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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97화 (97/254)

97화-타락이 아닌 진화(5)

"으, 으아아악!"

"시장님!!"

굉음, 그리고 충격. 땅이 말그대로 터져나가며 도시 중앙에 자리했던 화려한 대리석 건물인 시청이 펑 하고 폭발하듯 붕괴하기 시작했다.

뱃살이 툭 튀어나온 시장의 그 육중한 몸이 부숴진 건물 잔해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이건...말도 안 돼."

시장은 하늘을 날면서도 그 와중에 그것을 보고 놀라 멍하니 중얼거렸다.

시청을 붕괴시킨 주범이자,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전신에 두른 두꺼운 검은 갑각.

그 전신이 시야에 다 잡히지도 않았다. 이제 슬슬 떨어져가는 시장의 눈에 보이는건 마치 하나의 장벽과 같은 그 두꺼운 몸 뿐.

"으아아악!"

저 위에서 꿈틀거리는 얼굴 부위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시장은 산산히 부숴진 시청의 잔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시장의 마지막 기억은 달빛은 등진 그것이 꿈틀거리며 도시를 향해 그 거대한 육신을 떨어뜨리는 것.

두께 수십미터, 길이 수백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떨어지며 도시의 일부를 그대로 반파해버렸다.

"무슨 일이야!"

"이게 대체..."

그렇게 땅에 몸을 뉘인 데스웜은 흙먼지가 채 가라앉기 전에 다시 자기가 뚫고 온 땅으로 스르륵 돌아갔다.

잠을 자던 사람들은 비몽사몽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가 부숴진 시청을 보고 경악했으며, 비상대기체제로 대기하던 병력들은 온 힘을 다해 경보를 울리며 예비대를 소집했다.

"시장님은! 시장님은 어찌 되었나!"

외부에 있던 탓에 화를 피한 한 시청 간부가 허겁지겁 폐허로 달려왔다. 피할 새도 없이 건물등에 깔려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시체들은 그 신원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바렌님?"

"이럴수가..."

몇 사람과 함께 그 폐허의 중앙으로 온 그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가버렸다.

분명 시청이 있어야 할 자리. 그곳에는 이미 직경 수십미터 짜리의 거대한 싱크홀이 당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모든 빛을 흡수하기라도 하는듯 그 깊이를 예측하기도 힘든 어둡고 깊은 싱크홀.

목울대를 움직인 간부는 마침 곁에 있던 직원의 발광석 등불을 건네 받아 그것을 구멍에 비추어 보였다.

"붉은...눈?"

그리고 멍하니 탄식했다.

어둠 속, 점멸하듯 깜빡거리던 붉게 번득이는 안광이 이내 하나, 둘, 셋...끝도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

"바렌님!"

이 땅굴 속에 어떤 존재들이 있는지 알아챈 그가 비명을 지르며 채 몸을 뒤로 빼기 전에.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땅굴에서 튀어나와 허공에 몸을 띄웠다.

구멍 앞에 서 있던 바렌의 몸이 반으로 갈려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순간, 튀어나온 그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털며 허공에 떠 그 검은 깃털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아..."

현장의 사람들은 강도연의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말로를 깨달았다.

그녀가 이곳 사람들에게 '절망을 부르는 날개'로 각인되는 순간이자, 대침공의 시작을 알리는 서남부의 대도시 헤름 공방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땅굴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물이 역류하듯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어때. 저 힘은 일부에 불과해. 지금, 다른 쪽 역시 동시에 공격에 들어간다.'

요충지에 세워진 대도시 헤름은 한순간에 지옥도로 변해버렸다.

공방전이라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그 실상은 일방적인 학살.

이 시점에 오기까지 쌓은 수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활용, 다양한 생물종의 강점만을 가져온 군단병들은 오직 전투를 위해 개조되었다.

그 끝을 모르고 뿜어지는 중형 군단병들의 독침을, 집게발을, 발톱을 방어태세도 갖추지 못한 인간들은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총 3580개의 전장.'

이브는 지휘개체인 강도연이 있는 헤름보다는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썼다. 상위종을 필두로 온 세상을 뒤덮을 듯 몰려가던 억단위의 병력이 수천km에 달하는 전선으로 흩어졌다.

그리고선 크고 작은 마을들과, 도시 수천개를 동시에 습격했다.

작은 마을들은 대형이나 중형 군단병 몇십마리면 족했다.

큰 마을은 초대형종이 한번 돌진하면 방어가 깨졌고, 마법 방어진과 성벽을 가진 대도시는 상위종들이 형상력을 뿜어내 방어막을 깨고 성문을 부순뒤 물량으로 찍어눌렀다.

'인간들의 피가 느껴져. 벌써 몇마리가 죽었을까. 그런 것에 내 연산력을 낭비하진 않지만 아마 굉장히 많겠지. 그리고 해가 떠오를 때 쯤이면, 지금의 전장엔 살아있는 생명은 없을 것이고.'

이미 둥지에서는 추가로 생산되는 수백만의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생산 활동에 끝은 없다. 이 세상 위에서 모든 경쟁자를 잡아먹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군단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위해, 군단장 레이나. 네 역할이 필요하다."

속삭이던 이브가 눈을 번뜩이더니, 이내 특수 둥지를 반으로 갈라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체의 여체가 점액과 함께 툭 떨어졌다.

그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전과 같은 맑고 투명한 푸른색 눈은 이제 핏빛에 가까운 붉은색으로 물들어 그 내면의 분노와 증오를 아낌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흐으..."

