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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4화 (244/254)

244화-의미를 찾아서(4)

"아무래도 수련은 다음 번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

"놈들의 공격이 또다시 시작되었으니까."

"흐음..."

지창현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원인은 당연히 이브가 명령한 습격 때문이었다.

"꼭 가셔야 합니까?"

나는 슬쩍 용기를 내서 꼭 가야겠냐고 말했다.

사실 아직까지 이브는 그의 공격을 파훼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합류만으로 패퇴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제 힘이 그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것 같습니다. 이 '업화'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제가 가야죠. 그래야 한명의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습니다."

지창현은 당연히 자기가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희미하게 웃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둘은 계속 휴식하면서 컨디션을 조절하십시오. 꼭 필요한 전장에 가게 될테니까."

결국 그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나는 괜찮느냐는 눈으로 이브를 바라보았지만, 이브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정말 괜찮은거야? 대응 방법 없잖아. 그에게서 그 힘이 무엇인지 배우지도 못했는데."

"딱히 상관 없어. 대비만 해두면 일부분 쳐내는 정도로 막을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아. 이런 장애물이 있어야 재미가, 성장이 있지."

아무래도 나름 생각한 방법은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이브에게선 신경을 끄고, 내 일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지금 한창 전투중인 라몬과 강도연이라던가.

그 둘은 결국 끝까지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한때 미친듯이 서로 싸워서 그런가, 막상 같이 싸우게 되자 합이 굉장히 잘 맞았다.

지금 둘이 시전하는 합격기는 나와 이브가 함께 싸울때 사용하는 기술일 정도니까.

'분명 성장했다. 역시 이브의 생각이 맞은거야.'

이미 너무 강해서 효과가 없어 보인다?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무언가 계속 하는 이상 군단의 성장은, 진화는 계속된다. 굳이 눈에 띄는 성장이 있지 않더라도 합격술이 더 매끄러워진다던가 하는 성장이.

하물며 리하르트 역시, 자급자족 및 한정된 자원으로 군단병들을 굴리는데 점점 도가트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를 상대하는 상대도 강해진다. 이브의 실험은 성공적인 셈이었다.

"실험이 성공이라면, 더 이상 웅크리고 있을 이유는 없지."

이브가 한동안 쉬고 있던 둥지들을 전면적으로 재가동했다.

전부 합치면 수십억의 병력을 지속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

"완전히 쓸어버리는게 목적이 아니야. 싸우는게 목표지."

이브는 그 대병력을 잘게 나누어 지금까지 그 주소를 파악한 수천 곳 이상으로 동시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어디 한군데를 점령하기위해 전력을 다하던 때와는 다르다. 마치 소모전을 하는 것 처럼, 그들의 절박한 저항을 이끌어 내려는 행위였다.

'이것으로 그들도 훈련되고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이브를 말리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지금 이브는 그 엄청난 숫자의 세상들 모두와 스파링을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훗날 있을 진정한 적의 존재가 기정사실이 된 지금, 그리고 이브가 그 적들을 혼자서 처리하긴 힘들 수도 있다고 판단되는 지금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와야 하니까.

'이런 미친. 내가 이런 생각까지 품게 되다니. 하...'

[합리와 이성을 따지기엔 이 세상은 너무 넓고, 시간은 많지 않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그 힘을 취하겠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니, 순간 드는 극심한 현자타임에 혀를 차자 나를 위로하는 메시지가 눈에 아른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씁쓸한건 어쩔 수 없다. 이제 완전한 쓰레기가 다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지창현이 늙어 죽을때까지 뛰어다녀도 다 못막을걸."

군단을 움직인 이브가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을 본 나는 또 다른 곳에 한번 더 시선을 옮겼다.

모든 이들의 존속과 목숨을 걸고 진행되는 이 '마지막'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안되니까.

이브는 놈들은 굳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놈들은 이런 어중간한 공격으로 공격하게 되면, 반격을 크게 맞을 수도 있는 나름 강한 놈들이었으니까.

'거슬리는 놈도 처리할 각을 보고, 무엇보다 균형은 맞춰야지.'

그러니까 내가 해줄 일은, 지금 잔뜩 움츠러든 그놈들이 알아서 나와서 나대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

"인간놈들은 계속 그 괴물들과 싸우고 있소."

"아예 처음부터 가만히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전쟁을 시작한 마당에 이럴때 가만히 있어야 하는건가?"

