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14화 (114/201)

#114 시녀 아닙니다, 아내입니다

"인생이란 어째서 이리도 허무한 걸까."

리리샤가 한숨을 쉬자, 기가 막히다는 듯 마리가 웃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하시는 건가요?"

"알아!"

"한데 왜 그렇게 풀이 죽으셨어요?"

마리가 정원에 핀 작은 꽃을 잡아 빼 바닥에 버리면서 물었다.

"...."

불쌍한 꽃. 겨우 힘들게 피었는데, 나름대로는 꽤 예쁜데, 마리는 잡초라며 사정없이 뿌리째 뽑아 버린다.

"내 인생은 저 꽃 같아."

"황후 마마, 정말로 무슨 말을 하고 계신지 알고 있는 건가요?"

"안다니까."

남작 부인이 마중 나왔다. 저택으로 들어오는 담장 입구에서 리리샤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리리샤는 길게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옷과 머리를 새 단장하고 개 끌려가듯 남작 부인과 저택을 나섰다.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주는 마리가 밉다.

리리샤를 태운 마차는 곧바로 말이 기다리는 연습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커다란 건물로 들어가자, 이미 하얀 암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쁘다. 하얀 털과 갈기에는 점 하나 찍혀 있지 않았다. 정말 예쁘다. 그것만은 리리샤도 인정하고 있다.

안장도 반짝반짝한 보석이 장식으로 달려 있는 흰색이었다. 그것도 정말 예뻤다.

"마마, 조심해 주십시오."

훈련사가 매번 하는 말과 함께, 백마 옆에 몇 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나무 단을 놓았다.

리리샤가 올라가자 훈련사가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항상 쫓아다니는 시종이 리리샤를 안장 위에 올려 주었다.

옆으로.

앞으로가 아니다. 옆으로 앉는다. 안장도 옆으로 앉도록 만들어진 거라고 했다.

리리샤가 입고 있는 것도 루와 같은 바지가 아니라 드레스였다.

리리샤가 고삐를 잡고 가만히 말 등에 앉아있으면, 훈련사가 조심스럽게 백마를 이끌고 앞으로 걸어갔다.

타박...타박...타박...타박.

느린 걸음으로 백마가 움직였다.

한 바퀴 커다란 연습장을 돌자, 이번에는 훈련사가 약간 빠르게 걸었다.

타박, 타박, 타박, 타박.

말도 약간 빠르게 걷는다.

세 번째는 훈련사의 조심하세요, 라는 말을 들으며 리리샤가 고삐를 잡고 말을 움직였다.

타박, 타박, 타박, 타박.

아마 리리샤가 고삐를 잡지 않았어도 백마는 똑같이 자기 갈 길을 갔을 거다.

그리고 끝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마."

훈련사가 절을 하고, 다시 말 옆에 나무 단이 놓였다. 시종이 리리샤의 허리를 잡고 바닥에 내려 주었다.

벌써 며칠째인데, 계속 이렇게 하고 있다.

이.래.서.언.제.백.기.사.가.되.느.냔.말.이.야!

발로 바닥을 쾅쾅 내리치고 있는데,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자, 언제 왔는지 루가 지켜보고 있었다.

루가 웃는다.

비웃는구나!

발로 쾅쾅 바닥을 치자, 루가 더욱 웃었다. 그리고 팔을 활짝 벌려 오라는 시늉을 했다.

부르면 가야지!

화내던 것도 잊고 달려가 안기자, 루의 흑마가 잡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달려와 코로 그녀를 밀었다.

우왓!

넘어질 뻔했다. 흑마의 머리가 리리샤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멋지다.

"나도 이렇게 커다랗고 멋진 까만 말을 갖고 싶었어요."

리리샤가 안타깝게 말하자, 루가 훌쩍 말 등에 올라타더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리리샤의 팔이 짧아서 잡을 수 없다.

시종이 와서 그녀를 흑마 위에 올려주었다. 루의 앞자리에 옆으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안장 모양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이건 이인용이에요. 황후를 위해서 특별히 주문한 거죠."

루가 그렇게 말하고 고삐를 당기자, 흑마가 두 발을 앞으로 올리며 크게 울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리리샤와는 달리 루가 건물 밖으로 달리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부럽다.'

