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64화 (164/227)

< 변화 (2) >

“진짜? 2팀장님이 나간다고?”

누구의 입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얘기가 아침부터 떠돌았다. 매니지먼트 사업부 2팀장이 그만둔다는 얘기.

“왜?”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여자들도 어김없이 입에 올렸다.

“모르지 그거야.”

“에이, 설마 관두겠어?”

짧은 머리 여자는 아니라고, 긴 머리 여자는 맞다고, 머리를 동그랗게 묶어 올린 여자는 고개만 갸웃했다.

“3W, 이시현, 그리고 오소리 스캔들까지··· 그 팀장님이 다 해결했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2팀이 C&C로 옮겼을 때도 다들 이제 최 팀장님 세상이라고 했잖아.”

“근데 관둔다고?”

하얀 이마들이 모여서 속삭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이시현 인기가 끝물도 아니고 이제 시작이건만, 그를 키운 사람이 회사를 관둔다니.

“스카웃된 걸까?”

“아니면 독립인가?”

“어디지? SN?”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여자들은 문득 한목소리로 물음표를 기울였다.

“그럼, 이시현도 가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그녀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막 카페에 누군가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강 실장은 종이컵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향을 음미하며 눈을 흘겼다.

“넌 카페에 가면 맨날 늦게 오더라. 아니 카페가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2층에 있는데 말이야.”

“사람이 많아서······.”

눈을 피하는 신입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이거 수상한데. 너 ATTM 애들 감상하고 오는 거 아니야?”

“아, 아닙니다.”

“진짜 아니야?”

“아닙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모습이 여전히 미심쩍지만.

“넌 먼저 내려가서 촬영장 갈 준비하고 있어.”

“예!”

얼른 대답하고 옥상을 내려가는 신입을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곁에서 최재환이 비 맞은 중마냥 중얼거린다.

“적당히 놀려라.”

“놀리긴. 야, 너는 두 놈 중에 누가 맘에 드냐? 뿔테야, 은테야?”

강 실장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걔들 부모님이 지은 좋은 이름 두고 뿔테 은테가 뭐냐.”

“언제 관둘지 알고 또 이름을 외워. 입에 좀 붙으면 어디가 아픕니다, 적성 안 맞습니다, 졸립습니다······.”

커피를 홀짝이고, 강 실장이 다시 말했다.

“하긴 이번에는 오래 갈 것 같다. 근데, 그거 아냐?”

“뭐가.”

“신입들 보고 있으면 꼭 우리 같아. 한 놈은 무뚝뚝하고. 한 놈은 싹싹하고.”

졸린 눈 비벼가며 운전하고, 대기실에서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코훌쩍이며 찬 바람 맞고 뛰어다니던 지난 시간.

그런데 최재환이 난간에서 손을 떼고 눈을 찌푸린다.

“어떤 놈이 너냐? 좀 갈궈주게. 내가 예전 생각만 하면······.”

“하하··· X자식.”

웃음이 가시고, 담배를 비벼끈 강 실장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하. 너도 참 답답하다.”

“또 뭐가.”

“그냥 때 되면 조용히 나가면 되지.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 축하한다 그래 나가서 잘해봐··· 이러겠냐고.”

“하필 그때 상황이 그래서. 부장님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어이구 등신.”

왜 가냐고, 미쳤냐고, 꽃길만 펼쳐질 텐데, 나라면 대표 자리 넙죽 받아서 벌써 명패 제작했을 거라고··· 강 실장은 최재환을 달달 볶고 나서 건물 아래를 바라봤다.

수많은 팬이 좋아하는 스타를 보기 위해 서성이고 있었다.

분명 저들 중 누구도 매니저의 근황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을 거다.

“넌 앞으로 시현이 좀 잘 챙겨줘. 나는 당분간 시현이 반추 팀 구성하는 거 집중할 테니까.”

담담한 얘기에 이어 최재환이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그거야 어차피 알아서 되는 수순이니까 니 일이나 신경 써. 관둔다는 놈이 뭘 그렇게 시현이 걱정이야. 그래서··· 언제 그만두는데?”

“아직 멀었어.”

최재환이 웃는다. 바보처럼.

**

-오늘 나들이 계획이 있으시다면 우산부터 챙겨야겠습니다. 기상청은 금요일인 오늘과 내일, 수도권 및 강원도 일부 지역에 비가 내린다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은 전국이 맑은 날씨를 되찾겠으며, 다음 주 역시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쨍한데.”

이마를 기울여 하늘을 봐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차의 시동이 꺼지고, 강 실장은 뒤를 돌아봤다.

서아린이 이시현에게 바싹 붙어 있다. 쟤는 유독 이시현에게 가까이 붙는다.

“준비하고 있어라. 우린 먼저 돌고 올게.”

“예.”

