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33화 (33/200)

033. 목축 시작 (2)

제 살을 먹어달라니.

소가 미친 걸까.

호러 영화도 아니고 말야.

‘내 귀가 어떻게 된 걸까.’

잊으려 해도 분명히 기억이 났다.

― 내 고기가 맛있다무우우

소가 자신을 먹어 달라는 말하는 것을.

도무지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 호준은 기분이 아주 묘했다

그에게 충격을 준 소는 능글맞게 윙크를 해댔다.

‘시스템 오류 아닐까.’

호준은 잘못 들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려는 순간 다시 한번 들렸다.

― 내 고기는 부들부들하다무우우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지무우우 할아버지에게 물어봐라무우우우

소가 은근슬쩍 호준의 손바닥에 허리를 비비적댔다.

호준은 소의 뻔뻔함과 당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진짜야? 네 소고기가 맛이 좋다 이 말이지?”

― 그렇다무우우! 여기봐라무우우! 뱃살이 아주 통통하고 맛있다무우우!

소가 적극적으로 몸을 비비자 맞닿은 손바닥에서 마찰열이 일어났다.

계속 윙크하는 소는

‘미친 거야.’

아무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루돌프에게 물어보자.’

확인할 필요성은 충분했다.

호준과 루돌프는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갔다.

초원을 내려다보며 나무상자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꺄아아아!”

“거기 서!”

루돌프는 풀밭을 뛰노는 요정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입을 뗐다.

“다들 표정이 좋구만. 자네 때문이겠지.”

“그런가요?”

“보통 소환사들은 소환수를 막 부려먹는다네. 왜 더 강해지지 않냐고 때리기도 다반사야. 그런데 자네 소환수는 조금 다르구만. 자신감 있고, 밝고.”

“때린다니. 끔찍한 일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소환사라면 응당 소환수를 잘 보듬을 줄 알아야 하지.”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소의 대화를 듣는 능력을 털어놓았다.

소고기 이야기까지 털어놓자 루돌프가 박장대소했다.

루돌프는 한참을 웃더니 말을 시작했다.

“많이 무서웠겠군. 제 살을 뜯어준다니. 자해하는 것 같지 않나.”

“그러니까요. 그 소 완전 미친 소 아닌가요? 혹시 병에 걸린 건 아닌지.”

호준의 추측에 루돌프는 빙그레 웃었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얼굴.

호준이 갸우뚱하자 루돌프는 어깨동무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크흠. 가야 할 곳이 있네. 일단 가세.”

“어디를 말입니까?”

그 질문에 루돌프는 씩 웃었다.

“답이 있는 곳이지.”

* * *

‘다들 늘어져 있군.’

루돌프를 따라 들어간 붉은색 헛간.

그 안에는 쉬고 있는 소가 한가득이었다.

밖의 소와 똑같은 젖소.

그러나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이 있었다.

뚜렷하게 다른 점은 바로 붉은 링이었다.

“배에 뭘 붙인 겁니까?”

소의 옆구리에는 붉은색 도넛 모양 구조물이 붙어 있었다.

조심히 만져보니 플라스틱처럼 단단했다.

소들은 호준을 신경 쓰지 않고 푸푸 숨만 내쉬었다.

“그건 고기 추출기네.”

“고기 추출기요?”

“여기 한번 보게나.”

루돌프는 링 하나를 건네주었다.

호준은 링 위로 뜨는 정보를 보며 감탄했다.

‘고기를… 그냥 추출할 수가 있네.’

그 정보를 보니 알 수 있었다.

미친소가 진실을 말했음을.

【고기 추출기】

【설명】

동물을 키우는데 고기를 먹고 싶다고요?

여기 소고기면 소고기. 돼지고기면 돼지고기.

모든 고기를 추출할 방법이 있습니다.

고기 추출기를 동물의 허리에 부착하면, 시간이 지나 양질의 고기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튀어나온 살을 문제없이 추출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추출해도 동물은 하나도 다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부가설명】

*고기 수확 시간은 동물마다 다릅니다.

*고기 수확 시 목축 스킬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고기 품질 올리는 법

1. 목축 스킬 올리기

2. 동물과 친밀도 높이기

3. 먹이로 양질의 과일, 야채 먹이기

세상은 넓고 희한한 게 많았다.

옆구리에 부착해놓으면, 고기를 추출할 수 있다니.

‘정말… 별게 다 있네.’

