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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76화 (76/201)

< 각자의 불안 >

#076

유모와 나디아 마마는 어느새 잠들고, 마리는 조금 전에 이층으로 올라갔다.

벽난로의 불은 여전히 타고 있지만, 등은 모두 꺼졌다.

캄캄한 어둠 속, 깨어있는 것은 리리샤와 마법들뿐이다.

괴물 같은 어둠 속에서 가끔 파직파직 하는 불빛이 일었다.

오늘은 오후쯤부터 계속해서 마법들이 난리다. 평상시에는 불꽃이 일지 않는데, 오늘은 벌써 몇 번이나 보았다.

'역시 다들 알고 있는 거야!'

리리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내일이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게 끝나고 내일 이 저택을 나간다.

그리고 그걸 마법들도 알고 응원해 주는 게 분명했다.

다들 성공할 거라고 믿는 거다. 저렇게 기쁜 것처럼 불꽃을 내는 걸.

좋아, 걱정하지 마. 반드시 루를 데리고 돌아올 거야. 너희들의 응원은 반드시 헛되지 않아.

'아, 물론 너희들도 함께 가는 거야.'

리리샤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뒤, 작게 목소리를 냈다.

"얘들아, 이리 와봐! 내가 계획을 얘기해 줄게."

이불 속은 금세 반짝반짝 불을 내는 마법들로 가득 찼다.

마치 뭔가 말하는 것처럼 마법들이 리리샤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마치 온다, 온다, 온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시끄러워! 반짝거려서 눈알이 빙글빙글 돈단 말이야. 좀 얌전히 있어 봐. 내가 내일의 계획을 얘기해 줄 테니까. 우리는 이쪽으로 갈 거야. 전에는 뛰어가서 들켰으니까 이번에는 조용히 엎드려서 가는 거야."

리리샤는 이불 속에서 미리 만들어둔 지도를 펼쳤다. 손가락으로 저택의 네모난 부분을 짚은 뒤 꼬불꼬불한 선으로 손가락을 이동시켰다.

"이렇게 가면 돼. 그리고, 그래, 여기야! 여기서부터는 달려야 해. 알았어? 잘 붙어 와. 잘못해서 떨어지면 안 돼. 여기는 나무가 있어서 잘 안 보이니까."

어릴 적, 가끔 자다 눈을 뜨면 루디가 책상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그때는 저 커다란 의자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금빛 머리카락이 굉장히 높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자신도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다.

그렇게 커질 때까지 루를 만나 못한 거다.

보고 싶어.

루가 다시 리리샤의 이마에 마법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

사실은 조금 불안하다.

어릴 때는 저택 밖에만 나가면 루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는 이 저택이 후궁이라는 곳에 있고, 그 후궁은 커다란 황궁 안에 있으며, 다시 그 황궁은 어떤 커다란 곳 안에 있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다.

남작 부인이 그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후궁보다, 황궁보다도 더 커다란 도시가 여러 개 있어서, 그게 모두 합해지면 하나의 나라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루는 어디에 있는 거지?

저택 밖 후궁에 있는 건지, 아니면 그 밖에 있다는 황궁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알려주지 않는다. 심술궂은 시종들은 리리샤가 물을 때마다 그저 "먼 곳에 있습니다"라고 밖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누가 몰라?'

옆으로 몸을 꼬부려 누운 리리샤의 눈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언젠가 마리가 자신은 돈이 없어서 팔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저택 밖의 세상에서는 돈이 없으면 안 된다는데, 리리샤한테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빵과 육포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얘들아, 우리 이제 저택을 나가면 거지가 될지도 몰라."

루가 해준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 이야기 중에 왕자가 거지랑 뒤바뀌어 진짜 거지가 되는 이야기가 있었다.

"거지가 되면 루를 못 찾을지도 모르는데."

루가 알고 있는 리리샤는 공주다. 거지 리리샤를 루는 몰라. 어쩌면 루가 자신을 몰라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서러워졌다.

코를 훌쩍거리면서 손등으로 눈을 비비자, 잠시 조용하던 마법들이 다시 반짝거리며 소란스러워졌다.

이불 속이 번쩍번쩍 비 오는 날 천둥 치는 것처럼 요란하다.

바로 앞에서 마법들이 빛을 내는 통에 눈을 감아도 환한 느낌이 들었다.

"시끄러!"

