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카니아의 병사는 놓치지 마라
나라와 나라 간의 국경은 때로 벽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그냥 들판에 막대기 하나로 구분하거나 자연스럽게 강과 산 등의 지형으로 나누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푸테그린 제국의 속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디코콰리아의 국경은 산과 낮은 나무 벽, 허술한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관문 옆에는 허름한 건물이 있는데, 제국군이 지나갈 때는 아무도 없었다. 관문은 잠겨 있었지만 몇 번 충격을 가하면 쉽게 열리는 정도였다.
관문을 지나 시체가 즐비한 곳에도, 계속 진행하는 길에도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루디의 말에 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아마 이 근처 마을을 약탈하고 있을 겁니다. 이 나라는 통치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자기 이익에 더 눈이 먼 병사들인데 타국의 침략까지 있다면 할 일은 뻔한 거지요."
보좌관이 바닥에 즐비한 시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난민들도 뇌물 줄 게 있는 사람은 무사히 국경을 넘어갔을 거라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죽은 자들은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거겠지요."
"...."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뿐이었던 건가.
루디는 애마를 움직여 선두로 나아가면서 사람들의 시체를 하나씩 눈에 넣었다. 그가 조금 더 일찍 왔다면 저 아이, 저 여자, 저 노인은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해 왔다.
한 시간 정도 더 진군하자 멀리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루디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런 외진 곳에서 연기가 오른다면 변변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마침 앞서 진행하던 선발대가 돌아왔다.
"근처 마을이 병사들에게 약탈당하고 있습니다. 카니아 병사입니다."
보고를 들어보니 국경 수비대가 완전히 산적처럼 변해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여러 명의 보좌관과 대장들이 루디의 마음을 살피며 명령을 기다렸다.
루디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조금 있으면 날이 저문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으니 다소 일찍 쉬는 것도 좋겠지. 저 마을 근처에 진을 쳐도 괜찮을지 확인해 보아라."
"알겠습니다."
루디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 대장을 향해 가볍게 다짐했다.
"밤에 벌레가 윙윙거려서는 곤란해. 깨끗하게 처리하게."
"물론입니다, 폐하."
곧바로 본대에서 50여 명 정도로 이루어진 부대가 빠져나와 연기 피어오르는 마을로 향했다.
***
제국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어느 시대에도 전쟁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제국은 크고 작은 전쟁에 개입해왔다.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장에 돌입하면 병사도, 지휘관도 모두 몸속의 피가 들끓었다. 황제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눈을 둥글리고 있던 어린 병사조차 약한 이성을 밑에 깔아둔 채 짐승이 되어버린다.
오십인장은 흥분을 누르면서 부하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전장에 익숙지 못한 신참들은 때때로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것도 모른 채 지나치게 튀는 경우가 있다. 지휘관은 그걸 잘 조절하면서 전투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신참 대부분은 이미 경험 많은 병사에게 붙여 두었다. 전장에서의 실수는 곧바로 생명과 직결된다. 고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신병들의 뒤를 제대로 돌봐 줄 것이다.
낙오되거나 지나치게 앞선 부하가 없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오십인장은 창을 꼬나들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그 소리가 몸 전체로 울렸다. 그것이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실감이 가장 크게 드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이야아아아아아-!"
오십인장과 부하들은 요란한 고함소리와 함께 마을에 진입했다.
마을은 이미 약탈이 거의 끝나고 여자 사냥과 살인이 자행되고 있었다. 바닥 여기저기에 시체가 굴러다녔다. 연기는 누군가가 집에 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집이 타고 있었다.
보통은 지배하는 측에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이고 불태우는 법은 없다.
그레데 왕국이 침략한다는 소식이 돌면서, 카니아 병사들은 아마도 통치국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
'한탕 뜨고 도망칠 생각인가.'
어느 쪽이든 카니아 병사들의 미래는 똑같을 것이다.
