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7화 (7/200)

007. 농사 준비 (2)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조선 시대부터 고관대작이 모여 살았다는 전통적인 부촌.

거주하는 재벌총수 숫자가 100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곳.

그런 성북동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하얀 저택이 자리했다.

저택 안에서 한 남자가 거대한 대리석 책상에 걸터앉아 침음성을 흘렸다.

“흠….”

그는 중년이었으나 눈빛만큼은 젊은이답게 반짝였다.

남자는 맥주를 들이켜며 벽 위에 떠오르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화면 가득히 한 남자가 땡땡무늬 버섯을 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해맑은 웃음이었다.

안경을 고쳐 쓴 남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요정왕을 뽑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 줄이야.”

그는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지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요정왕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직업이었다.

그의 이름은 신주한.

직접 진두지휘해서 개발한 온라인 게임 4개를 말아먹으며 그는 최악의 게임 개발자로 군림했다.

천만다행인 사실은 부모님이 부자였기에 게임을 말아먹고도 마지막으로 사업할 돈이 남았다는 사실.

회사에서 잘린 뒤, 그가 믿고 의지하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한차례 폭풍이 몰아치고 난 뒤, 주한은 부모님의 유산과 사망보험금으로 게임을 개발했다.

주위에서는 그를 뜯어말렸으나 뚝심 있게 개발한 끝에 유토피아를 완성했다.

‘그때 유토피아를 포기했다면 이 집도 되찾지 못했겠지. 부모님과 평생을 살았던 집을.’

성공하고 나니 사람들은 그를 금수저라서 그랬다고들 했지만.

주한은 정말 죽을 둥 살 둥 게임에만 매달리며 평생을 살아왔기에 날카로운 말들에도 상처받지 않았다.

털썩.

책상에 완전히 올라탄 주한은 맥주를 또 한 모금 들이켰다.

‘유토피아가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건가.’

절치부심한 끝에 만들어낸 희대의 역작, 유토피아로 그는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쏟아부어 목숨 걸고 시도한 결과.

【금년도 최고의 게임】

【역사에 남을 명작】

【21세기를 대표하는 혁신】

【세상을 바꾸는 게임】

성공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그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제 한국 하면 신주한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는 조사가 나올 정도로 그는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수많은 상이 쏟아졌다.

유토피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늘 믿어주시던 부모님의 부재는 너무나 컸다.

외동이기에 그렇겠지만 부모님의 기일인 오늘따라 씁쓸함이 컸다.

주한은 깊은숨을 내쉬고 맥주를 원샷했다.

그는 냉장고로 걸어가 맥주 한 캔을 꺼내다가 아까 왔던 전화를 떠올렸다.

그의 직속 비서이자 10년 넘게 알고 지낸 유 비서에게서 온 전화였다.

―회장님, 유호준이라는 자가 요정왕 직업을 뽑았습니다.

―그래?

―그래라니요! 그 직업이 어떤 직업인지 아시잖습니까?

―뭐. 뽑았으면 하게 해야지 어쩌겠어.

―휴. 있는 버프 다 몰아서 줬는데 밸런스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치면 레전더리는 다 없애버리게? 그대로 진행해.

태연하게 전화를 마쳤지만 주한은 요정왕이 선택되었다는 말에 살짝 놀랐다.

하마터면 들었던 잔을 떨어트릴 뻔할 정도로.

놀라는 건 당연했다.

“뽑을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니까. 만들다 보니까 너무 퍼주는 바람에 확률을 최저치로 낮췄지. 그래서 아무도 못 뽑았던 건데. 저 녀석은 대체 뭔 재주로 뽑은 거지? 카드가 보이기라도 했나?”

자신이 맞는 추측을 한지도 모른 채로, 주한은 싱글거리며 걸어가는 화면 속 남자를 바라봤다.

주한이 일 때문에 피곤했던 상황에서 만든 직업이 바로 요정왕이었다.

뭔가 색다른 직업을 고민하던 그는 힐링을 주제로 요정왕을 기획, 탄생시켰다.

요정을 여럿 부리고 생산 스킬을 접목하는 방식.

그런데 막상 다 만들고 나서 보니 너무 퍼준 것인가 싶어 카드의 노출 확률을 현저히 낮추었다.

