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56화 (5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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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기다렸다, 준비된 이들을 (3)

“어?”

휴대폰을 본 최재환이 얼굴을 찌푸린다. 통화권 이탈. 워낙 숲 속이라서 신호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자, 스탭들 부지런히 움직입시다! 오늘 못 끝내면 이슬 맞으며 주무셔야 됩니다!”

감독이 서두를 것을 종용하고 있다. 말투는 부드러운데, 표정은 성질 뻗쳐 죽기 일보직전 같다. 여름의 해는 길지만, 숲의 해는 짧으니 모두가 개미처럼 움직여야 한다.

드르륵.

최재환이 차 문을 열어주자 스타일리스트 오명숙이 육중한 몸을 차에 밀어 넣어 메이크업 가방을 꺼낸다.

뒤이어 오소리가 상기된 얼굴로 차에 다가왔다. 그녀는 지금 조선시대 관노비 옷차림에 얼굴에는 땀과 얼룩이 묻어 있었다.

“힘들죠?”

최재환이 오소리에게 물을 건넸다. 그녀가 냉큼 받아 마신다.

“하······. 이제 살 것 같네.”

바로 부채를 쥔 최재환이 그녀에게 부채질을 시작했다.

그녀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이 떨어질락 말락 흔들거리고, 더위에 상기된 얼굴이 겨우 식어간다.

오늘 촬영은 관노비인 ‘명이’가 관아를 탈출해 숲으로 몸을 숨기는 장면이다.

양반가의 여식인 명이.

그러나 역모에 휘말린 집안은 풍비박산되고, 그녀는 온갖 서러움과 고초를 겪으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원망하게 된다.

이후의 전개는 숲에 숨어 조선이라는 나라를 뒤집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려는 무리에 명이가 합류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언니!”

오소리가 오명숙을 부르자 그녀가 서둘러 대본을 건넨다.

오명숙은 덩치와 달리 행동이 빠릿빠릿하고 실력도 제법이다. 거기에다가 누구와 달리 눈치도 있고.

“배 안 고파요?”

최재환이 묻자 오소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는 사이 오명숙이 그녀 얼굴의 땀을 닦고, 화장을 고치고, 분무기를 뿌려 쫓기는 명이를 다시금 재현한다.

“후······.”

메이크업이 정리되자 오소리가 차에 올라탔다. 엑스트라들의 대규모 추적 씬이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최재환은 눈을 감은 그녀를 보며 잠시 여러 생각을 했다. 그 생각 중에는 얼마 전까지도 그녀를 따라다니던 윤 부장이 있었다.

‘너··· 나 입 열면 오소리 다친다.’

그날 윤 부장이 그 말을 꺼냈다.

사고를 낸 윤 부장은 권혜선을 병원에 보내고 수습하기 바빴다. 겨우 맥주 한 캔이었다지만 음주운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정 이사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윤 부장은 자리에 없었고 조 팀장이 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만약 최재환이 입을 다물었다면, 그저 사고가 일어났고, 권혜선이 다쳤으며, 3W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최재환은 그러지 못했다. 다른 건 다 넘어가도 매니저가 자신의 연기자를 태우고 음주운전을 했다는 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윤 부장을 찾아갔다.

윤 부장이 직접 차 대표에게 털어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집에서 나온 윤 부장은 초조함이 물든 얼굴로 담배를 태우며 말했다.

“너··· 나 입 열면 오소리 다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나도 살아야지 임마. 이 바닥 좁잖아? 이 꼴로 어디를 가? 재환아, 나 좀 봐줘라.”

“부장님, 오소리 다친다는 게 무슨 얘기입니까.”

“야 임마!”

윤 부장은 불안해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별일 아니잖아? 권혜선이 크게 안 다쳤잖아? 이거, 그거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니야. 나 겨우 맥주··· 그래 한 캔, 아니 두 캔 마셨다. 빗길 사고야 이거. 갑자기 쏟아지는데 피할 재간이 있냐?”

“···제가 대표님에게 얘기할까요?”

최재환은 말이 안 통하자 뒤돌아서 떠나려 했다. 그러자 윤 부장이 그의 팔을 잡았다.

“말했잖아. 내가 입 열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최재환이 눈을 부릅뜨자 윤 부장은 잠시 고개를 돌려 집안을 살폈다. 둘은 현관 앞에서 얘기하고 있었고, 이곳은 계단식 아파트다.

“잠깐 들어와라. 안에서 얘기하자.”

“형수님은요?”

“애들하고 친정 갔어. 장모님이 편찮으셔서······.”

안으로 발을 들였다. 최재환은 주위를 둘러보며 식탁에 앉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집. 스위치가 켜지자 애들 셋 키우는 집안의 풍경이 펼쳐진다.

