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찌라시(2)
* * *
띠리릭
"..."
문을 열고 고시원으로 들어오자마자 나는 침대 위로 힘없이 몸을 던졌다.솔직히 헬스장에서 고시원까지 이렇게 걸어온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 씨발 뒤지겠네"
장난이 아니라 살면서 오늘만큼 힘든적이 없었다. 잔뜩 부은 근육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됐고 확실히 복잡한 생각들은 많이 비워졌지만 대신에 육체적인 피로감을 잔뜩 얻게 되었다.
이거 오늘 알바를 갈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대충 2시간 뒤에 나가야 되는데... 씨발 아예 일어나지를 못 하겠는데? 이런 병신같은 상태로 손님들을 받을 수가 있으려나?
"... 대타를 받을까"
띠리링
그렇게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서은하]
'뭐지 뭔 일이 생겼나?'
아까 통화를 한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의아한 마음을 뒤로하고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서은하의 한 마디에 내 얼굴은 빠르게 굳어졌다.
[잡았어]
생각보다 범인이 빨리 잡혔나 모양이다. 전화가 끊기고 나는 눈살을 찌푸린 체 억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어떤 새끼인지 면상은 한 번 봐야지..."
도저히 못 움직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버틸만은 했다. 다행히 몸 상태를 보니 대타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서은하가 나를 부른 곳은 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그 골목이었다.
골목에 들어서자 입에 담배를 문 서은하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고개를 숙인 여자 한 명이 서 있었고 보니까 이미 한 바탕을 했는지 여자의 몰골은 엉망진창의 모습이었다.
"왔냐?"
"나도 한 대만"
자연스럽게 서은하에게 담배를 받아 입에 문 뒤 나는 조용히 문제의 여자를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근데 씨발 그런 사람이 왜 도촬을 한거지?
"쟤냐?"
"응 저 새끼야 그 도촬범이"
은하의 말에 여자는 움찔해하며 이미 숙인 고개를 더욱 더 깊게 숙였다.
"어떻게 찾았냐?"
"... 뭐 다 방법이 있는 데... 하여튼! 너 씨발 왜 우리 왜 찍었냐?"
뭔가 구린 게 있었는지 은하는 갑자기 도촬범에게 버럭 화를 내질렀다. 그래 뭐 일단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상관없겠지.
은하의 말에 도촬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은하에게 쫄아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침묵하는 여자의 모습에 은하는 실소를 내뱉으며 주먹을 움켜쥐자 도촬범은 기겁해 하며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우, 우연히 그냥 가다가 둘이 같이 나오는 모습이 보여서..."
겨우 들려진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면서 힘을 잃었고 어느새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촬범은 다시 침묵을 한 체로 고개를 숙였다.
어쨌거나 나는 도촬범의 말을 이해해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니까 얘가 한 말을 정리해 보자면 나랑 서은하가 그저 같이 나왔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다는 말인데...
"이건 뭔 개소리야 우리가 같이 나온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아니 씨발 용서고 나발이고 그게 어떻게 도촬을 한 이유가 되냐고"
나는 무슨 얘가 우리에게 원한이 있어서 이딴 짓을 한 줄 알았는데 씨발 그냥 나랑 서은하가 같이 나와서 찍은 거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입에 물린 담배가 모두 타들어 가자 서은하는 자연스럽게 내게 담배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나는 도촬범에게 물었다.
"... 후우 그래 씨발 백번 양보해서 찍은 건 그렇다 치자. 그러면 사진은 무슨 이유로 올린 건데? 네 논리대로라면 그것도 그냥 사진첩에 있어가지고 올린 거야?"
만약에 그렇다고 할 경우 나는 서스럼없이 이년의 면상을 갈길 것이다.
"..."
'... 씨발 설마 아니겠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도촬범의 모습에 나는 서은하를 바라봤다.
서은하는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헛웃음을 치며 도촬범에게 다가갔고 화들짝 놀란 도촬범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그냥 이, 이 사진을 올리면 관심을 받을 것 같아서..."
"..."
"...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관심을 받기 위해서 사진을 올렸다고?
"허어... 참"
도촬범에 말을 듣고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분노가 차갑게 식어 버렸다.너무 어이가 없으니 오히려 허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에 쥐어진 두 번째 담배는 첫 번째 담배보다 훨씬 빠르게 타들어갔다.
"... 담배 더 있냐?"
"지금 내가 물고 있는 게 마지막인 데... 이거라도 줄까?"
