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혔다 >
* * *
밤은 도둑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구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이 세계, 엄청 깜깜한 거야.
나무 덧창 사이로 밖을 봐도,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만 펼쳐져 있었다.
가만히 어둠 속을 보고 있자니,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오늘 따라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세계가 원래 그런 건지, 하늘에는 달도 별도 떠있지 않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어디인지조차 구별 할 수 없었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도둑도 불빛 없이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정진영은 나무 덧창을 닫고, 안쪽에 부착되어 있는 작은 빗장을 걸었다.
문득, 낮에 느꼈던 시선이 떠오르자 한숨이 나왔다.
일단 앞문은 의자와 탁자로 막았지만, 집이 낡고 부서진 곳이 많아서 2층 창문과 뒷문은 제대로 잠글 수 없었다.
애초에 나무 덧창 한 개를 제외하면 앞문이고 뒷문이고, 잠금 장치가 제대로 달려있는 문이 없다.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강제로 침입하면서 모조리 부숴 놓은 것 같다.
테이블과 의자도 누군가가 훔쳐갔는지 몇 개 남아있지 않아서, 앞문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뒷문은 부서진 나무 판자를 비스듬히 기대 놓았다.
밖에서 안으로 문을 밀면 그게 지지대가 되어 침입을 막아주겠지만, 강한 힘으로 밀면 또 모른다.
도끼라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일 것이다.
창문은 막을 수가 없어서, 그 대신 내려오는 계단 중간에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뿌려 두었다.
혹시 잠이 든 상태라도, 누군가가 내려오다 밟으면 소리가 날 것이다.
잘하면 균형을 잃고 넘어져 계단을 구를 지도 모른다.
뭐, 어쨌든 이렇게 어두운 가운데에서는 누군가가 침입하기도 어려울 테니, 약간 쉴 시간은 있을 것이다.
설마 이곳 사람들은 지구인과 달리 특출나게 밤눈이 좋다든가, 그렇지는 않겠지.
어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는 유모의 눈이 등잔만해졌던 것을 떠올리고, 정진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다못해 열 살 정도만 됐어도 좋았을 텐데.’
네 살짜리 몸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 * *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다.
정진영은 유모의 품에 안겨 눈을 떴다.
왜 눈을 뜬 건지는 잘 모르지만, 뭔가 위화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건물 안은 아직 캄캄하다.
정진영은 가만히 어둠 속에 귀를 기울였다.
위쪽에서 나무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난 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였다.
어쩌면 앞문으로 들어오려다 문이 열리지 않자 이층으로 향한 건지도 모르겠다.
정진영은 작은 손을 움직여 유모의 입을 막았다.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그렇게 했는데도 유모는 깨지 않았다.
“유모! 유모!”
그가 작은 소리로 부르자, 유모가 흠칫 몸을 움직였다.
깜짝 놀라 소리를 내려는 유모의 입을 강하게 막는다.
그제야 자신의 입이 막혀있는 것을 알았는지 유모가 꿀꺽 침을 삼키고 가만히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유모가 침착해진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손을 뗀다.
“위층에서 소리가 들려.”
“···.”
유모가 바닥을 더듬어 곁에 두었던 칼을 찾는다.
끼이익···끼이익···.
나무판을 밟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 명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진영은 헝겊이 감긴 못을 손에 쥐었다.
“도련님은 벽 쪽에 붙어 계세요.”
유모가 일어서면서 작게 말했다.
“응. 조심해, 유모. 저 사람들이 내려오면 창문을 열게.”
“···.”
유모가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를 내려다 보는 것 같다.
마음이 약간 초조해졌다.
어쩌면 어젯밤 그가 문을 단속할 때부터 유모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유모가 잠시 뒤에 작은 소리로 말했다.
“창문이 열리면 빛이 조금 들어오겠죠. 감사합니다.”
“···응. 계단에 놓아둔 나무 조각을 밟으면 곧바로 열 테니까. 조심해, 유모.”
“네, 걱정 마세요.”
귀신이나 악마가 씌였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다.