그 결과 한 명만이 요정왕을 하는 결과가 나온 상황.

주한은 싱글거리는 화면 속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유호준이라. 운이 좋군. 그것도 아주 많이.”

그는 마저 맥주를 들이켜며 무심코 생각했다.

‘아버지가 즐겨 기르시던 난이나 길러볼까.’

그는 청년으로부터 아버지가 난을 공들여 키우던 기억을 했다.

* * *

부지런히 마을로 간 호준은 별이와 함께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차임벨 소리가 울려 펴지자 경쾌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빵집입니다!”

갈색 머리에 귀여운 소녀가 카운터에 서서 생긋 웃었다.

분홍색 앞치마가 잘 어울렸다.

소녀는 호준과 별이를 번갈아 보며 궁금하다는 눈빛을 했다.

“안녕하세요. 마을에서 처음 보는 분이네요.”

“네. 호준입니다.”

“저는 슈가입니다. 빵집 주인이죠.”

양손을 허리춤에 올린 슈가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니 별이를 보며 물었다.

“어머. 귀여운 아이네요. 이렇게 작은 아이는 처음 봐요!”

“네. 제 소환수입니다. 별이라고 하죠.”

“안녕하세요! 슈가 님!”

별이를 소개하자 슈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치마를 부여잡고 인사했다.

“반가워요. 별이 님. 아쉽지만 빵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오늘은 가마가 잘 데워지질 않아서 오후부터 나오거든요!”

“그렇군요. 빵은 다음에 먹기로 하고. 촌장님이 이걸 보여드리면 잘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

“어, 그건!”

호준이 은근슬쩍 동전을 내밀자 슈가가 크게 눈뜨며 동전과 호준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방금보다 훨씬 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촌장님께 이 동전을 받은 분이라면 도와드려야죠. 실례지만 잠시 제 손 위에 호준 님 손을 올려 주시겠어요?”

“네.”

호준이 그녀와 손을 겹치자마자 메시지가 떴다.

【요리 스킬을 배웠습니다.】

‘쉽게 배울 수 있군.’

10골드짜리 스킬을 순식간에 배운 순간이었다.

그것도 공짜로.

“그리고 이건 서비스입니다!”

슈가는 불그스름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호준에게 내밀었다.

호준이 의아한 눈빛을 하고 가만히 있자 억지로 손에 쥐여주기까지 했다.

【산딸기 씨앗을 얻었습니다.】

“씨앗…이네요?”

호준이 묻자 슈가는 회한에 잠긴 듯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10살 때 호수에 빠졌었는데 그때 촌장님이 구해주셨어요. 만약 촌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렇게 살아서 빵집을 운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뒤로도 몇번 도움을 주기도 하셨구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네. 제게 촌장님은 잊을 수 없는 은인입니다. 그러니 이 씨앗은 촌장님의 은인인 호준 님께 드리는 제 성의입니다. 제가 농사지으려고 모아 둔 씨앗인데 왠지 호준 님께 더 필요한 것 같아서요.”

그런 사정이라면 받는 것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돌려준다고 해도 거절할 것 같았다.

결국 호준은 물건을 받기로 하고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네. 호준 님도 별이 님도 다음에 또 봬요!”

빵집을 나와 호준은 바로 옆에 위치한 대장간으로 갔다.

땅 땅 땅

쇠를 내려치는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가까이 가니 뜨거운 가마니 앞에서 근육질의 남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는 쭈그려 앉아 새빨간 쇠를 망치로 내려치는데 내리치는 강도가 제법 세 보였다.

호준은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려 했다.

그러나 호준이 말을 걸기도 전에 남자가 기민하게 알아채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손님이요?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면 말하시구려.”

“저는 호준입니다. 촌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만.”

호준은 잘 보이게 동전을 내밀었다.

그러자 남자의 반응은.

“호오오!”

격했다.

“반갑네. 하하하.”

그는 별안간 망치를 내려놓더니 대뜸 악수했다.

악수를 한 손을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름이 호준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반갑네! 나는 대장장이 스미스네. 스미스 씨라고 부르도록.”

“반갑습니다. 스미스 씨.”

“크흠. 그래. 촌장의 은인이라면 잘 해줘야지. 아 그런데 어깨에 귀여운 아이는 누군가?”

