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고, 강한놈들 (4) >
[단독] 가수 성지훈, 지에스엔터테인먼트 계약 임박.
-이달 초 소속사와 ‘전속계약해지’ 합의를 한 성지훈은 최근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최재환 팀장을 만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환 팀장은 3W에 이어 현재는 배우 이시현을 담당하고 있으며, 관계자들 사이에선 높은 안목을 가진 매니저로 통하는···
“지랄하네.”
아침부터 신문을 본 주태곤 편집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신문을 내려놓은 그는 안경을 책상에 벗어두고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
그럼 이틀 전 이미 성지훈은 지에스와 계약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때 그 일로 서로 쿵짝이 맞아서 이러고 있는 건가? 대체 이 자식들 뭐야?
주태곤은 지금 성지훈과 최재환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날 일,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소리샘으로······.
“이런 개XX!”
다시 한 번 최재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변함없는 기계 음성이 들리자 그는 수화기를 집어 던질 기세로 내려놓았다.
“이시현이 잘나가면 잘나갔지, 지가 뭐라고!”
어금니를 깨물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재킷을 빼 들었다.
이틀 동안 지에스와 관련된 연줄이란 연줄을 죄다 훑었다. 문자도 숱하게 보냈다. 그런데도 최재환이란 놈은 끝까지 전화를 피하고 있다.
서둘러 재킷을 걸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고 팀장이 들어왔다.
“편집장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낼 모래 마감인데.”
“너 전화기 줘봐.”
주태곤은 대꾸 없이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는 팀장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서 휴게실로 향했다.
신호음이 들리고··· 그토록 듣고 싶던 최재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여보세요?
“최 팀장 진짜 이럴 거야?”
뚝.
“이 자식이 진짜!”
끊어진 전화를 보는 주태곤의 이마에 힘줄이 튀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더는 방법이 없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팀장에게 휴대폰을 건네고 말했다.
“마감쳐.”
“예?”
“마감치라고 그냥!”
목청을 높인 그는 서랍을 열어 명함 하나를 찾았다.
어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있던가.
지에스와 싸울 엄두는 안 나지만, 매니저 한 놈 두들기는 건 얘기가 다르다.
“이 건방진 자식, 내가 가만두나 봐라.”
**
「지에스엔터테인먼트」
회의실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다들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빛을 반짝이며, 내가 고를 사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는 거죠?”
나는 미소와 함께 묻고, 바로 사연 하나를 손에 집었다.
“이걸로 할게요.”
넋 놓고 있던 금 피디는 내가 고른 사연을 건네받고 멈칫했다.
촘촘히 그린 그녀의 눈썹이 삐딱하게 치솟은 순간.
“왕따로··· 죽고 싶다는 사연이요? 이거 좀 어려울 수 있는 사연인데, 괜찮겠어요?”
“예.”
별문제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한번 보고, 금 피디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연을 훑었다.
“요즘 왕따 문제가 정말 심각하긴 해요.”
“맞아요 피디님. 자살하는 애도 있고, 학교 가는 게 무서워서 가출하는 애도 있대요.”
작가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동조하는 동안, 금 피디는 사연의 한 부분을 손으로 짚어 내게 보였다.
“사연 내용 봐요. 수업 중인데도 애들이 뒤에서 휴지 뭉치 던지고 지우게 던지고··· 그런데도 선생님은 모른척한다잖아.”
제 일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그녀를 잠시 지켜보다가, 촬영일을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 촬영이라고요?”
“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30분에 걸친 회의를 끝내고, 금 피디는 의자를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스케줄이 남아서··· 죄송합니다.”
“아휴, 괜찮아요. 나중에 촬영 끝나면 뒤풀이 한번 해요.”
손사래를 치는 금 피디.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디님, 그 학생 전화번호 미리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예. 알겠어요.”
시원하게 대답하고, 그녀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북적거림도, 가득했던 화장품 냄새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강 실장이 그녀들을 주차장까지 안내하려 내려간 사이, 나는 홀로 회의실에 남아 금 피디가 남기고 간 촬영콘티와 대본을 살폈다.
‘고고, 강한놈들.’
3사 뉴스에 이름이 올라서 떠들썩하게 폐지된 프로그램.
마지막 촬영분은 방영도 못 한 그때 그 사건···
왕따를 당하고 있던 학생이 ‘고고, 강한놈들’에 사연을 보냈고, 자신의 영웅이 돼준 스타의 집에서 마지막 촬영 때 목을 매 자살했다.