‘설마 악마 사냥 같은 거 당하거나, 퇴마 의식하자고 사제한테 끌고 가는 건 아니겠지?’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지며 입 다물고 있다가는, 악마 사냥 전에 부랑아나 도둑놈들한테 죽을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일단 도망갈까.’
유모의 눈치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 떠나자.
정진영은 한숨을 쉬면서 바닥을 더듬었다.
기다시피 해서 벽에 붙은 뒤, 조금씩 이동한다.
마침내 창문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이르자, 조용히 나무덧창의 걸쇠를 벗겼다.
혹시 바깥에도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정진영은 덧창을 다시 닫고 조용히 놈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긴장 때문에 못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뒤, 이층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기 때문에 지나칠 만큼 크게 울린다.
침입자들도 깜짝 놀랐는지, 잠시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 뒤에, 남자들이 소리를 죽여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이 소리 듣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자고 있겠지. 게다가 문에 뭘 쌓아둔 것 같으니 그리 쉽게는 못 나갈 거야.”
“크크큭, 여자라···. 정말 오랜만에 몸 좀 푸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서두르자구. 이러다 날밝겠다.”
“알았어.”
남자는 두 명 뿐인 것 같다.
조용하기 때문에 작은 소리인데도 똑똑하게 들렸다.
남자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것 같다.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졌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점점 밑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우당탕 하며 남자가 계단을 굴렀다.
지금이다.
정진영이 창문을 열자, 희미한 새벽 빛이 건물 안으로 스며들었다.
여전히 건물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흐릿하게 남자의 형체가 보였다.
한 명은 바닥에, 다른 한 명은 계단 중간에 있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유모의 두툼한 칼이 정확하게 바닥에 넘어진 남자의 몸에 떨어졌다.
“으악!”
“으아아아악!”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계단에 있던 사람도 감짝 놀랐는지 크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칼을 뽑으려던 유모가 멈칫했다.
그냥 베거나 찌르는 검과 달리, 유모가 들고 있는 건 가축을 도축할 때 쓰는 네모난 형태의 칼이다.
칼은 쓰러진 남자의 목을 반쯤 가른 뒤 바닥에 박혀, 뽑히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의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목을 누르려 애썼다.
남자가 버둥거리자, 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유모의 손에도 묻었다.
손에 피가 묻어 미끄러워지면 칼을 뽑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유모가 당황한 사이, 계단에 있던 남자가 정신을 차린 듯 몽둥이를 치켜 들었다.
정진영은 구르는 것처럼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남자는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내려와 몽둥이로 유모의 등을 강하게 쳤다.
유모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한데 쓰러진 장소가 좋지 않았다.
칼이 박혀 있는 자리였다.
유모의 얼굴이 바닥과 칼날 사이에 끼이는 것처럼 박히고,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빌어먹을 계집이!”
남자가 유모의 등에 올라탔다.
그대로 머리카락을 잡더니 올려서, 바닥에 머리를 쿵 내리쳤다.
유모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억, 억, 거린다.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유모의 머리를 잡고 내리쳤다.
붉은 피가 점점 구역을 넓히며 퍼져 나갔다.
정진영이 달려갔지만, 네 살 짜리 어린아이라 그런지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정진영은 이를 악물었다.
‘흥분해서는 안 돼. 침착하게, 침착하게 해야 한다.’
실패하면 끝,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정진영은 숨을 크게 마셨다.
그는 오른손에 못을 쥔 채, 남자의 뒤에 달라붙었다.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 가까운 장소다.
정진영은 왼손으로 남자의 목을 감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아직 정진영의 손에 못이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운데다 아이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정진영이 남자를 찌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 애새끼가! 저리 비키지 못···.”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치는 순간, 정진영은 그대로 오른손을 당겨 찍었다.
의도한 대로 못은 정확하게 남자의 오른쪽 눈에 박혔다.
뭉클한 느낌이 못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남자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젓자, 작은 정진영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윽!”
정진영은 작게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부딪친 탓에 온몸이 아프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진영은 아픔을 참으며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못은 바로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남자는 한손으로 눈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 나가려는 것이다.
정진영은 그대로 달려가 남자의 귓구멍에 힘껏 못을 찔렀다.
“끄아아아악!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정진영은 유모에게 달려갔다.
