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73화 (7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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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을 시간 (2)

[단독] 오소리 촬영 도중 성폭행(性暴行) 피해 입어!

-2년 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배우 오소리가 아역출신 배우 K에게 성폭행(性暴行) 피해를 입었으며, 방송국과 K 배우의 소속사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액의 배상을 약속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지난 8.15특집드라마에서 배우 오소리의 소속사 지에스엔터테인먼트의 신인 배우가 주연을 맡은 이유도 그에 따른 보상 차원에서 이뤄진······.

바스락!

최재환의 손에서 신문이 짓이겨진다. 일그러진 턱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중에도 매니지먼트 사업부는 전화벨 소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띠리리. 띠리리.

하염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다들 쳐다만 본다.

대책 없이 전화 응대를 하느니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기 때문이다.

현재 차 대표를 비롯한 임원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각 부서도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회의에 들어간 조 부장과 여름휴가중인 1팀장의 부재로 인해 매니지먼트 사업부의 현 책임자는 2팀장 최재환.

띠리리. 띠리리.

다들 입술만 달싹거린다. 긴급회의가 어서 끝나서 뭐라도 지시를 내려주길 바라고 있다.

“후······.”

최재환이 신문을 놓고 일어난다. 한숨을 내쉬더니 휴대폰을 챙겨 조 부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직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부장 사무실로 향했다. 유리벽 너머로 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모습이 비치는데··· 잠시 뒤 성난 목소리가 출렁거렸다.

“성폭행? 그딴 단어 누가 쓰래? 당신이 봤어? 손만 댔는지 아무 일 없었는지 당신이 봤냐고! 뭐? 포괄적인 단어라서 상관없다고? 야이 시팔 새끼야! 니가 신문 보면 그게 포괄적으로 느껴지겠어!!”

상스러운 욕, 그리고 열기가 후끈 느껴진다.

“뭐? 아니면 기사 내릴 거라고? 기사 내리지 마, 그대로 둬,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니까 그대로 두라고!!”

최재환이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또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박 기자, 나하고 연 끊을 거야? 미리 통보를 해? 전화 한 통 던져주고 10분 뒤에 기사 떴는데, 그게 통보야! 지금 나하고 장난해!”

통화를 지켜보는 매니저들이 목울대를 꿈틀 올린다.

“이 일에 관련된 기자들 신문사들! 그냥 안 넘어갈 거니까, 박 기자도 좆 되기 싫으면 발 빼고 기사 내려. 알았어?”

화를 내고, 으름장을 놓고, 경고한다.

최재환의 전화는 계속 이어졌다. 조 부장의 사무실 안을 서성이며 홀로 싸우고 있다.

그러자 지켜보던 매니저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붙잡기 시작했다. 사무실 여직원들도 정신을 차리고 울리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삶에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오소리가 은퇴한 이유는 바이바이 CF의 이미지, 그리고 그걸 깨지 못한 그녀의 한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일이 터졌다.

오소리가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그 덕에 내가 낙하산 타고 착륙할 수 있었다고?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며 오소리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최재환이 나한테 숨기려고 했던 게 이거였어?

그렇다는 말은, 결국은 내 존재가 뇌관을 터트렸다는 얘기인데··· 그럼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스캔들이란 미사일을 직격으로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기자의 단어 하나가 만들어내는 파급력은 엄청나다.

“···빛과 그림자.”

최재환이 창 너머 밖을 보며 속삭인다.

지에스 건물 입구에는 이시현을 보러온 팬들과 블랙보이 팬들로 인산인해인데, 블랙보이 팬들이야 회사에 지금 블랙보이가 있어서 몰린 거고, 이시현은··· 지금 어디 있지?

“일단 우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갈 겁니다. 해당 사건이 미수에 그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오소리가 피해자라는 점을 부각할 겁니다.”

홍보부서 권 팀장이 강한 어조로 얘기하고 최재환을 바라본다.

그 말대로 오소리는 피해자.

단지 문제가 있다면 대중은 이제부터 오소리하면 성폭행을 떠올릴 거라는 점이다. 평생, 꼬리표처럼.

“소리 씨는 언제 와요?”

