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5화 (5/186)

< 1. 새 시작 >

수한이 대본 내용을 곱씹는 동안 차는 어느새 청담에 있는 샵에 도착했다. 수한은 익숙한 골목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말로 확신이 들었다. 자신은 꿈 같은 걸 꾼 게 아니었다. 꿈이라면 이렇게까지 같을 수가 없었다.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야."

신경질적인 예진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재원이 재빠르게 눈치를 주었다. 수한은 죄송하다고 말한 뒤 재빠르게 샵으로 뛰어올라갔다. 샵에는 이미 다른 연예인도 있었다. 귀엽게 생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이돌이다.'

수한이 인식하기가 무섭게 능력치가 떴다.

[한소원- 스타성: C, 연기력: F,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특이하다면 특이한 수치였다. 수한이 소원에게 시선을 보내자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신입도 뻔하네."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예진이었다. 수한은 예진의 반응으로 확실히 밉보인 사실을 알았다.

"그럼 이쪽에서 우리는 대기하고 있을게."

"그러든가."

아니, 어쩌면 누구에게나 저러는 걸 수도 있겠다. 수한이 가만히 서있자 재원이 수한의 어깨를 감싸며 구석으로 데려갔다.

"오늘 정도면 기분 좋은 거니까 크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될 거야. 일단 박시은에 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마."

"네. 명심하겠습니다."

저게 기분이 좋은 거라니 수한도 연예계에 있었지만, 이 좁은 세계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이라서 다양한 사람이 더 많은 걸지도. 여러가지 의미로 관종이 이쪽 계열에 필요한 특성이니까. 그보다 수한은 소원이 신경 쓰였다.

'기타가 S에다가 성장 가능성이 99%라고?'

저 두 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기능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옆에서 조는 재원을 발견했다. 언제 의자에 앉은 건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도 못챘다.

'그런데 우리 정말로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건가?'

보통의 배우라면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상대는 예진이었다. 수한이 재원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자 제원이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 앞에는 수한밖에 없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마워. 다른 건 몰라도 조는 건 예진이가 안 좋아하거든."

"제가 망이라도 봐드릴까요?"

"아니, 신입에게 그런 편법을 가르칠 정도로 못난 선배는 아니라서 말이야. 근데 저 아이돌 팬이야?"

"네?"

수한이 고개를 돌린 순간 소원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수한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소원도 마찬가지로 인사했다. 그러나 묘하게 눈이 초롱초롱한 게 재원의 질문을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 수한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매니저로서 좋은 대답은 아니지만, 신입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 나왔다.

"네. TV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하네요."

예쁘다는 말은 매니저 주제에 면전에서 외모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말을 돌렸다. 그게 정답이었는지 기뻐하는 소원의 얼굴이 보였다. 더불어 신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이 맞았는지 재원의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해도 밖으로 티 내면 안 돼. 우린 매니저니까."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난 잠깐만 예진이 확인하고 올게.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

팬이라는 말 때문인지 이쪽을 신경 쓰는 시선이 느껴졌다.

'인지도가 C랬지?'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는데 팬은 그리 많지 않은 수치인가 의심이 되는 관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맘 때 연예계가 어땠지?'

수한이 본격적으로 아는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5년 뒤였다. 그 전에는 오롯이 연극뿐이었으니까. 물론 그 당시에 흥한 드라마나 노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그 정보를 활용할 수는 있었다.

'일단 이 자리에서 능력을 보여 신뢰를 얻어야겠지만.'

어디에서 대박 연예인이 뚝 떨어져서 운이 좋게 돈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확 뜨지 않는 이상은 수한을 믿고 따라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 능력을 선보이는 게 중요했다.

'이런 생각을 첫 출근하는 신입이 하고 있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그런데 여전히 이쪽이 신경 쓰는지 소원의 시선이 끊이질 않아 수한은 실수했다는 걸 인정했다. 팬이라 했으니 사인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가? 그러나 수한은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아는 매니저였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건지 알아보는 게 낫겠다. 수한이 말을 걸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순간 경쾌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의 주인은 소원이었다. 소원은 핸드폰을 받더니 무슨 대화를 하는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화 내용은 얼마 안 가 크게 들려왔다.

"메일로 신곡 보내놨다고요? 네! 바로 들어볼게요!"

가수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아이돌이 무슨 가수냐고 하지만, 수한은 아이돌 노래야말로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가수라 생각했다. 특히나 자신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0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새삼 스윗걸스의 신곡을 받아올 때가 떠오르면서 소원을 보고 있으니 서둘러 가방에서 헤드폰을 꺼내는 게 보였다. 매니저는 어딜 간 건지 혼자 끙끙 대고 있는 게 보기 불편했다.

'이게 직업병인가?'

유선 헤드폰이었다. 그래도 브랜드명을 보니 꽤 값이 나가는 헤드폰이었다. 소원은 헤드폰 선을 핸드폰에 꽂고 노래를 틀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이 덜 꽂힌 모양인지 그 소리가 바깥으로 들린다는 점이었다. 수한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에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음악의 정보가 눈앞에 떴다.

