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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98화 (98/254)

98화-타락이 아닌 진화(6)

"..."

메나스, 마법사 학회의 간부들도 포함해 긴급히 소집된 의회.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다. 의장 다르크도, 곁에서 눈치를 보는 로제스도, 다른 의원이나 학회장들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단 하나. 메나스에 괴물이 침투해 무려 356명의 시민 사상자를 내고, 46명의 기사와 12명의 마법사를 살해하고 탈주한지 채 이틀이 안되어 서남부 전체가 단숨에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밤, 다급히 울린 지원요청이 몇건인줄 아십니까? 통신구가 과부하 할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건만 3천건 이상! 습격당한 서남부의 도시와 마을도 그쯤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3천 곳이 넘는 곳을 동시타격 한단 말이오!!"

몇몇 의원들이 결국 역정을 내었다. 그들의 눈은 대부분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로제스는 그 시선을 받고 움찔했다. 상황의 심각성덕에 인정 받게 된 오스틴이 정보를 다시 한번 제공하며 로제스의 잘못까지 다 폭로했으니까.

"마법을 훔쳐쓰고, 그 숫자만 몇천만 이상?! 그 강함은 과거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던 파멸귀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소. 이 모든 것을 조기에 막을 수 있었으나 그 기회를 날려버린게 로제스! 당신 짓이라는게 사실이오?!"

"시, 시끄럽소! 나는 그저..."

"다들 조용. 지금 중요한건 그딴게 아니란걸 아시지 않습니까."

발끈한 로제스의 입을 의장 다르크가 틀어막았다. 물론 그 의도는 로제스를 감싸기 위함이었으나, 다른 의원들은 숨기지 않는 다르크의 기세에 움찔했다.

원래도 천재로 유명했지만 최근들어 그가 은연중에 뿜어내는 그 위압감이 배 이상으로 강해졌다.

"지금 이 상황, 저는 비록 그 시절 이후에 태어났으나 몇몇 분은 알고계실겁니다. 용종의 후신과 세상을 두고 싸웠던 그 치열한 날들을. 그리고 감히 말하건데 지금 우리가 처한 지금 이 상황이, 그때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 말이 백번 맞소."

오스틴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처절히 싸우고, 끝내 고향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개척해야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애초에 이곳에 정착한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더 이상은 다른 곳으로 떠날 여력이 부족했다.

"싸워서. 살아남아야지요."

무엇보다 의장 다르크는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적들은 유닛이고, 유닛의 목적은 바로 세상의 정점에 서는 것이니까.

어딘가의 유닛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다른 유닛들과 협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대륙의 패권을 꽉 쥐고 있던 다르크가 다른 유닛들을 조기에 찾아내어 전부 죽여버렸다는 것.

설령 그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유닛이 있다한들 유의미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어찌합니까. 추정치 어, 억 이상의 괴물들이 동시에 쏟아져 오면 버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당할셈이오.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막아야지! 일단 지금도 하고 있는 대피령을 더 확대하고 재촉하고!"

다행히 다르크가 독촉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뭉쳐 싸울 것을 천명했다. 마치 배수진을 친 것처럼.

상대가 너무 압도적인 탓에 허튼 마음을 품을 새도 없었다.

'막을 수 있다면 말이지.'

하늘도, 땅속도 적들의 놀이터였다. 그곳들을 모두 방어하려면 천문학적인 힘이 들어갈 것이다.

방어 계획을 떠드는 다른 의원들을, 다르크는 차가운 눈으로 보고만 있었다.

회의의 열기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다르크는 은밀히 누군가를 호출했다.

"의장님. 무슨 일로..."

"게이트를 열어야겠습니다."

"게이트를요? 어, 어디로 열까요."

게이트를 다루는 아도스 학회의 학회장 마커스. 그는 게이트를 열어야겠다는 다르크의 말에 움찔했다.

"레드리움."

"...예?"

그리고 다르크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경악했다.

레드리움, 그들의 고향, 그러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지옥.

"그 끔찍한 도마뱀들과, 저 심연의 괴물들이 서로 싸우다 죽으면 우리의 승리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안됩니다!"

기겁한 마커스는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스승에게 지겹게 들어 온 마커스는 잘 알고 있었다.

아도스 학회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이미 연결이 생겨버린 레드리움과의 균열이 생기지 않게 철저히 관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사명이었다.

"절대. 절대 안됩니다."

젊은 학회장 마커스의 의지는 단호했다. 다르크는 그 이후로는 딱히 입을 열지 않고, 그를 지긋이 보기만 할 뿐이었다.

"뭐. 좋습니다."

그리고 깔끔하게 몸을 돌렸다.

물론 뒤로 돌아선 그의 얼굴은 험악하게 구겨져 있었다.

"로제스. 잠깐 보지."

그래서 그 직후 곧바로 로제스를 호출했다. 이번 일로 약점이 단단히 잡힌 로제스는 끙 소리를 내며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대체. 건강한 사람 1천을 모으라니."

