 말이 나올 리가 없지.’
물론 말이라는 게 어디서 어떻게 왜곡될지 모르는 거긴 하고, ‘그런 기회가 있는 것부터가 불공정한 거다’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저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
이 바닥 생리라는 게 그렇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업계.
더러운 수작을 부린다든가 하는 종류의, 과정의 문제들은 당연히 일이 커지겠지만.
그게 아니라 ‘기대가 모아지던 이 드라마 오디션에서 탈락해서 어쩔 수 없이 별 기대 안 되는 저 드라마로 들어갔는데 초대박이 났더라’하면 바로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실력이 되는 바닥이다.
심지어 나는 그런 우연과 운빨이 아니고, 오로지 안목과 능력으로 얻어낸 거니 더욱더 문제가 될 게 없을 테고.
‘그런데 실장님이랑 팀장님이 어렵게 대할 수 있기도 하고, 굳이 밝힐 이유도 없지.’
밝혀져도 상관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로, 밝혀진다 해도 별로 이득을 볼 게 없으니 굳이 밝힐 이유가 없기도 했다.
더구나 나는 지금 주어진 것들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었고.
띠링-!
엄마와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핸드폰에 톡이 도착했다.
송하연, 그녀의 연락이었다.
[드라마 너무 재밌게 봤어요! 채희 씨한테도 잘 봤다고 전해주세요!]
보통 이런 메시지를 배우의 매니저에게 하진 않을 테지만 그녀는 이렇게라도 종종 연락을 보내곤 했다.
이번에 그녀의 활동이 완전히 끝나서 휴식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회사에서 마주칠 일도 거의 없기도 하며, 우리가 같은 팀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마 다음에도 나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서 인연을 이으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녀가 종종 보여주는 마음이 갸륵하기도 하고, 나 또한 그녀가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 좋게 답장을 보냈다.
[네 감사합니다. 하연 씨가 재밌게 봤다는 거 들으면 채희도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답장을 보내기가 무섭게, 핸드폰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채희였다.
아마 드라마가 끝난 뒤에 쏟아지는 연락들을 힘들게 처리한 후, 겨우 연락한 거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향했다.
얘랑 통화하면, 내가 아무리 짧게 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10분은 가볍게 넘어갈 테니까.
“어, 또 왜.”
-네···? 어또왜라니요? 오빠, 반응이 왜 그래요? 방금 2회 끝났는데 방송은 보신 거 맞아요? 좀 따뜻하게···
그런데 이번엔 아무래도 30분은 넘어갈 것 같았다.
***
2회 시청률 8%.
하루만에 무려 2%나 오르며 대박의 징조가 만연하게 흐르는 덕분에.
촬영장의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하고 더욱 파이팅이 넘쳤다.
“컷! 오케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감독님의 목소리에도 활력이 넘친다.
짙은 다크서클과는 무척이나 대비되게 표정은 아주 밝기만 했다.
또한 힘이 펄펄 나는 건 감독님뿐만이 아니었다.
“오빠! 저 오늘 컨디션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채희 역시 마찬가지.
오케이 소리가 나기 무섭게 내게 득달같이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응, 딱 봐도 컨디션 엄청 좋아 보이네.”
“그쵸? 시청률 높아지니까 쑤시던 어깨도 막 개운해지는 느낌이에요!”
“그게 말이 되냐?”
“진짜예요!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역시 시청률은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허구헌 날 허리 아프다고 하던 스텝들도 지금은 그저 싱글벙글이지 않나.
촬영본을 확인하던 구선학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채희 씨 덕분에 이번 장면 정말 잘 나왔어요. 수고 많았어요.”
“에이, 무슨 제 덕분이에요. 다 감독님 덕분이죠. 헤헤.”
이쯤 되니 무섭다.
시청률이 떨어졌거나 죽을 쒔다면, 이렇게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할 수 있었을까?