성 팀장이 안경을 들썩이며 묻는다. 그녀의 안경알에 비친 매니저들.

“모레 입국인데, 아직까지는 일 터진 거 몰라요.”

최재환이 지그시 깨문 입술 틈새로 대답했다.

기사가 터지자마자 오소리와 함께 있는 강 실장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고, 절대 오소리가 알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팀장님은 이 일 알고 계셨어요?”

성 팀장이 추궁하듯 묻는다.

오소리하고 백진철 일을 알고 있었냐고.

그러자 회의실 내 모두의 시선이 최재환에게 닿았다. 성 팀장이 조금 더 신중했다면 이 자리가 아니라 단둘이 있을 때 물었어야 했다.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최재환이 되묻자, 성 팀장이 입을 열려는데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차 대표다. 다들 엉덩이를 들썩이는데.

“됐어, 앉아 있어.”

곧장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를 두드리는 차 대표.

팔꿈치까지 접은 파란색 셔츠, 단단히 동여맨 물방울 넥타이. 시원해 보이면서도 단단한 느낌이다. 그 존재감만으로 회의실 안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남자.

“이번 일, 큰일이지만 또 별일 아니야.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 날이 항상 좋기만 하겠어? 비도 오고 눈도 와야지. 우리 이 정도 해결 가능하잖아? 안 그래?”

“예!” 대답이 들린다.

“우리 지에스야. 그리고 오소리는 피해자고. 언제까지 피해자가 사람들 눈치 보는 세상이야? 당당하게 할 말 하고, 따질 것 따져. 상대가 욕하면, 너희들도 욕해. 알았어?”

“예!”

“지금부터는 잡생각 지워. 오로지 내 식구 지킨다는 것만 생각해.”

차 대표의 시선이 직원들을 훑는다. 좀 전까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갈피를 못 잡던 직원들인데, 눈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최재환이.”

“예, 대표님.”

“이번 일 네 멋대로 처리해봐. VVW, 백진철, 그 자식들한테 제대로 보여줘 봐. 지에스가 어떤 곳이지.”

차 대표가 최재환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기대감이 서려 있다.

“더 얘기 필요해?”

“아닙니다.”

“그럼 뭐해? 가서 일들 해!”

기침하듯 큰 목소리 내뱉고 차 대표가 회의실을 빠져나간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차 대표의 움직임은 지금부터라는 것. 오늘 하루, 그는 매우 바쁘게 움직일 거다.

“역시 대표님이야.”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아까와는 달리 입가에 미소가 설핏 비친다. 박수를 치며 기합을 넣는 직원도 있었다.

“이시현!”

사무실을 나온 최재환은 이시현을 찾았다.

“이시현!”

“시현 씨, 아까 나갔는데요.”

“나갔다고요?”

여직원의 대답에 최재환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디에 있나 싶어 휴대폰을 손에 쥐려는데.

“팀장님!”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최재환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

와장창!

노병기 본부장이 휘두른 골프채에 TV며 선반이며 액자까지 온갖게 부서지고 있다.

한자리에 모인 팀장들은 혹여나 파편이 튈라, 혹은 불똥이 튈라, 서로들 눈치를 살피며 노병기 본부장의 살풀이를 지켜만 봤다.

“후······.”

이제 진정이 되는지 긴 숨을 몰아쉰 노병기가 골프채를 바닥에 집어 던진다. 그러더니.

“그 병신 새끼.”

논란의 중심인 백진철은 지금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있다.

“그걸 못 참아? 나불댈 데가 없어서 기자 불러 술 맥이면서 그걸 자랑하고 싶었대?”

이번 일, 회사가 주도한 게 아니다.

백진철 그 모자란 새끼가 아는 기자를 불러서 복귀 기사 좀 써달라고 로비하는 중에 여자 얘기 지껄이다가 오소리 일을 꺼낸 거다.

그 결과 지금 KIS 황 국장은 물론 광고주와 팬들, 기자들의 확인전화까지 빗발치는 통에 사무실 전화가 불이 난 상황.

“참으세요, 본부장님.”

“하······.”

숨을 몰아쉬고 진정하는 노병기의 모습에 홍보팀장이 찌푸린 미간을 펴고 상황을 얘기한다.