“전 별이라고 합니다! 호준 님 소환수예요”

“그렇군! 자네도 반갑네. 하하. 이런 이쁜 소환수를 두다니 부럽구만! 자 자네에게 줄 것이 있네.”

그 뒤 스미스 씨는 긴말 없이 스킬을 전수해주었다.

【제작 스킬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제작할 것이 있으면 대장간에 들르게나!”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스미스 씨의 기운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 잡화점으로 향했다.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동통한 단발머리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제나의 잡화점입니다! 저희 잡화점에는 씨앗, 책, 지도 없는 게 없답니다! 오늘은 특별히 30% 세일도 하고 있으니까 둘러보고 가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호준은 자기소개를 했다.

지금은 물건을 살 돈이 없기에 물건에는 관심을 주지 않고, 동전을 슬쩍 보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촌장님 소개로 온 호준이라고 합니다. 저 이걸 한번 보시죠.”

“오오오!”

동전은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동전을 보자마자 제나는 입을 쩍 벌리며 눈을 깜박였다.

“세상에! 소문의 촌장님 동전을 가지고 온 분은 처음이에요! 반갑습니다. 전 제나라고 해요! 촌장님께서 거둬주셔서 이렇게 잡화점도 하고 글도 배웠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제나 님. 이쪽은 제 소환수 별이입니다.”

“안녕하세요! 별이에요!”

“호준 님, 별님, 잡화점에 오시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제가 드릴 건 농사 기술입니다. 잠시 손을 주시겠어요?”

호준은 제나의 손을 잡은 채 가만히 있었다.

곧 메시지가 떴다.

【농사 스킬을 배웠습니다.】

“씨앗이 필요할 때 또 오세요!”

제나의 배웅을 받으며 잡화점을 빠져나왔다.

“이제 남은 스킬이 두 개였나?”

“네. 목축하고 낚시에요! 목축은 목장으로 가면 되고 낚시는 호숫가에 가면 됩니다.”

“그래. 얼른 가자!”

“넵!”

별이와 수다를 떨다 보니 금방 목장에 도착했다.

한 남자가 주저앉은 채로 울타리에 못을 박고 있었다.

갈색 벙거지를 쓴 남자는 호준 일행이 다가오자 모자를 고쳐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에서 처음 보는구만. 목장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아, 여기….”

동전을 보자 남자는 진지한 눈으로 정식으로 인사했다.

“루돌프일세. 보다시피 목장을 운영하고 있지.”

“호준입니다. 여기는 별이입니다.”

인사가 끝나자 루돌프는 근처를 맴도는 소와 양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갑네. 목축 스킬을 배워두면 쓸 데가 아주 많을 거야. 동물들을 키우는 재미도 있고, 그 수확물로 치즈, 요거트 등 많은 음식들을 만들 수 있지. 닭, 오리, 소, 양 같은 동물들이 키우고 싶을 때 이곳으로 오게나! 내가 저렴한 가격에 팔 테니.”

“그러지요. 혹시 그 동물들 말고 다른 동물도 키울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스킬 레벨이 높아지면 더 많은 동물도 키울 수 있을 테니 기대하라고!”

“기대하지요.”

그렇게 루돌프와 대화를 마치고서 호준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목축 스킬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낚시를 배우러 호준과 별은 호숫가에 도착했다.

“쿠우우… 쿠우우….”

호숫가 한 곳에 꾸벅꾸벅 졸며 낚시하는 노인을 만났다.

“에쿠! 에그머니나 자네는 누군가!”

노인은 저 혼자 잠에서 깨어나더니 호준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준이 답하기도 전에 노인은 예리하게 동전을 한번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촌장 그 녀석이 보냈구만. 무슨 사연인지는 그 녀석에게 듣도록 하지. 자네 이름이 뭔가?”

“호준입니다. 어르신.”

“시작이 순탄하니 끝도 순탄하기를 빌겠네.”

덕담을 하며 노인은 호준의 손을 맞잡았다.

【낚시 스킬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모든 스킬을 배우고서 호준은 촌장에게로 되돌아갔다.

촌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수고했네.”

“덕분에 스킬을 바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무슨 말을. 이건 내 선물일세.”

촌장은 날이 예리한 도끼를 호준에게 건네주었다.

호준이 도끼 손잡이를 잡는 순간 메시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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