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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52화 (52/186)

< 5. SSS급 슈퍼스타 >

"네. 김수한입니다. 고주혁 씨요? 고주혁 씨는 아직 오디션 프로그램 촬영 중이라 아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연락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수한은 매일 같이 걸려오는 전화에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줄어들 줄 알았던 고주혁의 방송 분량이 확 늘어나면서 이제는 고주혁이 우승자가 아니면 이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고주혁도 방송을 보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경연 때는 훨씬 더 날아다녔다. 방청객의 분위기부터 압도적으로 고주혁을 응원하니 고주혁이 자신의 인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제 곁에서 늘 힘이 되어주는 수한이 형에게 결과로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소감 촬영을 마치기가 무섭게 고주혁이 수한에게 달려들었다. 남자가 달려드니 징그러우면서도 열심히 한 결과가 바로, 바로 보이니까 수한 또한 기분이 좋아서 받아주게 되었다.

"피곤하죠?"

"아니요. 하나도 안 피곤한데요."

무대 분위기에 취한 게 아직도 남아있는지 유난히 들뜬 고주혁의 모습에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한은 고주혁이 들떠서 무슨 사고라도 치기 전에 얼른 집에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근데 매니저님."

"아까는 수한이 형이라면서요."

"네?"

"형이라고 부르세요."

이 정도 함께 했으면 정이 안 생기는 게 이상했다. 수한의 호칭 수정에 고주혁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무언가 수한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 건지 눈이 지나치게 반짝여서 수한은 어색한 미소가 먼저 나왔다. 괜히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나 싶었다.

"수한이 형. 저 데려다준 후에 사무실에 가시나요?"

"네. 그러려고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시네요."

"지금은 바쁜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한 만큼 일이 잘 풀리니 좋았다. 고주혁은 다음에는 에이치 작곡가님에 대해서 말하겠다며 평소답지 않게 말을 많이 했다.

"작곡가님이 들으면 좋아하시겠네요."

"그렇겠죠? 제가 에이치 작곡가님을 만난 이후로 여자 이상형이 바뀌었잖아요. 목소리 예쁜 사람으로요."

작곡가 에이치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리는 고주혁을 보고 있자니 수한은 이제 저 들뜬 감정을 식힐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고주혁 씨."

"네?"

"초심 잊은 거 아니죠?"

수한의 말에 고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트러졌던 몸의 자세를 다시 잡았다. 너무 들떠서 순간적으로 말을 막 뱉어버렸다. 잘못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말이었다. 수한과 단둘이 있어서 한 말이었지만, 수한은 엄격한 매니저였다. 나중에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러면 곤란하다.

"죄송합니다. 초심 안 잊을게요."

"네. 성공한 후에도 잊으면 안 됩니다."

고주혁은 명심하겠다는 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개인적인 말과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는 일은 해서는 안 됐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수한은 고주혁이 집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출발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성민이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수한을 반겼다.

"촬영은 잘했어?"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응? 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에 수한은 쓰게 웃으면서 말했다.

"회사에서 도움 준 거 알고 있습니다."

"알아챘어?"

"네.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챌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재성 PD가 순순히 고주혁의 분량을 늘려줄 리가 없다고 여겼다. 게다가 수한을 대하는 이재성 PD의 태도가 딱 가온에서 무언가를 했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수한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성민을 채근하자 성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대표님이 저래 보여도 자존심이 엄청 세거든."

어쨌거나 엘 엔터테인먼트가 경솔하게 나선 덕분에 수한이 이득을 보았다.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이재성 PD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면서 고주혁의 우승이 거의 확정되었다.

"근데 너무 방심하지는 마."

"물론이죠."

"아니, 그쪽을 말한 게 아니야."

"네? 그러면 어떤 걸······."

"고주혁이 말이야."

"고주혁 씨요? 고주혁 씨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수한은 그런 말이 아니라며 손을 젓는 성민의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고주혁이 완전히 가온의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네가 한소원을 데려온 것처럼 고주혁을 데려가고 싶은 기획사가 많다는 거지."

"하긴 고주혁 씨의 스타성이라면 충분히 탐낼 만하네요."

수한도 처음 고주혁을 봤을 때 흔들렸으므로 인정했다.

"너도 그래서 최명훈한테 뺏어온 거 아니야?"

"굳이 따진다면 먼저 시작한 건 최명훈입니다."

더 정확하게 따진다면 남일이 한 일이지만, 굳이 성민의 앞에서 남일의 험담을 할 필요는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히는 법이니까. 아무리 성민이 수한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수한과 남일, 둘 중 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남일이었다.

"아무튼,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아! 이지훈과는 연락이 돼서 직접 만났어."

"어떻던가요?"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하네. 경연 때 많이 힘들었나 봐.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상태가 괜찮더라고."

"내면이 강한 사람이니까요. 이번 일이 끝나면 잘 극복할 수 있게 옆에서 돕겠습니다."

