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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20화 (20/72)

〈 20화 〉 음모(5)

* * *

"...네, 네?"

자기 귀를 의심했는지 소연쌤은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음? 다시 말해 줘요? 저랑 진성이는 같이 잠도 자는 그런 사..."

짝­

"악!!"

그리고 그대로 다시 말하려던 은하에게 나는 정말 진심으로 온 힘을 끌어모아 은하의 등에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야 이 미친년아...!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아으으..."

이 또라이가 정신 나간년이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정신이 나갈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씨발 얘는 도대체 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지? 어떻게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에게 그딴 말을 처 할 수 있는 거야.

생각보다 내 스매싱이 많이 아팠는지 은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자기 등을 쓸어담았다.

"전부 다 개소리니까 얘가 한 말 그냥 잊어버려주세요 소연쌤"

"... 그게 왜 개소리..."

"넌 좀 닥쳐 미친년아!"

"아니..."

계속 자기는 피해자라고 중얼거리는 은하였지만 나는 사뿐히 무시하고 소연쌤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소연쌤은 내 말을 믿는 듯한 눈치였다. 아니 애초에 소연쌤이 은하의 말을 믿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게 아닌가.

"아하하... 두 분 참 친해 보이시네요"

"... 어휴 죄송합니다"

소연쌤이 특유의 헤맑은 미소를 지어 주고 나도 그에 따라 미소로 환답했다.

"... 너 나한텐 그런 미소는 안 지어줬으면서..."

"아오 좀 닥치라고"

옆에서 은하가 개지랄을 떨쳤지만 이번에도 역시 사뿐하게 무시했다.

그러자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은하는 이에 잔뜩 삐진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며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런 은하의 태도에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내뱉었다.

'... 어유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주면서 달레줘야겠네'

뭐 어차피 PT시간이여서 은하에게 그만 꺼지라고 말하려 했는데 하여간 참 손이 많이 가는 년이다.

"... 하하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은하가 사라지고 소연쌤이 나를 보고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어쨌든 대충 그렇게 몸을 풀고 본격적으로 PT에 들어섰는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선 이 자세로 유지하시고..."

"끄으응!"

"아니요. 좀 더 팔을 들어 올리시고..."

"흐윽! 흐어억!!"

이런 씨발 더 이상은 못 참겠네. 저 또라이 새끼는 나를 수치사로 죽일셈인가 왜 자꾸 지랄을 하는 거야.

소연쌤에게 PT를 받고 있었지만 도무지 PT내용이 들어오지가 않았다.

서은하 저 미친년이 바로 앞자리에서 요상한 소리를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으윽!!!"

"..."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지금 당장 소연쌤만 하더라도 계속 힐끔 거리시는데 어우 운동을 하는 처지에선 저 새끼가 얼마나 좆같으실지... 괜히 내가 죄송스러워진다.

"... 한 번 갔다 오실레요?"

"... 죄, 죄송합니다"

얼굴이 시뻘개진 내가 안쓰러웠는지 소연쌤은 10분간 쉬는 시간을 잡아 주셨다.

나는 그대로 곧장 서은하에게 다가갔고 누워 있는 은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흐으으...?!"

"너 뭐 하냐?"

"... 뭐 하긴 운동하잖아"

지랄하지 마 개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혔다.

"너 지금 니가 하는 운동이 뭐 하는 운동인지는알아?"

"어... 존나 큰 아령운동?"

"... 에휴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은하의 말에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는 자기가 하는 운동이 무슨 운동인지도 모르면서 하는 거야?'

아니 그러면 트레이너나 하다못해 다른 운동을 하는 회원분에게 물어보던가 해야지 왜 혼자 끙끙거리는 거야.

"에이 뭐 별일이라도 생기겠어"

"아니 씨발 내가 별일이 생긴다고 미친년아!"

"... 너가 왜?"

숨을 헐떡거리며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은하의 눈빛에 나는 다시 한번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결국 소연쌤의 극적인 도움으로 일차적인 문제는 해결은 됐지만 내 수치스러움은 해결되지가 않았고 내가 자기 때문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은하도 슬며시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아하하... 친구분이 재미있으신 분이네요"

"..."

재밌기는 무슨 내 성격상 내가 왜 쟤랑 연이 맺혀졌는지 나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그럼 이제 이어서 시작할까요?"

"... 예"

다행히 그 이후론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피해를 볼 걸 다 본 나로선 PT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소연쌤 특유의 헤맑은 미소는 이미 죽어 버린 나를 한 번 더 죽이기엔 충분했다.

덤으로 저기 데스크에서 이를 가는 이나쌤은... 에휴 씨발 그냥 나도 이제 대충대충 하련다.

***

"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소연쌤"

PT가 끝나고 확실히 오늘따라 목이 많이 탔는지 비어 버린 물병을 가지고 나는 정수기 앞으로 갔다.

