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SSS급 슈퍼스타 >
성민은 오늘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남일의 모습에 무슨 일 있나 싶었다. 또 수한이 남일의 심기를 건드린 건가?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남일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말문을 열었다.
"이 실장."
"네. 대표님."
"이 실장이 보기에 이번 일에 회사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
"이번 일이라면······."
"SSS급 슈퍼스타 말이야."
성민은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수한을 향해 던지는 불쾌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민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네. 물론이죠."
"그럼 김수한 몰래 도움 좀 줘 봐."
"네?"
성민은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남일은 특유의 고집 있는 얼굴로 말했다.
"중소라고 무시하는 것도 유분수지."
"왜요? 어디서 우리 무시해요?"
"김수한과 면담하고 나서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이 왔었어."
"대표님께 직접요?"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것도 기분 나쁘네."
남일은 그때 생각만으로도 이가 갈리는지 대놓고 분노하였다. 성민은 대충 상황이 짐작되었다. 성민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물었다.
"거기서 뭐라고 그랬는데요?"
"어차피 우승은 힘들 거니까 깔끔하게 포기하라고 하더군. 대신 자기네 가수 육성 방법을 알려주겠다는데 그건 개나 소나 다 아는 법이 아닌가?"
물론 어느 정도 자기들만의 방법이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걸 가지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며 거래하자는 꼴을 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적어도 배우 분야는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훨씬 앞서고 있었다.
아무리 수한이 마음에 안 들어도 수한은 회사에 도움을 주는 아군이지 적은 아니었다. 그래서 남일의 마음이 180도로 싹 바뀌었다. 성민은 제대로 화가 난 남일을 보며 크게 기뻐했다.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해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티 나지 않게 몰래 하겠습니다."
남일의 눈에는 이제 수한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기획사 간의 전쟁이었다. 성민은 언젠가 수한과 나눈 적이 있던 이재성 PD의 특성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
'이상하네.'
갑자기 팬카페 회원 수가 확 늘었다. 수한은 이상함을 느끼고 각종 커뮤니티 반응을 보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누구인지 몰라도 일당백 하는 팬이 고주혁에게 생겼다. 글만 봐도 고주혁에게 얼마나 애정이 있는지 느껴지는 영업 글이 곳곳에 퍼졌다. 안 그래도 SSS급 슈퍼스타가 재방송을 많이 하므로 두 개가 이어지니 금세 고주혁의 팬이 늘었다.
수한은 열심히 활동하는 팬에게 개인적으로 쪽지를 보내려다가 하지 않기로 했다. 고마운 것과 별개로 팬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그런 일을 했다가 잘못 걸리면 고주혁의 이미지도 함께 안 좋아질 수 있다.
'보상한다고 해도 그건 모든 경연이 끝난 후에 해야지.'
고주혁은 수한이 핸드폰을 뺏지 않아도 자기 관리를 잘해서 걱정할 게 없었다. 그만큼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수한은 그 열망을 고주혁의 장점 중 하나로 뽑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촬영을 하려고 모인 건가요? 경연하는 날이 아니잖아요."
수한이 옆에 있는 스태프에게 물어보자 스태프는 재미있는 걸 물어봤다는 얼굴로 눈을 반짝였다.
"몰래카메라요."
"아! 그거라면 확실히 각자의 매력이 잘 드러나겠네요."
"네. 시청자 의견에 많이 올라오는 의견이라서 수용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사회자도 함께 이 자리에 왔나 보다. SSS급 슈퍼스타의 사회자는 아나운서로 활동하다가 프리랜서 선언을 하며 각 프로그램 MC로 활약 중이었다. 수한은 이재성 PD와 대화를 나누는 사회자를 보면서 고주혁을 걱정하다가 말았다.
'놀란다고 해서 욕을 할 성격은 아니지.'
