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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100화 (100/201)

< 마법의 방패 >

#100 마법 방패

리리샤가 방을 나가자, 태상황제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조금 전까지 호호할아범 같았던 모습이 싹 사라지고 눈빛이 예리해졌다.

"그래, 조금 전 시종의 전갈을 받았다. 야만족이 연합하고 있다고?"

"예."

"그래, 황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

루디는 잠시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마도병을 데리고 나갈까 합니다."

"...."

"병사들의 수를 줄여 기마병만 데리고 갑니다. 훈련할 때 함께 했던 보리스와 늙은 병사들을 포함해 천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난폭한 야만인들이다. 그것도 상당히 전투 능력이 뛰어난 기마민족이야. 병사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황제가 강한 눈으로 루디를 보았다.

"황제, 그대가 직접 적에게 몸을 노출하는 위험성을 제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대의 안전은 이 제국 전체와 맞바꾸는 일이 있어도 절대로 확보해야 한다."

루디가 싱긋 웃었다.

"그 동안 마력으로 제 몸에 방패를 짜는 마법을 만들었습니다. 방패를 펼치면 사람은 물론이요 창칼과 화살도 통과하지 못해요."

태상황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태상황제는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눈을 껌벅거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마생물도 있는데 마법 방패가 뭐그리 신기할까. 아니, 물론 만드는 게 힘들기는 했지만.

루디는 디코콰리아의 와토린구에 가 있을 때도, 다시 황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밤에는 마법 주문을 연구해왔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간의 몸에서도 전기를 만들어낸다. 지구에서 생체 전기라 부르던 것이다.

뇌에서 내리는 모든 명령은 전기 신호로 각 기관에 전달된다. 인간의 몸에 생체 전기가 없다면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마력은 생체 전기와 비슷하다.

신경안정제나 진통제라는 단어를 사용해 나디아 마마의 정신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인 것 같다.

마법 주문이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주문을 통해 마력을 주입함으로써 몸속에 있는 생체 전기에 명령을 내리고 뇌를 조종하는 거다.

물론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마도 영원히 모르겠지.

루디가 처음 마력이 생체 전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마생물을 몸에 넣어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할 때였다.

당시에는 마생물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을까 싶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마생물 이외의 것이 아주 약한 스파크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력이 전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미세한 차이라 잘 알 수 없었다.

마생물이 몸에 없는 상태에서는 마력이 흘러나와도 스파크가 거의 일지 않았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마력을 사용하면서도 그게 생체 전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지구와는 다른 세계이니 당연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마력이 전기의 성질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약간 흥분했다.

마력이 조금씩 몸 밖으로 흘러나온다면 더 밖으로 내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마력의 양을 조종할 수 있다면? 그리고 내놓은 마력이 전기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마생물이 아닌 본인 만의 힘으로 전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몸속에 잠자고 있던 중2병이 발현할 것이다. 안 그럴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처음에는 마력을 의식적으로 허공에 내놓아 머물게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마력을 흘리는 건 의식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다. 숨 쉬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하지만 마력을 의식적으로 내놓아 형체를 만드는 것은 낙타를 바늘구멍이 아니라 벼룩의 간에 집어넣는 것보다 어려웠다.

최초의 목표는 반원형의 방어용 돔이었다.

어릴 적 읽었던 SF 소설의 방어 도시를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중2병에 침범당한 뇌가 전율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간신히 자신의 몸 하나를 덮는 정도의 반원형 돔을 만들었지만, 오랜 시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체내의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마력도 결국은 몸속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많이 쓰면 체력이 깎인다.

그렇다면 마석이나 마도구로 구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마력이 너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당히 큰 마석이 아니라면 무리일 것이다.

결국 절충안으로 만들어낸 것이 전기를 두른 막으로 형성된 마력 방패다.

이것도 얼마 전까지는 유지하는 데 상당한 마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위급할 때만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검은색으로 변화한 다음부터는 마생물을 만들어낼 때처럼 쉽게 구현할 수 있었다.

아마 마녀의 약은 마력을 제어함으로써 머리와 눈 색깔을 바꾸고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태상황제가 루디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황제, 내게 직접 보여주게.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예, 상황제 폐하."

루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속의 마력을 손끝으로 흘렸다.

마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루디가 지금 하는 것처럼 많은 양의 마력을 한데 모으면 스파크가 일어난다.

파직 파직, 몸 전체를 덮을 만큼 커다란 막이 형성되면서, 그 표면을 따라 눈이 시릴 듯 선명한 불꽃이 일었다.