"자세한건 알 것 없고. 그대로만 실행하시오."

"큭..."

로제스를 구석으로 끌고 온 다르크는 대놓고 눈을 번득였다. 그의 도드라진 송곳니를 본 로제스의 눈이 흔들렸다.

"제발 답답하게 굴지 마시오. 당신도 알텐데?! 이건 생존경쟁. 오직 단 하나의 정점만 살아남는 지독한 경쟁이지! 내가 지금 권력 때문에 이러오?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겠다잖아. 그 과정에서 당신네들도 덤으로 살려주겠다잖아! 도움이 못될거면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아, 알겠소..."

순간 감정이 폭발한 다르크가 망설이던 로제스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그 거친 언행에서 지금 그가 유닛으로서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평소 오만하고 음흉한 인물이기는 해도 선을 넘지는 않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왜, 척살권이라도 쓰시게 부학회장. 안타깝게도 내게는 소용 없소."

"그, 그럴 생각도 없었소."

"그럼 가서 내 말대로 사람들을 모으시오. 아도스 학회장이 협력해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지. 그 능력 내가 먹어치우는 수밖에."

이제 살의도 숨기지 않는 그가 자리를 벗어나 회의장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로제스는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천외천, 요즘 그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무슨 일이냐!"

"의원님! 지금 도시의 상공으로...으악!"

다르크가 로제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그 시점.

회의장이, 아니 이 도시 메나스 전체가 뒤흔들렸다.

다른 의원들과 함께 허겁지겁 달려 온 오스틴은 하늘을 보고 넋을 잃었다.

방어막이 금방이라도 깨질듯 금이가며 거대한 충격파가 일렁이고 있었다.

"하, 하나 더 날아온다!"

"마도곡사포?! 하지만 어떻게 이런 위력이!"

그 와중에 또 하나의 섬광이 하늘을 가로질러 낙하하더니 다시 한번 도시를 강타했다.

오스틴의 곁에 있던, 세이델이라는 이름의 허리가 굽은 노인 학회장이 그 마법의 위력에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

"대응...대응해야 하는데..."

늘 평정을 유지하던 원로인 세이델이 말을 더듬었다. 본능적으로 대응책을 고민했지만 어디서 쏘는지 감도 못잡을 정도였다.

"다들 진정하고! 우선 마법사의 눈을!"

그나마 정신을 빨리 차린 오스틴이 마법사들을 지휘했다.

마법사들은 서둘러 모여들어, 먼 곳을 전부 살필 수 있는 마법인 마법사의 눈을 시전했다.

오스틴 역시 한손 거들었다.

"저건..."

그러나 그렇게 시전한 눈에 보이는 것은, 저 먼 창공에 떠 있는 한무리의 검은 생명체들.

그 외형은 지금 대륙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괴물들과 흡사했다.

그 가운데서 지팡이를 든채 금발을 휘날리며 떠 있는 도드라진 존재가, 마법진을 거두고 이번엔 이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의도가 직사포를 쏘기 위함임을 알아챈 오스틴이 이를 악물었다. 그것도 영거리에서 쏠 생각이 확실했다.

놈들이 칼 같은 동작으로 일제히 지팡이를 쳐들고, 동시에 마법진을 발현시켰다.

"저 건방진..!"

"이놈들이 감히!"

마법사들이 이제는 저 하늘 위에 맨눈으로도 보이는 검은 점을 보고 분기탱천하여 아우성을 쳤다.

안그래도 구겨진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는 행위였으니까.

"방어벽을 더 강화해라!"

"서둘러라!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면 능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방어탑으로 통신해 무리를 해서라도 방어를 더 끌어올리라고 닦달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 어떤 침입도 받지 않은 방위시스템의 한계치는 아무리 끌어올려도 그리 높지가 않았다.

"으아악!"

결국 위력을 배로 올린 영거리 직사포의 위력에 성스러운 대륙 수도 메나스의 방어막이 산산히 부숴지고, 방어진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이 마력 역류로 각혈하며 나가떨어졌다.

"...넌, 누구냐."

남들이 패닉에 빠져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할때. 오스틴은 '그것'을 직시했다.

그것 역시 그를 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에서 무언가를 직감한 오스틴의 가슴이 아려왔다.

"포격이다! 대응해서 사격해!"

"직, 직사로 쏘기에는 너무 멀...커헉."

적들이 다시 한번 마법을 시전, 대대적인 폭격을 시작했다.

대응은 불가능했다. 직사포로 쏘기에 상대는 너무 멀었다. 곡사로 쏘기엔 계산할 시간이 없었다.

도시 여기저기를 무작위로 터트리는 그 폭격에는 조금의 자비도 인정도 없으니 사람들의 선택지는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대피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타죽는 것.

오스틴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포탄에서 어째서인지 짙은 원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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