꼭 시청률 높은 팀이 분위기 좋으리란 법은 없고, 시청률 나쁜 팀이 분위기 나쁘리라는 법은 없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팀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팀원들 모두의 사이가 그렇게까지 좋아지는 건 또 아니긴 했다.
저기 봐라.
이를 아득바득 갈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박송이가 보이지 않나.
‘열 받을 만하긴 하지.’
저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늘 나온 대본에서 채희의 분량이 더 많아졌으니까.
이젠 거의 주연에 ‘버금갈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냥 주연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 다음 씬은 남자 주연 윤성준과 남자 조연 김기혁, 그리고 채희와 박송이까지 네 명이서 같이 찍는 씬.
지금 막 분장을 마친 윤성준과 김기혁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감독님에게 다가온 거긴 하지만, 그들은 채희에게도 말을 건넸다.
“우리 괴물신인! 반응 좋더라?”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도 댓글 엄청 많던데요?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싹싹하게 대답하는 채희를 보며 멋드러지게 미소 짓는 윤성준.
그는 박송이와 달리, 분량이 뺏겼음에도 불구하고 싫은 티 하나 내지 않았다.
전작 시청률이 죽을 쒀서 그런가?
“오늘도 잘 부탁해요. 진짜 채희 씨랑 같이 연기하는 씬 있으면 준비를 게을리할 수가 없어요. 연기를 워낙 잘해서. 하하.”
채희 덕분에 덩달아 주연격의 분량을 얻게 된 김기혁은 당연히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고.
“에이! 무슨 소리세요, 선배님. 항상 선배님한테 많이 배우고 있는데요.”
너스레를 떠는 정채희.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렇게 싹싹하게 잘하면서 왜 나한테는 이렇게 안 할까?
맨날 삐지고, 입술 삐죽이고, 과자 줬다가 뺏고, 투덜대고.
그렇다고 뭐 그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모두 채희 곁을 떠나고, 이제 씬에 들어가기 직전.
채희는 대본에 눈을 떼지 않으며 내게 물었다.
“오빠, 이제 촬영 얼마 안 남았는데 다 끝나고 어디 놀러 갈래요?”
“놀러? 어디?”
“음. 아무데나? 그냥 저도 그렇고 오빠도 그렇고 수고 많았으니까요.”
“촬영 다 끝날 땐 아직 방송 한창일 텐데? 그때도 바빠. 예능이나 화보, 광고, 인터뷰 이런 거 많이 들어올걸?”
“아! 맞네. 그럼 그것까지 다 끝내고 가요.”
"그래. 스케줄 다 끝나면 어디든 놀러 가자."
채희가 대본에서 눈을 떼고는 씨익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예 해외로 나가버릴까요? 그때쯤 되면 국내에선 편히 못 다닐 테니까.”
“네 얼굴을 전국민이 알아보게 될 거다? 지금 이 말 하는 거지? 근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방송 다 끝나면 혹시 알아요, 그렇게 될지?”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조연출이 채희를 불렀다.
대본을 자리에 두고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는 채희.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전국민이 알아보길 원하면··· 다음엔 전연령층한테 잘 먹힐 영화라도 알아봐야 하나?’
30대까지라면 몰라도 40대 이상부턴 이 드라마의 주요 타겟이 아니다 보니, 이 드라마로는 전국민이 알아보게 만들기 힘들 거다.
‘나중엔 아예 전세계 사람들이 알아보게 되면 좋겠네.’
난 그 멀고도 원대한 꿈에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때, 유현지에게로부터 톡이 왔다.
-동영상
-이 정도면 잘 되고 있는 거 맞을까요?
1분 30초 정도의 동영상.
그걸 본 건 이번 씬의 촬영이 모두 끝나고도 십여 분이 흐른 다음이었지만.
아무래도 더 나중에 볼 걸 그랬다.
그걸 보곤 몸이 근질거려 참기가 힘들었으니까.
나는 답장했다.
-오늘 몇 시에 집에 가요?
< 방송 다 끝나면 혹시 알아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