[오늘 밤- 대중성: A, 음악성: B,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70%]

'음악까지?'

이쯤되면 매니저가 될 게 아니라 점쟁이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리 살면 너무 인생이 재미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수한은 매니저 일을 하다가 배신을 당해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한 번 인생 사는 거 한 분야에서 끝장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들리는 음악과는 무슨 차이인 거지?'

게다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멜로디인 것을 보면 확실히 흥한 노래였다. 누가 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곡을 얻게 되면 소원의 인지도는 더 높아지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노래를 들은 소원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왜 안 들리는지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선이 덜 꽂힌 걸 발견하고는 허둥지둥했다. 그러다가 수한과 눈이 딱 마주치는데 창피함으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있자 이상하게 주변이 싸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주 좋다고 웃고 있네."

어느새 메이크업을 마친 예진이 팔짱을 낀 채로 서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 얼굴을 보니 한듯 안 한듯한 투명 메이크업을 했다. 수한의 눈에는 화장을 안 한 것과 다름이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이러다가 좋아서 침까지 흘리겠어."

예진은 비웃음을 흘리며 먼저 샵에서 나갔다. 뒤에서는 재원이 불안해하는 게 보였다. 정확히는 예진의 심기가 불편해져서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칠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어째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안정적인 사람이 없네.'

수한은 재원을 따라나가려다가 수한을 보는 소원의 시선에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 노래 좋으니 꼭 그 노래로 하세요.'

안 들릴까 봐 엄지를 들어서 보여주고는 빠르게 나갔다. 그런데 운전석에 먼저 타있을 줄 알았던 재원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한데 넌 다시 가온으로 돌아가야겠다. 가면 해야 할 일을 설명해줄 거야."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다가 내려줄 테니까······."

"나 약속 급한데?"

예진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수한은 차는 포기하기로 했다. 길 정도야 핸드폰으로 보고 찾아가면 됐다. 재원이 눈치를 보는 걸 보고 있자니 그가 안쓰러워서 수한이 먼저 거절하였다.

"근처에 버스 정류장 있는 거 봤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럼 어서 가세요."

"조금 있다가 회사에서 봐."

수한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도 예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수한은 다음에는 예진과 안 만나기를 바라며 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

"돌아왔습니다."

"어서 와. 운전 잘해?"

"네. 잘합니다."

"자신감 좋네. 그럼 가자고."

여전히 회사는 열애설 때문에 난리였다. 수한은 따라오라는 성민을 따라 커다란 밴 앞에 섰다. 수한은 성민에게 차 키를 넘겨받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성민이 보조석에 앉는 걸 보고 네비게이션을 확인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박시은."

"예?"

"사고친 놈이 상황 파악을 못한 상태거든. 가서 잡아와야 돼."

"열애설이 어제 터졌는데 아직 모른다고요?"

"유럽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이거든. 또 핸드폰은 안 보고 기내 영화만 줄창 보고 있겠지."

수한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었다. 그러니까 입국하는 시은을 붙잡아서 빼돌리는 게 두 사람의 임무였다.

"근데 저희 두 사람으로 되겠습니까?"

"당연히 안 되지. 이미 공항에 사람 깔아뒀어.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있는 게 낫다고 대표님이 나까지 가라고 하네. 그 덕분에 우리 신입은 새우 등 터지는 중이지만 말이야."

성민의 짠하다는 시선에 수한은 괜찮다며 웃어넘겼다. 사실 시기가 너무 안 좋기는 했다. 그래도 수한은 괜찮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길 때 다른 회사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는 게 나았다. 웃기게도 수한이 차린 기획사에서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발생할지도 모르지.'

연예인에게 따라붙는 파파라치가 많다 보니 어떤 회사는 회사 내에서 연애를 하라고 권고까지했다.

"그런데 둘이 진짜로 사귀는지는 왜 안 물어봐?"

"네? 기밀사항인 것 같아서요."

사실 이미 두 사람이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만, 수한은 적당히 잘 둘러댔다.

"너 보면 볼수록 내 마음에 쏙 든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맞아. 예진이 실제로 보니까 어때?"

"네? 좋으신 분 같았습니다."

"합격. 합격이야. 내 밑에 들어오면 잘 키워줄 테니까 초심 잘 유지해라."

수한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전방주시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성민은 수한의 안정적인 운전 솜씨에 살짝 놀랐다. 일반차는 몰라도 밴은 덩치가 커서 처음 몰아본 사람들은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능숙하니 성민은 보면 볼수록 수한이 마음에 들었다. 인천 공항까지는 고속도로를 타니 금방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래. 일단 주차하고 따로 연락해. 설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거든."

성민은 그 말만 하고 차에서 내려 공항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수한은 성민이 말한 설득의 의미를 곱씹으며 운전하다가 그 의미를 깨달았다.

'부정하라고 설득 중인가?'

수한의 시선은 저절로 공항으로 향하였다. 아마 그 설득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열애설로 시은이 타격받지 않았을 테니까.

< 1. 새 시작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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