제국군을 발견한 카니아 병사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군일 터인 제국군이 자신들을 향해 덤벼들자, 오인한 거라고 생각한 카니아 병사 몇 명이 크게 외쳤다.
"기다려! 우리는 카니아 왕국 사람입니다."
"우리는 같은 편, 같은 편입니다! 나는 카니아 병사예요!"
오십인장의 입술이 올라가며 이가 드러났다.
"알고 있다! 우리 폐하의 나라를 찬탈한 놈들!"
그 말과 동시에 오십인장 앞에 있던 카니아 병사의 몸 깊숙이 창이 꽂혔다. 손목을 꺾어 창을 비틀어 밀어 넣자 피가 왈칵 쏟아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카니아 병사가 그를 보았다.
근처에 있던 카니아 병사들이 그제야 제국이 적으로 돌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국의 병사들이 요란한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쫓았다. 토끼를 잡아먹던 여우가 이제는 늑대의 먹이가 된 셈이다.
오십인장은 전대의 황제 밑에서도 여러 번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 베테랑이다.
전대 황제는 이상적인 군주였다. 전장에서는 피에 굶주린 야수 같지만 평상시에는 병사들의 눈을 보고 함께 웃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어린 황제도 비슷하다. 마치 신이 제국을 위해 전 황제의 장점만을 쏙 빼내 빚어놓은 듯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누구보다 강한 마력을 지니고, 코레아 왕조의 피까지 제국에 가져다주었다.
그런 어린 황제에 모든 사람이 열광했다. 병사도,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저 좋은 군주로 끝났을 것이다. 먼 하늘에 떠 있는 신과 같은 느낌이었겠지. 전 황제가 아무리 병사들과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저 군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옛날과 마찬가지였을 거다.
하지만 지금의 황제에게는 왠지 모를 위태로움이 있었다.
누구나 현실에 익숙해진다. 비참하면 비참한 대로, 여러 번 보면 그것이 그저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게 인간이다.
그러나 어린 황제는 비슷한 전장을 몇 번이나 겪어도 똑같이 괴로워했다.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그게 보였다.
어려도, 늙어도, 군주는 군주다. 백성과 병사 위에 군림한다.
한데 어린 황제는 묘하게, 아주 드물지만 평범한 병사나 백성과 같은 선상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같은 시선으로 귀족을 보고, 같은 위치에서 자신들과 똑같은 현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의 묘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구름 위의 존재인 황제가 자신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 기묘함을.
만일 황제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약한 자로 치부해 모멸하는 감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황제는 역대 누구보다도 강한 군주다. 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황제가 보이는 상반된 모습은 병사들의 심장을 강하게 쳤다.
한데 누구보다 멀면서도 가까운 어린 황제가 울고 있었다. 처참한 시체를 보고 눈물을 감추며 울고 있다. 이 땅의 헐벗은 백성이 황제를 슬프게 만들었다. 버러지만도 못한 카니아 놈들이 우리 황제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
"그딴 일을 감히 용서할 수 있겠느냐!"
오십인장은 크게 외치며 적군의 몸뚱이에서 창을 뽑아냈다.
디코콰리아의 백성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는 아니다. 하지만 황제가 원한다면 구해내 보이자. 디코콰리아의 백성아, 너희도 우리 황제의 빛 아래 엎드리면 좋을 것이다.
오십인장의 창이 연이어 적의 몸을 찌르는데, 근처에서 커다란 기합 소리가 들렸다.
"합!"
부하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적을 찔러 쓰러뜨리고 있었다.
흥! 오십인장은 질세라 자신도 적을 쫓아 그 등에 창을 꽂았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현역이다. 고작 스물몇 살 어린놈에게 공을 빼앗길 만큼 늙지 않았다.
"굼벵이들아, 서둘러라! 황제 폐하의 본대가 곧 도착한다. 카니아 놈들의 더러운 엉덩이를 폐하께 보이지 마!"