소를 도축하지 않아도 고기를 얻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믿기지 않아 링을 만지작거리는데 루돌프가 움직였다.

루돌프는 헛간 구석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호준 군. 여기 가까이 와 보게.”

“아, 네.”

가까이 다가가자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젖소의 옆구리에 부착된 링 구멍 사이로 붉은 살이 볼록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살의 크기는 농구공 두 개 크기 정도였다.

“많이도 튀어나왔네요.”

“그렇지? 이 정도면 고기를 추출할 수 있다네. 시험 삼아 해볼 테니 한번 보게나!”

루돌프는 손가락을 뚝뚝 꺾더니 젖소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젖소는 루돌프가 다가오는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하게 옆에 소와 대화를 나누었다.

― 요즘 지푸라기 맛이 별로다무우우

― 그러냐무우우우 나도 그렇다무우우

― 지푸라기를 더 말려야 한다무우우

― 맞다무우우

한창 소들이 대화 중일 때

루돌프가 고기 추출기에 버튼을 눌렀다.

뽀옥!

병따개 따는 소리가 나면서.

링의 위아래가 한 줄로 겹쳐지면서 고기를 절단했다.

링은 고기가 절단되고 나자 순식간에 원 상태로 돌아갔다.

고기가 잘리는데도 젖소는 아무 감각도 느끼지 않고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 이따 석양 구경하러 가자무우우

― 데이트 신청이냐무우우

― 당근이다무우우우

데이트 얘기를 하는 젖소 옆에서 고기를 챙겨 든 루돌프가 걸어왔다.

그는 씩 웃으며 고기를 내밀었다.

“어때. 간단하지?”

“편리한 기계네요. 와… 고기가 꽤 무거운데요?”

“이 정도면 세 네 명은 충분히 먹고도 남지.”

그가 건네준 고기는 상당히 무거웠다.

크기는 전자레인지 크기의 절반 정도.

무게도 상당해서 넉넉한 양이 예상됐다.

“추출기 말고 착유기도 있으니 꼭 사가게. 축산용품은 목장에서만 살 수 있으니 한 번에 사는 게 좋아.”

그렇게 구매가 시작됐다.

소 한 마리는 200골드.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으나 돈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치즈, 버터, 요거트, 아이스크림 등.

앞으로 우유가 들어갈 요리들을 생각하면 투자가치는 충분했으니까.

소 2마리, 고기 추출기 2개, 착유기 1개를 사기로 결정했다.

소 한 마리에 200골드, 고기 추출기와 착유기는 각각 50골드.

다 합하니 총 가격이 550골드였다.

아쉽게도 돈이 살짝 부족했다.

주머니 사정을 말하자 루돌프는 흔쾌히 웃으며 디스카운트를 제안했다.

“첫 거래이니 특별히 깎아줌세. 대신 다음에 돼지도 꼭 사야 하네!”

“물론입니다!”

돈 문제도 해결됐으니 이제 소를 고를 시간이었다.

* * *

― 내 고기 맛에 반했냐무우우우

호준은 결국, 미친소와 미친소의 단짝친구를 뽑았다.

미친소는 수소였고, 단짝친구는 암소여서 짝도 잘 맞았다.

“가자, 미소야. 강남이도.”

이름은 미친소는 줄여서 미소로.

단짝친구소는 강남소로 부르기로 했다.

친구 따라 강남 왔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었다.

미소랑 강남소는 서로 티격태격 울며 말장난을 해댔다.

― 내 소고기 맛으로 다들 녹여버리겠다무우우

― 또 이상한 소리한다무우우 요정들은 소고기에 현혹되지 않는다무우우우 네이름이 미친소의 줄임말인 이유가 있다무우우

― 배고프다무우우 네 꼬리 먹겠다무우우

― 발굽으로 쳐맞고 싶지 않으면 먹어봐라무우우우우

― 미, 미안하다무우우

‘음… 강남소가 중심을 잘 잡네.’

계속 지켜보니, 미소가 드립을 치면 강남소가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정들은 소에게, 소들은 요정에게, 서로 관심을 가지며 다가갔다.

“끼루루!”

― 작은 용이 반갑다무우우우

“아무우우!”

― 말하는 식물이니 먹으면 안되겠지무우우?

미소에게 아무는 먹으면 안 된다고 타이르며, 호준은 집으로 향했다.

오두막집을 지나 밭쪽으로 걸어가는데….

뜻밖의 광경을 목격했다.

“아니 왜 못 판다는 거에요?”

