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찬스를 얻는다는 뜻 (6) >
“휴대폰이 없다고요?”
현승아가 날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속눈썹의 바스락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서 그녀를 보며, 지금 난 오래전 차 대표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다.
언제였더라.
신인 여배우의 스캔들이 터진 적이 있었다.
긴 무명 생활 끝에 겨우 인기의 반열에 오른 그녀였는데, 하필 스포츠 스타의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연예가십지에 포착됐다.
네티즌들은 종일 그녀에 대한 얘기로 뜨거웠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1위.
신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실시간 검색을 열애설이라는 스캔들로 장식한 그녀의 결말은 인기와 몸값의 브레이크였고, 결국은 그저 그런 배우로 대중들에게 기억될 뿐이었다.
차 대표는 그녀의 열애설이 담긴 신문을 들고 혀를 끌끌 차며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대체 이런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그 자리에 올라왔는데, 고작 연애 한번으로 모든 걸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을까?]
그러면서 내게도 그렇지 않냐며, 물어본 적이 있다.
“아까 전화하던 휴대폰은 뭐예요?”
“그건, 매니저 휴대폰인데요.”
현승아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다. 촘촘한 눈썹을 기울이고 나를 보는데, 솔직히 그 모습에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 이 건강한 몸은 이성의 페로몬을 감지하고 있으니까.
“매니저님··· 휴대폰이라고요?”
“예.”
그녀에게 무안을 주고 싶진 않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시현은, 이제 시작이니까.
“알았어요. 그렇다는데 어떻게 해··· 그래도, 지에스로 가고 싶다고 한건 진심이니까, 회사에 전해주세요.”
“예.”
현승아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괴롭히더니, 억지로 띤 미소를 들었다.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운동화, 고마웠어요.”
그 말을 하고 그녀가 바람에 실려 가듯 빠른 걸음으로 떠나간다. 그 뒷모습에서, 나는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드르륵.
차에 탄 나를 서아린이 묘한 시선으로 본다. 곧이어 최재환이 고개를 돌리더니, 조수석에 팔을 걸고 서아린과 나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서아린. 귀 막아.”
“예.”
서아린이 제 귀를 두 손바닥으로 막자, 최재환의 시선이 짙어졌다.
“무슨 얘기 했어?”
“우리 회사에 오고 싶대.”
“그걸 너한테 얘기해?”
“형한테 얘기하라니까, 굳이 나를 거치네.”
“흠··· 모양새 때문에 그런가?”
최재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속삭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직접 접근하는 모양새보다는 지에스에서 연락해오는 그림을 그린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최재환의 추측이 맞는 것 같은데.
“그게 다야?”
“그럼 또 뭐가 있어?”
“조심해라. 이럴 때일수록,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해.”
“알았거든요?”
최재환도 눈치를 챈 듯 보인다. 아까 실실 웃더라니.
그래도 최재환이 나를 믿는 모양인지 더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차가 출발하면서 나는 좀 전에 그녀와 함께 서 있었던 곳을 바라봤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는다. 아니면··· 그냥 번호 줄 걸 그랬나?
**
저녁 9시가 돼서야 김은수 작가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늦진 않았지만 작가를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최재환이 오는 내내 김은수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죄송하다고, 차가 엄청 막힌다고, 번개콘서트 스태프들이 안 놔줬다고.
있는 사실에 온갖 뻥까지 제대로 버무린 끝에 도착한 곳은 고급 한식당.
자갈밭이 짙게 깔린 식당 주차장에 내리자 담배를 태우고 있던 남자들이 나를 힐끗 쳐다본다. 그래서 살짝 눈인사를 하고.
“연예인 아니야?”
“쟤 이시현이잖아.”
수군거리는 그들을 지나 최재환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를 본 지배인이 입을 허! 벌리고 연거푸 눈을 깜빡인 끝에, 서둘러 안내를 했다.
원형테이블이 있는 방에 들어가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김은수 작가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시현 씨. 매니저님도 반갑습니다.”
최재환은 그녀와 악수를 하고 먼저 방을 나갔다. 주차장에서 기다린다고 하길래, 집에 가라고, 가서 쉬라고, 나 혼자 택시타고 간다고. 뭐. 허공에 혼잣말만 했다.
이제 여기 작은 방에는 나와 김 작가만이 남아 원형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오래된 원목 선반이 벽에 놓여 있는데, 그 옆으로 창이 하나 보인다. 대나무 한그루가 은은한 빛에 휩싸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흔들리는 대나무 잎··· 이런, 비가 또 오나 보다. 3W는 공연 잘할 수 있을까.
슬기와 레니의 눈물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시현 씨 요즘 많이 바쁘지?”
“작가님이야말로 요즘 많이 힘드시죠?”
그러잖아도 당장 9월에 촬영에 들어가는 대본을 쓰느라 죽을 맛일 거다. 김 작가 얼굴에 전에 없이 기미도 보이는 것 같고.
단막극으로 기획된 작품을 연속극으로 재창조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작가로서는 감정이입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긴 해도, 시청자로서는 이미 경험한 이야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면 KIS가 나 하나만 보고 도박을 걸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박춘삼의 분량이 그렇게 크진 않을 것 같아요.”