오십인장이 외치자, 부하들이 여기저기서 힘차게 대답하며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
마을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매캐한 연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섞여 있다.
루디의 시선이 마을 입구에 잠시 머물렀다.
제국이 카니아 병사를 상대하는 동안 도망치려던 사람들이 대군에 막혀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대부분 머리를 납작하게 바닥에 대거나 몸을 둥글게 하고 엎드려 있었다.
카니아도, 제국도 어차피 똑같은 놈, 마찬가지의 약탈자라고 생각했던 걸까.
루디와 제국의 병사를 보는 디코콰리아 사람들의 시선은 두려움과 증오에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어린 소녀를 등 뒤에 감춘 아버지, 어린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새파란 얼굴이 되어 떨고 있는 어머니, 증오를 가득 담은 눈으로 몰래 병사를 노려보는 소년....
비쩍 마른 사람들의 모습은 원한을 안고 죽어버린 귀신과 흡사해 보였다.
루디는 속으로 탄식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 얼추 상황은 끝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몇군데서 들리던 비명소리가 어느새 잦아들어 있었다.
대신 이번에는 어디에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악을 쓰며 운다. 한겨울, 혹시 갓난아기 혼자라면 얼어죽고 만다.
루디는 근처에 있는 병사를 손짓해 불렀다.
"어미가 함께 있으면 소리가 움직일텐데 계속 한군데서 들리는구나. 확인해 보거라."
"옛, 폐하!"
병사 한 명이 재빨리 부대에서 벗어나 마을 안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병사들은 마을의 집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적군이 숨어있지 않은지 확인했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헛간에 숨어 있는 카니아 병사를 발견한 모양이다.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병사들끼리 벌레가 숨어 있어 밟아 죽였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루디의 명령을 듣고 달려갔던 병사가 돌아왔다. 품에는 피에 젖은 옷으로 감싸인 아기가 안겨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죽어 있었습니다."
한살은 넘은 것 같아 보였다.
아기를 미라처럼 꽁꽁 싸매는 관습은 제국이나 디코콰리아 같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보편적인 것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민 중에는 헐렁한 옷 한 개만 덮어 씌워 입힌 뒤 그냥 기르는 경우도 있었다.
병사가 안고 온 아기는 한겨울인데도 바지나 속옷 같은 것 없이 발을 덮을 만큼 긴 상의 한 개만 입고 있었다.
"이리 줘봐. 아이는 그렇게 안는 게 아니야."
루디가 손을 내밀자 병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루디는 신경쓰지 않고 아기를 받아 한 팔로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등을 통통 쳤다. 악을 쓰고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우와, 내가 안으니까 더 세게 울던데."
"폐하, 굉장히 잘하시는군요. 순식간에 애가 얌전해졌습니다."
"아기 돌보는 건 익숙하니까."
루디의 말에 보좌관이 히죽 웃었다.
"그러고보니 황후 마마를 기르신 분이 폐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엑! 정말입니까?"
"우와, 황후 마마를."
병사들이 깜짝 놀란다.
루디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기가 루디의 어깨에 걸려있던 망토 자락을 입에 물고 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리리샤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리리샤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진군중에는 그녀의 모습을 거의 확인하지 못했다.
현재의 그녀에게 생명의 위협은 없다. 루디에게 첩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상황후에게 독살당할 위험도 없었다.
만일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해도 리리샤에게는 해독 주문을 새겨 놓았다. 시종장도 특별히 주의 깊게 살피고 있고, 무엇보다도 그녀 주변에는 마생물이 한가득이다.
굳이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면 리리샤를 위협할 적의 생명이 가장 위험할 거다.
반드시 그녀의 주변을 살펴봐야 할 강제적인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추운 겨울 묵묵히 눈길을 걷는 병사들에게 왠지 미안해서 사적인 일에 신경 쓰는 걸 꺼리게 되었다. 공연히 그녀의 밝은 미소가 보고 싶어졌다.