그러면서 자기가 반쯤 태운 담배를 손에 쥔 체 서은하는 나를 바라봤다. 꼴에 지딴에선 치명적인 눈빛을 짓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냥 등신같아 보였다.
"... 됐다. 나 간다"
잠깐 도촬범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간 나까지 병신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어어? 야 그래서 얘는 어쩔 건데"
"몰라 네가 알아서 처리해. 이미 사진은 뿌려졌는데 저 새끼가 사과문을 올려도 아마 그렇게 큰 이슈는 안 될 거야"
찌라시의 특성상 어처피 여기서 뭘 해도 나만 욕을 처먹을 것이다.
'해명을 해봤자 소문만 더 늘어나겠지'
그럴바엔 여기서 덮어 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인 행동일 것이다.
"... 그냥 이대로 넘어가자고?"
"아씨! 그럼 뭐 어떡해. 걍 나중에 다른 찌라시가 나오면 사라지겠지"
내 말에 서은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냥 지금은 빨리 고시원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 야! 그럼 얘는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
내가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오자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은하는 골목 안에서 내게 소리쳤다. 보니까 자기도 그런가 하고 넘어가려는 듯한 눈치였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대신에 난 이제 이 일에 손을 대지 않을 거니까 지금부터는 니 독단으로 행동하는 거다?"
"알았어"
내 말에 왠지 모르게 쎄한 표정을 지은 서은하였지만... 에휴 씨발 모르겠다. 저 새끼는 서은하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설마 죽이기라도 하겠어?
"... 쩝"
입안이 허전했다. 기분도 좆같은데 가면서 담배나 한갑 사야겠다.
***
드르륵
문이 열리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그런 감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 감응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노골적인 시선을 듬뿍 맛보고 나는 강의실 구석탱이에서 짐을 풀었다.
저쪽에서 재현이가 안절부절해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오기 전 내가 오지 말라고 했던 말 때문에 자리에서 잠잔코 있었다.
"... 어이가 없어가지고"
"그러니까 말이야. 어떻게 저렇게 당당 할 수..."
이놈의 뒷담은 끊이지가 않았다. 어우 씨발 그래도 사내 새끼가 흥흥 거리며 지랄하는 건... 역전이고 나발이고 존나 역겹네.
'어휴 등신들'
속으로 욕을 삼키며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 뭐야? 존나 조용하네"
다시 문이 열리고 서은하가 강의실로 들어 왔다.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서은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고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았다.
더 이상 이쪽으로 노골적인 시선들이 오지 않았다. 역시 얘는 미움을 받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넌 뭐 방금 일어났냐? 꼴이 그게 뭐야"
"... 어떻게 알았어? 나 일어나자마자 시간 보고 뛰어왔는데"
붕뜬 머리와 피곤해 쩌든 눈동자를 지켜든 체로 은하는 나를 바라봤다. 확실히 얼굴이 깡패라고 분명 병신같은 행색이었지만 이렇게보니 뭔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왜 이렇게 쳐다봐 부끄럽게..."
"... 에휴"
그에 비해 머가리는 텅텅 비었지만 이건 또 나름대로의 밸런스겠지.
그나저나 교수님은 오늘도 지각이시나 보다. 도대체 왜 지각을 하시는 건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수업은 제 시간에 끝내주시니'
뭐 교수님도 사정이 있으시겠지. 딱히 강의를 못 들을 정도로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실래?"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던 중 서은하가 캔커피 두 개를 꺼내 그중에 하나를 내게 건넸다.
오면서 사 왔는지 캔커피는 아직 차가웠다. 하여간 이상한 센스는 차고 넘친다니까.
"그래서 그 새끼는 어떻게 됐는데?"
치익
익숙한 싸구려 맛을 음미하며 서은하에게 물었다. 아니 이건 씨발 어떻게 마실 때마다 맛이 더 연해지는 것 같지?
"응? 누구?"
"걔 말이야. 도촬범 새끼"
물론 더이상 나는 관련이 없는 얘기였지만 그래도 뒷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했다.
"아... 뭐 말로 잘해결했어"
서은하는 뭔가 어색해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보니까 뭔가 또 뭔 일을 일으킨 것 같은데...
"그나저나 너 오늘 시간되냐? 내가 기가막힌 맛집을 하나 알아왔거든?"
그러던 중 갑자기 서은하가 수업이 끝나고 밥을 먹자고 제안을 했다.
"됐어. 너나 많이 처먹어라"
"에이 그러지 말고..."
결국 밥을 사준다는 조건하에 서은하와 점심을 함께 했고 나도 더이상 그날 벌어진 뒷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