오히려 고주혁은 놀라면 안색이 하얘진 채로 굳어있는 타입이었다. 수한은 참가자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스태프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물었다. 수한은 이런 장난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럼 귀신 분장하실래요?"
"역시 그런 쪽입니까?"
공포물이라면 더욱더 환영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 내심 분장하고, 지우는 게 귀찮은 일이라 스태프들끼리 귀신 역할을 서로 미루고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나선 수한은 반김의 대상이었다.
"최대한 무섭게 해주세요."
수한은 참가자들이 함께 있는 방에서 이현우의 옆에 붙어있던 고주혁을 떠올렸다. 수한이 시키는 대로 잘하는 중이었다.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만, 편집을 당하지 않으려면 분량이 가장 많은 사람 옆에 붙어있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다. 물론 작정하고 자른다면 자를 수도 있겠지만, 팬카페에서 활동하는 고주혁의 팬들은 윌리를 찾는 것처럼 전체 샷에서도 고주혁을 잘 찾아냈다. 깨알같이 고주혁을 화면에서 찾아내서 앓는 모습에 수한은 팬의 존재를 대단하게 여기게 되었다.
"매니저님. 분장 시작할게요."
왠지 스태프들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수한은 눈을 감은 채로 손길이 가는 대로 분장을 받았다. 그런데 분가루를 얼마나 얼굴에 쏟아붓는 건지 냄새 때문에 죽겠다. 다 됐다는 말에 수한이 눈을 뜨지 허옇게 뜬 달걀귀신이 보였다. 그 위에 까맣고 긴 여자 가발을 쓰니 영락없이 처녀 귀신이었다.
'내가 여자 한복을 입어볼 줄이야.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네.'
몰래카메라는 뻔한 내용이었다. 참가자가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에서 수한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였다. 그래서 놀란 참가자들의 반응을 보는 게 이 몰래카메라의 주목적이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좋긴 했지.'
시즌마다 재탕하여 내보내면서 반응이 안 좋아졌지만 말이다. 특히나 나중에는 참가자들이 알아서 작위적인 연기를 해서 반응이 좋을 수가 없었다. 짜고 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참가자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거죠?"
"물론이죠."
수한의 한쪽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갔다. 재미있는 장난 시간이 시작되었다. 성별 가릴 것 없이 이리저리 다양하게 비명을 지르는 탓에 제작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건질 장면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았다.
"다음은 이현우 씨입니다."
수한은 이현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거울을 통해서 충분히 연습했기 때문에 표정 연기가 갈수록 늘어났다. 수한의 연기력 B가 이런 식으로 발휘되었다. 수한이 거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X발!"
뒤로는 삐- 처리가 될 욕설이 들려오면서 수한은 무서운 표정을 지우고 옆에 있던 스태프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놀라면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현우의 그 모습이 이재성 PD가 밀던 모습과 매우 다르다는 게 큰 문제였다. 차라리 고주혁이면 모를까 이현우는 성실하고 순한 이미지를 민 탓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나왔다. 게다가 웃기게 욕을 했으면 모를까 웃기지도 않고 정적만 일으켜서 아주 최악이었다.
"다시 한 번 찍으면 안 될까요?"
이현우도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재촬영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재성 PD는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하고, 이현우를 모니터실로 보냈다. 이현우가 재촬영을 요구하는 바람에 몰래카메라를 겪은 참가자들 사이의 분위기는 썰렁하다 못해 싸늘해졌다.
'저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안 그래도 방송 분량 때문에 참가자들 사이에 말 나오고 있는데 그 분위기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고주혁이 촬영하는 사람으로서도 훨씬 나았다.
다음은 고주혁의 차례였다. 고주혁은 거울 앞에 앉아 순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수한이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자 악!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저거지!"