이시현의 대답에 강 실장은 먼저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에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던 신입이 서둘러 뒤따라 내린다.

“야 뿔테··· 아니 경식아.”

“예?”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처음 이름 불러주셔서.”

“그게 감격할 일이야?”

싱거운 놈.

강 실장은 신입을 데리고 현장을 돌았다. 감독들에게 인사시키고, 조연출에게 소개하고, 작가는··· 안 왔고. 그렇게 한 바퀴 돌고서야 다시 차에 돌아왔다.

“너 앞으로 책임지고 시현이 촬영장 따라다녀야 한다.”

“알겠습니다.”

“잘할 수 있겠어? 너 믿어도 돼?”

“예!”

목청껏 대답하는 녀석의 이마를 딱!

“믿긴 뭘 믿어? 그냥 해본 말이지. 내가 지에스 국보를 너한테 맡기겠냐?”

지금 시점에 사고라도 나면, 이시현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뿐인가.

“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식.”

담배를 입에 무는데, 신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 실장님.”

“왜.”

“시현 씨하고··· 팀장님은 사이가 각별한가 봐요.”

“뭐 좀 그렇지. 아니다. 둘이 아주 징그러워.”

“사람들 얘기 들으니까, 팀장님이 시현 씨 5년 동안 뒷바라지했다고.”

“아후 지겨워 그놈의 5년. 야, 다들 그렇게 해. 걔가 유별난 게 아니야. 단지 5년 동안 둘이 트러블이 없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트러블이요?”

“너 같으면 5년 동안 일거리가 없는데 매니저한테 투정부리지 않겠냐? 또 매니저는, 배우가 5년 동안 빈둥대는데 실망하지 않겠냐?”

“아.”

“경식아.”

“예.”

강 실장은 신입의 어깨에 살짝 팔을 걸치고 말했다.

“매니저 일 거창한 거 아니다. 그냥 배우가 널 필요로 할 때 우산이 돼주는 거야. 그럼 서로 불만 생길 일도 없고, 시기할 일도 없고. 알았어?”

그럴싸한 말을 뱉고, 강 실장은 무척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 연기를 하늘에 뱉었다. 벌린 입에서 연기가 뽕뽕 나간다.

“그럼 실장님도······.”

“나한테는 한영이가 있지.”

이때, 드르륵 문소리와 함께 이시현이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눈을 흘기며 강 실장을 흘겨본다.

“왜?”

“그냥요. 강 실장님 우산에는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싶어서. 박한영 선배님 자리만 있겠구나 싶어서요.”

“야.”

당황한 강 실장이 손을 뻗으며 이시현을 쫓아간다.

**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에는 성수의 아역과 이혜리의 아역이 함께한다.

같은 장소에서 아역 컷이 성인 컷으로 디졸브되는 엔딩 씬.

“안녕.”

나는 무릎을 숙여 아이들과 눈을 마주했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 다 초등학생이라서 순수함이 엿보인다. 눈동자는 티없이 맑고, 미소는 밝으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개구쟁이들이네.

“저 우리 애가 시현 씨 팬이에요. 호호.”

“그래요?”

파마머리 엄마와 단발머리 엄마가 수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 잠시 함께 사진을 찍는데, 왜 내 양팔을 껴안으시는 건지··· 아무튼 사인도 해주고 나서 아역 촬영이 시작됐다.

“얘들아, 좀 더 팔 흔들고 즐겁게 뛰어야지.”

강 피디가 몸소 이상한 흉내를 내며 디렉션을 주는 사이, 우리는 카메라 밖에서 촬영을 지켜봤다.

내 옆에서 오소리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새기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녀도 아역 출신이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인데, 그나저나 주말에 어떻게 할까.

유 작가의 집에서 대본리딩을 하자는 오소리의 제안에 아직 대답을 못 해줬다.

최재환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어찌 됐든 밤사이 고민했는데 그냥 지켜볼 생각이다.

녀석이 결정한 삶이다. 그리고 사실, 원래의 운명은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았잖아. 그마저도 바뀌고 있고.

‘그래.’

밖에서 실컷 뒹굴어라. 넘어지고 깨지고. 부딪치고.

잘되면 그뿐이고··· 안되면 뭐. 그때는 내가 있으니까.

“아이고. 얘들아.”

강 피디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가 원하는 것은 여자아이에게는 밝은 미소를, 남자아이에게는 어두운 미소를.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니까.

더구나 내내 화창하던 날씨는 갑자기 조짐이 좋지가 않다.

하늘은 맑은데··· 저 멀리서.

우르르.

“비 오겠네.”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속삭였더니, 조연출 반유선이 발을 동동 구른다. 고운 이마에 접힌 주름이 안쓰럽다.

“유선 씨, 감독님한테 혼나겠다.”

“그러니까요.”

