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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팔려간 곳이 황궁이었다-30화 (30/201)

< 산넘어 산 >

* * *

한동안은 봉황의 테스트를 계속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새로운 설정을 추가해서 봉황을 구성한다.

그때마다 봉황은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갔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능력을 흡수한다.

유모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마잉크는 여러 가지 마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루디가 아는 마석의 종류는 마도구에 사용되고 있는 물, 불, 전기의 힘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각자 자신의 성질에 충실했다.

물 마석은 불을 내지 못하고, 불 마석은 물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마잉크로 만들어낸 봉황은 다양한 종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불새이기 때문에 몸은 불의 성질을 띠고 있지만, 물을 만들거나 전기의 성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마잉크에 섞인 반짝임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의 색을 띠고 있었다.

‘어쩌면 광석을 캐다 나온 부스러기로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가장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루디는 마잉크 병의 뚜껑을 닫으며 히죽 웃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가치가 적은 쓰레기 마석이었을지 모르지만, 루디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보석이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불이나 물 마도구는 상당히 강하게 자신의 성질을 표현할 수 있지만, 봉황은 그보다 훨씬 약했다.

불도, 물도, 전기도, 마도구보다 적게 낸다.

아마 마석의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마석은 그 자체에 무슨 힘이 있다기보다는 사람의 마력을 담는 그릇인 것 같았다. 마치 마력을 담는 건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디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봉황이 날아와 그의 머리에 부리를 갖다 댔다.

약해서 미안해요, 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루디는 고개를 들어 봉황을 보았다.

“괜찮아. 넌 잘해주고 있어.”

단정하게 손을 무릎에 올리고 빙긋 웃었다.

“게다가···하려고만 하면 네가 가진 힘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내 생각을 알 것 같니?”

구루루···.

소리 없는 공기의 진동이 작게 울음소리를 냈다.

마법식에 [이심전심]이라고 적어 넣었더니, 100%는 아니어도 봉황은 그의 생각을 곧잘 읽어냈다.

하지만 루디는 봉황이 자신의 사념을 어떻게 읽고 이해했는지 모른다.

봉황의 생각은 읽을 수 없었다.

그런 건 이심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마법식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이치로 마법이 구현되는지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모든 일이 그렇듯이 숙련도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뭐든 하면 할수록 능숙해진다.

시간이 흐르면 루디 역시 봉황의 마음속을 알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봉황의 태도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으므로, 그가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른다.

“너는 저 마도구 보다 훨씬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어. 내가 위험에 빠졌을 때, 혹은 내게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가 해치려 할 때, 너는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겠어?”

루디는 지그시 봉황의 눈을 바라보고 자신이 생각하는 걸 보내려고 애썼다.

인간은 약하다.

심장에 약간만 전기를 흘려도 사람은 쉽게 죽어버린다.

인간의 코와 입에 약간의 물만 부어 막아도, 역시 죽어버릴 것이다.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 불을 내면, 약한 화력을 가지고도 그 자는 고통스럽게 울부짖다가 이 세상을 떠나간다.

실체가 없는 봉황은 마음대로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은폐 능력도 있으니, 그렇게 해도 인간은 눈치채지 못한다.

봉황이 뭔가 알았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루디는 끈질기게 그런 생각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내보냈다.

굉장히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한 시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봉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기 때문에 다리가 저렸다.

“으···.”

루디가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꼼지락거리자, 봉황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개를 펼쳤다.

포로 포로 포로···.

불씨가 허공에서 흩어지면서 커다란 날개가 루디의 몸을 덮었다.

날개의 끄트머리가 살짝 빛난 것 같다.

루디의 다리 쪽이 갑자기 저릿해졌다.

“엇!”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는데, 다리의 저림이 조금 나아진 느낌이 들었다.

퐁퐁퐁퐁···.

몸 속에서 사이다 거품 같은 게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기의 힘을 사용한 걸까.

잠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 위에 있는 동안 다리의 저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봉황이 다시 날개를 접고 책상 위에 앉아 가만히 루디의 얼굴을 보았다.

“내 생각을 이해했니? 네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것 같아?”

봉황의 몸이 포로로 소리를 내며 불씨를 사방에 떨어뜨렸다.

봉황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온몸에서 빛을 내며 부리를 약간 열었다.

공기가 가느다랗게 떨린다.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왠지 봉황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아요···알아요. 당신을 해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숨을 막고 불로 구우리니, 그대는 걱정 말아라,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리니. 귀여운 나의 주여.

봉황이 부드럽게 웃고 있는 것 같다.

“···.”

어쩌면 자신이 봉황의 생각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 이렇게 부드러운 공기를 휘감고 있는데, 실제로 전해져 오는 말이 저토록 냉정하다니, 아무래도 이상하지.

다시 한 번 봉황이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공기를 진동시키며 웃었다.

파르르 떨리는 날개에서 떨어지는 불꽃은 분명 실제의 열을 가지고 있을 텐데, 왜인지 루디의 몸에 닿는 건 봄볕처럼 부드러웠다.

살기 같은 건 없다. 따뜻하고 포근함만이 느껴졌다. 이걸로는 개미 한 마리 다치게 하지 못할 것 같았다.

“···.”

그래, 분명히 자신은 아직 봉황의 뜻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게 분명할 것이다.

* * *

부라도프와 만나고 난 뒤부터, 목록에 적힌 물건이 조금씩 저택에 도착했다.

설탕과 소금, 메밀가루 같은 것들이 가장 먼저 왔다.

