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 속 처녀 지키기-16화 (16/72)

〈 16화 〉 음모

* * *

"푸하하하!!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래서 그 새끼가..."

사방에서 왁잘지껄한 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여기 생맥 4개랑..."

"네네 잠시만요!"

"저기요 저희 아까전에 시킨 음식은 언제 나오나요?"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이러한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나는 화장실을 가지 못할 정도로 쉴 틈 없이 돌아다녔다.

'씨발 금요일 저녁에 호프집을 안 오면 뒤지는 병이 있나? 뭔 밑도 끝도 없이 몰려오지?'

유독 금요일만 되면 평소보다 두 세배의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나 혼자 모두 상대해야됐다는 점이었다.

"진성아 4번 테이블 음식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장님 부부도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셨다.

개인적으로 종업원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는데... 사장님 피셜론 계속 알아보고 있다곤 하지만 영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띠리링­

그러는 사이에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그 때 그 사건 이후로 사장님이 단속을 훨씬 강하게 하셔서 더 이상 귀찮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 새로 들어 온 손님은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로 보이는... 어라?

"... 소연쌤?"

"... 진성 회원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소연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도 역시 잠깐 멍하니 소연쌤을 바라봤다.

설마 소연쌤이 호프집에 들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남자랑 같이 오다니 조금 놀라웠다.

소연쌤과 같이 온 남자는... 그냥 평범했다.

난 또 소연쌤 성격상 만나도 운동하는 남자를 만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그런데 보통 운동하면 술이나 이런 고칼로리 음식은 피하지 않나?'

"사장님 주문이요"

"여기 그릇 하나만 더 주세요"

"네 지금 갑니다"

뭐 놀란 건 놀란 거고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 이 새끼들은 폭탄주를 만들었으면 마시던가 해야지 왜 만들고 안 마시는 거야"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정리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깨끗하게 먹고간 손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먹고가는 손님들도 적지 않았다.

하여간 이 일은 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는 것 같다.

그나저나 소연쌤과 저 남자분,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음식이 나온 지 한참 되었는데 둘 다 손하나 까딱 안 하고 아까부터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듬성듬성 들려오는 내용을 들어봐선 뭔가 긍정적인 내용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뭔가 사정이 있나보다.

그리고 대충 5분 정도가 흘렀을까 소연쌤과 대화를 하던 남자는 세상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호프집을 나갔다.

"... 하아"

남자가 나가고 소연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소주잔을 따더니 혼자 술을 들이 마시기 시작했다.

항상 밝고 활기찬 소연쌤이 당장에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니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가서 위로해준다는 것은 너무 오지랖인 것 같고 그냥 모른 척해주는 것이 제일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만히 냅두면 어떻게든 정리가 되겠지.

"..."

비록 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함께 쓸쓸해져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어우 이제야 좀 살겠네"

말도 안 되게 무더운 온도를 뚫고 헬스장으로 들어간 나를 에어컨 바람이 반갑게 맞이해줬다.

"진성 회원님 오셨네요. 밖에 많이 덥죠?"

그리고 덩달아 데스크에 있던 소연쌤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래도 어제의 일이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는지 더 이상 무기력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나도 딱히 어제의 일을 소연쌤에게 묻지 않았다.

오늘은 PT를 받는 날이라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소연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럼 간단하게 스트레칭부터 하고..."

처음 PT를 받을 때엔 정말 스쿼트부터 시작해가지고 온갖 고통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그렇게 심하게 고통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진성 회원님! 조금만 더 다리를 당기시고..."

뭐 그렇다고 고통이 아에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PT를 받은 지 얼마 정도 지났을까 나는 소연쌤의 모습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 소연쌤? 괜찮으세요?"

"네? 네 물론이죠 하하..."

그렇게 말하는 소연쌤의 눈빛에는 공허함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어제일이 잘 정리 된 듯 싶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된 것 같이 보였다.

딱 봐도 괜찮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너무 오지랖인 것 같아 나는 다시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쪽에서 일어났다.

"... 진성 회원님"

소연쌤이 알려준 자세로 열심히 운동을 하던 중 갑자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소연쌤이 나를 불렀다.

무언가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한 소연쌤의 모습은 나를 다시 한 번 놀라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 혹시 어제... 들으셨어요? "

"... 네?"

당황한 나는 소연쌤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설마 소연쌤이 먼저 이 얘기를 꺼낼 줄이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깐의 공백이 흘렀지만 소연쌤은 차분히 내 대답을 기다렸고 나도 말하기를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 죄송합니다"

비록 모든 대화를 들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어제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다.

