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161화 (161/210)

161. 호문쿨루스

액체로 가득 찬 커다란 유리관에 어린아이가 담겨 있었다. 그 주위론 여러 마법진들이 깜빡거렸다.

[이놈들 영리한데? 배양액을 이렇게 활용할 생각을 했다니…….]

-이게 전부 배양액이라고?

[어. 특수 조합으로 만든 배양액이야. 하…… 발상이 굉장해. 자세히 봐 봐. 우리가 여태 수거한 자료들을 활용한 게 곳곳에 보일 테니까.]

-그러네. 베이스는 키메라 제조 쪽 같은데……. 이게 가능한 거야? 엄밀히 따지면 키메라 제조는 언데드 계열이잖아.

[그게 놀라운 거야. 이 녀석들은 단순히 연금술만 사용한 게 아니야. 학문의 집대성이나 마찬가지야. 제법이네.]

옆에서 로메른과 현자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무튼 인조인간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거지?’

우리가 녀석들의 연구를 날름 삼켜서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어. 가능해.]

이거지! 이거!

성왕국까지 와서 그 난리를 쳤는데, 뭐라도 가져가야 하는 법이다.

다만, 문제가 있긴 했다.

‘다 좋은데, 이게 최종 병기라고 하기엔 좀 약하지 않아? 우리 드래곤이 훨씬 나아 보이는데?’

딱 봐도 로메른이 만든 드래곤이 훨씬 강해 보였다.

실제 드래곤 뼈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용암까지 줄줄 흘리는 마그마 드래곤. 겉보습만 보면 이쪽이 압승이었다.

최종 병기라고 부르기엔 임팩트가 너무 부족했다.

[오. 보는 눈이 있는데?]

어째선지 로메른은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어? 그래?’

덕분에 진의 대답은 다소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메른은 그걸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흑마법의 극의를 버무려 만든 건데, 당연히 마그마 드래곤이 강하지. 거기다 현자가 그걸 다루잖아. 사실상 ‘최강’이지.]

‘왜 이렇게 흥분했나 싶었더니…….’

낯도 두껍지. 자기 잘났단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놀랍긴 해. 극의에 도달한 기술 없이 여러 학문을 합쳐서 극의에 가까운 걸 만들어 낸 거니까.]

‘평가가 높은데?’

[내 걸작만 못하다는 거지.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아.]

‘이게?’

[우리가 회귀 전에 ‘천사’를 본 적 있다고 했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문쿨루스를 찾았을 때, 현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 천사의 신성력은 성녀만큼 강했고, 육체는 검성만큼 강했어. 그래서 지금까지 천사를 ‘소환’했다고 생각했던 거야. 만들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

‘이게 그 정도라고?’

아무리 봐도 그 정도 힘을 발휘할 거 같진 않았다.

[물론, 몇 가지가 더 필요해. 이건 사실상 미완성이거든.]

‘어떤 게 필요한데?’

[시간. 이 녀석들은 부족한 ‘극의’를 시간과 다양한 학문의 조화로 극복하려고 한 거야.]

‘……뭐, 숙성이라도 시키는 거야?’

[오. 비슷해. 숙성보다는 성장에 가깝긴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대충 어떻게 써먹을지는 감이 잡혔다.

‘이 녀석들 기술을 빨아먹으면, 우리 쪽에선 더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겠네?’

다양한 학문의 조화?

그건 이쪽에도 도움이 됐다.

로메른, 현자, 루나.

각 분야의 대가들이 있으니까.

[바로 그거야! 이 녀석들이 만들던 어설픈 최종 병기가 아니라, 진짜 최종 병기를 만들 수 있어.]

진짜 최종 병기.

이 단어가 주는 울림은 엄청났다.

이거 잘하면 대규모로 짬 때리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았다.

‘만드는 족족 대륙에 풀어 놓으면?’

전부 알아서 해 주지 않을까?

행복회로가 풀가동 되기 시작했다.

[……이런 대단한 걸 발견해 놓고 한다는 생각이!]

로메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째려봤지만, 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치만 놀고 싶은걸!’

날먹 가즈아!

“……성자님?”

폴카는 그런 진을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 저 눈빛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꾸는 건 간단하다.