리리샤는 울음 섞인 말로 마법들에게 말한 뒤 해쭉 웃었다.

다들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용기가 생겼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우리는 반드시 루를 만날 거야."

반짝반짝! 반짝반짝!

마법들이 요란하게 빛을 내며 좁은 이불 안을 날아다녔다.

반드시 저택을 무사히 나가 루를 데리고 올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리리샤는 지도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이 지도는 오랫동안 돌아다니고 시종에게 잡히면서 완성한 보물. 리리샤를 루에게 인도해 줄 거다.

'내일을 위해서 빨리 자자.'

한동안 코를 훌쩍거리며 울던 리리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꿈나라로 들어가 있었다.

꿈에서 리리샤는 루를 만났다.

하지만 이상하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햇빛을 뒤에 받은 루가 리리샤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공주님, 왜 이렇게 예뻐졌나요? 어릴 때도 예뻤는데, 지금은 나디아 마마보다 아름다워졌네요.]

당연하다.

당연히 리리샤는 나디아 마마보다 아름다워질 거야.

유모가 말했다. 루의 첫사랑은 분명 나디아 마마라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유모의 말에 리리샤는 굉장히 화가 났어요.

나디아 마마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가끔 마마가 이상해질 때면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유모의 말을 들은 뒤부터는 약간 미워졌다.

[절대로 지지 않아!]

꿈속에서 리리샤는 주먹을 높이 들고 외쳤다. 더 아름다워지고 말 테다.

***

"마마, 오늘은 예전에 바르던 향유로 할까요?"

머리를 손질하던 시녀가 묻는다.

시녀가 말하는 향유는 황제가 자신을 자주 찾을 무렵에 사용했던 것이다. 부인들이 남자를 유혹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달콤한 느낌의 향이었다.

황후는 가만히 손에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서 늙은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니, 오늘은 되었다."

"하지만 마마, 내일은 황제 폐하께서 오시는 날인데."

시녀가 말을 흐렸다.

황제는 이미 이 도시에 들어와 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다.

오랫동안 나라를 비운 뒤라, 황후와 황태자, 그리고 궁에 출입하는 귀족들이 내일 오전 궁안에서 마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조금 이상한 일이다.

평소의 황제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아무 소식 없이 벼락같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놀래키는 게 황제의 스타일이었다.

'그 사람도 늙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별 뜻은 없어. 별뜻은 없을 거야.'

황후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몇 달 동안 생각이 많았다.

백작 부인이 죽고 난 뒤 자신의 주변을 돌이켜 보니, 어느새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익숙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사라지고 쓸쓸해졌다.

단순히 황후 자신의 나이가 들었으니 그들도 늙어 개인적인 것이 더 중요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닐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지금에 와서야 슬금슬금 머리를 든다.

'아니야. 나는 남편을 믿어야 해. 그 사람과 내가 쌓아온 시간이 있으니.'

비록 남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들어 있다 해도, 그 여자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황제와의 사이에는 분명 사랑이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올린 정과 믿음이 있었다.

황후 자신의 것과는 다르지만, 황제는 아내를 사랑한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겹쳐온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황후는 눈을 뜨고 시녀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제 그만 되었으니 물러가라."

"예, 마마."

시녀가 조용히 물러가고 방 안에 고요함이 돌아왔다.

황후는 거울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한 가운데 사각사각 옷 스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 적막함이 지금 자신의 처지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다.

'괜찮아. 이 불안은 폐하가 오시면 사라질 거야.'

황제가 돌아오면 빙그레 미소를 짓고, 그 뒤에는 황태자 이야기를 하며 혀를 찰 거다.

자신이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 분명히 황제는 괜찮다며 웃을 거야.

황제는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가 한 마디 한 뒤, 다음의 황위는 누구에게 물려줄까 의논해올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대답하면 된다.

셋째가 좋겠습니다, 라고.

그 아이는 총명하고 결단력도 있으니 좋은 황제가 될 거라고 말하면, 분명히 황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거다.

황제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불안하고 마음이 괴로워도 참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참아온 마음은 그가 돌아오면 보상된다. 현명한 그 사람은 자신이 인내하고 기다렸다는 사실을 분명 알아줄 테니.

그래, 분명히 괜찮을 거다.

황후는 불안하게 떨리던 눈꺼풀을 덮었다.

굳게 감긴 눈꺼풀 속에 습기가 조금씩 차올랐다.

