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놀이동산(2)
* * *
여러모로 많은 일이 있었던 귀신의 집을 나오고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콜록콜록...!"
"..."
밥을 먹는 도중에도 은하의 기침 소리는 그치는 기새가 보이지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건가? 감기는 오래가면 위험해지는데'
당연히 내 처지에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음과 같아서는 그만 돌아갔으면 하는데...'
"으... 시원한 거 마시고 싶어..."
"지랄하지 말라고 미친년아. 감기에 걸렸으면서 뭔 시원한 거야"
"나도 이런 거 말고 콜라 마시고 싶다구..."
"콜라는 무슨. 어서 빨리 나을 생각해야지"
"... 그래도 튀김 우동에다 홍삼차는 아니지... 이게 뭐야"
은하가 병에 담긴 홍삼차를 홀짝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음식점에서 따뜻한 음료가 없어가지고 편의점에서 급하게 사 온 음료였는데... 영 입맛에 맞지 않았나보다.
뭐 어쨌든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나와 은하는 다시 놀이기구를 타는데에 열중했다.
물론 그렇다고 계속 놀이기구만 탔다는 것은 아니었다.
놀이동산 중앙에 있는 화려한 광장. 그 한가운데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은하를, 정확히는 은하의 손에 들린 카메라를 응시했다.
"아니 미소 좀 지으라니까? 카메라에서 까지 무뚝뚝함이 느껴지면 어쩌자는 거야"
"... 지금 열심히 노력하는 거 안 보이냐?"
"... 그게 어딜 봐서 노력하는 건데?"
"아 그냥 좀 찍어!"
욱하는 마음에 내가 화를 내자 은하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에휴... 그럼 찍는다? 하나 두울..."
찰칵
찰칵
놀이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조금 괜찮다 싶은 곳을 발견하면 바로 휴대폰부터 꺼내 드는 은하에 귀찮음을 느낀 나였지만 그래도 은하의 순수한 호의를 저버리고 싶진 않아 묵묵히 사진을 찍고 찍어 주었다.
그렇게 사진도 찍고 놀이기구도 타며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덧 해도 조금씩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으아아...! 진짜 여기 있는 놀이기구 다 타봤네...!"
이름을 알 수 없는 놀이기구에서 내려온 은하가 팔을 쭈욱 펴며 말했다.
은하의 말대로 기어코 우리는 고장이 난 기계를 제외하고는 놀이동산에 있는 놀이기구를 전부 타게 되었다.
"..."
은하가 내려오고 뒤이어 나 또한 터덜터덜 거리며 놀이기구에서 내려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몇십까지나 되는 놀이기구를 전부 타보면서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다.
발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이렇게 몸이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
조용히 은하를 바라봤다.
체력이 다 떨어진 나와는 다르게 은하는 여전히 쌩쌩한 모습이었다.
'저 새끼는 왜 지치지를 않는 거야?'
심지어 감기도 걸렸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몸뚱어리인지 원.
스윽
"...?"
그렇게 내가 지친 체로 은하를 뒤따라가고 있을 때 갑자기 은하가 자리에서 멈춰스더니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크흠! 슬슬 하늘도 어두워지고 사람들도 하나씩 빠져나가는 게 보이니까 말이야..."
"..."
은하의 말에 나는 눈빛을 빛냈다.
'그렇지? 그러면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이만 돌아가야겠지?'
"...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이킹이나 한 번 더 타는 게..."
"..."
텁
"...응?"
나도 모르게 은하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말없이 은하를 노려봤다.
"뭐, 뭐야?! 그 죽여 버릴 듯한 눈빛은...?!!"
"... 이제 그만 가자...? 즐길 만큼 즐겼으니까 말이야...?"
"... 네"
역시 괜히 이상한 기대하기 보단 그냥 먼저 말을 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운 것 같다.
뭐 어쨌든 뜻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던 데이트가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듯...
[아아...]
'응?'
[잠시 후 오후 6시부터 불꽃 놀이가 시작 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
순간 내 몸이 석상처럼 굳어졌다.
"... 진성아?"
"..."
옆에서 기대에 가득 찬 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부러 은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지만 은하 역시 내가 돌린 곳으로 몸을 움직였고 결국 끝내 은하와 눈을 마주친 나는 그 어떤 때보다 눈을 반짝거리는 은하를 볼 수 있었다.
"... 하아 씨발"
내가 한숨을 쉬던 욕을 하던 은하는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아직 돌아갈 시각은 아니나보다.
***
피웅
피유웅
하늘 위로 화려한 불꽃들이 터져 나갔다.
불꽃 놀이를 보러 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가 바빴고 은하 역시 신나게 사진을 찍어됬다.
"..."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수아와 함께 불꽃 놀이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 버린 나였다.
"... 야 유진성..."
"...?"
그렇게 불꽃 놀이를 관람하던 도중 갑자기 은하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 응? 갑자기?"
