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하산이 천재매니저였다고-29화 (29/170)

< 어떻게 유현지를 두고 >

“스읍··· 후우···.”

심호흡을 하며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는 정채희.

분장실의 거울 속에는 딱딱하게 굳은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해보자. 할 수 있어.’

분장실 안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다들 바쁘게 일하고 있는 탓에 괜히 더 복작복작하게 보였다.

분장팀 직원은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중이었고, 의상팀 직원 몇 명은 세 개의 행거를 뒤적이며 씬에 맞춰 의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또한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연출팀 등 다른 직원들 또한 수시로 들락날락거렸다.

다만, 박한울만 없을 뿐이다.

커피를 사오러 잠시 자리를 비웠으니까.

채희는 거울 속에 비친 긴장한 자신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덕분인지 대사는 언제라도 내뱉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감정 역시 러프하게 잡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내뱉는 게 어려울 뿐이지.

‘해야 돼. 계속 이럴 수는 없어.’

지금까지 공포증을 없애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왔다.

박한울과 함께 한 노력 끝에 얻은 성과로 이렇게 배우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거고.

이제는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갈 차례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평가하는 시선으로 바라봐도, 박한울만 옆에 있으면 안정적인 연기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는 그가 옆에 없어도 연기를 안정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 언제까지고 오빠가 내 로드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자신이 공포증을 고치지 못 한다면 박한울은 그 재능을 가지고도 계속 자신만을 따라다녀야 한다.

‘솔직히 오빠 정도면 금방 다른 배우 붙을 수도 있어.’

분석도 잘하고, 연습 도와주는 것도 잘하고, 센스도 좋으니.

금방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다른 아티스트가 붙을 터.

그때도 그와 계속 하기를 바란다면, 적어도 발목을 붙잡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이거 고치고 오빠가 더 잘 돼도 나부터 챙기겠지 당연히? 아니, 당연히 나부터 챙겨야지!’

박한울과 함께 더 큰 성공을 누리기 위해서, 라는 이유 말고도.

배우라면, 그리고 더 높은 곳을 노린다면, 반드시 언젠가는 고쳐야 할 문제이기는 했다.

“스읍··· 후우···.”

정채희는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턱 끝에서 제동이 걸리는 대사를 억지로 밀어내듯이 내뱉었다.

“나도 서울 와서 알게 된 건데··· 내가 좀 보수적인가 봐. 난 이렇게 가볍게 만나는 게 아무렇지 않지가 않아.”

아주 작게 내뱉은 소리였다.

여러 가지 소음들이 뒤섞인 이곳에서는, 바로 옆에서 메이크업을 봐주는 분장팀 직원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소리.

분장팀 직원이 손을 멈칫했다.

채희는 거울을 통해 그 직원과 눈을 마주쳤다.

벌렁거리는 심장소리가 제 귓가엔 크게 들렸지만, 다행히 심장소리만큼은 직원에게까지 닿지는 않은 모양이다.

마른 침을 삼킨 채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잖아.’

다시 한번.

채희는 방금 전과 똑같은 대사를 내뱉었고, 이번엔 그나마 가까운 의상팀 직원에게까지 그 소리가 닿았다.

물론, 대사에 감정은 많이 담기지 않았고, 발음 역시 부정확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대사는 끝까지 멈추지 않고 내뱉을 수 있었다.

‘됐어!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자.’

분장팀 직원이 자신의 이마에 맺히는 땀을 계속해서 닦아주고 있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눈꺼풀도 파르르 떨리는 게, 자신의 불안정한 마음이 너무 투명하게 엿보여지는 듯하여 더 이상의 시도는 힘들 것 같았다.

‘이따가··· 이따가 다시 해보는 거야.’

아직은 많이 힘들지만 차근차근.

느리지만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채희는 자신을 오랫동안 고생시킨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

오늘의 촬영을 마치고 채희를 집으로 데려다준 뒤.

나는 퇴근길에 오르지 않고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

그래봤자 새벽에 시작한 촬영이라서, 현재 시각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지금쯤이면 한창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잘하고 있으려나?’