황후의 눈치를 보기 때문인지 한 번에 많이 가져오지 않는다. 찔끔찔끔 감질나도록, 지붕 없는 작은 마차에 몰래 담아왔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부라도프 본인이 직접 왔다.

지난 번에는 상당히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만난 부라도프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지. 그게 제대로 된 직장인의 자세다.

부라도프가 평상시처럼 대했기 때문에, 루디도 조금 안심했다.

신화와 역사 책은 왜 필요한지 물어보길래. 솔직히 공주에게 읽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라도프가 깜짝 놀라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이 세계에는 어린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발상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는 동화책 같은 게 따로 있는 걸까?

동화책이 있다면 그것도 받고 싶다.

하지만 뭔가 물어보기도 전에, 부라도프가 재빨리 짐을 내려놓고 가버렸다.

여전히 그 사람은 짐을 저택 앞에 버리듯이 두고 간다.

정말, 상대방을 조금 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시종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해가 떠 있는 낮에도 손이 시릴 무렵, 드디어 가축이 도착했다.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려는 시점이었다.

제일 먼저 온 것은 거위 한 쌍이다.

저택의 뒤편에는 커다란 새장이 있다.

본래는 없었던 건데, 황제가 나디아 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구하기 어려운 새가 여러 쌍 있었다며 유모가 그리워했다.

새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황제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새를 돌보던 사육사도 오지 않게 되어 죽어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루디는 거위를 그곳에 두기로 했다.

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잡풀로 뒤덮였지만, 풀이 무성하면 그만큼 벌레도 많다. 먹이는 풍부할 것이다.

당분간은 곡물을 조금씩 줄 생각이지만 목표는 거위의 자립이었다.

혼자 벌레를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강해져라. 꼭 그래야 한다.

거위가 벌레를 먹고 사는 게 아마 맞겠지?

길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리리샤 공주는 드디어 사람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람이라고 해봐야 루디 한 사람 뿐이라 처음에는 고생했다.

루디의 몸도 작다 보니, 리리샤가 넘어지면 종종 함께 바닥을 구른다.

저택 안에만 두려는 유모의 눈을 피해, 루디는 가끔 리리샤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거위가 온지 사흘이 되던 날, 처음 리리샤와 만나게 했다.

가까이 가게 둔 건 아니고, 잡풀 너머로 조금 구경만 하게 했는데 굉장히 놀란 모양이다.

리리샤 공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석상처럼 가만히 굳어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까지 놀랄 줄 알았으면 조금 적응기간을 두는 건데 잘못했다.

기절한 걸까 걱정할 무렵에야 겨우 움직였는데, 그때부터는 정말로 힘들었다.

까까, 소리를 내면서 거위한테 달려들려는 리리샤 공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불새가 밝은 빛을 내면서 몸을 희생한 덕에 겨우 리리샤 공주의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며칠 뒤에 알게 된 건데, 거위는 벌레를 먹지 않는다. 대신 잡풀 사이에 있는 풀을 부지런히 찾아 먹었다.

부라도프가 닭을 가져오면서 알려주었다.

루디가 기르는 법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알아봐 준 것 같다.

그리고 뭐랄까. 좀 이상하게 생긴 닭이 왔다.

머리와 주둥이 아래에 붉은 것들이 달려있는 걸 보면 분명 닭인데, 몸을 덮은 털은 흰색과 검은 색이 연달아 있는 줄무늬였다.

전체적으로는 회색의 얼룩무늬인데, 볼에 흰색의 동그란 것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다리가 짧다.

다행히 닭은 벌레를 먹었다.

그 뒤로 속속 물건들이 도착하고, 장작도 하나둘 저택 뒤편에 쌓이기 시작했다.

루디가 함께 있으면서 나디아 마마의 상태도 안정적이 되어 발작을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조금 이상한 상태가 된다 해도, 고작해야 현재 상태를 과거로 착각하는 정도였다.

황제가 여전히 자신을 찾을 무렵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화장을 한다.

그리고 밤새도록 기다리는 거다.

오늘은 폐하께서 늦으시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잠이 들면, 다음 아침에는 전날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매일 저녁이 되면, 졸리기 시작한 공주를 불새가 자신의 몸으로 덮어 따뜻하게 만든다.

루디는 리리샤 공주를 이불에 뉘여 놓고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신화를 읽어주었다.

공주가 잠이 들면 그 뒤에는 마법을 연구했다.

저장식이 늘어나면서 조금 더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대로가면 순조롭게 겨울을 날 수 있겠구나 생각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떨어졌다.

연말과 새해에 걸쳐 열리는 연회에 나디아 마마가 황제의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입고 갈 드레스도, 보석도 마땅히 없다.

물론 나디아 마마에게도 황제의 선물이나 드레스가 여전히 수중에 남아있다.

그러나 유모의 말에 따르면, 황족이나 귀족은 한 번 입은 드레스나 보석을 그대로 착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거의 매년 새로 장만하거나, 같은 보석이라도 드레스를 달리하고, 때로는 보석에 장식을 가미해서 착용한다고 했다.

게다가 정신이 불안정한 나디아그라가 황제를 보고 그 자리에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그대로 불경죄가 된다.

잘못하면 목이 떨어질 것이다.

결국 이 초대는 황후의 괴롭힘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어째서인지, 루디 역시 황제의 시동으로 그 연회에 참석하라는 명령이 도착했다.

연회가 열리는 시기는 앞으로 한 달 반 정도 뒤다.

정말로 큰일 났다.

‘어쩌면 좋지.’

산 넘어 산이라더니, 겨우 비닐하우스 하나 마련했는데 태풍이 직격으로 통과한다는 소식을 들은 심정이었다.

< 산넘어 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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