김 작가가 두 손으로 물 잔을 매만지며 얘길 꺼냈다. 뭐야, 이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건가. 차 대표가 곁에 있었으면 바로 일어나서 전화기부터 들었을 얘긴데.
“이번에는 여동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해요. 아무래도 북한 상황을 그리기가 쉽지가 않네요. 연출팀도 마땅한 촬영지가 없어서 고민이고.”
“그럼, 여동생 역이 매우 중요하겠네요.”
내가 묻자, 김 작가가 얘기를 멈추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떼더니.
“섭섭하지 않아요?”
“뭐가요?”
“사실, 시현 씨가 열연을 해줘서··· 그래서 연속극으로 정규 편성된 거잖아요. 시현 씨도 어느 정도 그걸 생각하고 계약한 거고. 어떻게 보면··· 뒤통수잖아?”
김 작가가 눈썹을 기울인다. 많이 미안한지 이마에 주름도 보이고.
“작가님.”
“응?”
“저는요. 연기만 할 수 있으면 돼요. 그 어떤 배역도 상관없어요. 제가 할 수 있고, 맡은 배역이라면,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래, 그것뿐이다.
이제 조금 인기를 얻었다고 배역을 따져가면서 움직이진 않을 거다. CF나 인터뷰처럼 회사가 붙는 건 그 흐름에 맡겨야겠지만, 연기는 아니다. 연기는 오로지 배우, 나만의 영역이니까. 내 소신대로 밀어붙일 거다.
“그렇구나.”
내 얘기를 듣고 김은수 작가는 잠깐동안 물 잔만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얼굴에는 미소가 배어있었다.
“고마워요 시현 씨.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긴요.”
으. 어색한 분위기.
“아, 유 작가님이 시현 씨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번에 일본 스케줄 끝나면 한번 찾아뵈려고요.”
유 작가라는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가 죽어가는 이시현의 심장마사지를 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일본에? 아, 가경 작가님 영화 때문에?”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 작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왜 그러나 했더니.
“그거 알아요?”
“뭐가요?”
뭔가 싶어 귀를 기울였는데.
“유 작가님, 가경 작가님 짝사랑했던 거.”
“아··· 진짜요?”
“후훗. 옛날얘기라서 해주는 거예요. 어디 가서 나 입 가볍다고 흉보면 안 돼요?”
“하하.”
배우는 작가와 친해지면 좋다. 스페셜 찬스 같은 거랄까. 스캔들에 무너져도, 좋은 작품을 만나면 재기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니, 나는 김 작가와 유 작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 거다.
“일본 간김에 관광도 좀하고 와요. 이제 유명해지면 어디 다니지도 못할 텐데··· 아니다, 지금도 밖에 못 다니잖아?”
“그러려고요. 일본에서 만날 사람도 있고.”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그 아이 일을 정리할 생각이다.
“만날 사람? 연애해?”
“에이, 설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연애 얘기하니까 현승아가 떠오른다. 뭐··· 버스는 떠났고. 버스비는 아꼈지만.
아무튼 시답잖은 대화만 하는 중에 지배인이 들어왔다.
“식사 주문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조금 있다가 주문할게요.”
김 작가가 지배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를 보더니, 살짝 찌푸린 미소를 띠고 말한다.
“실은 손님이 있어요.”
“손님이요?”
“미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요.”
김은수 작가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누군데요?”
질문을 하면서도 기껏해야 방송 관계자가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유 작가? 설마.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잠시 뒤에 방에 들어온 이는 노인이었다. 작은 키에, 세월에 익은 얼굴과 굽은 등. 그 옆에는 노인의 손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부축을 하고 있다.
방 안에 묘한 분위기 흐르고.
김 작가가 그녀를 소개했다.
“시현 씨, 인사해요. 박춘삼의 여동생 박희재의 실제 모델인 여점례 할머니세요.”
“아······.”
웬만해선 당황하지 않는 나인데, 지금 순간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고마우이.”
촉촉한 물기가 깃든 노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가, 드라마를 열 번도 넘게 보셨어요.”
손녀의 얘기에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배우 이시현입니다.”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인사 뒤에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드라마에 대한 얘기를 이었다.
박춘삼.
여동생을 사랑했던 오빠에 대한 얘기.
만약 이런 얘기를 드라마 촬영 전에 알았다면 좀 더 박춘삼을 연기에 녹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든다. 물론 그때는 대본 외울 시간도 촉박했지만··· 더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오라버니가 왔었다는 얘기를 너무 늦게 들었지.”
할머니가 과거를 회상한다.
김은수 작가의 우리 오빠에서는 박춘삼이 유이를 잃은 상황에서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북한군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부분은 극을 위한 각색일뿐, 실제 사연에서는 박춘삼이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이후에 북한군이 된 그를 보았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할머니가 건너건너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박춘삼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전쟁으로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났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여점례 할머니는 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했다. 손녀의 얘기로는 북측 적십자회를 통해 박춘삼의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고 한다.