“폴카! 연구에 합류할래?”

“네!?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자발적 노예도 구했다.

‘날먹 인생을 향해 가즈아!’

[……어휴.]

정령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지만, 진에겐 들리지 않았다.

* * *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건 멍청한 짓이다.

무에서 시작하는 건 필연적으로 시행착오가 필요한 법.

더 쉽고 편한 방법이 있다.

“그러니까…… 곧장 이것부터 연구하신다는 건가요?”

폴카는 유리관 안에 들어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어. 이 녀석을 연구하면서 지식을 쌓는 거야. 새로 만드는 건 그다음이야.”

“일종의 교보재로 삼으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원래라면 자료를 연구해 호문쿨루스를 만들어야겠지만, 여긴 제작 중인 호문쿨루스가 있었다.

호문쿨루스를 연구해 녀석들이 쌓은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다.

‘시행착오도 줄이고, 노하우도 쏙쏙 빼먹고!’

이쯤이 되니 성왕국과 지식의 해방에게 감사할 지경이었다.

연구에 들어갔을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녀석들이 떠맡아 줬으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네!”

막상 시작했지만, 진은 할 일이 없었다.

정령들과 함께 폴카가 일하는 걸 구경하면서 아이디어나 툭툭 던지면 될 일이었다.

‘천사가 있으면 뭘 할 수 있으려나…….’

천사는 대단하게 보이지만, 천사가 진을 따라다닌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일은 없었다.

이미, 성자이며 신의 그릇인데 솔직히 천사는 임팩트가 떨어졌다.

‘내가 데리고 다녀 봐야 별 의미 없을 거 같은데…….’

그렇다고 전투용으로 쓰기에도 애매하다.

육체 능력은 검성이고, 신성력이 성녀라고 해 봐야 파괴력만 놓고 보면 마그마 드래곤이 압승이었다.

‘의외로 사용처가 모호하단 말이야.’

성왕국이니까 이 천사가 ‘최종 병기’인 거지 진에겐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게 가치 없냐고 물어보면 또 아니다.

‘나름 쓸 만하긴 한데.’

그저 전투용으로 쓰기엔 다소 애매하다는 것이다.

‘흐음. 고작 인공 천사 하나를 완성한다고 다른 왕국들을 엿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잘 비벼서 이걸 요긴하게 써먹고 싶었다.

솔직히 대륙의 1/3은 너무 많잖아!

이걸 하나씩 처리하는 건 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짬…… 때리고 싶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일하기 싫었다.

[저거 또 뭔 짓을 하려고…….]

그런 진을 로메른이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당연한 일이었다.

진이 저럴 때면 항상 말도 안 되는 계획을 꺼냈으니까.

‘아!’

진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터트리자, 로메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불안하게 또 뭘 떠올렸길래…….]

‘로메른! 이 천사는 전투형이지?’

[어. 애초에 병기로 제작된 거니까.]

‘병기로 만드는 이유는?’

[……뭐? 그게 뭔 소리야?]

‘병기가 아니면 어때?’

[병기가 아니면? 아니. 애초에 이건 병기야. 인조인간을 왜 만들겠어.]

‘병기가 아닌 것도 만들 순 있어?’

[……당연히 가능하지. 오히려 병기가 아니면 제작 기간도 줄어들걸?]

진은 로메른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아니. 뭔데 뭐가 좋은데?]

‘전투 지식이나 장치 싹 다 빼 버리고, 사교나 화술 이런 거 때려 박을 수 있어?’

[오히려 더 쉬워. 현자가 오기 전 골렘에 박아 둔 데이터도 많으니까.]

그렇다면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좀 장기전이 되긴 하겠지만…….’

잘하면 짬 때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로메른. 인조인간도 나이를 먹어?’

[당연하지. 이건 생명체라고 보면 돼. 나이를 먹는 생명체.]

‘인간이랑 똑같이 먹는 거지?’

[그건 세팅하기 나름이야. 뭐 그렇다고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인간이랑 똑같은 인조인간.

이제 필요한 건 단 하나였다.

‘지금 시험관에 있는 아이, 쪼개서 여러 개로 만들 수 있어?’