카사라스들의 본성 로나스. 한때 완전히 사라질뻔한 이 땅에서, 다시금 전열을 정비한 카사라스들 사이에서는 최근 조금씩 불만이 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고향땅을 지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어쨌든 그때 받은 그 굴욕을 조금도 갚아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수 이상이 다시금 군을 일으킬 것을 원하지. 하지만 '그들'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나."

"큭...그들은 고작 몇 명에 불과하오. 의제를 투표에 붙이는건 우리의 전통인데 어찌."

카르코스 하나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그들의 의사결정을 위해 여는 회의가 거의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제약에서 벗어나 있는 방랑자들이 원인이었다.

"...다들 불만이 많소. 준비를 철저히 하는건 맞지만,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는건 맞소만."

원로 타나스도 이런 불만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흘끔 눈치를 보며 자기 앞에 앉아있는 동족을 바라보았다.

'아 씨 진짜 드럽게 재미없네.'

정작 방랑자의 우두머리를 연기하는 오윤아는 이제 슬슬 몸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맡은 임무는 카사라스들의 움직임을 억제하는 것.

연맹에게 숨쉴틈을 주고 이브의 실험을 도우려는 신우의 안배였다.

'...이건!'

그러나 지금 이 시간부로, 드디어 명령이 갱신되었다. 애써 평정을 가장한 오윤아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카르코스들의 생각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 슬슬 때가 된 것이겠지요."

"그게 정말인가? 계속 반대하지 않았소."

"선택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니까."

찻잔을 내려 놓은 그녀가 이렇게 능숙하게 연기를 펼친 결과. 곧 카르코스들의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이 소집 과정에서, 그녀는 타나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장한 신우의 명령을 털어놓았다.

"괴물들의 둥지들이 아닌, 인간들을 쳐야 한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급격히 불어나는 인간들의 세력이 가장 크다는 것은 알 것입니다. 심지어 서로 갈라져 싸우던 이들인데도, 최근 계기를 가지고 다시 하나로 뭉치고 있습니다. 동족들은 모두 괴물들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타나스는 인간을, 정확히는 뜬금없이 '연합'을 치자는 오윤아의 말에 놀라 눈을 꿈벅거렸다.

"지금도 그 괴물들은 인간들의 세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지금 당장은 인간들에게 맡기고 대승적 차원에서 우리는 다른 인간들을 공격하는 것이 맞는 판단입니다."

"...과연 다른 이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소."

결국 모두와 싸워야 하는 입장상 일리가 없는건 아니었기에, 타나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주장을 물고서 강하게 주장하는 이가 생겨났다.

"괴물들을 죽이기 위해, 그전에 인간들을 밟아야 하오."

플레이어, 라스가 오윤아를 지지하며 강하게 주장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다시 한번 발언권을 얻기 위한 묘수가 바로 이것이었다.

실제로 좀처럼 동의를 얻지 못하던 오윤아의 이간질이 나름의 화술을 가지고 있는 라스의 입을 타고 다시 퍼지게 되었다.

'똥멍청이.'

오윤아는 자기가 알아서 삽질을 해주는 그를 눈여겨 보았다.

플레이어 라스, 그는 같은 경쟁자인 신우에게도 차지연을 비롯한 에볼루션 소속 헌터들을 서브마인드로 받은 이브에게도 처단 대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투표하겠소.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

"드디어 움직이게 되겠군. 복수할 수 있도록!"

카르코스들은 실로 오랜만에 투표를 하고 의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것은, 결국 인간들을 먼저 공격하여 화근을 없애고 차후 차근차근 군단을 공격하자는 것.

'저녀석 덕분에 어째 일이 생각 이상으로 수월하게 풀렸네.'

정작 이 일을 주도하게 만든 신우는 오윤아의 눈을 통해 그 모습들을 보고 탄식했다.

'연합이 깜짝 놀라겠지. 접점이 전혀 없던 카사라스가 갑자기 자기들을 공격하니까.'

카사라스들은 연합과 연맹이 서로 반목하다가 최근 다시 손을 잡았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공공의 적 앞에 서로 다시 뭉친 것도 사실이고, 그 공공의 적에 자신들도 들어가니 오히려 카사라스에겐 인간 세력을 각개격파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진짜 난장판이네.'

그것을 설계하게 만든 신우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가 이미 출발한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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