하얗고 푸른빛이 막 전체에서 튄다. 마치 미니어처 번개가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이런 장면을 어디에선가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손으로 이런 막을 만들어낸 듯한....

잠시 기묘한 감각에 빠져 있는데 소리가 들렸다.

"헛!"

태상황제가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투명한 방패를 바라보던 태상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로 물건을 막아낼 수 있는가?"

"예, 상황제 폐하. 아무 물건이나 한 번 던져 보세요."

루디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태상황제가 황후와 즐기던 다과를 한 개 들었다. 작고 동그란 과자다.

태상황제가 과자를 휙 던졌다.

루디를 향해 날아온 과자는 투명한 막에 부딪치자 연기를 약간 내며 새까맣게 타버렸다.

"맙소사!"

태상황제가 중얼거렸다. 홀린 듯 몇 발자국 다가오더니 물었다.

"만져봐도 되는가?"

"안 됩니다, 폐하. 방금 보신 과자처럼 될 거예요."

"...."

태상황제가 몸을 약간 구부리고 쿡쿡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가진 것을 잃을까 겁이 많아지지. 나도 병이 들기 전까지는 곧잘 전쟁터에 직접 나섰다. 그대 역시 그런 일을 생각하고 교육을 시켰어. 하지만 황제, 막상 그대를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겁이나 버린 거야."

황제가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루디를 불렀다.

"이리 오게, 황제."

방패를 집어넣고 가까이 다가가자, 팔을 잡고 끌어당기더니 가만히 안았다.

"제국의 황제는 항상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서서 싸워 왔지. 가장 앞에서, 누구보다 빨리 적을 맞아 싸우는 게 제국의 황제다. 그런 황제이기에 병사들은 항상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워."

태상황제가 한 번 힘있게 루디를 안고 떼어낸 뒤 어깨를 잡았다.

"황제, 다녀 오시게. 여기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내 늙은 몸을 채찍질해 그대가 없는 이곳을 지키고 있을 테니."

"감사합니다."

"갈 때는 귀족의 자제를 골라서 몇 명 데려 가게. 마침 황제에게 맞는 측근을 슬슬 고를 시기지. 전쟁터라는 곳은 그 인간의 본질을 알아보기에 매우 좋은 장소야. 눈으로 직접 보고 그대에게 잘 맞는 부하를 골라 봐."

"그렇게 하겠습니다."

태상황제가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황후가 그대를 위해 과자를 잔뜩 준비하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었지. 이곳의 후원이 아름답고 보기 좋아. 지금은 꽃도 활짝 피었으니 더욱 화려할 거야. 데려가 보게. 잠시 과자를 먹으며 차도 즐기고 함께 시간을 보내 줘."

설마 황제한테 이런 말을 듣는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루디가 절을 하고 물러나려고 하자, 문득 생각났다는 듯 황제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 내가 부부 관계가 원활해지는 방법을 하나 전수해 주지."

얼굴 가득 웃음을 싣고 황제가 말했다.

"싸우지 마시게, 황제. 그냥 져주면 돼."

당신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루디의 마음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황제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황후에게 과자 맛있게 먹었다고 전해주게."

"예, 상황제 폐하."

루디가 방에서 나와 옆의 거실로 들어가자, 리리샤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그를 보더니 홱 몸을 돌렸다.

손에는 과자가 든 비단 보자기를 들고 있었다. 벌써 함께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황후."

루디가 리리샤에게 손을 내밀자, 며칠 사이 익숙해진 동작으로 그녀도 작은 손을 내밀었다.

입은 뾰족하게 나와 있고 얼굴도 톡 외면한 상태지만 일부러 화내는 티가 역력하다.

과자 보자기만큼은 놓지 않겠다는 듯 옆구리에 끼고 있는 모습이 약간 웃겼다.

11살, 9살의 어린 부부가 나란히 걸어가자, 시종과 시녀가 그 뒤를 따랐다.

"후원으로 가자. 차를 한 잔 가져다줘."

루디가 말하자, 리리샤의 시녀 중 한 명이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태상황제 궁에 있는 후원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다른 궁에 비하면 약간 작은 듯했다.

대신 근처에서는 보기 어려운 종류의 꽃나무가 많다. 이국에서 들여온 희귀한 꽃도 많았다.

후원 가운데에 놓인 동그란 테이블에 앉자, 리리샤가 눈을 반짝이며 보자기를 풀었다. 약간 부서진 과자가 소복이 쌓여 있다.

어느새 화가 풀어진 건지, 아니면 화가 났다는 것 자체도 잊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시녀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과자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모습이 꼭 토끼 같았다.

