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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3화 (243/254)

243화-의미를 찾아서(3)

'할 수 있다면 싸우는게 맞는 것 같아.'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싸우고 싶다면 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의외로군.'

'내가볼때 이건 타임어택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최대한 성장해야해. 우리나, 그들이나.'

라몬이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나도 내 선택이 평소와 다름을 인정했다. 만약 걸린게 아무것도 없다면 나도 굳이 손실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직감이지만 어쩌면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것 같아서.'

기준은 이전 회차의 이브였다.

과연 이전 회차의 이브가 모든 세력을 먹어치우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장담컨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둘러서 나쁠게 없어.'

'한 가지 묻고 싶군.'

'무엇을?'

'...만약 그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 이후엔 무엇을 하려그러지?'

라몬의 목소리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투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존재라서 그런걸까, 그는 끝이라는 것을 찾지 않았다.

그의 삶에 끝이 존재하는 투쟁 따위는 없다.

'글쎄. 일단 승리하는게 먼저겠지만 만약 승리한다면 뭐, 이대로 계속 가는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이브의, 그리고 우리에게도 끝은 없다. 싸우고 또 싸운다.

승리하여 정복해도 싸우고 패배하여 세포수준으로 퇴화해도 싸운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군.'

라몬은 씩 웃더니, 병력을 수습하여 다시 한번의 전투를 준비했다. 동생인 강도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우리가 공격하고 있는 저 행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패자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약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오직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강해진 힘. 외우주의 적들에게 쏟아야 한다.

'돌진한다. 36번째 전투이고, 이번엔 반드시 놈들을 궤멸시켜야겠다.'

'싹수가 보인다고 당신이 계속 봐주니까 그러는 거잖아.'

군체의식으로 서로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내게도 들렸다. 동생은 최근 자신의 길을 확실하게 정했다.

강함에 대해 탐구하고 고민하던 여린 녀석은 이제 없다. 누군가에겐 재앙이자 끔찍한 종말의 사자였고, 아군에겐 강력한 군단장이었다.

'거 속도 편하군!'

정작 투덜투덜 거리며 실무에서 고통받는건 한정된 자원과 병력을 쥐어짜 그들의 보좌를 맡아야 하는 리하르트였다.

***

"이럴 수가..."

"놈들이 또, 또 오고 있어! 어서 알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푸른 행성. 경계를 서고 있던 두 전사가 하늘을 보고서는 놀라 기겁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뿔피리를 힘차게 불었다.

전신에 북슬북슬한 털을 달고 있는, 마치 이족보행을 하는 개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의 이름은 기오랑족.

비교적 최근 연합에 가입한 그들이 이 행성의 지배종이었으며, 연합전체로 봐도 개인개인이 결코 약한 종족은 아니었다.

"아..."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그정도일 뿐.

지금 하늘에서 지상으로 쇄도하는 저 침략자들을 완전히 몰아낼 힘은 없었다.

"검은 날개...그리고 검은 뿔!"

"당장 태전사님께 지원 요청을!"

수비를 위해 몰려 온 병사들은 최선두에 있는 두 존재의 정체를 확인하고 기겁하며 발광했다.

검은 갑각을 전신에 두른 여체와 남체는 각각 검은 깃털로 된 날개와, 검붉은 광석으로 된 뿔을 달고 있는 괴물들.

분명 양산형 군단병들에 의한 대단위 면적의 피해도 크지만 대부분의 기오랑족들은 저 둘에게 학을 뗄 정도였다.

마치 결투를 강요하는듯한 그들의 태도로 수십차례의 전투를 벌였고, 부족연합체에서 내로라하는 수백의 전사들이 희생당했다.

"태전사님!"

"최흉의 재앙들이 또다시 내려왔구나."

듬직한 체구에 거친 인상을 가진 누군가가 서둘러 달려와 지상에 착지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는건 태전사로 인정받은 베테랑들 뿐. 물론 어디까지나 저항할 뿐이지 태전사들 역시 이미 여럿이 그들의 손에 죽었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그는 곧 몰려오는 군단병들을 보면서도 병사들을 독려했다.

다만 손에 쥔 창이 덜덜 떨렸다. 사실 그들과 처음 싸우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마세요. 저희가 오지 않았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때 그를 위로한건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는, 싱그러운 연두빛 머리칼의 요정이었다.

연합의 지원군으로서 참전한 것이었다.