마음 같아서는 유현지의 첫 연습부터 계속 지켜보고 싶었으나, 채희의 연습과 촬영 일정 때문에 스케줄이 촉박했다.

그래서 연습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나 더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구경을 갈 수 있게 된 거였다.

‘다른 연습생들이랑 잘 못 섞이진 않겠지?’

어느 기획사나 그렇듯, 우리 회사에서도 많은 연습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현지는 아이돌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 연습생들 틈에 섞여서 연습을 하고 있을 거고.

그녀의 유한 성격이라면 연습생들 사이에서 잘 녹아들겠지만, 연습생들은 그녀가 솔로 데뷔가 거의 확정되다시피 한 것을 모른다.

또한 그녀가 YU엔터 출신에다가 기본기까지 탄탄하니, 어쩌면 견제의 대상이 되어 텃세를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안 그러길 바라야지.’

연습을 보러 간다는 기대감과, 일주일이 지난 이제서야 보러 간다는 미안함, 그리고 연습생들과 잘 섞이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까지.

세 가지의 감정이 내 발길을 재촉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습실 앞까지 가는 동안 나는 거의 경보를 하듯이 걸었고.

연습실 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댄스 레슨을 받고 있는 여자 연습생들 틈으로 유현지의 얼굴이 보였다.

땀에 잔뜩 젖어 진지한 얼굴로 수업을 따르는 모습.

그 환하게 빛나는 장면을 보며 나는 기대감이 한가득 충족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독보적이네.’

재능도 그렇지만 기본기 또한 다른 연습생들과는 차이가 컸다.

아무렴, 송하연과 함께 무대를 서는 댄스팀의 일원이었는데 다른 연습생들이랑 비슷하면 안 되지.

나는 계속 연습실 밖에서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수업이 진행되는 중이기도 하고, 안에 다른 연습생들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기는 좀 뭐했기 때문에.

그렇게 트레이닝 시간이 끝나고, 나와 중간중간 눈이 마주쳤던 유현지가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온몸이 땀에 푹 젖은 채로 내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유현지.

생얼인데다가 앞머리도 이마에 붙어 있거늘, 미소를 지으니 그저 귀엽고 예뻐보이기만 했다.

“다음 레슨은 또 언제 시작이에요?”

“20분 뒤에 보컬 레슨 시작이에요.”

20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연습을 보러 온 본연의 목적을 떠올리면 넉넉한 시간이었다.

“그럼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지금 바로 괜찮으세요?”

“네.”

나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출입구와 화장실 쪽을 피해, 반대편 복도 끝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죄송해요. 너무 바빠서 이제야 오게 됐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계약한 뒤에 바로 관심이 줄어버렸다고 오해하며 서운해할 수도 있는데, 고개를 젓는 그녀의 눈망울은 여전히 맑기만 할 뿐이었다.

이러니 미안함이 더 커지는 기분이다.

“연습생들하고는 어때요? 좀 친해졌어요?”

“네, 다들 잘 대해줘요.”

“텃세 같은 건 없었어요?”

“네, 없었어요.”

하나씩 물어볼 때마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기 때문에, 작게 헛기침을 하며 연습을 본 감상을 말해주었다.

“연습하는 건 잘 봤어요. 역시 기본기도 뛰어나시고 되게 잘하시더라고요. 키가 크지 않아도 팔다리가 길고 비율이 좋아서 동작도 시원시원하게 느껴지고요.”

나는 전문가가 아닌 방구석 컨텐츠 덕후로서, 전문성을 깃들이며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노래와 춤, 그리고 연기까지.

단점과 장점, 그리고 재능을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직캠이나, 송하연과 연습하는 모습, 그리고 방금 전의 연습을 모두 지켜보며 그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명확하게 보였다.

“보니까 복근의 힘도 충분해서 무슨 동작을 해도 흔들림 없이 쫀쫀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모든 동작들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아이솔레이션도 잘 되고 악센트도 잘 주시는 것 같고요. 거기다 각도 좋고 표정도 잘 살리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등이랑 어깨, 골반, 무릎, 발끝에 대한 컨트롤에서 큰 임팩트를 못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부족한 부분보다는 장점에 주목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장점을 더 키우는 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것들이 함께 좋아질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 눈에 부족해 보였던 부분을 말해주는 거였다.