야만족과의 전쟁은 시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서둘러야 했다. 느긋하게 넋 놓고 있다가는 상황이 끝나 버린다. 준비만 끝나면 곧바로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다. 기간도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이다.

루디는 다람쥐처럼 양볼을 부풀리고 과자를 먹는 리리샤를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리리샤, 나는 며칠 이내에 전쟁을 하러 갈 거예요."

우물우물 과자를 먹던 리리샤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꿀꺽 입안에 있는 걸 삼켰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리리샤가 말했다.

"응, 나도 준비할게요, 폐하."

준비라니, 설마 함께 갈 생각인가.

루디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리리샤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자랑 빵도 준비해놨어. 돌도 다섯 개나 숨겨뒀고 이번엔 물통도 찾았어요. 아주 커다란 거야. 물도 많이 들어가요."

별궁 안 구석에 리리샤가 이상한 물건을 모으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다.

방금 리리샤가 말한 것 외에도 신발, 식사 때 함께 나온 말린 고기 등 잡다한 것이 있다고 들었다.

후궁에서 궁핍한 생활을 한 탓에 생긴 습관일까 싶어서 일단은 그냥 두라고 말했는데, 어디론가 갈 때를 생각한 준비였던 모양이다.

"옷이 조금 큰일이야! 유모하고 마리한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여기에는 이런 치마 밖에 없어요."

리리샤가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리고 드레스를 내려다 보더니, 힐끔 시녀들을 훔쳐보고 목소리를 줄였다.

"옷을 약간 자르면 안 돼?"

"리리샤, 이번에는 나 혼자 가요."

"어!"

리리샤가 당황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하지만 나, 루하고 결혼했는데. 폐하가 되면 항상 같이 있는 거잖아. 루? 그렇지? 응? 약속했어. 나랑 항상 함께라고."

루디는 리리샤의 작은 손을 잡았다. 태상황제의 싸우지 말라는 충고가 문득 떠올랐다.

상황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정말 싸우지 말고 지라는 게 아니라, 여자를 설득하려 하지 말고 달콤한 거짓말로 속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정말, 그 사람은 나쁜 남자야.'

여자에게는 최악이다. 딸을 낳으면 절대로 그런 남자에게는 시집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확실히, 태상황제가 말한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미안해요, 리리샤. 이번에는 말을 타고 가게 됐어요. 며칠 동안 계속 달려야 하는데, 리리샤는 아직 말을 타지 못하잖아. 나중에 리리샤가 흑기사처럼 말을 잘 타게 되면, 그때는 함께 갈 수 있어요."

"어."

리리샤의 커다란 눈이 껌벅껌벅 떴다 감았다 하며 여러 번 움직였다. 눈에는 금세 눈물이 차오르고 입술은 삐죽삐죽이다.

"내가 아직 흑기사가 아니라서야? 나 흑기사 아니라 못 가? 말 못 타면 안 되는 거였어. 흑기사는 말 탄 기산데."

제국에서 여자는 말을 타지 않는다. 승마는 여자가 하기에 상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당연히 황후인 리리샤에게 승마를 배우는 수업은 없다.

루디는 리리샤가 원하면 배울게 할 생각이지만, 아직 너무 어리다. 배운다고 해도 조금 큰 다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디가 조금 아까 한 말로, 리리샤는 자신이 나쁜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풀이 죽어 어깨가 늘어졌다.

리리샤가 루디의 손을 꽉 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해요. 나, 흑기산데."

아니, 아직 흑기사가 아니지. 영원히 될 것 같지도 않다. 장래 희망은 금세 또 변할 것 같기도 하고.

루디는 리리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쁘게 올린 머리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그 머리를 올려 귀로 넘기면서 말했다.

"리리샤, 승마를 배워서 말을 타고 먼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되면 데려갈게요."

"루, 언제 가? 나, 오늘부터 승마 배울래요. 잘 타게 되면 나 데려가?"

"미안, 리리샤. 며칠 만에 말을 잘 타게 될 수는 없어요."

리리샤의 머리 너머로, 시종장이 살짝 눈짓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 집무실로 가야 할 시간이다.

토벌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태산이니 너무 많은 시간을 리리샤에게 사용할 수는 없다.

다음에는 꼭 데려간다는 약속으로 우는 리리샤를 달래서 별궁으로 보냈다.

오늘 밤에도 다시 만나는데, 마치 영원히 헤어지는 사람처럼 리리샤가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남작 부인에게 이끌려 멀어져 갔다.

< 마법의 방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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