"슈리아라고 했던가? 정말로 자신 있는거요? 저놈들은...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소. 직전의 전투에서 분명 내 숨을 끊을 수 있었는데도 나를 살려주었지."

"혹시 그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끝까지 싸우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자랑스러운 기오랑족의 태전사가 도망칠 순 없으니까!"

"그것 때문입니다."

발끈한 그의 언성에 그녀, 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몇번이고 경험한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저 빌어먹을 사악한 우주의 괴물들은 오직 학살과 싸움만을 원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가치 없는 것은 스스로 싸움을 포기한자이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어떻게든 다시 덤비길 망설이지 않는 겁니다."

"..."

태전사는 말을 잃었다. 슈리아의 말대로라면, 자신보다도 더 지독하게 겪어온게 그녀였으니까. 실제로 말 속에서도 그런게 절절히 묻어 나올 정도였다.

'계속 살려보내라. 나는, 절대 살려보내지 않을거니까.'

증오를 아끼지 않은 그녀는 다가오는 두 검은 악몽을 보며 자신의 무기인 활을 꺼냈다. 동시에 몸에서 터져나오는 힘이 몸을 휘감았다.

"가자! 반드시 이곳에서 막아야 한다!"

"중앙으로는 오지 마라!"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두 진형에서 소수 인원이 돌출되어, 서로를 향해 먼저 부딪혔다.

날개를 펼치고 깃털을 변형시킨 송곳들을 쏘아보내는 강도연의 곁으로, 태도를 든 라몬이 덤벼들어 태전사를 향해 휘둘렀다.

슈리아가 쏜 화살이 송곳들을 날려버렸고, 뽑아든 검으로 강도연의 방어막을 내리쳤다.

"죽, 어어어어!!!"

슈리아의 몸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마나가 강도연을 방어막째로 땅에 추락시켰다.

지금 이 순간, 분명 그녀는 자신의 한계 이상의 힘을 쓴 것이다.

"맛있어 보이네."

"...지금 우리쪽을 보고 말하는거지?"

"맞아."

이브와는 달리 멀티테스킹이 불가능하기에 남들이 볼때는 앉아서 눈을 뜬채 멍을 때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정작 그렇게 화면을 몰입하고 있다 당황한 신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이브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여전히 전투를 벌이고 있는 강도연과 라몬이 보이고 있었다.

"기껏 기회를 줘도 받아먹지 못하는 놈들이 수두룩해. 영웅은 괜히 영웅이 아니야. 남들과는 다르기에, 영웅이야."

"...아직 확실한건 아니야."

신우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사실 그와 이브의 목적은 같으면서도 살짝 달랐다.

지금 전체적인 전력 증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와는 달리, 이브의 관심은 결국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성장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다는걸 알지만, 의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어. 난 성장하고 있는게 맞아?"

"넌 지금 엄청난 발언을 한거야."

쓰게 웃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브는 지금 진심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넌 계속해서 크고 있어. 내 관심을 갈구하던 그 시절, 내게 이름을 받았던 시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세계를 확장하던 시절, 그리고 성장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시절까지.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고."

그는 자신의 진심을 말해주었다. 정작 그 말을 듣는 이브의 표정은 오묘했다. 스스로도 마치 곧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한듯.

"네가 제일 대단해 이브. 그 끝이 어떻든 구조상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은 결국...너니까."

'그 어느 회차보다도. 지금의 네가.'

비록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진심이라는게 달라지진 않는다.

이브는 일단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속뜻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일단 칭찬으로 들은 것이다.

"연맹이 힘을 더 회복하기 전에 한번 밟아놔야겠어. 요즘 너무 기고만장해졌거든."

"...지창현의 대비는 어쩌고."

"치명적인 독이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건 아니야."

이브는 다시 한번 연맹을 공격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 이유는 이번엔 좀 심플했다.

지금 연맹에 소속되어서 더 잘 느끼는 것이겠지만 최근 연맹 사람들이 들뜨고 희망차진게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간 이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군단인 이브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모리스.'

'예?! 예!'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 이번엔 새로 영입했던 네 동료들까지 붙여주지.'

이브는 회수했던 모리스의 혼에 다시 육신을 만들어 주었다.

'가서, 그들에게 진정한 공포를 안겨줘.'

그리고 곧장 임무를 내렸다. 모리스는 선택지가 없었다. 한번 서브마인드가 된 존재가 영면에 드는 경우는 이브가 직접 폐기하는 것, 단 한가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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