*

다음 날 아침, 황후는 평소보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처소를 나왔다. 시녀들이 그녀의 뒤를 길게 줄지어 따라왔다.

황제를 마중하는 장소는 밑이 뚫린 'ㅁ'자 형의 건물 중, 황제의 침실이 자리한 가운데의 본궁 앞이다.

본궁 앞으로 가자, 이미 귀족과 문, 무관들이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황태자 부부와 황자들도 나와 있다.

황후는 인사하는 황태자 부부를 힐끔 본 뒤 고개를 돌렸다.

잠시 기다리자, 멀리 화려한 마차의 모습이 보였다.

"!"

황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차 옆을 눈에 띄게 아름다운 흑마가 걷고 있었다. 그 위에는 어른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몸집 작은 사람이 타고 있다.

'설마.'

황제가 귀여워하여 저쪽까지 데려간 금색 아이인가.

황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흑마에 탄 사람을 보았다.

금색 노예가 황제를 장식하는 소유물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남편이 자신의 노예에게 저런 사치스러운 것을 가지게 한 적은 없었다.

지금의 황제는 사치스러워 보여도 사실은 인색한 편이다. 쓸데없는 곳에 돈이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지?"

"설마, 저쪽에서 새로운 첩을 들이신 것은?"

"여자라면 말을 타지는 않았겠지."

"아니, 내 말은 그, 금색 아이 말입니다. 그 아이를 혹시."

"허어, 여자를 좋아하시는 황제께서 설마하니."

사람들이 소곤소곤 소리를 줄여 이야기한다.

'아니야. 황제께서는 결코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남자는 마력소유의 아이를 낳지 못하니까.'

황제는 사랑조차도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면 처음부터 마음에 담지 않는다. 미리 조심해서 빠지지 않게 했다.

코레아의 공주를 한 번 보고 사랑에 빠진 건, 어쩌면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모르게 저 여자라면 괜찮다, 마음껏 사랑해도 그것이 국가에 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그녀에게 마음이 미쳐 날뛴다 해도 마력 소유를 얻을 수 있다면 모두가 상쇄될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마음에 덮어두었던 보호장치가 벗겨져버린 거야.

황제라면 가능한 이야기였다.

엔리코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그래서이기도 하다. 황제가 얼마나 마력소유를 원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는 모든 것을 가져갔을 것이다.

간신히 제어하고 있던 황제의 마음을 나디아그라에게 모두 가져가 버린다.

그것을 어찌 용납할 수 있을까.

황제의 마차가 가까이 오고 흑마 위에 올라가 있던 사람의 모습이 눈에 또렷이 보였다.

사치를 다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차림의 아이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에는 어디에서 공수해왔는지 고품질의 아름다운 공작 깃털이 보석과 함께 꽂혀 있고, 옷에는 금색과 은색의 실이 장식되어 있었다.

겉옷의 앞면에는 틈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보석이 달려 있다.

이 궁에 출입하는 누구도 저토록 사치스러운 옷을 입은 적이 없다. 황제보다도 화려한 차림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한결 높아졌다.

하지만 황후의 시선은 아이의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저 눈, 저 코, 저 얼굴의 선.

자기도 모르게 황후의 몸이 휘청했다.

옆에 있던 황태자가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황후는 무너질 것 같은 몸을 아들의 팔에 의지해 선 채 흑마 위의 아이를 보았다.

'닮았어. 나디아그라가 아니야. 그 여자와 닮았다.'

초상화에서 보았던 코레아 공주의 윤곽이, 흑마 위 아이의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와토린구 공작의 후계자.'

금색 아이는 확실하게 코레아 공주의 자식이었다.

마차가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약간 두고 멈췄다.

금색 아이가 우아한 동작으로 말에서 내렸다.

시종이 마차 문앞에 발 디디는 계단을 놓고, 그 위에 돌돌 말려 있는 붉은 융단을 덮어 펼쳤다.

시종이 마차 문을 열자, 금색 아이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민다.

마차 안에서 화려한 소매의 러플에 반쯤 가려진 가느다란 손가락이 나왔다.

금색 아이의 팔을 잡고, 마차 안에서 황제가 나오자 황후의 가슴이 턱 막혔다.

오, 신이시여.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허리를 붙잡은 황태자의 손에 힘이 담겼다.

< 각자의 불안 > 끝

(76)

작가의 말

루디는 11살, 리리샤는 9살입니다.

오타를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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