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목축 시작 (1)
유토피아를 한 뒤로 식사량은 줄어들었다.
게임을 하며 식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먹는 음식량이 반으로 줄어서 돈도 아끼고 뱃살도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우걱 우걱.
아침으로는 바나나 한 개와 우유로 끝.
호준은 후다닥 씻고 출근길에 나섰다.
처커처컥 처커처컥 취이이
늘 듣는 지하철 소리.
평소에는 서서 가지만 정말 운이 좋으면….
털썩
의자에 앉을 수도 있었다.
‘20분은 앉아서 가겠네.’
기분 좋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호준은 핸드폰을 만지작대다 메시지를 발견했다.
【유토피아는 현질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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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스팸 메시지.
그러나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칫했다.
마지막 한 문장.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08:00 기준 골드시세】 : 1골드당 1,332원
‘1골드에 1,000원이 넘는다고…?’
사실인지 확인해봐야 했다.
오늘만 해도 장사로 번 돈이 840골드.
문자 내용이 사실이라면 하루 밤 자는 동안….
1,300원에 840골드.
계산기를 돌려보니 100만 원이 넘게 나왔다.
호준은 재빨리 초록 창 어플을 켜 시세를 확인해보았다.
“후우우….”
잠시 뒤.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숨을 깊이 내쉬었다.
“후후후후….”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옆 사람이 흘깃거려도 무시했다.
시선을 신경 쓸 정신 따위 없었다.
‘잠자면서 100만 원 넘게 벌었네.’
웃음이 실실 나왔다.
넝쿨째 들어온 돈이 반갑지 않을 리가.
마음껏 행복을 만끽하고서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운이 좋네.’
뉴스에 따르면 골드 버블이 한창이라고 했다.
튤립 버블, 코인열풍처럼 지금 골드열풍이 불어닥친 것.
버블이 언제 꺼질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골드 가격이 무섭게 치솟는 중이었다.
‘재테크 목적으로 사재기하는 사람도 있다니 뭐. 튤립버블 같네.’
천재 아이작 뉴턴도 튤립버블로 돈을 날렸다고 하던데.
가격 상승 그래프를 보니 사람들이 유혹을 느낄 만 했다.
골드 가격이 1년 전보다 10배나 뛰어올랐으니까.
과연 골드 버블이 언제 꺼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지금 골드가 돈이 된다는 사실.
‘그걸로 충분하다.’
호준은 어플을 다운받고 계정인증을 뚝딱 해내고.
화룡점정으로 환전까지 마쳤다.
【유호준 님, ㅇㅇ님으로부터 1,118,88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두둑한 돈이 들어왔다.
요정들과 놀며 돈을 버니.
‘짜릿하네.’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 * *
띠리링 ― 띠리링
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쉬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부지】
전화를 한 이는 아버지였다.
‘벌써 받으셨나.’
호준은 부리나케 빈 사무실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호준이니?”
“예. 아버지 저에요.”
“어, 그래. 크흠. 안마 의자가 두 개 왔던데. 네가 시킨 거냐?”
“네. 요즘 어머니가 무릎이 시리다고 하셔서 주문했어요. 마음에 드세요?”
“이거 비쌀 텐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면서도 살짝 감동받으신 눈치였다.
지난달 월급에 오늘 환전한 돈을 보태서 샀는데.
역시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쓰시라 말하려는데 어머니에게 바통이 넘어갔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흥분이 가득했다.
“얘. 호준아. 힘들게 돈 벌었을 텐데 아까워서 어떻게 쓰니. 엄마는 안마의자 없어도 괜찮아. 요거 반품해라. 응?”
어머니가 이리 말하리라는 건 미리 예상했다.
뭔가 해드리려 할 때마다 늘 거절하셨으니까.
그러나 호준은 이번에는 꼭 해드리고 싶었다.
두 분이 사이좋게 안마기에 누워 푹 쉬기를 바랐다.
“어머니. 편하게 쓰세요. 환불 불가능한 거라 그냥 쓰시거나 아님 버려야 돼요. 네?”
“그, 그래도.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걸 다 샀니.”
“요번에 보너스 탄 거로 샀어요. 마음에는 드세요?”
“들다마다. 네 아빠는 입꼬리가 찢어지려고 하지 뭐니. 하하. 아들 덕 봐서 좋수 그래?”
“무, 무슨.”
“아닌 척하기는. 좋아하는 게 이마빡에 딱 씌어있어.”
“크흠.”
아버지의 무뚝뚝한 기침소리에 호준은 피식 웃었다.
전화기 너머로 부모님의 기쁜 마음이 전달되었다.
“그럼 다시 전화 드릴게요!”
달각.
전화를 끊고서 호준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 우리 아들 다 컸네. 밥은 잘 먹고 지내지? 건강이 최고야.
‘이제 일하러 가자.’
사무실로 복귀하는 호준의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 * *
【유토피아에 접속합니다】
접속하자마자 목가적인 초원과 호숫가 펼쳐졌다.
호숫가에는 재잘거리는 이들이 가득했다.
“꺄아아아!”
“아하하하!”
요정들과 한창 물놀이 중인 베아트리체가 보였다.
그녀는 팔을 물레방아처럼 돌리며 물 공격을 해댔다.
휘르르륵!
호수에서 튀어 오른 한 마리 인어.
샤롯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지느러미를 따라 무지개가 생겼다.
빛나는 미모를 지닌 인어와 무지개.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와아아!”
“무지개다!”
“뀨우우우!”
일동은 무지개를 보고 감탄하다가 호준을 발견하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호준니임!”
“호준! 왔나!”
“아 안녕하세요!”
“잘 있었지?”