결국 박춘삼의 과거도, 현재도 소식만이 분분할 뿐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데 들리는 메아리처럼. 그 메아리에 가슴 아파했을 할머니의 삶이, 할머니의 세월에 경건함 마저 느껴진다.
“그 노래······.”
할머니가 말문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유이가 불렀던 드라마 곡을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김은수 작가가 옆에서 설명을 붙였다.
“시현 씨 그거 알아요?”
“뭐가요?”
“실은 그 노래, 그 박춘삼 할아버지가 지은 거래.”
“예?”
오늘 왜 이렇게 놀라운 얘기가 많은 거야.
놀라서 눈썹만 올리는 내게 손녀가 설명을 이었다.
“할아버지가 노래에 소질이 있었나 봐요. 노래를 지어서 부르고는 하셨대요. 할머니가 그 노래를 아직도 안 잊고 계셨어요.”
“그럼, 그 노래가 할머니의 기억으로 만든 노래라고요?”
“응.”
고개를 끄덕이는 김 작가의 모습.
할머니가 나직이 입을 연다.
“저물녘이면··· 마을 어귀에서 오라버니를 기다렸어. 소 풀 맥이고 돌아오는 오라버니를··· 그러면 오라버니가 논길을 따라 저녁놀을 등지고 오면서 그 노래를 불렀어.”
어느새 김은수 작가도 눈시울을 훔친다.
오빠를 사랑했던 소녀는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병약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가슴 속 오빠는 젊고, 또 그리운 존재.
“한 번만··· 오라버니를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이 늙은이를 보고 놀라지나 않을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초록과 풀 냄새를 가득 몰고 다니던 소녀에게는 더는 색과 냄새를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늙은 몸만 남았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누군들 알 수 있을까.
“할머니가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어.”
김 작가가 드라마의 숨은 속내를 얘기한다.
“몇 번을 찾아갔더니, 그제야 드라마로 써도 좋다고 허락해주시더라고. 대신 조건이 있으셨어.”
“조건이요?”
내가 눈썹을 쫑긋 올리자, 손녀가 대신 입을 연다.
“할아버지를 진심으로 만들어 달라고.”
“아······.”
지금 나는 말을 꺼내기가 버거웠다. 목이 뜨거워서.
그래 만약 예정대로 성지훈이 했다면, 우리 오빠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을 거다.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결과를 알았기에, 나는 이번 드라마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그래서 배우를 누구를 쓰느냐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문제였는데··· 후훗, 이시현 찬스를 쓰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지.”
김 작가의 웃음에 할머니도 손녀도, 그리고 나도 함께 웃었다.
“할머니, 시현 씨한테 노래 불러주실 수 있으세요?”
식사가 끝날 즘에 김 작가가 뜬금없는 부탁을 했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봤더니, 김 작가의 눈가가 벌써부터 촉촉해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숨죽이고 지켜봤다.
할머니가 숨을 고른다. 떨리는 어깨와 달리 눈과 입술은 차분해 보이는데.
“이 밤··· 그대를 꿈에 뵈리까.”
주름진 목에서 흐른 목소리. 그 목소리의 떨림이 내 가슴을 흔든다.
사랑은 그대를 기억하기 위한 내 고집이란 말이오
사랑은 그대를 꿈에 보기 위한 내 욕심이란 말이오
허니 그대는 내 곁에서 잠시만 있다 가오
할머니의 눈이 나를 담는다. 자글자글한 눈가에는 반평생의 그리움이 스며들고. 오빠를 회상하듯, 오빠의 손을 잡고 논두렁길을 걷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담는다. 그래서··· 내가 잠시 오빠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 시절 여동생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그 오빠를.
“나 그거 하나 간절히 바라니.”
오늘 밤도 나는 그대를 찾아가리
달이 길을 가르쳐준다 해서 바람과 함께 찾아가리
“그대 나를 기다리면 되니.”
우리의 화음을 김 작가와 손녀가 숨죽여 바라본다. 노래를 부르는 지금, 할머니의 세월은 눈 녹듯 사라져 어느새 내 앞에는 순박한 소녀만이 남았다. 그래, 그래.
“달 밝은 밤 또 찾아뵈리까 내 그대를 그대를.”
“그대 보지 못해도 나 슬피 슬피 웃음 지으리 그대 보지 못해도 나 기뻐 기뻐 울음 지으리.”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할머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손을 꼬옥 잡고 한동안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
“시현 씨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게 해주셔서.”
어김없이 헤어질 시간이 찾아왔다. 나란 놈은 그렇게 감상적인 놈이 아닌데, 오늘은 이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환히 웃고 있는 할머니. 미소를 띠고 나를 보는 손녀.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김은수 작가까지.
그래서, 조금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나만 너무 행복한 것 같아서 말이다.
“할머니, 언제든 저 보고 싶으시면 전화하세요?”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한 다음에 일어나려는데, 손녀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시현 씨··· 저,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하죠!”
이제 와서 수줍어하는 그녀에게 사인을 해주고, 할머니와 함께 마지막으로 사진을.
“자, 하나둘 셋. 김치!”
찰칵.
<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찬스를 얻는다는 뜻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