유모는 앞으로 엎어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여전히 피가 흘러 나온다. 피가 너무 많아서, 어디를 다친 건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유모! 정신 차려!”
정진영이 여러 번 불렀지만 그녀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아직 숨을 쉬고는 있지만 살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의학에 문외한인 정진영의 눈에도 그게 명확해 보였다.
‘젠장!’
어쩔 수 없다.
정진영은 유모의 옷을 헤쳐 허리춤에 차고 있는 기다란 천가방을 풀었다.
돈과 금붙이가 들어 있다고 유모가 가르쳐준 긴 천이다.
정진영은 상의를 올려 그걸 자신의 배에 둘둘 감았다.
보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 둘 중 목을 칼로 베인 남자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명은 고통 때문에 반 기절 상태였다.
배에 감은 천가방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지 살핀 뒤, 못을 주워 유모의 옷에 한 번 닦았다.
그리고 문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바깥에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냐!”
“예, 예, 그 귀족 같은 여자와 아이는 분명히 이곳으로 들어갔습니다요.”
큰일 났다.
‘이놈들, 그냥 침입한 게 아니었구나.’
일행이 밀고하러 간 사이, 이 두 남자가 감시 역할을 맡은 거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병사가 오기 전에 잠시 즐겨보자고 생각했던 거겠지.
정진영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뒷문으로 나가는 건 무리다. 건물과 건물로 막혀 있기 때문에 천상 건물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데, 어른이면 모를까, 정진영의 몸으로는 무리였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 이층 창문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오르는 것보다는 뛰어내리는 게 어쨌든 더 쉬우니까.
정진영이 계단으로 향하는데, 문이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나무 덧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이가 있다!”
문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요행히 이층 창문으로 나간다 해도 들킨 이상 도망은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도망칠 수 없다고 아는데도, 몸은 마음대로 미친듯이 계단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계단을 막 올랐을 때, 누군가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잡았다!”
꾀죄죄한 차림의 남자였다.
병사는 아니니, 아마도 침략자의 동료일 것이다.
남자는 정진영의 팔을 억세게 움켜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빌어먹을 놈들! 나 빼고 재미를 보려고 했구나. 나쁜 자식들.”
혼자 중얼중얼하며, 남자가 힐끔 쓰러져 있는 침입자들을 보았다.
문득 유모를 본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남자는 그대로 유모와 침입자들을 지나쳐 문으로 향했다.
이 남자는 창문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문에는 여전히 의자와 탁자가 쌓여 있었다.
정진영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손으로 움켜쥔 채, 남자가 다른 손으로 의자를 하나씩 치웠다.
의자가 한 개 남았을 때 문이 벌컥 열리고 병사 두 명이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기가 막히다는 듯 병사가 중얼거리더니, 유모의 곁으로 갔다.
발로 툭툭 차도 반응이 없자, 병사가 재미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쳇, 죽었나.”
병사는 다시 문으로 돌아와 정진영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지저분하잖아.”
다른 병사가 정진영을 잡은 남자에게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새끼가! 이런 놈이 어디를 봐서 귀족이냐. 감히 우리한테 거짓말을 쳐서 돈을 받아먹으려고 해!”
남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아, 아닙니다요. 진짜로 이 아이와 저 여자는 일반 평민은 아니에요. 우, 우리는 딱 보면 압니다. 이 아이 손을 좀 보세요. 깨끗하잖아요. 평민은 이렇지가 않습니다요.”
“···.”
병사가 정진영의 손을 잡아서 곰곰이 쳐다본다.
병사 둘이 시선을 마주치더니, 다시 부랑아 남자를 보았다.
“거짓말치지 마! 이 더러운 디코콰리아 놈! 당장 없어지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하, 하지만, 귀족을 발견하면 돈을 준다고···.”
부랑아 남자가 항의하는데, 한 명이 갑자기 칼을 빼들었다. 그대로 남자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부랑아 남자가 단말마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지자,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병신 같은 놈!”
씹어 뱉는 것처럼 한 마디 한 뒤, 병사가 부랑아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정진영을 끌고 걷기 시작했다.
정진영은 거의 바닥에 질질 끌리다시피 하며 달렸다.
< 잡혔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