고주혁의 웃기게 넘어진 모습에 싸늘한 분위기가 돌던 모니터실에 금세 웃음꽃이 피어났다. 수한은 짧은 순간에 상황 파악을 마치고 제 역할을 다한 고주혁의 모습에 마찬가지로 웃음이 나왔다. 고주혁은 영리한 친구였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았다. 수한이 넘어진 고주혁을 일으켜 세우자 고주혁이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와. 너무 예쁜 거 아니에요? 하마터면 반할 뻔했어요."
"제가 좀 그렇죠?"
고주혁이 먼저 수한에게 말을 걸자 그제야 수한을 알아본 참가자들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친근하게 수한에게 다가왔다. 수한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 얼굴로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놀라는 모습 아주 잘 봤습니다."
"너무 예뻐요."
"누님이라고 불러도 돼요?"
수한이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어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수한은 혼자 다가오지 않는 이현우를 발견하고, 이현우를 향해 손짓하다가 그 앞을 막아서는 남자에 씁쓸하게 웃었다.
"현우는 제가 챙길게요."
"그러세요."
엘 엔터테인먼트 사람이었다. 수한으로서는 뜬금없는 경계에 어이가 없었지만, 저쪽에서 싫다는데 굳이 갈 이유가 없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수한이 분장을 깨끗하게 지우고 옷을 가져다주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한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이재성 PD와 엘 엔터테인먼트 사람이 함께 있었다.
"재촬영은 안 된다니까요."
"그럼 현우는 화면에 못 나오잖아요. 차라리 그럴 거면 오늘 촬영한 거 아예 내보내지 말던가요."
수한이 들어도 이건 억지다 싶었다.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사람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이재성 PD는 굽혀야 할 사람이지, 뻣뻣하게 굴수록 반감이 더 심할 텐데······.'
묘하게 케이블이라 무시하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이재성 PD가 어이없게 봐도 남자는 고집을 부렸다. 애초에 약속된 게 그런 게 아니었냐고 따지는데 드라마 촬영도 아니고, 오디션 프로그램 현장에서 이러는 건 처음 봤기에 황당했다.
'저렇게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될 텐데······.'
이재성 PD의 굳어진 얼굴만 해도 그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수한은 얼마 안 가 잘 편집해달라고 인사하는 남자를 보고는 조용히 혀를 차다가 이재성 PD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너는 뭐 할 말 없냐는 시선에 수한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숙였다. 이럴 때는 납작 엎드리는 게 좋았다. 그 방법이 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재성 PD의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
"PD님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인터뷰?"
이재성 PD는 한참 편집실에 있다가 겨우 탈출했다. 대충 흐름만 잡아주긴 했으나, 도저히 쓸만한 장면이 없었다. 특히 이현우와 관련해서 말이다. 위에서부터 고주혁의 분량을 확 줄이고, 이현우의 분량을 늘리라고 하여 그렇게 하고는 있는데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주혁이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지.'
사소한 행동 하나만으로도 눈이 가게 하는 힘이 있다. 고주혁 위주로 편집하라고 하면 이재성 PD도 재미있게 편집을 할 텐데 가장 분량이 적은 이현우를 좋게 연출하려니까 죽을 맛이었다. 그 와중에 개인 인터뷰가 들어왔다고 하니 이재성 PD의 어깨가 쑥 올라갔다.
이재성 PD는 남기고 갔다는 기자의 명함을 보고 인터넷에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오는 기사들에 누가 이 기자를 보낸 건지 알게 되었다.
'가온 엔터테인먼트?'
왜 아무것도 안 하나 했더니 이러려고 조용히 있었나 보다. 이재성 PD는 방송국이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 잘 보이려는 태도가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안 그래도 엘 엔터테인먼트에서 케이블이라 무시하며 자꾸 압박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태도를 보이니 마음이 싹 바뀌었다.
'위고 뭐고 알게 뭐야. 어차피 SSS급 슈퍼스타를 살린 건 나 이재성인데.'
이재성 PD는 조금 전에 나왔던 편집실로 다시 들어가 잘라냈던 고주혁의 화면을 다시 살려내기 시작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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