레이나가 흠칫거리는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는지 걸음마 하는 아기처럼 자꾸만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몸을 세웠다.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던 둥지 안에서 이브가 공유해주는 전장의 상황을 모두 보고 있었다.

"나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어때?"

"너무나. 너무나 좋습니다. 나의...나의 어머니. 나의 주인. 나의 신이시여."

이브의 말에 그녀의 눈에 황홀경에 젖어갔다. 실제로 레이나는 지금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강도연이 자신의 내면에 각종 감각기관들을 추가로 달아 처음으로 감각을 확장시켰을 때와 같다.

인간인 시절엔 알 수 없던, 거대한 존재와의 연결. 그 덕에 확장된 감각과 인지능력은 인간의 자아에 마약 그 이상의 효과를 내었다.

"그래? 내가 고향땅에 있는 네 소중한 가족을 죽이라 해도?"

"진정한 종말 앞에 벗어날 길은 없으니, 과거의 제 피붙이들에게 군단과 하나될 영광을 주시어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레이나는 가족을 죽이라는 이브의 명령에도 웃었다. 강도연과는 분명 달랐다.

레이나가 자아를 유지할 수 있던 동력은 바로 증오. 그덕에 그 증오를 바탕으로 다시 태어난 그녀는 이미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좋아?"

이브가 히죽이며 묻자 레이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가 보고 있나?'

[...아니. 지금 자고 있다]

이브는 그틈에 한가지 사실을 문의하고 답을 받아냈다.

그러고서는 아직도 쾌감에 젖어있는 레이나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와 하나될 때, 그도 분명 좋아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분께서도...당연히."

이제 신우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레이나는 그자리에서 즉답했다.

이브의 입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지금 바로 움직여 새로운 군단장. 네 힘을 보여봐."

이브는 다시 태어난 레이나를 임무에 투입했다.

비명을 지른 레이나의 전신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강도연이 그렇듯, 지금 인간의 육신에서 군단의 육신으로 바뀌어가며 개조되는 중이었다.

이브는 그녀에게도 총 열개의 동력기관을 달아주었다. 다섯개분은 한번에 뭉쳐 심장이 되었으며 네개는 각각 팔다리로.

나머지 하나는 마치 마법사의 지팡이 같은 봉 끝에 부착되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각각의 동력기관이 공명하며 그녀의 몸을 허공에 살짝 띄웠다.

강도연처럼 전신을 갑옷 같은 갑주로 두르지도 않았다.

착 붙는 검은 슈트를 입은 것 같은 몸 위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코트와 비슷한 생물이 입혀졌다. 그 양식은 많이 다르지만, 마법사가 로브를 입은 것과 비슷했다.

"으..흐으읏.."

어깨를 살짝 넘는 금발이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에도 가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모든 신체변형이 끝났을 때.

이브는 마법사인 그녀를 위한 특별한 보조장치를 제공해 주었다.

"부유기관을 가진 생물의 능력과, 발전 능력을 가진 생물의 능력을 합쳤지."

둥지 바닥이 갈라지며 마치 해파리를 닮은 것 같은 그 생물 두개가 둥실 떠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촉수 여러가닥을 늘어뜨린 그것들은 머리 부분은 굉장히 두꺼운 갑각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 갑각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려 뇌. 그것도 인간의 뇌 몇 배에 달하는 크기에 이제는 그 구성도 인간의 뇌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을 자랑하는 이브 본인의 뇌와 같은 구성의 뇌였다.

그것들에서 뻗어나온 촉수가 그녀의 척추로 파고들어 결합, 기존의 신경계와 하나가 되었다.

"내 뇌를 빌리지 않고도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여봐."

이브의 명령에 레이나는 지팡이를 쳐들었다.

레이나 본인이, 군단이 가지고 있는 모든 마법지식을 단숨에 결합. 최고의 효율로 뿜어내는 최강의 마법.

이 땅에 존재한 여러 학회들의 마법을 결합한 그 마법이 채 1초도 되지 않아 모든 연산과 예측을 마치고 시전되었다.

"10중첩 마도곡사포?"

그걸 본 이브가 피식거렸다.

그녀의 앞에 펼쳐진 10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이 서로 중첩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하는 다중결합마법을 인간의 수백배를 뛰어넘는 뇌기능으로 커버했다. 거기다 분명 별개인 각 마법들을 공명법을 이용해 억지로 하나로 합쳤다.

가장 큰 마법진은 덤프 같은 중장비 크기의 대형종의 몸과 맞먹는 그 마법진에서, 거대한 포탄이 엄청난 속도로 뿜어져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볼 수 있어."

이브는 흩어져 있는 군단병들의 눈으로 그 포탄을 실시간으로 눈으로 쫒았다.

단숨에 수백km를 가로지른 포탄은 마침 군단병들이 공격하려던 도시를 향해 정확히 내리 꽂혔다.

상위종들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대폭발을 일으킨 그 포격 한번으로 도시를 보호하던 마법진이 단번에 깨져버리며 충격파로 흙먼지가 일었다. 희미하게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렇다면 남은건 돌격, 그리고 학살. 군단병들을 돌격시킨 이브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출격해. 새로운 타입의 상위종들을 지휘해서, 너는 이대로 메나스 함락에 앞장서. 너의 증오, 마음껏 뿜어 놈들을 심판해."

레이나의 곁으로 이브가 미리 만들어둔 상위종들이 다가왔다.

코트를 두른 것 같은 몸, 손에 쥔 지팡이등 전체적인 형상이 그녀를 닮았다.

앞으로 군단의 마법전력을 담당할 상위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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