스윽­

"... 뭐야"

"큼! 뭐긴 뭐야 나도 물 좀 마시겠다는데"

그렇게 물을 받는 사이 언제 왔는지 은하가 내 뒤로 다가왔고 나는 무심코 은하를 바라봤다.

"... 넌 근데 무슨 운동을 한 거냐?"

"나? 뭐 그냥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

그럼 씨발 꾸준히 자기 운동이나 할 것이지 왜 자꾸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건데 미친년아.

"... 뭐야 그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은"

"... 에휴 아니다"

하여간 머리에 든 건 별로 없으면서 눈치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빠른 년이다.

어쨌든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빈 병에 물은 가득 담아지게 되었고 나는 뒤로 빠진 체 곧바로 방금 담은 물을 입속으로 털어놓았다.

벌컥 벌컥­

"..."

옆에서 은하의 시선이 느껴져 나는 물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은하가 뭔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 또 어떤 참신한 개소리를 짓거릴까 하는 마음으로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은하에게 물었다.

"... 왜 또 이번엔 무슨 문젠데"

"... 어어?"

"뭘 또 그렇게 쳐다보냐고. 내 얼굴에 뭐 묻었냐?"

"..."

은하는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은데 너무 작아서 들리지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존나' 까지는 들린 것 같은데 뒷 말을 못 들었네'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조금 전에 한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에휴 모르겠다. 니 뭐 물 마신다며"

"으응? 어 그래 마셔야지..."

"마셔야지는 또 뭐야 너는 물 마시는 것도 계획으로 삼냐?"

하여간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뭐 원래 이런 새끼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해는 됐다.

내가 자리를 더 비켜 주자 은하는 정수기 앞으로 가서 종이 물컵을 한 장 뽑아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아씨!!"

물을 가득 담으려고 했는지 차가운 물이 은하의 손으로 약간 튀겨졌고 은하는 화들짝 놀라며 정수기에서 손을 뗐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던 나로선 등신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아니 생각해 보니까 쟤는 등신이 맞잖아?

뭐 어쨌든 종이 물컵에 가득 담긴 물을 은하는 단숨에 들이 마셨다.

물을 마시고 갑자기 사례를 내뱉은 은하의 모습에 이제는 감흥조차 나오지 않은 건 비밀이었다.

"너도 다음부터는 나처럼 물병이나 들고 다녀라"

"콜록... 그래야겠네"

"... 등신"

"뭐라... 콜록! 콜록!"

사례가 제대로 걸렸는지 은하의 기침은 도통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내 한숨도 멈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

문득 그렇게 기침을 해대던 은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색 헬스장 트레이닝복에 물이 젖어 흘러 은하의 속이 적랄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을 마실 때마다 계속 한 방울씩 목구멍으로 흘러 지는 물방울은... 어휴 진짜 얘는 왜 이렇게 칠칠맞은 건지 죄다 흘리면서 마시네.

"좀 닦아 임마"

"응...?"

참다 못한 내가 슬쩍 말하면서 주의를 주자 그제야 은하는 고개를 내려 물 자국이 흥건한 자기 옷을 보게 되었다.

"설마 이거 때문에 아까부터 계속 찡그리고 있었어?"

"그럼 씨발 그렇게 흘리면서 마시는데 신경이 안쓰이겠냐?"

"에이... 그렇다고 말하기엔 이미 내 옷까지 벗겨 버린 사이인..."

에휴 씨발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이 있는데 왜 자꾸 병신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말은 귀담아 들었는지 물을 다 마시고 은하는 벽에 붙어 있는 휴지를 뽑아 자기 젖은 부위를 대충 닦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한 지적은 아니게 되었네.

"너 운동 더 할 거야?"

"이따가 알바 때문에 대충 1시간 정도만 더 할껀데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은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가끔 내가 선입견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은하가 이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도통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새끼 외모랑 행동이 모순이 돼서 그런가?'

그렇다고 하기엔 양아치 짓거리를 하는 걸 몇 번 본적이 있는데... 근데 왜 내 앞에선 찐따마냥 행동하는 거지?

"... 그럼 니는 언제까지 할 건데"

"나? 나도 그냥 니 갈 때 같이 가지 뭐"

뭐 일단 그렇다고 하니까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 야 근데 저 새끼는 아까부터 왜 자꾸 너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냐?"

"... 아 몰라 씨발 말도 꺼내지마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참 근데 니 여기 몇 개월 등록했냐?"

"나? 6개월 등록한 것 같은데?"

"... 흐음"

이 새끼 대충 꼬락서니를 보니까 나 따라서 여기 등록한 것 같은데 이걸 어쩌지 난 2주 뒤에 이용권이 끝나는데.

이걸 어떻게 은하에게 말을 할까 하다가도 지금 말하면 분명히 지랄 발광을 떨게 분명해서 나중에 말하기로 했다.

'에이 설마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벌어지겠어'

무책임한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가볍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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