“정신없지?”

“어느 집은 다른가요.”

윤 부장은 최재환에게 커피를, 자신의 입에는 담배를 물었다.

“재환아. 2팀이 외부로 나갈 때까지만 버틸게. 나가면, 핑계 대서 다른 데 갈게. 나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어.”

“그 안에 터지면요?”

최재환이 묻는다. 그 안에 음주운전 사실이 외부에 노출되면?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수습 제대로 했어.”

“부장님, 아니 형님.”

최재환이 좀처럼 입에 올리지 않는 호칭을 뱉었다.

“형님··· 권혜선이도 봤고, 강보라도 봤어요. 촬영장에서 형님 술 마시는 거 본 사람 없겠어요? 이쪽 사람들 눈치 빠삭이잖아요? 알게 될 겁니다. 그때 가면 누가 책임져요? 자칫하면 권혜선, 아니 3W··· 방송 접어야 되요. 게네 어떻게 왔는지 아시잖아요?”

“내가 그렇지 않게끔······.”

“형님.”

최재환이 나직이 다시 부른다. 그러자 윤 부장이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최재환이 다시 말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우리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내 배우, 내 가수··· 이들이 최우선이다. 형님이 저 입사한 첫날에 해주신 얘기예요.”

“그런 말······.”

“최소한 수뇌부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지금은 넘어가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대처할 방안을 준비해 놓죠.”

최재환이 한발 양보한다.

“······.”

윤 부장의 손에서 담배가 타들어 갔다. 끝까지 타들어 가는 동안 윤 부장은 생각에 또 생각을 했다. 타버린 담배가 그의 손을 태우려 할 때, 최재환이 손을 뻗어 담배를 새로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독립하세요.”

“뭐?”

담배를 입에 물던 윤 부장이 고개를 든다.

“우리 매니저들, 뭐하려고 이러고 있습니까? 언젠가는 내 회사 차리려고··· 그래서 버티는 거잖아요. 형님, 지금 형님은 그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최재환은 많이 고민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고민에 또 고민을 이었다. 음주운전 사실, 그래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좀 전에 언급했듯 대처방안을 준비하려면 회사가 알아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윤 부장은 잘린다.

음주운전 건은 회사에서 커버해도, 윤 부장의 인사는 차 대표가 그렇게 결정할 것이다.

음주운전에 사고까지 낸 매니저가 있는 회사를 연기자들이 믿고 의지하겠는가. 분명 차 대표는 거기까지 생각할 테고, 그렇다면 윤 부장이 살아날 방법은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독립이라······.”

윤 부장이 담배를 빨아들인다. 후······.

“나도 그 생각 안 해본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좀 더 있어야 돼. 최소한 데리고 나갈 애는 있어야 할 것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다. 영세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뉴페이스를 캐스팅하고, 연습을 시키고, 데뷔까지. 그 과정과 자금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차라리 그럴 바에야 준비된 애를 데리고 나가지.

그것만으로도 수억은 아끼고 들어가는 건데.

“나도 참··· 헛살았다.”

관둔다고 따라올 배우 하나 없는 현실에 윤 부장이 한숨을 내쉰다.

“재환아······.”

윤 부장이 다시 최재환을 불렀지만 최재환은 어두운 거실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후······.’

지금 윤 부장의 얘기는 고집이다.

어차피 윤 부장의 아파트를 벗어나면 차 대표에게 얘기할 생각이다. 단지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도리를 취하는 중이었다. 양보는 해도, 눈감아줄 순 없는 일이란 얘기다.

“오소리 얘기는 뭡니까?”

다시 고개를 돌린 최재환이 묻자, 윤 부장이 눈을 깜빡인다.

“그거, 못들은 걸로 하면 안 되냐··· 안 되겠지.”

최재환의 눈을 본 윤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뭔가를 놓은 사람처럼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얘기를 시작한다.

“내가 차 대표한테 배운 거지. 약점.”

“약점이요?”

“VVW 알지?”

“알죠. 예전에 유투 기획사.”

유투.

깡패새끼들이 운영하던 회사.

권혜선이 그곳에서 개고생하다가 지에스에 왔고, 최재환이 당시 그 일을 처리하려 그곳의 명성환이라는 자와 독대를 했다. 그 유투가 지금의 VVW.

“오소리가 VVW에 있었어요?”

첨 듣는 얘기다.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건 아니고, VVW에 백진철 있잖아.”

“백진철··· 아, 그 아역 출신이요?”

배우 백진철.

그도 오소리와 같은 아역 출신인데, 활동을 안 한지 꽤 오래됐다. 근데 걔가 왜.