그렇다고 안 들었다고 말하기엔 소연쌤도 내가 대충 눈치를 챈 걸 알고 있는 추새였고 그냥 사과하는 편이 깔끔할 것 같았다.

"어우 아니에요 진성 회원님이 사과할 일이 뭐가 있으세요 제가 뭐 따지려는 게 아니라... 그냥 조금 부끄러워가지고 헤헤..."

"... 아..."

머리를 긁적이며 특유의 헤맑은 미소로 화답하는 소연쌤의 모습에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살면서 호감을 가져본 사람이 정말 몇 안 되는데... 뭔가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소연쌤의 눈동자에 까맣게 타들어갔다.

***

부스럭­

멀리 가지도 않았다. 소연쌤은 나를 자기 개인 사무실로 데려왔다.

"죄송해요 뭐라도 마실게 이것밖에 없네요"

"어유 저 이거 되게 좋아해요"

냉장고에 가득 담겨져 있는 에너지 드링크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네 주었다.

'... 비싼 거 드시네'

이해할 수 없는 가격 때문에 쳐다도 안 봤는데 저런 게 쌓여 있다니.

생각보다 트레이너의 수입도 나쁘지 않나보다. 아니면 소연쌤이 특별나게 돈을 잘 버는 건가?

어쨌거나 시원하게 음료수 캔을 따고 한 모금을 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저희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정말 저한테 상담 받으셔도 괜찮으세요?"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웠다. 보통 이런 상담은 깊게 사귄 사람들에게 나누지 않나?

"저희가 만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래서 진성 회원님께 상담을 받고 싶은거에요. 저에 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으시니까 편견 없이 직설적으로 판단하실 것 같거든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소연쌤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기는 한데... 뭐 일단 한번 들어 보기나 해야겠다.

"제가 지금까지 쭉 만나왔던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묵묵히 소연쌤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연쌤도 내가 별다른 말하지 않고 침묵하자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약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그렇게 어제 있었던 일을 마지막으로 말하며 소연쌤은 이야기를 끝맺었다.

"... 진성 회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나는 조용히 음료수를 들이켰다.

비록 한 번도 연애해보지 못한 모쏠이었지만 그래도 소연쌤의 상황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제가 하는 말이 당연히 정답일리는 없지만..."

음료수를 모두 마시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결국엔 소연쌤의 열렬한 헬스 사랑이 문제가 된 것 같았다.

뭐 그렇다고 무조건 소연쌤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되게 소연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었다.

소연쌤이 무슨 헬스에 미쳐가지고 기념일이나 그런 걸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기 운동 패턴을 쪼개서 없는 시간을 겨우겨우 만들었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남자 친구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됐으니 원'

솔직히 이 정도면 나는 이 문제가 소연쌤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헬스는 핑계고 그 남자가 소연쌤과 정리하고 싶어서 억지로 밀어붙인 일 같았다.

그렇게 내 생각을 정리해 소연쌤에게 들려주었다.

"... 그러니까 너무 상심해하지는 마세요. 소연쌤이라면 분명히 그 남자분보다 더 멋진 분을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 헤헤 그러면 저도 좋겠네요..."

내 말에 소연쌤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나로선 솔직히 그런 소연쌤이 공감이 가질 않았지만 그래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였다.

"...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을 못 한 것 같아가지고..."

"아니에요! 진성 회원님 덕분에 저도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기가 쉬웠어요! 그러니 그런 말하지 않으셔도 되요"

"하하... 그러면 다행히네요"

소연쌤이 헤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소연쌤의 모습에 이번에는 나도 최대한 밝은 미소를 소연쌤에게 지어주었다.

'... 씨발 이렇게 짓는 게 맞겠지?'

내 딴에선 최대한 지어본다고 했는데 뭐 미소를 지어본 적이 있어야지 원.

쾅­

"자, 자! 제가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죠? 그럼 이제 다시 힘차게 운동을 하러 갑시다!"

그러자 놀란 눈으로 내 미소를 본 소연쌤은 갑자기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지더니 빠르게 자리를 박차며 사무실을 나갔다.

졸지에 혼자 덩그라니 남겨진 나는 잠시 멍하니 소연쌤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

그래도 최대한 지어본 미소였는데 보는 이에 입장에선 좆같았나보다.

뒤늦게 민망함이 찾아고 나도 얼굴을 붉힌체로 사무실을 나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