꽤 충격적인 사건이라서 이 바닥 사람들 입에서 두고두고 오르내린 기억이 있다.
대체 괴롭힘이 얼마나 컸기에 자살을 했을까.
근데, 그 학생이 여자였었나 남자였었나.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촬영 콘티를 살폈다.
전체적인 컨셉은 멘토링 시스템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예능으로 다루기에는 지루할 수밖에 없는 소재.
사연을 가진 시청자의 영웅이 된다고?
그렇다면 게스트가 시청자의 사연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을까가 문제다.
촬영 몇 번에 그 사람의 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아마 이 학생이 자살했던 이유도 어설픈 공감에 절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이 아이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예견된, 운명을 바꿔도 되는 걸까?
설마하니 이 아이가 살아서 독재자로 성장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희대의 살인마로 성장하진··· 그건 모를 일이고.
끼익.
문이 열리고 강 실장이 들어왔다.
요 며칠 흐느적거리는 미역 머리였는데, 깔끔하게 다듬어서 이제는 완벽한 아저씨가 됐다. 아이고··· 저 녀석도 슬슬 장가가야 하는데.
“휴,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내리기도 힘드네.”
한숨과 함께 자리에 앉은 그가 책상에 놓인 사연을 손에 쥐며 말했다.
“전화번호 받았는데, 그 학생 이름이 주효정이란다.”
“여학생이에요?”
“그렇다네.”
사연을 훑어보는 강 실장의 표정이 어둡다.
천천히 다 읽고는 책상에 내려놓더니 짜증부터 낸다.
“이런 미친 새끼들. 이거 완전 쓰레기들이네.”
사연 속에는 참혹할 정도의 괴롭힘이 적혀 있었다.
뒤통수 때리는 건 늘 있는 일이고, 수업시간에도 괴롭힘이 이어진다.
그러니 선생님이 없을 때는 오죽할까.
“근데 니가 얘를 어떻게 해주려고? 학교 찾아가려고?”
다음 주 월요일에 사연의 주인공을 만난다.
반나절 함께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아는 시간을 가지고, 연락처를 교환한다. 이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서 상담해주고, 한 번 더 촬영.
마지막으로 ‘고민이 해결됐습니다! 영웅 고마워요!’ 라는 클로징멘트를 끝으로 촬영을 마친다.
“괜히 잘못 접근하면 너 이미지 상처 날 수 있어. 난 이거 부장님에게 보고할 것도 걱정이다.”
강 실장은 지금이라도 내가 다른 사연을 택했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렇게 된 마당에 돌이킬 순 없고, 문득 궁금해졌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괴롭힘을 주는 아이들이.
“성지훈은 운동선수의 고민 택했다더라.”
“그래요?”
성지훈이 운동을 좀 했던가. 그런 몸은 아닌데.
그냥 나가떨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근데, 최 팀장은 무슨 생각이냐? 성지훈 솔직히 이제 내리막인데.”
“글쎄요.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죠.”
최재환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승아를 시작으로 성지훈까지 계약했다.
그와 함께 2팀의 지에스 C&C 이전도 코앞으로 다가왔고.
“근데 너 어떻게 하냐? 최 팀장 경영지원부서로 가면.”
사실 언제부터인가, 녀석이 운전하는 뒷모습을 보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로 장난치고 캔맥주를 기울이던 시간도 이제는 드물어지겠지.
“훗.”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때우고, 사연을 손에 쥐었다.
**
[안녕하세요, 효정 학생. SBC 방송국 고고, 강한놈들 작가예요. 사연 때문에 연락 드렸는데, 수업 끝나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확인한 주효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진짜 사연 채택된 거야?’
사연이 채택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오히려 채택됐다고 하니 겁이 덜컥 난다.
‘방송에 얼굴이 나가면 애들이 더 괴롭힐 텐데··· 근데, 지에스라고?’
대체 누가 영웅이길래.
불안과 고민 속에 입술만 괴롭히던 그녀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딸칵.
워크맨의 재생버튼을 누르자 성지훈의 3집 앨범이 흘렀다.
‘흠흠··· 흠.’
즐겨듣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순간 뒤통수에 통증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다섯 명의 남녀 학생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려보는 그 시선들에 주효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뭐하냐?”