부럽기는 굉장히 부러웠지만, 이건 이것대로 좋다. 어쩐지 인생은 매우 좋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리샤는 루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코로 루의 향기를 가득 맡았다.

루가 건강해져서 정말 다행이다.

***

리리샤가 승마를 배우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승(乘; 탈 승) 마(馬; 말 마)'만 하고 있다.

리리샤는 그게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루디도 너무 강하게 다른 사람을 강요할 수 없었다.

황후가 다치면 거기에 관계된 사람은 모두 벌을 받는다.

사실 지금 역시 리리샤 몸에 작은 생채기만 나도 벌 받을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 부분을 루디가 강하게 말해 놓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것뿐이다.

하지만 몸을 다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루디가 말한 정도로 무마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황제에게는 어떤 것도 허용된다. 황후를 안은 채 말을 타고 질주해도, 황궁 안 깊은 곳에 있는 호수를 단둘이 달려가도 괜찮다.

루디는 이전부터 한 번 데려가고 싶었던 호수로 말을 달렸다.

계절은 아직 봄이지만 낮은 상당히 덥다. 여름과의 경계선에 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더웠다.

호수에 도착하자, 루디는 안장 귀퉁이에 달아놓았던 도시락을 꺼냈다.

신이 나서 호수 주변을 뛰어다니는 리리샤를 보며 호수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황궁 요리사가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준 일품요리를 먹고, 둘이 함께 호수에 발을 담갔다.

아무도 없는 호수에 물새가 내려와 앉아 있었다.

리리샤가 물을 마구 튀겨 물새를 날려 보내고, 풀이 있는 자리를 돌멩이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한참을 놀던 리리샤가 루디에게 물었다.

"루, 나 오늘 공부 안 해? 이렇게 놀아도 돼요?"

"오늘 하루는 나를 구해준 보답이에요. 잠자는 숲속의 황제를 키스로 깨워줬으니까."

와하하하.

리리샤가 기쁜 듯 큰 소리로 웃었다.

온화한 시간을 보내고 날이 저물 무렵 별궁으로 돌아왔다.

오늘 했던 일을 우다다 이야기하는 리리샤를 남작 부인이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마, 우선은 좀 씻으셔야겠습니다."

남작 부인은 엄하게 한 마디 하고 리리샤를 둥글게 커튼으로 감싸인 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커튼 안쪽에는 욕조로 사용하는 커다란 나무통이 있다.

시녀들이 루디와 커튼 사이를 병풍으로 둘러 보이지 않게 가렸다.

사락사락, 부산하게 옷 벗는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리리샤가 웃고 있었다. 시녀들과 사이가 좋은 것 같다.

따뜻한 물이 담긴 나무통에 들어간 뒤, 리리샤는 커튼 너머로 계속해서 남작 부인에게 뭔가 말을 건넸다.

남작 부인은 시녀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새 옷을 가져오게 하고 따뜻한 음료를 준비하게 시킨다. 머리에 바를 향유를 몇 종류 가져오게 하여 확인하고, 루디가 명령한 대로 밤에 읽어줄 책을 침실에 두게 했다.

루디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리리샤를 지켜 주었다고 시종장에게 들었어. 고맙다. 그대만은 항상 리리샤의 편이 되어 주게."

리리샤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하자, 남작 부인이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깊이 몸을 숙였다.

루디는 몸을 돌려 별궁을 나섰다.

태상황제가 그간의 공무를 대행해주기는 했지만 할 일이 태산이다.

그는 다시 황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늦봄, 여름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

이후로도 가끔 어둠 속에 갇히는 꿈을 꾸었다.

그때마다 마생물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어 마력을 흘려 넣고, 그 때문에 깨어난 리리샤가 열심히 입술을 붙였다.

리리샤는 진심으로 자신이 키스로 루디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뭐, 완전한 거짓말도 아니었다.

어둠 속에 갇힐 때마다 리리샤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으니, 키스든 뭐든 그녀가 도움이 된 건 확실했다.

몇 달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마녀에 대한 일은 그다지 진척이 없었다.

광범위하게 마녀가 사는 곳을 조사해봤지만 몇 군데 후보지를 발견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가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시종장이 집무실과 연결된 작은방에서 은밀하게 말을 붙였다. 그 방은 일이 바쁠 때 루디가 잠시 눈을 붙이며 쉬는 곳이다.

