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30화 (230/254)

230화-물고 물리는 싸움(10)

'대체 뭐지?'

모두가 당황했다. 라스도, 원로인 타나스도 마찬가지였다.

허공에 나타난 이들은 분명 자신들과 같은 동족으로 보였다. 그러나, 분명 다른 점들도 있었다.

가령 가장 선두에 있는 카르코스라던지. 피부색도, 무장도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당신들은 누구요!"

죽었다 살아난 타나스가 가장 먼저 안정을 찾고 입을 열었다. 카사라스라는 종족 특성상, 서열은 절대적이다. 선두의 카르코스는 모를까 곁에 있는 기사계급들은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용 없는 짓 하지 마라. 우리는 일족의 금제와 제약에서 자유롭다."

"...이럴 수가."

그러나, 그 생각은 단번에 깨지게 되었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원로 타나스의 명령에 맞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타고난 서열에서 자유롭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럼 대체 당신들은 누구란 말인가!"

"너희들도 먼 옛날의, 방랑자들에 대해 알 것이다."

이 미지의 카라코스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 순간 모두가 경악한 상태로 굳어버렸다.

일단 언급된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었다. 지도층인 카르코스라면 모를 수가 없는 종족의 역사였다.

"우리 종족 전체가 사명을 다하기 전에 이런 위기에 빠졌으니, 우리는 방랑을 끝내고 다시 돌아왔다. 너희를 도울 정보와 함께."

"미, 믿을 수 없소. 그것은 단순한 설화일 뿐이오."

"그렇다면 지금 너희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무엇이냔 말인가."

이 낯선 이방인이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꺼내 손 위에 올렸다.

복잡한 큐브같이 생긴 그것은 오직 카사라스, 그중에서도 카르코스의 형상력에만 반응하는 일종의 무기.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웅웅거리는 큐브의 모습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잠깐. 설마.'

그중에서 눈치를 보던 라스는 순간 기겁하여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유닛 차지연을 저격한건 분명 자신의 통제를 듣지 않던 종족의 기사였다.

비록 다른 동족들에겐 말하지 못하고 믿을 수 없던 충격으로 남겨두고 끙끙거리고 있었는데, 지금 그것과 비슷한 존재들이 나타난 것이다.

"분명 우리를, 우리의 고향을 도울 수 있는 정보라 했소?"

"그렇다."

'수상하다. 너무 수상하다. 하지만, 분명 힘을 증명했는데 어떻게!'

타나스가 보다 진지하게 그들과 이야기 하는 사이 라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머리를 굴렸다.

설마하니 외형도, 그 힘마저도 완벽한 그들이 동족의 껍질을 뒤집어 쓴 이들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알고 있나!'

결국 그의 상상은 더 안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설화에 따르면 먼 옛날 또다른 사명을 받고 일족에서 떨어져나갔다던 이 방랑자들이, 자신이 게임의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데 까지.

플레이어가 되어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짓, 분명 종족의 긍지를 무시하고 천혼술의 오의를 유출하는 등 여러번 배신한 행위기는 했다.

"대체 그 정보가 무엇이오."

"전선에 나가있는 군대를 회군시킬 수 있는 방법이지."

그렇게 라스가 혼자만의 심각한 쉐도우복싱을 하고 있을때.

정작 나머지는 각자의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중이었다.

우주를 떠돌며 순찰하는 방랑자 카르코스를 연기하는 오윤아는 이젠 나름 고위층이 된 신우를 통해 손쉽게 얻어낸 연맹의 극비 정보를 고의로 흘렸다.

그리고 타나스를 비롯한 다른 카르코스든은 군단병들에게 휩쓸려 패망 직전의 고향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그 정보를 받아적었다.

아무도 오윤아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그 어떤 이들이, 자신들의 형상력인 천혼술을 흉내낼 수 있다고는 상상 못했기에.

"이게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오."

"바로 전송하겠습니다!"

타나스를 비롯한 카르코스들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최후의 저항을 준비했다. 동시에 최전방에서 연맹과 싸우던 부대에 한가지 소식이 전송되었다.

'임무 성공? 하긴 애초에 정보 자체는 사실이니까.'

오윤아는 그 모습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극한의 상황이라 그런지, 자신의 상상보다도 더 수월했다.

"...방랑자로서 그대들을 외우주로 내몬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기 힘들었을 터. 그럼에도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소."