다른 부분에서는 잘만 보였던 그 장점이, 닿지 않았던 곳까지 뻗을 수 있게끔.

단점을 없애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녀가 가진 장점을 더 넓히고 키우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

나는 마이너스가 0이 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장점이 모든 곳에서 묻어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거지.

“원래 기본기가 탄탄하고 어느 한 영역에서 춤을 잘 추면, 다른 장르의 춤도 단기간에 금방 배울 수 있대요. 현지 씨는 혹시 다른 장르 해보신 적 있어요?”

“다른 장르요? 제대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냥 방송댄스 배우고 커버하면서 나오는 일부 동작들 정도만 배웠어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바리에이션을 한 번 넓혀보는 게 어때요?”

“어떤 거요?”

내 말을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겠다는 듯, 연습할 때와 같은 진지한 얼굴로 물어왔고.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일단 재즈랑 댄스스포츠부터 시작해보기로 해요.”

***

한편, 박한울과 유현지가 있는 사옥의 꼭대기층.

박대표와 김본부장은 태블릿에 틀어진 영상을 10분 동안 묵묵히 보고 있었다.

10분이 다 지날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리고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은 채로 집중해서 봤을 뿐이었다.

“어때?”

감상을 묻는 박대표의 물음에 김본부장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하기는 하는데 그리 특별한 점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 둘이 본 영상은 유현지의 연습을 촬영한 것.

김본부장의 내뱉은 말 속에는 하나 생략되어 있는 것이 있었다.

과연, 박한울이 그렇게까지 꽂혀서 공들일 만큼의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혼자 연습하는 영상에서 특출난 모습을 보여줬던 정채희 때와는 많이 달랐다.

“대표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박대표 또한 안목이라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았기에, 김본부장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박한울이 본 가능성을 박대표 또한 보았을지.

그러나, 박대표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노래도 깔끔하게 잘하고, 댄스도 되게 잘하는데, 얘가 솔로 아이돌로 크게 성공할 수 있으려나 싶어.”

솔로 아이돌로 대성할 수 있는지는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연습생으로 들어가기엔 차고 넘치는 실력이기도 했다.

“지켜보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잘 안 풀려도 실망하지는 말자고. 사람이 어떻게 한 번도 안 틀려, 안 그래?”

아들을 감싸주려는 박대표의 말에 김본부장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런데 궁금하긴 합니다.”

“뭐가?”

YU엔터에서 새로 런칭하는 걸그룹 데뷔조에 발탁되지 않은 유현지.

반면 그 데뷔조에 든 멤버들은 지금 ‘삼페인 노바’로 데뷔를 앞두고, 티저 사진이나 티저 영상들로 팬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아직 데뷔를 하지도 않았는데 한눈에 매력을 알 수 있는 멤버들.

김본부장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박한울이 ’샴페인 노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

“와. 미쳤다.”

박한울은 ‘샴페인 노바’의 뮤비 티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데뷔부터 빵 터뜨릴 생각인지 티저 영상은 많았고, 그 영상들에는 각 멤버의 장점들이 골고루 담겨 있었다.

“와···.”

박한울은 연신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어떻게 유현지를 두고···.”

그들의 안목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유현지를 얻게 됐다고.

물론 ‘샴페인 노바’도 잘하긴 했고, 매력도 확실했지만.

유현지에 비견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하!”

실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고, 박한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들이 그냥 커피라면, 유현지는 티오피.

그녀들이 그냥 떡볶이라면, 유현지는 치즈순대튀김떡볶이였다.

“기대되네.”

비록 출발선은 다를지언정, 나아가는 속도는 비교도 안 될 테니까.

“그래도 엄청 잘됐으면 좋겠다.”

나는 ‘샴페인 노바’와 YU엔터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복은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 어떻게 유현지를 두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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