일동과 인사를 마치고서 호준은 베아트리체와도 말을 놓기로 했다.
그녀도 샤롯과 같은 봉급으로 일하기로 합의했다.
베아트리체 말고, 호준이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이게 다 주스를 판 돈이라고?”
“네! 지나가던 상인이 싹 쓸어갔어요! 완판입니다!”
별이가 주스를 판 돈이라고 내놓은 거액의 금화.
다 세어보니 총 520골드나 되었다.
520골드면 시세가 1,000원이라고 했을 때, 52만 원이나 되었다.
‘기본 스타트가 50만 원 정도인 거네.’
50만 원이 스타트라니.
이제 버는 돈까지 합하면…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리라.
금화가 이전처럼 금화로 보이지 않고 배춧잎으로 보였다.
챠라라랑
손을 스치는 금화를 챙겨 넣으며 호준은 원래 계획을 떠올렸다.
‘원래 계획대로 팥빙수를 만들어서 팔자.’
거액이 손에 들어와도 목표는 그대로였다.
돈을 번 것은 기쁘지만 돈에만 목매고 싶지는 않았다.
한번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으니까.
‘게임을 즐기자.’
요정과 놀면서 부가적으로 돈을 조금 버는 것.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묘오옹!”
발등에서 송이가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팔을 뻗었다.
안아달라는 제스쳐 대로 호준은 송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송이가 포켓에 들어가자 남은 요정들이 항의를 토해냈다.
“뀨우우!”
“아무우!”
“끼루루!”
【아무, 미르, 토순이가 애정을 갈구합니다】
“그래 그래. 다들 이리 와.”
호준은 무릎을 굽히고 모두를 안아 들었다.
어깨에 아무와 미르를 얹고.
머리 위에 토순이 장착 완료.
“그럼 부탁한다!”
호준은 별이와 베아트리체, 샤롯에게 농장을 맡기고 출발했다.
“가자.”
소가 가득한 목장으로.
* * *
목장의 주인은 루돌프.
흰 수염에 붉은 코를 가진 사내였다.
그는 호탕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시종일관 이끌었다.
“허허. 젖소를 사고 싶다고?”
“네. 직접 보고 싶습니다.”
“허허, 그래. 같이 가지. 소를 기르면서 쓸만한 물건도 같이 팔고 있네.”
“먼저 소 상태부터 보고 싶습니다.”
“따라오게! 지금 한창 풀을 뜯고 있을 때야.”
루돌프는 소를 보여주겠다며 길을 앞장섰다.
언덕을 올라가자 소들이 울타리 근처에서 풀을 뜯는 게 보였다.
호준 일행이 가까워지자 소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음메에에―
음메에―
“다들 얌전히 있어야지! 어허!”
루돌프가 진정시키고자 팔을 휘적거렸으나 소용없었다.
소를 달래느라 루돌프는 보지 못했다.
호준이 부드럽게 웃는 것을.
신기하게도 그는 소의 말이 이해됐다.
직격으로 귀에 꽂혔으니까.
【동물 목소리가 들려 스킬이 발동됩니다】
【모든 동물과 교감이 가능합니다】
― 잘생겼다무우우
― 이방인이다무우우우
― 요정들이 한가득있다무우우우
― 인상이 좋다무우우 반갑다무우우우
― 나는 배고픈 소다무우우우
스킬 덕분에 소의 말이 번역되어 들렸다.
‘신기하네.’
호준은 싱긋 웃으며 잘생겼다 주장하는 소에게 말을 건넸다.
“반갑다. 잘생긴 소야.”
― 대답했다무우우 나는 잘생긴소다무우우
옆에 소들도 그 사태를 목격하고 흥분의 도가니였다.
― 소 말을 알아듣는다무우우 대단하다무우우
― 이런 이방인은 처음이다무우우우
― 나랑도 말해라무우우우
소들이 호준을 빙 둘러싸며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어어 지, 진정하라니까. 이 녀석들이. 원래 이런 애들이 아닌데 이상하구만.”
루돌프는 흥분한 소들 때문에 난감한 듯 수염을 긁적였다.
호준은 괜찮다고 말하고는 소들과 대화했다.
대화가 통하는 게 기쁜지 콧김을 ㅤ쒹 쒹 뿜는 소들이 여럿 되었다.
“호오오… 소와 말이 통하는 겐가.”
“그렇네요. 말이 들립니다.”
“자네. 대단하구만. 소들에게 인기 폭발이야.”
호준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폭풍의 눈처럼 소 떼의 한가운데 섰으니 부인하기도 뭐 했다.
― 기쁘다무우우
― 오늘은 좋은 날이다무우우 좋은 사람이 목장에 찾아왔다무우우
호준은 귀를 쫑긋 세우고 소의 말을 들었다.
대부분은 의미 없는 감상이 전부.
그러나 특이한 말을 하는 소를 발견했다.
― 나는 최고의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다무우우우
― 나야말로 우유 맛이 끝내준다무우우 한번 먹으면 잊지못하지무우우
갑자기 소들이 자기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은근슬쩍 머리를 옆구리에 대고 비비적대는 소들도 생겨났다.
“하하. 이 녀석들이 자네가 좋다는구만.”
“그런 모양이네요.”
루돌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호준은 듣고야 말았다.
― 나는 고기 맛이 좋다무우우우 나를 데려가면 소고기를 먹게해주겠다무우우
‘고기…?’
소고기를 언급한 젖소를 쓰다듬자 맑은 눈이 연신 깜박였다.
당돌한 발언을 한 것치고 순박한 눈빛이었다.
“소고기를 먹게 해 준다고?”
―그렇다무우우 내 고기를 먹어라무우우우
갑작스런 소고기 제안에 호준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