"... 어, 어쨌든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야야...!"
내가 뭐라 할 틈도 없이 은하는 황급히 자리에서 벗어났고 나는 멍하니 은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졸지에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혼자 남겨져 버렸다.
"... 하긴 오늘 먹은 것만 해도 무지막지하게 처먹었으니까 신호가 올만도 하네"
츄러스만 하더라도 혼자서 그 기다란 걸 5개를 먹은 은하였으니 뭐.
피융
퍼어엉
"..."
그래도 자리를 옮겨야 될 것 같아 근처에 있는 벤츠로 몸을 옮겼다.
'아오... 존나 춥네'
해가 완전히 떨어지니 온도가 확 내려간 기분이다.
문득 주머니에 있는 담배에 손이 움직였지만 만지작거리기만 했을 뿐 차마 담배를 꺼내지는 못한 나였다.
"... 아 그지 같네... 이런 곳은 남자랑 같이 와야 되는데..."
"이 쌍년이 탈 때는 제일 재밌게 타놓고선 갑자기 남자 타령이야?"
"아... 섹스하고 싶다... 누구는 씨발 고딩 때 아다를 떼는데..."
"아직 안 했다고 씨발련들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다보며 시간을 때우던 도중 여고생 무리로 보이는 여자 셋이 서로 투닥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 나도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저렇게 지냈었는데...'
지금은 그 상남자 새끼들이 모두 좆 같은 새끼들로 변해 버렸으니 원.
애초에 이곳에 법칙으론 내가 이상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에 친구들이 사무라치게 그립기는 했다.
'... 그나저나 은하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불꽃 놀이도 점점 끝나가고 사람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하는데 이거 전화라도 한통 해 보는 게...
스윽
'응?'
그러던 그때 내 앞에 인기척과 함께 3개의 큰 그림자가 나를 뒤덮이기 시작했다.
"... 저기 오빠"
"...?"
"오빠 여자 친구 있어요?"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 올렸고 내 앞에는 교복을 입은 여자 셋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여자 친구 있어요 오빠? 없으면 제가 괜찮은 얘 소개해주려고 하는데"
"..."
"에이... 오빠 이러지 말고 저희 번호 교환해요. 오빤 어디 살아요? 저희는 강서쪽에 사는데..."
그중 남자 친구가 있다고 추정되는 여자가 계속 치근덕 거렸다.
더 이상 말하기도 귀찮았던 나는 대충 학생들의 말을 무시했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내게 번호를 달라며 무리한 요구를 부탁했다.
'... 왜 이러지? 그러고 보니 유독 세계가 바뀌고 나서부터 여자가 많이 꼬이는 것 같다니까?'
객관적으로 내 외모가 그렇게 잘생긴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때 해변에서 만난 양키년들도 그렇고 왜 자꾸 여자가 꼬이는 건지 문득 의구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나 어떻게 생겼니?"
"... 네?"
"그러니까 내가 잘생겨서 번호를 달라고 한 거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을까? 여학생들은 내 말에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나는 괜찮으니 솔직하게 답해 달라고 말했다.
"솔직히 그렇게 잘생긴 편은 아니신데요..."
"그럼 왜?"
"으음... 그러니까 오빠는 뭔가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라고 해야 할까? 뭐 어쨌든 그런 이상한 매력이 있으세요"
"...?"
이해를 못 한 내가 방금 말을 한 학생을 멀뚱히 바라보자 그 남자 친구가 있다는 학생이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냥 남자 친구였으면 좋겠다 라는 뭐 그런 매력이 있으시다구요. 오빠 지금, 이러는 행동도 매력있다는 거 알아요?"
"...?"
여학생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생겼는지를 묻는 게 매력 있는 행동이라고?
'이게 왜 매력 있는 행동이라는 거지?'
들으면 들을수록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이상한건지 아니면 쟤네들이 이상한건지 참... 괜히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와 근데 진짜 오빠 쟤량 번호 교환하기 싫으면 저랑이라도 번호 교환 해주시면 안 되요? 오빠 진짜 내 스타일인데..."
"...? 야 너 남자 친구 있잖..."
"쓰읍...! 뭔 개소리야 오빠 오해하잖아!"
"아니... 너 그럼 희성이는..."
"아 좀 닥치라고!"
"..."
'그나저나 얘들은 언제 갈 생각이지? 이제 슬슬 그만 좀 가줬으면 좋겠는데'
이럴 때 은하가 딱 나타나 주면 바로 해결이 될 텐데. 얘는 어디에 있는거...
"유진성"
"...?"
"너 뭐하냐 거기서?"
어디선가 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은하의 여학생들은 당황해 했지만 은하는 여학생들에게 눈길 하나 안주고 세상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집에가자. 너 피곤하다며"
"... 지가 늦게 처와놓고선"
은하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간 타이밍 하나 만큼은 참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년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