"폐하, 켈러 가문의 당주와 한 번 만나보시겠습니까? 여러 번 알현 신청이 들어왔는데 계속 거절했습니다만, 근래에 마녀와 관련된 소문을 포착했습니다."

"켈러 라면, 내 모친의 가문인가?"

"그렇습니다. 일전에 폐하께 무례를 범했던 마도구사의 가문입니다. 재정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는 터라, 그곳에서는 여러 번 폐하께 알현을 신청해왔습니다."

천재 마도구사라는 뮐러가 속한 가문이다. 루디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뭔가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무슨 소문인데?"

루디의 질문에 시종장이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약간 말하기 어려운 듯했지만 시종장은 이내 입을 열었다.

"와토린구 공작부인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소문이 은밀하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

"그 소문을 와토린구 공작이 알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혼인 직후에 검은 머리의 여성이 미청년과 함께 서쪽 마녀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있었던 걸 보았다는 목격자를 찾았습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머리와 눈동자 색을 바꾸기 위한 약을 준비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전입니다. 폐하가 태어나기 전의 시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종장이 눈을 내리깔았다.

"코레아 왕조는 자신의 혈통을 지키고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합니다. 가문에서 내보낸 사람의 일에 간섭하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만, 문장 소유인 공작부인이라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공작가에 협력했어야 하지요."

하지만 켈러 가문에서는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만일 그 가문에서 코레아 왕조의 타가에 도움줄 것을 호소하고 디코콰리아와 와토린구 공작을 위해 노력했다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공작 부부 정도는 루디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망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없이 공작가는 그대로 멸망했다.

코레아 왕조의 다른 가문에서도 그 일을 이상하게 여겨 뒤에서 수군거렸던 모양이다.

"그래, 한 번 만나보지."

"그럼 열흘 쯤 뒤로 일정을 잡아 놓겠습니다."

시종장은 절을 하고 밖으로 물러갔다.

황제의 알현은 보통 년 단위로 빡빡하게 일정이 잡혀 있다. 오늘 신청한다고 내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시종장은 지금부터 무리하게 켈러 가문의 당주를 알현 일정 안에 넣는 작업을 할 모양이다.

사무관들이 가급적 루디 몸의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하지만, 역시 또 밤샘 작업이 늘어날 것 같다.

제국은 블랙 기업이다.

하지만 그런 게 제국의 황제와 관리뿐일까.

이 세상 사는 모든 사람이 블랙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현대 지구와 비할 데가 못 된다.

'뭐, 까딱 잘못하면 죽어버리니까.'

참수 당하고, 침략 당하고, 약탈당하고, 이 세상은 정말 죽기도 쉽다.

루디는 한숨을 쉬고 다시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아직 가을이지만, 요즘에는 겨울을 대비하는 일로 작업이 많이 늘어났다.

눈이 오면 고립되는 지역과 굶어 죽는 사람이 매년 많이 나오는 황실령도 따로 조사해서 올라오고 있다.

새해 연회 준비도 이맘때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올해는 루디가 황제가 된 첫 번째 새해 연회다. 예년보다 훨씬 성대하게 치러질 것이다.

레빈은 그날을 위한 물품 구입 때문에 어디론가로 끌려가 있었다.

일상적인 비품부터 과시를 위한 특별한 물건까지 다양하게 구매한다고 들었다.

얼마 전 레빈에게 온 소식에는 산간 오지 어디엔가로 향하고 있다고 하던데, 뭘 구입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창 서류 위에 펜을 달리고 있는데, 시종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폐하, 잠시 뒤면 황후 마마의 견습 시녀가 올 시간입니다. 알려 달라 하시었지요."

루디의 펜이 잠시 멈췄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구나. 조금 틈을 만들 수 있을까?"

루디가 얼굴을 찡그리고 묻자, 옆에서 작업을 돕던 사무관이 종이를 펼쳤다. 종이가 뚫어져라 열심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잠시라면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후에 예정되어 있는 가봉 시간이 조금 맞지 않으니, 이 일정은 며칠 뒤로 옮기겠습니다."

"그렇게 하자."

가봉은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 역시 옷을 만들 때 매우 긴 시간 가봉을 했다. 모자까지 머리통에 맞춰서 개인 별로 만든다. 이래저래 정말 피곤한 세상이다.