루디는 아기 입에서 망토 조각을 빼내며 보좌관에게 말했다.
"아이가 배가 고픈가 보군. 아까 마을 입구에서 어린애를 데리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이쪽으로 데리고 와 줘. 젖동냥을 좀 부탁해봐야겠어."
"예, 폐하."
잠시 뒤 보좌관에게 끌려온 여자는 뭘 착각한 건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계속해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뭔가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만 흔든다. 품에 안은 아기를 피부에 자국이 날 만큼 꽉 끌어안고 있었다.
보좌관이 질질 끌다시피 해서 여자를 데리고 온 뒤 쓴웃음을 지었다.
"그저 젖을 물렸으면 하는 애가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이럽니다. 뭔가 착각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주변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듯하던 여자도 루디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눈을 약간 둥글게 떴다. 눈물에 젖은 눈이 깜박거리더니 루디와 아기를 번갈아 보았다.
"이 아기를 발견했는데, 배가 고픈 것 같다. 그대가 좀 돌봐주겠느냐?"
여자가 울음을 꿀꺽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그, 그 아이는, 제 앞집에 살던 사람의 자식입니다. 가끔 서로 아이를 맡기기도 했기 때문에 돌보는 것은 가능합니다."
여자가 힐끔 주변을 살피고 다시 루디를 보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걸 보자 간신히 정말 이 아이를 돌보라고 데려왔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래, 그렇다면 좀 부탁하지. 혼자 둘을 안기는 힘들 테니 그대 집으로 아이를 데려다주마."
여자의 얼굴이 다시 흐려졌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자신의 집으로 루디를 안내했다.
보좌관이 한 번 아기를 자신이 안을까 물었지만, 루디는 고개를 저었다. 간신히 울음을 그친 아기가 혹시 또 울면 어쩌나 싶었다. 안 그래도 먹은 게 없는 아이다. 우는 건 그만큼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여자를 따라 마을을 걷자, 멀리서 그녀의 남편인 듯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의 남편인가?"
"예, 예."
여자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리로 불러서 아이를 안게 해라. 그대에게는 힘에 부치는 것 같구나."
"어, 저, 정말이십니까?"
여자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루디를 보았다.
대강 여자와 그 남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것 같다. 루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괜찮아."
여자가 손짓을 하자, 남자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남자가 여자의 손에서 아기를 받아안는다. 여자가 조심스레 루디에게 물었다.
"저, 그, 폐, 폐하? 괜찮으시면, 그, 아기를 제가 안을까요?"
"울지 않을까?"
"예, 저는 그 아이한테 제2의 엄마나 마찬가지니까요."
루디 품에서 떨어진 아기는 잠시 칭얼거렸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잠시 뒤면 스튜와 약간의 음식이 준비될 거야. 받으러 와라. 아기를 돌봐주는 삯이야."
루디가 말하자, 여자와 남자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말을 하는 부부를 뒤로하고, 루디는 멀찍이서 쳐다보고 있는 보좌관과 병사들에게 돌아갔다.
그날 저녁은 딱딱한 육포를 넣고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인 스튜를 마을 사람들에게 약간 나누어주었다. 어차피 항상 약간씩은 남게 마련이다. 특별히 온정을 베푼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제국군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감사의 말을 들었다.
아기를 돌봐주기로 한 부부에게 밀가루와 육포를 약간 나누어 주고 다음 날 그 마을을 떠났다.
그 이후에도 루디와 제국군은 작은 마을을 여럿 만났다. 어느 마을이나 사정은 비슷했다.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가난하다. 하지만 그런 마을조차도 약탈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루디의 마음은 점점 차갑게 가라앉았다.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악귀나 다름없다.
"도적이 밭을 갈지는 않는다. 한 놈이라도 놓치면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 똑같이 사람을 죽이고 약탈할 것이다. 카니아의 병사는 놓치지 마라."
루디의 명령이 전군에 내리고, 제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카니아 병사의 시체가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