“재작년인가, 그 새끼가 오소리 건들려고 그랬다.”

“건들려고··· 그랬다고요?”

놀란 최재환이 눈을 부릅뜬다.

“촬영 끝나고 회식 중에, 술 취한 애 끌고 가서 그딴 짓을······.”

“그래서요?”

최재환이 조금 넋이 나간 시선으로 묻는다.

“다행히 내가 발견했지··· 그래서 차 대표가 VVW하고 KIS 국장, 한자리에서 만났어. 그때 차 대표, 백진철 새끼 죽여 버린다고 미친 사자처럼 날뛰더라. 뭐 어떻게 합의는 한 것 같은데··· 그날 이후 오소리는 사람도 제대로 못 만나고 어디 밖에도 혼자 못 나간다. 안 그렇겠냐? 다들 수군거리는 것 같을 텐데.”

최재환이 윤 부장을 바라본다. 이제야 오소리 일에 항상 윤 부장이 나선 게 이해가 간다는 시선이다.

“그래 알아, 나도 쓰레기인 거. 그래도 나 할 만큼 했다. 오소리 수발 해주고, 나름 지켜줬어. 뭐··· 걔도 그래서 내 말을 잘 듣긴 했지만.”

그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사실, 오늘 신입 보낸 거··· 요즘 오소리하고 껄끄러워서 그랬던 거야. 애가 좀 달라졌거든. 말도 안 듣고. 후······. 그런데 이렇게 될 줄이야.”

담배를 비벼 끄고, 윤 부장이 다시 묻는다.

“재환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문득 최재환은 지난번 바닷사람들 이야기의 대본리딩이 끝나고 오소리의 밴을 얻어 탔던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됐다. 이시현은 바이바이 CF를 얻었고, 어쩌면 그때부터 오소리와 윤 부장의 사이는 미묘했는지도 모르겠다.

“알아, 내 잘못이지. 근데··· 우리는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걸까.”

윤 부장의 볼에 눈물이 흐른다.

두 사람이 함께 집을 나선 건 새벽이었다. 목적지는 청담동이었다.

**

“실장님?”

“예?”

최재환이 오소리를 쳐다본다. 그녀가 몇 번이나 부른 뒤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미소 띤 얼굴로 그를 타박하는 오소리.

“아니에요. 그냥 뭐.”

대충 손사래를 치며 넘어가는 그에게 오소리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뗀다.

“저기······.”

“왜요? 출출해요?”

“그게 아니라, 말 편하게 놓으시면 안 돼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이런 말 잘 못하는데··· 실장님은 나 편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최재환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요?”

“후훗.”

“알았어. 그럴게.”

최재환의 말이 떨어지자 그녀가 맑게 웃으며 차에서 내린다. 해가 기운다. 어서 빨리 촬영을 끝내야 한다.

“갔다 올게요.”

그녀가 뒤돌자 오명숙이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최재환이.

“저기 오소리 씨··· 아니, 소리야.”

“예?”

그녀가 멈춰서 뒤돌아본다.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올린다. 최재환은 그 상태로 잠시 그녀를 마주 보다가 미소와 함께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이팅.”

“뭐야··· 후후.”

그녀가 웃으며 촬영장으로 향한다. 그 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최재환은 자신의 주먹을 보다가 몸서리를 쳤다.

‘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역시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

최재환이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내젓는다. 생각할 것이 많지만 지금은 지금만 생각한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오소리를 캐어한다. 지금은 그녀의 매니저니까.

띠리리.

최재환은 문득 휴대폰을 바라봤다.

“응? 통화권 이탈인데?”

이시현이다.

이 녀석 전화는 무슨 시공간을 뚫기라도 하는 걸까.

“왜?”

**

“애들이 많이 늘었네?”

임원들이 먼저 자리를 뜨고 차 대표가 이달의 평가를 내렸다. 무심한 듯 내뱉은 그 말에 ATTM 직원들이 겨우 한숨을 돌린다.

캐스팅 파트, 트레이닝 파트, A&R 파트로 구성된 ATTM 직원들은 타 부서의 직원들과 달리 아티스트에 준하는 계약을 한다. 그만큼 일에 있어 자유도와 성과를 인정받지만, 실상은 언제 잘릴지 모를 프리랜서들이기에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수고들 했어. 정리하고 바로 퇴근들 해.”

“예!”

다들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성 팀장과 차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텅 비워진 연습실에 둘만이 남게 되자, 차 대표가 입을 연다.

“뭐야? 할 얘기란 게.”

“저, 대표님.”

“얘기해.”