“KIS에서 우리 소속 연예인들 모두 출연금지 한답니다. 성지훈 오늘 음악뱅크 MC 첫날인데··· 지금 회사로 돌아오고 있고요. 현승아도 라디오에서 하차할 것 같습니다.”

“수습되겠어?”

노병기의 질문에 홍보팀장이 맥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웬만한 사건이면 백진철 하나로 끝내겠는데, 범죄, 그것도 성폭행 미수 건이다. KIS도 발 빠르게 VVW와 선을 그은 마당에 광고주들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

지금 상황, 자칫하면 VVW가 매장될 수도 있다.

“에이 씨팔!”

노병기의 얼굴에 다시 열이 확 오른다. 둘러맨 넥타이를 팽개치듯 벗어던지는 그 모습에 홍보팀장이 마른침을 삼키고 질문을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시간을 끌어볼까 하는데.”

“뭘 어떻게 해? 이미 터진 거, 물길이라도 바꿔야지.”

“예?”

“호스트바 건 터트려.”

좀 더 나중에 써먹으려고 했던 건이다. 이시현이 좀 더 물이 올랐을 때, 추락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울 시점에 터트리려 했던 건인데.

“그걸요? 본부장님, 그렇게 하면 진흙탕 됩니다. 지에스 차 대표가······.”

“임마, 발밑 안 보여? 이미 뻘이야!”

잡아먹을 듯한 매서운 시선에 홍보팀장이 눈을 찌푸리는데.

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팀장들과 노병기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그러자 여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이시현?’

노병기는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를 보고 믿기지 않아서 눈을 깜빡였다.

이시현이다.

녀석이 여길 어떻게?

“뭐야 저건······.”

팀장들이 엉덩이를 들썩이고, 노병기가 눈을 찌푸린다.

이시현은 흔들림 없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너무 여유로워 보여서 노병기도, 다른 직원들도 넋 놓고 그를 바라봤다.

“너··· 뭐야?”

“그쪽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뭐? 그쪽?”

노병기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니 매니저 어디 있어?”

“혼자 왔는데요.”

“허! 이 새끼 이거 또라이네. 너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긴. 쓰레기로 가득한 곳이··· 여기 아닌가요?”

꿈틀.

노병기의 얼굴이 구겨진다. 일그러진 눈썹, 꿈틀거리는 턱, 거친 숨소리가 흐른다.

“너, 여기서 반병신 돼서 나가고 싶냐?”

하지만 이시현은 오히려 한 발 더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뭐부터 얘기할까요. 탈세?”

한발.

“성지훈이 모범납세자 선정으로 세무조사 면제를 받았던 그 3년 동안, VVW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냥 궁금해서요. 나보다는 국세청에서 더 궁금할 일이지만.”

한발.

“마약 건도 재밌죠. VVW 소속 틴스클럽 친구들이 파티에서 대마초에, 필로폰까지, 아주 제대로 논다던데? 뭐, 이건 경찰에서 궁금해할 것 같고.”

한발.

“너 이 새끼 뭐야!”

붉게 핀 얼굴의 노병기가 책상으로 바삐 움직인다. 그러더니 골프백에서 골프채를 빼 들었다.

팀장들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이시현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계속 다가간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부러질 것같이 생긴 놈이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 새끼가!”

노병기가 골프채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 둘이 싫으면 뺑소니 사건은 어떤가요?”

순간 노병기의 동공이 커졌다.

너무 놀라서 입술만 꿈틀거리는데.

“너······.”

“아, 뺑소니 사건이 아니지. 음주, 그리고······.”

이시현의 걸음이 노병기의 구두코 앞에서 멈췄다.

노병기는 여전히 골프채를 든 상태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인데, 오직 그만이 들을 수 있는 한 뼘 거리에서 이시현이 나직이 속삭인다.

“살인사건이죠.”

노병기의 손에서 골프채가 떨어졌다. 그러자 이시현이 태연히 허리를 굽혀 골프채를 줍는다. 원래 있던 자리에 놓더니, 미소를 띠며 묻는다.

“백진철 어디 있습니까?”

“······.”

“백진철 그 새끼 좀 데려오시죠. 그러면, 살려는 드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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