[……뭐?]

‘내가 필요한 인조인간은 아기 형태면서 전투 기능이 빠진 녀석이야.’

[그런 조건이라면 현재 있는 아이를 나눠서……. 가능할 거 같은데?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야 돼. 지금 저 몸에 담긴 힘이 너무 강해.]

그럼 더 좋았다.

‘외형도 마음껏 바꿀 수 있는 거지?’

[그거야 당연하지. 성장하면서 어떤 얼굴이 될지도 정할 수 있어.]

이야기하면 할수록 조건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압도적인 힘이 아니야.’

[……뭐?]

떨떠름하게 되물은 로메른은 그다음 말에 경악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랑이야.’

[뭐!?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건 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랑이다.

‘아기가 악당을 갱생시킴. 아니 입에 안 감기는데…… 악당을 아기가 키움? 아기를 악당들이 좋아함?’

[……진짜 미안한데, 내가 대화에 못 따라가겠는데?]

못 따라와도 상관없었다.

‘일단 귀염 뽀짝하게 만들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뽀, 뽀짝?]

‘귀여움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법! 아기로 가즈아!’

[자꾸 가긴 어딜 가…… 일단, 설명 좀 해 달라니까!]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거야. 아기로 왕국을 바꾸는 거야!’

물론, 준비가 여러 가지 필요했다.

‘매료 같은 마법 정도는 걸 수 있지? 막 호감이 쌓이거나 그런 거.’

[……아. 인조인간이라 가능하긴 한데, 아기를? 아니. 이게 가능해? 그냥 성인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아?]

아니. 성인은 안 된다.

그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건 무조건 아기였다.

‘어차피 인조인간 새로 만들면 되잖아? 이거 보수한다고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한데…….]

‘그럼 나 믿고 질러!’

[……아. 진짜 모르겠네. 일단 알겠어.]

‘인조 아기가 악당을 갱생’시킬 것이다.

* * *

방향이 잡히니 제작은 빠르게 진행됐다.

[하. 이게 뭘 하는 건질 모르겠네. 매료, 우호, 친근, 기품…… 등등 때려 박을 수 있는 건 다 때려 박았어.]

일단, 보기만 해도 친근감이 넘치고 호감이 듬뿍듬뿍 쌓이도록 아기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야말로, ‘마성의 아기’가 탄생하고 있었다.

그동안 진도 바쁘게 움직였다.

뭐, 바쁘게 움직였다고 해봐야 편지 한 통을 보냈을 뿐이다.

진이 편지를 보낸 곳은 ‘정보팀’이었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왕국 중, 생후 3개월이 넘지 않은 아기를 가진 가문의 목록이 필요함.

정보팀은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을 보냈고 진은 곧장 가문을 선정했다.

‘다들 모여 봐. 회귀 전에 유명했거나 악명 높았던 가문이 어디야?’

물론, 진이 직접 선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은 정보팀도 모르는 정보를 가진 ‘회귀자’들이 있으니까.

덕분에, 가문 선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젠 왕국의 비체 백작가. 이쪽은 고작 백작인데 왕국의 흑막이나 마찬가지야.

[빌타 공화국의 쎄타 후작가는 어때? 여긴 의회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곳이잖아.]

젠 왕국의 비체 백작가.

빌타 공화국의 쎄타 후작가.

두 곳이 뽑히자마자, 다시 한번 편지를 보냈다.

=아기의 초상화가 필요함.

아기의 초상화를 요구했고,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덧붙였다.

=괴도 메이의 도움이 필요함.

각 가문의 아기를 인조 아기들로 바꿔치기할 생각이었으니까.

[허어. 애를 훔치는 건 좀…….]

검성이 나지막이 우려를 표했지만.

‘그럼, 성왕국처럼 저쪽 왕국 전부 날려 버릴까?’

왕국 전체를 날려 버릴까?

아기 하나를 바꿔치기할까?

검성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흠. 그건 아닐세.]

‘게다가 납치한 애를 내가 죽이겠어? 교단에서 잘 키워 줄 거야.’

아기도 살고, 왕국도 사는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진짜 우리 편이길 다행이지…….]

로메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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