편법을 싫어하는 사람이니 힘들어할 만도 했다. 수한이 그 이유로 이지훈을 좋아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현우가 마음에 걸리는 건가 싶었다. 지훈이 스타로드에서 딱 그랬을 것 같아서. 하지만 이현우는 지훈처럼 양심 있게 하차할 용기가 있는 친구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는 고주혁 과였다.

**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주혁은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모습에 이재성 PD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항의하러 온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남자를 보고는 고개를 휙 돌리며 못 본 척하였다.

"계속 이런 식이면 회사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이재성 PD의 알게 뭐냐는 태도에 남자는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 더 행패를 부리다가는 이현우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에 애써 참았다. 차라리 이재성 PD가 아닌 방송국에 따지는 게 나았다. 이미 회사에서도 그러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디 두고 보자고.'

오만하게 웃는 남자를 향해 이재성 PD야말로 비웃음을 던졌다. 이미 위쪽과도 대화를 마친 상태였다. 이재성 PD가 케이블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그 공을 위쪽에서도 높게 사서 허락한 편집 권한이었다.

수한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본 후에 참가자들이 있는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를 봤다. 네 명이 남아있다 보니 하나같이 스타성이 있는 참가자들만 살아남았다. 그중에서 가장 스타성이 있는 건 고주혁이었다.

'역시 고주혁 씨가 있는 방으로 가네.'

수한이 자리에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들어가는 모습이 대형 기획사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수한이 없는 틈에 고주혁을 꼬드긴다.

'정말 치졸하게 나오네.'

성민이 염려한 대로였다. 수한은 복도에 기대 남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마주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일이 잘 안 풀렸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나오는 남자에 수한이 먼저 얼굴을 들이댔다.

"아! 깜짝이야!"

"안녕하세요. 이현우 씨 사촌분을 이런 데서 볼 줄 몰랐네요."

"저도 그쪽처럼 참가자들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상관하지 마시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레 찔려서 말하고 있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면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가자 재수 없다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고주혁은 이미 메이크업을 받은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형. 오셨어요?"

"뭐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아니요. 물이면 돼요."

고주혁이 들고 있던 물을 마시자 수한은 평소처럼 옆에서 고주혁에게 필요한 물건을 챙겼다. 이미 남자와 수한이 마주친 걸 본 고주혁이기에 고주혁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수한을 의아하게 봤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저 사람이 무슨 말 했는지 안 궁금하세요?"

"네. 안 궁금합니다. 어차피 선택은 고주혁 씨가 하는 거니까요."

수한이 아무렇게 않게 말하자 수한은 얼마 안 가 고주혁의 감동한 얼굴을 발견하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남자끼리 이러니까 조금 징그러웠다. 저런 얼굴을 볼 바에야 차라리 까칠한 성예진이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성예진 씨는 요즘도 한창 잘 나가지.'

광고를 얼마나 많이 찍는지 트는 곳마다 나와서 성예진의 소식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정이 들어서 그런가? 그녀가 조금 보고 싶긴 했다. 막상 보면 바로 이 생각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제가 형을 선택했으니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형이 사람 보는 눈 있듯이 저도 있거든요."

고주혁은 자신을 믿어주고, 이 자리에 오게 해준 수한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고주혁이 오만해져서 경솔하게 굴려고 할 때마다 수한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 고주혁에게 수한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럼 서로 보는 눈이 있다고 믿고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수한은 믿음직하게 말하는 고주혁을 흐뭇하게 보다가 프로그램에서 준비한 또 잡다한 코너에 어서 준비하라고 고주혁의 어깨를 툭 치고 나왔다. 수한이 복도로 나오자 이현우가 어두운 얼굴로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역시 그래도 대형 기획사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

가온에서 그랬던 것처럼 엘 엔터테인먼트에서도 홍보팀을 열심히 돌려서 어떻게든 팬을 끌어모았다. 이재성 PD도 이현우의 분량을 확 줄이지는 못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라이벌 구도가 생기긴 했다. 그러나 팬보다는 안티 팬이 늘어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저게 다 스타가 되기 위해 견뎌야 할 무게겠지.'

수한은 여러 형태의 연예인을 보며 연예인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왕 떠오른 김에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지훈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지훈이 전화를 받았다.

[네. 매니저님.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이번에는 전화 받으시네요?"

[네. 집에 있는 동안 고주혁 씨가 나오는 방송을 봤거든요.]

"그랬습니까? 그래서 어떤 기분이셨습니까?"

[역시 하차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때 매니저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잘했다고 생각했고요.]

"이 프로가 좀 살벌하죠?"

[네. 매니저님한테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요. 고주혁 씨한테 응원한다고 말 대신 전해주세요.]

성민이 말한 대로 지훈은 많이 상태가 나아졌다. 지훈은 수한이 생각한 것처럼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감이 덜 회복되었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수한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지훈의 자신감을 채워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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