“우리가 사겠다는데! 40골드가 아니라 50골드 준다고 하잖아요?”

“대체 얼마나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그래? 어제 40골드에 판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말야. 최소한 사게는 해야 할 거 아냐!”

소란의 중심에는 베아트리체와 샤롯이 있었다.

둘은 10여 명의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고자 팔을 휘둘렀지만 사람들은 격앙되어 진정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샤롯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물건을 파는 건 가게 주인인 호준 님이 결정합니다. 백날 떠들어봤자 소용없으니까.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군더더기 없는 말이었으나 청중은 격하게 반박했다.

“아니, 그럼 언제까지 기다리란 거요!”

“그냥 팔라고 이 인어 자식아! 지금 로그아웃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겨우 팔 수 있단 말야.”

“설마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냐? 다른 손님들 오면 경매를 하려는.”

“돈 더 벌려는 수작이겠지.”

‘짜증 나네.’

장사꾼을 꼭 나쁘게 볼 것은 아니었지만.

남의 작업장에 와서 민폐를 끼치는 건 매우 불쾌했다.

트랙터로 확 쓸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느껴졌다.

“밀지 마요!”

서로 삿대질, 몸싸움하며.

“왜 안 파냐고!”

빚쟁이처럼 당당하게, 싸가지 없게 굴고.

짜증이 치솟았다.

“그냥 달라니까!”

그때, 한 남자가 베아트리체가 든 주스 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익

시도를 알아챈 베아트리체가 병을 뒤로 숨기자, 남자는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금화를 무더기로 바닥에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쨍그랑

“씨발, 돈 쳐 받았으면 주스 달란 말야!”

호준의 머릿속 인내심의 끈이 툭 끊어졌다.

바닥에 날카로운 짱돌을 집어 든 그는 짱돌의 조준점을 남자의 뒤통수에 맞추었다.

뒤통수를 노려보며 깊이 심호흡을 하는데.

쿠쿠쿠쿠쿠쿵!

갑자기 땅이 크게 진동했다.

중심을 잃을 만큼 강력한 진동이었다.

“으아아아아!”

‘뭐지?’

호준은 자세를 낮추고 요정을 몸에 고정시켰다.

다행히 소도 요정들도, 저 멀리 베아트리체와 샤롯도 다치지 않았다.

가쁜 숨을 내쉬며 상황을 살피는데.

잠깐.

주머니가 텅 빈 게 느껴졌다.

주머니에 넣어둔 송이가 사라져 버린 것.

‘설마 떨어졌나?’

아연실색하여 주위를 살피는데 어디에도 하얀색은 보이지 않았다.

쩌저저적

설상가상으로 수 미터 앞 땅이 갈라지더니 거대한 나무뿌리가 튀어나왔다.

뿌리는 사람들의 발목을 휘어잡아 공중에 들어 올렸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으아아아아!”

“이게 뭐야! 괴물이, 괴물이 나타났다!”

“놔 놔줘!!”

10여 미터 위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마치 희망 고문을 하듯.

뿌리는 사람을 지면과 가까이 떨어트렸다가 다시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

“흐으으으으….”

피가 쏠리는 고통에 지면과 충돌할지도 모르는 상황.

사람들은 인형처럼 뿌리가 하라는 대로 흔들리며 엉망진창이 됐다.

호준은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뭔지 알 수 없지만, 뿌리는 그의 일행을 공격하지 않았으니.

없어진 송이를 찾는 게 먼저였다.

“송이야. 어디 있어? 술래잡기 하는 거야?”

지난번처럼 덤불일까.

호준은 송이의 이름을 부르며 덤불들을 뒤적였다.

그렇게 10여 개 덤불을 뒤졌을 즈음.

쩌거거걱

2미터 앞, 바닥이 갈라지더니 뭔가 튀어나왔다.

“묘오옹!”

흙을 흠뻑 뒤집어쓴 송이가 팔을 쏙 내밀고 올려다보았다.

“하아….”

송이가 아무 곳도 다친 데가 없다는 사실에 호준은 감사함을 느꼈다.

송이를 들어 올리려 팔을 뻗는데.

나무줄기인지 뿌리인지 모를 것이 송이의 몸을 휘감아 들어 올렸다.

그것은 호준의 가슴 높이까지 들어 올려 송이를 내밀었다.

스윽 스윽

뿌리 한 줄기가 댕강댕강 흔들렸다.

움직이는 모양이 마치 손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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