껌을 짝짝 씹던 여학생이 주효정의 이어폰을 억지로 뺏는다. 귓가에 잠시 가져가더니.
“성지훈 노래네?”
여학생이 눈썹을 찌푸리자, 옆에 있던 남학생이 피식 웃었다.
“걔 한물가지 않았냐?”
“내 친척이 저번에 동대문에서 봤는데, 실물은 괜찮다더라.”
“다 카메라빨이야.”
“야, 너 혹시 성지훈 팬클럽이야?”
여학생이 이어폰을 툭 던지며 묻자, 주효정이 억지로 미소 띤 얼굴을 들었다.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아, 아니야.”
“아니긴.”
스읍, 숨을 빨아들이며 여학생이 손을 들자 주효정은 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탁!
기어이 한 대를 때리고 우르르 버스를 타고 떠난다.
하지만 주효정은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정도에서 끝났으니까. 이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데 손에 쥔 전화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이시현입니다.
“예에?”
너무 놀라서 눈만 깜빡이는 동안, 이시현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효정 씨 영웅이 됐는데,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지, 지금요?
-예.
‘세상에.’
진짜 이시현이다.
주효정은 눈앞의 이시현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마른침만 꿀꺽 삼키느라 목울대만 쉼 없이 움직인다.
‘진짜 잘생겼다.’
키 크고 잘생긴 거야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학교에도 이시현 팬들 엄청 많고.
“마셔요.”
코코아 한잔을 내미는 그의 모습··· 미소, 행동, 목소리, 그 모두가 CF 속 한 장면이다.
“미안해요. 밖에서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은데, 나갈 수가 없어서.”
“아, 아녜요.”
주효정은 몇 번이나 고개를 가로젓고 주변을 눈에 담았다.
녹음실이라는 곳은 생전 처음 오는 곳이니까.
모든 게 신기하다. 이곳의 분위기가, 이곳의 공기가, 뭔가를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이시현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지만.
“그, 근데··· 오늘, 촬영하는 거예요?”
“아니요. 촬영 전에 효정 씨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효정··· 씨요?”
“훗. 그럼 말놔도 될까?”
“예, 예!”
이시현은 그냥 웃기만 할 뿐인데, 사람 혼을 쏙 빼놓는다.
주효정은 무안해서 코코아 한 모금을 꿀꺽 마셨다.
아뿔싸.
뜨거움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곧장 기침이 나왔다.
“콜록!”
“아 어떻게 해.”
이시현이 벌떡 일어나 휴지를 챙겨와 그녀의 턱에 가져왔다.
“제, 제가 할게요.”
한차례 소란 끝에,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그녀를 앞에 두고 이시현은 차분히 얘기를 계속했다.
“괴롭힘··· 많이 심해요?”
그저 묻기만 했을 뿐인데···
주효정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냥 이시현의 목소리를 들으니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다.
“많이 힘들었구나.”
이시현은 그 말을 하고, 그녀가 홀로 울게 잠시 내버려뒀다. 잠시 뒤, 그녀는 휴지에 콧물을 잔뜩 풀고 나서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저 도와주실 거예요?”
“응. 그러려고 영웅이 된 거니까.”
“어떻게요? 학교에 같이 가주실 거예요?”
주효정은 기대하고 물었다.
바램과 다급함이 그녀의 시선에 가득했다.
“그랬으면 좋겠니?”
“···예.”
이시현 같은 유명인하고 학교에 가면 애들이 괴롭히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 단순한 생각을 꾸짖듯, 이시현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지 않을 거야.”
“예?”
“내가 너 하고 친분을 보여주면, 애들이 태도가 달라지겠지··· 그런 거니?”
“······.”
“잠깐은 그러겠지. 근데 그 녀석들은 바뀌지 않아. 또 널 괴롭힐 거야. 니가 약해서, 꿈틀대는 게 재밌어서, 어쩌면 아무 이유도 없을지 모르고.”
순간이지만 주효정은 이시현에게서 차가움을 느꼈다.
마치 뚜껑을 열어놓은 향수병처럼, 좀 전까지 가득했던 따스함이 공중으로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럼··· 절 어떻게 도와주실 거예요?”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더는 애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게 싫고, 더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통스러운 삶이 싫다. 부모님에게 말 못 할 고민에 홀로 흐느끼는 것도 싫었다.
그런 숱한 간절함이 이시현을 향했다. 그랬는데.
“난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 고고, 강한놈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