루디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원에서 맹약의 증거로 온 소녀가 기초적인 예절과 언어를 공부하고 오늘 황궁으로 온다.

리리샤와 잘 맞을는지 걱정도 되고, 처음 들어오는 그 아이도 불안할 테니 약간 신경이 쓰였다.

별궁으로 향하는 루디의 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

"시녀가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아내입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루디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문을 활짝 열려는 시종들을 멈추고, 루디는 조금 열려 있는 문틈으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잘못 들었던 거겠지?

안쪽 커다란 거실에서 다시 한번 낯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시녀로 온 게 아닙니다. 루디님의, 폐하의 아내로 왔습니다."

제대로 들었었구나. 귀가 고장 난 줄 알았는데, 아직 정상인 것 같다.

쾅쾅,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리리샤다.

화가 나면 몸부터 움직이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거짓말이야! 아내는 나야! 루의 아내는 나 혼자뿐이야! 너는 시,녀,다!"

루가 시선으로 어떻게 된 건지 묻자, 문 앞에 서 있던 시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새로 온 견습 시녀가 인사를 올리면서 자신을 아내라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황후 마마가 화가 나시어 벌써 수십 번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둘이 모두?"

"예, 폐하."

하지만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 같다.

소녀가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엉덩이도 작으면서!"

"내 엉덩이가 어디가 작은데! 너보다 크다구!"

"옷으로 부풀려봤자 다 보이거든요. 어차피 아홉 살이신 거죠, 황후 마마는. 하지만 저는 열 살입니다. 제 엉덩이는 일 년만큼 커요!"

"내 엉덩이도 큰걸! 너 따위보다 훨씬 큰걸! 네 엉덩이 따위, 두 개 붙여도 내 것보다 작아!"

아니, 어째서 이야기가 엉덩이가 된 거야.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시녀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이야기도 벌써 수십 번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서로 엉, 엉, 그, 그것이 큰 여자가 아이도 잘 낳고 좋은 여자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시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약간 내리고 말했다.

초원의 소녀야 그게 여자로서 가장 중요한 거라고 배웠으니 그렇다 쳐도, 리리샤는 어째서 그런 걸로 겨루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누구 손이 더 큰 가로 겨루고 있다.

엉덩이는 아이를 잘 낳는다는 초원의 속설 때문이라고 치자. 한데 손은 왜?

그다음은 입이었다.

이번에는 리리샤가 더 기세등등이다.

"내 입은 무지하게 커서 한꺼번에 다섯 개도 낳을 수 있어!"

"난! 난! 여섯 개다!"

시녀가 한숨이 나올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이야기 역시 수십 번입니다."

"입으로 뭘 낳는다는 거야?"

"그게, 아이를 낳는다고.... 누군가가 마마께 새끼 토끼는 어디로 나오는지 물어봤을 때 입으로 낳는다 대답했다고 합니다."

미안하다. 그건 루디 자신이다.

아직 어린 리리샤가 물어봤을 때 너무 당황해서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아주 어릴 때였기 때문에 잊어버렸을 줄 알았는데, 그게 이런 업보가 되어 돌아왔구나.

루디는 안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몸을 돌렸다.

마침 남작 부인이 루디의 도착을 들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밖으로 나와 그의 앞에 몸을 낮췄다.

"남작 부인, 다른 것보다 우선 성교육을 좀 부탁하네. 저 안에 있는 아이 둘 다."

"예, 폐하."

남작 부인의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

"그래도 용케 저 아이의 무례를 용서하고 있구나."

남작 부인이라면 견습 시녀의 무례는 그냥 넘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조금 이상하다.

남작 부인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저 아이는 마침 나이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에 놀이 상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이 함께 공부를 시켜보려고요. 마침 경쟁의식도 생긴 것 같으니 공부에도 진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작 부인이 다소 엄한 얼굴로 덧붙였다.

"물론 오늘은 첫날이라 용서하고 있지만, 말투와 공경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가르칠 생각입니다."

뭐, 남작 부인에게 맡겨 두면 되겠지.

이걸 기회로 둘이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루디는 여전히 이상한 게 크다고 주장하는 두 아이의 외침을 뒤로하고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 초원의 아이는 침착해 보여서 루디와 비슷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어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아이, 이름도 아직 모른다. 집무실에 가면 누군가에게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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