"우리의 사명도, 당신들의 사명도 결국 살아남고서야 지킬 수 있는 것이오."

그녀는 진심으로 인사하는 타나스에게 적당히 맞장구 쳐주었다. 사실 카사라스의 사명이니 뭐니는 자세히 알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니...부디 지금은 함께 싸워주시오."

"그렇게 하지."

물론 이번엔 어쨌든 같이 싸워야 했지만.

*

"비상...비상입니다!"

"무슨 일이죠?"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나는 화면에서 눈을 뗐다. 사실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지만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아, 아무래도 금일 진격하는건 힘들 것 같습니다. 아군 보급선이 지금 동시 타격을 받아 격추당했습니다!"

상부에서 무언가 듣고 온 레비크 중위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말을 쏟아내었다.

내 예상대로, 정보를 얻은 카사라스들이 회군을 위해 자꾸 물고늘어지는 연맹군의 약점들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놈들이 무사히 철수할겁니다. 저희의 땅을 불바다로 만들어놓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좀 진정하시죠. 자. 일단 여기 앉고."

반파된 건물에 마련된 임시 막사지만 우리가 있던 곳엔 반쯤 뜯어진 푹신한 소파도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그녀를 앉히고 진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급이 없다면 결국 진격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떼를 쓴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레비크 중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렸다.

아마 작전은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틈을 찾은 카사라스들은 무사히 퇴각할 것이고, 서둘러 자기들 본진으로 워프할 것이다.

"마음에 안들어."

팔짱을 낀 이브가 듣고있다 곁에서 한마디 내뱉었다. 표정이 뚱한걸 보니 어지간히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었다.

단지 이브가 짜증내는 이유는 복수심에 불타는 레비크 중위와는 다른 이유였다.

'철수해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뭐냐고! 대체 그놈들이 어떻게 이렇게 절묘하게 연맹의 약점을 찌르는거지?!'

내가 슬쩍 군체의식으로 묻자 바로 성을 내었다.

사실 이브의 입장에선 화가 날만하다. 지금 상당한 자원을 투자해 적들의 본진을 함락시키기 직전인데, 그게 뒤집힐 위기였으니까.

'차라리 병력을 온존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게 나을거야.'

'큭...그 시퍼런 외계인들을 내버려 두는 이상 연맹을 공격하는 것도 의미가 없을거야. 이번이 진짜 천재일우의 기회였는데!'

이브가 바닥에 있던 돌을 힘껏 걷어찼다. 당연히 돌은 가루가 되어 박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하고 있는 공작은 이브가 모르게 몰래 진행하고 있는 것.

내가 플레이어이며, 같은 서열의 하이브마인드기에 가능한 짓으로 들켰다간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안잡힌다.

'놈들의 저항이 거세. 마치 너처럼, 그들도 살기 위해 온 몸을 비틀고 있지. 한번에 짓눌러 죽이는게 힘든건 당연해.'

'그치만...'

나는 이브를 달랬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나, 이브,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

분명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약자였다. 어느정도 자라기도 전부터, 미궁을 기어 올라가던 그 시절부터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던 이브와는 달리 아무런 힘도 없던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그렇기에 미련 없이 이 길을 걷는다. 이브 같이 선천적으로 거대한 존재감을 타고난 이들은 시도하지 못할 일.

나는 이것을 위해 이브라도 속이고 이용할 것이다.

[네 사상에 동의하지 못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널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차라리 이브를 더 좋아할 것이다]

'상관없어. 이게 내 방식이야. 난 이제부터 시작하는거야.'

관조자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결국은 지독한 전쟁뿐인 내가 걷는 길을 싫어하는 이들이 분명 있다. 아니 대다수일 것이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내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한다. 이브까지 속여먹는 마당이다.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이 일을 되돌리려면, 못해도 이브가 처음으로 우주세력에게 패배했던 그날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이브와 사생결단을 내야 했다.

"결국 작전 중단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놈들이...일제히 어딘가로 워프한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놈들의 본성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아아악! 짜증나!'

레비크 중위의 임무 중단 소식과 함께, 서둘러 철수한 카사라스 지원병들에 어쩔 수 없이 병력을 후퇴시키는 이브의 짜증이 교차했다.

나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님을 연기했다.

중위에게는 복수의 기회를 잃어 안타까움을, 이브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며 위로를.

속이고 비트는 일, 사실 이 게임에 휘말린 그 순간부터 내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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