촬영 스케줄 제대로 못 잡았다고 혼날 생각에 반유선의 얼굴이 울상이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오소리를 돌아봤는데, 그녀의 얼굴이 붉어 보였다.

“소리 씨.”

“예, 오빠.”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붉은 입술과 콧날 위로 크고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담는다. 잠깐이나마 가슴이 설레었던 송이경과는 또 다른 느낌··· 일까.

“괜찮아요?”

“왜요?”

“어디 아파요?”

“아닌데.”

“아닌데가, 아닌데?”

나는 오소리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눈살을 찌푸렸다.

불덩이처럼 뜨거웠으니까.

**

“뭐? 소리가 얼마나 아픈 건데?”

오소리가 촬영장에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는 전화였다.

큰일은 아니고 감기몸살이라는 대답에 최재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시현이는?”

-철수. 지금 회사로 가고 있어. 거기도 비 오냐?

“아직.”

서울 하늘은 맑다.

전화를 끊은 최재환은 바로 조 부장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이쪽은 거절해서, 저쪽은 넙죽 받아서.

그놈의 자리 하나에 괜스레 서로가 불편해졌다.

‘하······.’

외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전대 위에 한숨을 쏟는다.

차 대표는 이시현에게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 과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어찌 됐든 서운한 게 사실이었다.

‘형. 대표님한테는 절대 독립한다는 얘기하지 마.’

이시현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회사를 관두는 건 말해도 독립한다는 얘기는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녀석은 마치 뭐라도 아는 것 같은 말투였다.

잠시···

최재환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이 상황을 돌이켜봤다.

먼저 투자자부터.

두 사람이었고, 둘 다 여자다.

한 명은 바이바이 백인혜 대표.

한 명은 SBC ‘고고, 강한놈들’ 막내 작가.

50대 초반의 백인혜 대표는 지난번에 봤을 때와 다름없이 짧은 머리스타일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한결같아서, 익숙한 느낌이랄까.

반면 막내 작가는 촬영 때 마주했던 우울한 모습이 아니었다.

분만 바른 것 같은 얼굴에, 축 늘어진 긴 머리를 흔들고 뛰어다니던 그녀 모습이 연예인 못지않게 달라졌다. 뉴월드 손녀라는 신분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시현 씨 때문에 팀장님께 그 자리를 제안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 팀장님이 결정만 하시면, 아낌없이 지원할 겁니다.’

괜히 목이 타서, 최재환은 찌푸린 미간을 숙여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우리 함께해요. SN도, 지에스도 뛰어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들어봐요.’

그녀의 당당한 시선이 찜찜했지만, 백 대표는 믿을 만하다.

이시현에 대한 백 대표의 관심은 광고 모델을 넘어선 수준이었으니까.

“후······.”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사실 회사를 떠나 독립한 매니저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들도 그런 선택이 필요했고, 결정을 했다.

다만 가끔 그들을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나오니까, 쏟아지는 장대비 아래 우산도 없이 서 있는 것 같더라.’

회사라는 듬직한 우산이 사라졌으니까.

“···나도 참.”

최재환은 관자놀이를 슬슬 긁었다.

당장 그만두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감상적이 돼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있다가 얘기할걸. 이러려고 솔직히 얘기했나 싶다.

자회사 대표 제안만 없었어도 이런 식으로 급하게 알릴 일은 아니었는데.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네.”

그래도 딱 한 사람은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그의 뜻을 따라줄 사람이.

‘아니지··· 한 사람이 아니고, 둘이지.’

최재환은 손을 뻗어 라디오를 틀었다.

요즘은 뜸한데, 작년만 해도 퇴근길에 한적한 도롯가에 차를 세우곤 했다.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잔잔한 음악···

취향이 아니라서 채널을 바꾸는데, 익숙한 노래에 손이 멈췄다.

‘너라서?’

이시현과 슬기의 듀엣곡.

‘훗.’

문득 지난 5년의 세월이 눈꺼풀 속 어둠을 돌아다닌다.

이시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최재환은 그 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단역이든 뭐든, 일단 하나만 되면 이시현과 한강에서 캔맥주를 기울이자고 약속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 캔맥주 어딨는 거야?’

구형 소나타에 딸려서 폐차장에 갔을지도.

노래가 끝날쯤에 후드드 소리가 들리고 비가 쏟아졌다.

앞유리에 무수히 많은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마음 좀 추스르고 결심을 굳건히 했는데··· 하필 비가. 하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니까. 그래서 그냥 피식 웃고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닫고, 뛰어갈 준비를 하는데. 비가 그쳤다.

“응?”

고개를 돌렸더니 이시현이 우산을 들고 있다.

검은 우산, 검은 정장.

키도 큰 녀석이 우산을 펼쳐 그를 감싸주고 있었다.

“비 맞고 다니지 마. 감기 걸린다.”

< 변화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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