“이걸 보여드리기 전에··· 왜 회사가 지금까지 이시현 배우를 내버려뒀는지, 왜 이시현을 배우로만 국한해뒀는지, 사실 그 이유를 묻고 싶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에 차 대표가 이마를 접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성 팀장은 대답 대신 이시현의 영상을 틀고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러자 차 대표는 대수롭지 않게 벽면 스크린에 시선을 가져갔고, 곧이어 이시현의 모습이 나왔다.

“캐스팅 영상?”

이시현과 캐스팅팀 직원의 대화가 이어지자 차 대표의 자세가 비스듬해진다.

“흠······.”

턱을 쓸어내리며 영상을 지켜본다. 저 때는 ATTM이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시기였다. 더구나 회사가 정신이 없던 때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배우보다는 가수를 키우는 데 집중하던 시기다.

그리고 지금 영상을 보니 이시현을 인터뷰하는 친구, 당시 관둔 직원 같은데.

차 대표는 떠오른 옛 기억들을 거닐면서 영상을 눈에 담았다.

쓸데없는 얘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시현의 꿈이라든가, 앞으로의 각오라든지 같은 지루한 이야기들에 차 대표의 자세가 또 바뀐다. 다리를 꼬고 소파에 등을 기댄다.

-할 수 있는 거요? 글쎄요. 하······. 저 지금 너무 떨려서··· 그거 카메라죠. 꺼졌다고요? 아, 노래요?

저놈의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지난 5년을 날려먹었다. 이시현의 나이 스물일곱. 아쉬운 시간임이 분명하다.

-후······. 그럼 부를게요.

이시현이 숨을 한번 고루 내쉬고, 크게 들이킨다.

기대감 없는 차 대표의 시선이 잠시 스크린을 벗어나 손목시계를 살피는 사이 노래가 흐른다.

고작 1분 남짓한 무반주의 노래.

하지만 노래가 흐르는 동안 차 대표의 시선은 제자리를 찾았고, 거만하게 벌어진 다리는 점차 좁아졌으며, 끝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뭐야?”

차 대표가 영상을 바라보며 속삭인다. 그는 지금 뒷머리가 바싹 치솟은 경험을 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성 팀장을 쳐다보고 묻지만 그녀는 리모컨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러자 차 대표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로 연습실 바닥을 내려 보고 방황하듯 움직였다.

“왜 지금까지 아무도 얘길 안 한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차 대표가 미간을 찌푸린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오디션은 ATTM 주도하에 자체 평가를 거치고 나서 임원진에 보고된다. 당시는 ATTM이 없었지만 그 같은 과정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예외라는 게 있었는데, 배우의 경우 비주얼이 우선이었기에 번거로운 절차들은 생략한 편이었다.

“성 팀장.”

차 대표가 허리춤에서 손을 떼고 성 팀장을 바라본다. 그 시선이 평소보다 한층 강렬해서 성 팀장은 제 입술을 힘주어 다물고 마주봤다.

“ATTM 다시 내려오라고 해.”

“예!”

성 팀장은 대답과 함께 연습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차 대표는 다시금 프로젝터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꾹 누르면서 바싹 탄 입술을 혀끝에 적신다.

“왜··· 왜 아무도 몰랐던 거야?”

그렇다면 최재환도 모르는 건가. 그 캐스팅팀 직원 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차 대표가 다시 리모컨을 손에 쥐자 영상이 이어진다.

-아, 그래요? 하긴 이 정도는 여기서 다 하겠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에스는 오디션 참가자에게 잘한다고 엄지를 내밀지 않는다. 제아무리 잘난 녀석도 최소 6개월은 다른 연습생들과 같은 과정의 스케줄을 소화한다. 그 시스템에서 탄생한 그룹이 블랙보이.

“후······.”

리모컨을 다시 쥔 차 대표가 한숨을 쉰다. 스스로 느낄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가슴은 뛰고 있었다.

눈앞에 온갖 빛과 색을 가진 배우 이시현이 있다.

색채의 향연인데··· 저걸 모르고 있었다니. 자그마치 5년이나.

차 대표의 눈앞에 이시현의 비전이 펼쳐진다. 지금껏 규정한 이시현이라는 인물의 폭이 급격히 넓어진 것이다. 이런 적, 여태 단 한 번도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ATTM 팀장이자 지에스 소속 프로듀서인 한지웅이 헐레벌떡 내려왔다. 턱수염 가득한 그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배 있었다. 그 뒤를 이어 ATTM 팀원들이 들어와 다시금 자리에 앉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성 팀장이 연습실 문을 닫았다.

스크린에는 이시현의 영상이 일시 정지 돼 있었고, 차 대표는 쉽게 말을 떼지 못했다.

“대표님, ATTM 모두 내려왔습니다.”

성 팀장의 시선이 닿자, 그제야 차 대표는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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